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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상량 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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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5-12-28 18:04 조회3,3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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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천일기도 회향 및 입재일이고 아울러 뜻깊은 신축 법당 상량일(上樑日)입니다. 기도에 동참하시는 모든 분들이 바라는 바 소원을 성취하시고 세세생생에 영원한 복락을 누리시길 기원합니다. 또 상량에 즈음하여 그간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물심양면으로 애써주신 신도 여러분의 노고와 성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선행 중의 선행, 덕행 중의 덕행은 불사. 그간 중창불사(重創佛事)를 발원하고 시작한지가 어언 4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축서사의 지난 4년이란 장구한 고난의 세월이었습니다.


그 까다롭고 복잡한 행정적인 절차를 밟아 가파른 산골 구거(溝渠)를 매립 성토(成土)하여 부지를 조성하고, 축대를 쌓고 신구거를 냈으며, 후원 요사채와 가건물 2동을 지어 이사하고, 기존의 후원채 건물 4동을 철거하여 정지(整地) 작업과 축대공사를 하고 법당 기초를 하여 오늘 상량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변화된 모습을 보면 실로 감개가 무량합니다.


여기, 산자수명(山紫水明)한 문수산(文殊山) 기슭에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의 수많은 산자락이 겹겹이 쌓이고, 저 멀리 소백산(小白山)이 병풍처럼 드리워져 장관을 이루는 명당에, 100여 년만에 가람의 초석이요 중심이 될 대웅전의 대들보를 올리려고 합니다.


축서사는 의상(義湘) 대사께서 화엄(華嚴)의 깊고 깊은 향화(香華)의 진리를 열어 영원한 복전(福田)이 되어온 지 어언 일천삼백삼십여 년, 영고성쇠(榮枯盛衰)의 윤회는 새로운 역사의 장을 펼치려고 합니다.


구전에 의하면 고려 중엽 전성기에는 각종 법당이나 부속 건물이 30여 동이나 된 큰 가람으로 수행승이 무려 200여 명이나 되어 불국정토(佛國淨土)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축서사에서 십여 리 떨어진 개단 2리 결단마을은 원래는 그 곳까지 절 땅이었는데, 절 땅이라는 말이 절단으로 바뀌었다가 이제는 결단이 되었다고 합니다.


절 땅이 그렇게 넓어, 스님들은 절 땅이 아니면 밟지 않았다고 하였으며, 아침에 공양을 지으려고 쌀을 씻으면 흰 뜨물이 결단까지 내려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무상한 세월 속에 조선조의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에 파란만장(波瀾萬丈)한 시대를 겪었으나, 대웅전 상량문에 의하면 고종 2년(1863년)까지는 상당히 큰 사찰로서 건물이 14동(각 법당 7동, 기타 7동 등)이고, 승려 수가 44명이고, 기도처로서 상당한 명성을 날렸다고 합니다.


그 후 이조 말년에 화재로 대웅전 한 동만 남기고 전소되어 화려했던 지난 날의 영광은 사라지고, 일제 때에는 도량 곳곳마다 잡초만 무성하였고, 스님 한, 두 분이 토굴처럼 겨우 가람만 수호했다고 합니다.


해방과 6.25 사변을 겪으면서 면면히 목숨을 부지하듯이 부처님만 겨우 모셔오다가 50년대 말과 80년대에 몇 동의 건물을 지어 겨우 사찰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대웅전이 너무 협소해, 장엄해야 할 종교의식이나 행사를 제대로 집행할 수 없고, 수행납승(修行衲僧)이나 신도가 찾아도 방사가 부족하고 내부시설이 불비(不備)하여 불편 부당한 점이 많으므로 부득이 오랜 숙원인 법당을 크게 신축하고 화려했던 지난날을 재현하는 중창불사의 과업을 추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부처님 말씀에 "선행(善行) 중의 선행이 불사(佛事)요, 덕행(德行) 중의 덕행이 불사"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옛부터 불사는 최상의 사업이요, 성스러운 사업으로 불리어졌습니다.


법당은 일체중생의 작복처이고 귀의처이다


불사 중에서도 핵심은 법당을 건립하고 부처님을 모시는 일입니다. 법당은 세심수도(洗心修道)와 성불작조(成佛作祖)의 중심지이며, 일체 중생의 영원한 작복처(作福處)이고, 장구한 귀의처(歸依處)이기 때문입니다.


불법은 예사로운 종교가 아닙니다. 천수경의 처음의 말씀처럼 "위없는 깊고 깊은 미묘한 법"이 불법입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발견한 최고의 진리이며, 가장 확실하고 바른 법이 불법입니다. 그래서 어떤 종교보다도 위대하고 어떤 철학보다도 심오하며, 어떤 학문보다도 앞섭니다. 불교를 떠나서 인간과 우주를 논할 수 없고, 불교를 모르고 인생을 말할 수 없습니다.


불교는 믿어도 되고, 안 믿어도 되는 종교가 아닙니다. 지혜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언젠가는 반드시 믿고 부처님 말씀대로 살아야 후회 없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그런 바른 길로 인도하는 안심입명처(安心立命處)가 법당입니다.


법당을 하나 건립하면 천재지변이 없는 한 300∼400년은 유지된다고 합니다. 그 몇 백 년 동안 수많은 신도가 신심을 내고, 발심을 하고, 기도하여 소원을 성취하는 곳이니 그 공덕은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불교 역사상 가장 많은 불사를 한 사람은 부처님 열반 후 200여 년만에 출현하여 인도를 통일한 [아쇼카] 대왕이라 합니다. 대왕은 국력을 기울여 인도 전역에 탑과 가람을 무려 8만 4천 개나 건축했다고 합니다. 그 인연 공덕으로 삼세 동안이나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리라고 부처님께서 예언까지 하셨습니다.


[삼국유사]에 보면 신라 때 경주 모랑리의 가난뱅이 김대성(金大成)은 품팔이 하여 산 밭을 절에 시주한 공덕으로 명문에 태어나 전생의 부모를 위해서는 경주 불국사를 창건하였고, 현세의 부모를 위해서는 석굴암을 건축하였다는 유명한 이야기는 당시 신라인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요, 평생의 소원이었다 합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불사의 현장에는 미담(美談)과 신행담(信行談)이 만발하고 기적과 같은 불가사의한 일도 비일비재(非一非再)하였습니다.


이 자리에 동참하신 여러분의 공덕도 결코 헛되지 않아 그것이 현실로 승화되어 나타날 날이 있을 것입니다. 인과응보(因果應報)는 분명하고 확실합니다. 여러분이 선행의 씨앗을 뿌린 대로 신심을 내고 원력을 세우고 정성을 표한 만큼 무량한 복락이 되어 다가올 것입니다.


상량일을 맞이하여 축서사 불사에 동참하신 신남신녀(信男信女) 여러분께 거듭 감사드리며, 이 인연 공덕으로 여러분이 건강하고 하시는 일이 잘 되며, 가정이 화목하고 항상 행복을 누리시기를 기원합니다.




유서깊은 문수산(文殊山) 축서사(鷲棲寺)


전설과 영험도 풍성하여라.


천년만에 금독수리 되어


웅비의 나래 대천세계에 펼치려고 하니


새들은 모습을 감추고


짐승들은 눈을 가리는데


가을 산색(山色)은 유난히 아름답고


황금 들판에는 농부들의 태평가(太平歌)소리 요란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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