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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2. 유니텔 부처님나라 참선법회/질의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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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가람지기 작성일06-02-08 09:09 조회3,7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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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2. 유니텔 부처님나라 참선법회/질의응답



무여스님께서 저희의 질문에 정말 자상하게 답해주셨습니다. 아주 고마우신 법문입니다. 새겨 새겨서 깨침의 길에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162A06_00710103261023261%b9%ab%bf%a9%bc% [질문 1]

아침에 뵈었을 때 관법(觀法)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시겠다고 하셨는데 지금 이뭣고란 화두를 주셨지만 여기 그래도 못하는 초심자들이 많으니까 관법에 대해서 조금 설명을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무여스님]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의 체취를 가장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것이 관법입니다. 그런데 관법으로 선(禪)하기가 좀 어려워요. 지금부터 800~900년 전에 송나라 때 유명한 선사들이 화두 참선법을 만들었어요 이 관(觀)이란 뭐냐하면 집중한다는 것이예요. 볼 관자 관인데 본다는 것은 정신을 집중한다는 것입니다.


수행의 요체는 집중입니다.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한다는 것입니다. 집중은 왜 하느냐? 그것은 번뇌 망상을 없애기 위해서입니다. 즉 우리 보통사람을 마음이 조용하지가 못해요. 고요하고 편치가 못해요.


.이런 생각 저런 생각 온갖 잡생각을 다 일으키고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하지가 못해요. 현대인일수록 더 그래요. 고요하고 편안하지 못하다는 것이 뭐냐? 그것이 고(苦)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괴로움입니다. 마음을 고요하게 안정을 시켜야 돼요.


즉 샘물 우물물 같은 것 파도가 치듯이 물이 출렁거리면 물이 금방 탁해져요. 그런데 물이 잔잔해지면 아주 고요해져요. 출렁거려서 물이 탁할 때는 밑이 안보이다가 고요해지고 안정이 되면 수십 미터 밑까지 보여요. 아주 맑아져요.


즉 우리마음은 오랜 세월동안 살아오면서 그 업으로 인해서 온갖 번뇌 망상으로 인해서 늘 불안하고 괴롭고 온갖 번뇌 망상을 다 피워요. 그런 마음을 고요하게 안정을 시키려면 바로 한 곳에 집중을 시키면 좋은데 보통 사람은 집중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호흡에 의지해서 집중법을 가르치는 거예요 호흡에 왜 의지하느냐? 우리의 내면에는 온갖 그야말로 내면에 별 더럽고 추한 것이 꽉 차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도 그런 더럽고 추한 것이 꽉 차 있어요.


그래서 그것을 그런 상태(더럽고 추한 상태)에서 관하면 한 곳을 집중시킨다고 해도 집중이 안돼요.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이 꽉 차 있기 때문에 앉아 있으면 별생각 다 나잖아요? 그렇듯이 집중이 안돼요. 마음이 편치 않아요.


그래서 그런 것을 물리적인 힘으로 청소하듯이 세탁하듯이 쓸어버리듯이 없애듯이 소멸시켜가면서 하는 것이 좋은 거예요. 그게 뭐냐 호흡이에요. 그냥 바로 관하면 바로 한 곳에 집중하면 좋은데 그게 잘 안 되는 거예요. 어려운 거예요.


호흡을 함으로써 느끼면서 집중하는 것이 호흡법이에요. 호흡법은 숫자를 헤아리는 호흡법이 있고 숫자를 안 헤아리고 그냥 호흡자체만 지극하게 관하는 집중시키는 법이 있어요. 숫자를 헤아리는 것도 일장일단이 있고 그냥 집중 하는 것도 좋은데 여러분은 숫자를 헤아리세요. 들이켰다가 내쉬면서 하나 둘...열까지 헤아리고는 또 하나부터 열까지 또 하나부터 열까지 헤어립니다.


앉는 자세는 아시죠? 앉는 자세는 가부좌나 반가부좌로 똑바로 하고, 이 허리가 에스자형 비슷하게 하세요. 너무 꼿꼿하게 세우지 마시고 자연스럽게 좀 부드럽게 세워요. 한번 앉아 보세요.


아시는 분은 다 아시지만 요 새끼손가락이 단전에 닿게 하세요. 단전은 배꼽 두치 아래가 단전이예요. 거기를 의식하기 위해서 대세요. 그리고 손가락은 동그라미를 하고요. 좌우로 세 번 네 번씩 흔들어요.


흔들더라도 많이 흔들어요 아주 땅에 닿을 정도가 되면 더 좋고요. 그리고 또 전후로 흔들어요 땅에 닿을 정도로 즉 허리를 펴요. 허리를 부드럽게 해요. 너무 허리에 힘을 주지 말아요. 자연스럽게 허리를 꼿꼿하게 하세요.


그리고 머리는 똑바르게 세우고 힘을 주지는 마세요. 몸의 어떤 부분도 힘을 주지 마세요. 자연스러우면서도 여법(如法)하게 꼿꼿하게 세우시고 눈은 일 미터 전방쯤 시선을 두세요. 그리고 입은 다무시고 혀는 입천장에 닿게 하시고 호흡을 합니다.


호흡을 할 때 밖의 공기가 아주 정화된 순화된 공기를 마시듯이 기분좋게 호흡이 단전까지 들어가는 느낌을 갖고, 깊숙이 호흡을 하되 너무 무리하게 하지는 말아요. 자연스럽게 조금은 부족하게 해도 괜찮아요.


그러면서도 조금 더 힘차게 서서히 그렇게 하세요. 들이켰다가 들이키는 숨보다도 내쉬는 숨을 더 길게 하세요. 들이켰다가 내쉬면서 하나 둘 그렇게 들이켰다가 내쉬면서 하나∼. 들이켰다가 내쉬면서 둘∼. 이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또 하나부터 열까지 그래 하세요.


하되 아주 정성껏 하세요 정성껏 거기에 푹 빠질 정도로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서 해서 기분 좋은 상태에서 아침 출근을 해보고 하루종일 수고하고 머리를 많이 쓰시다가 집에 오면 또 가벼운 마음으로 해서 그 날의 쌓이고 쌓인 온갖 잡 것들을 싹 다 청소하듯이 하고, 주무실 때 도 호흡을 할 수 있으면 하면서 주무시고요. 그러면 잠에 푹 드실 수가 있습니다.


수행법은 스스로 제대로 익히는 것이 아주 중요해요. 기본적으로 이렇다는 것을 아시고는 집에 가서 아주 지극하게 성의껏 애써 보세요. 그래서 참(眞)으로 되도록 하세요. 좀 되서 하다보면 꼿꼿하게 앉아 있을 수가 있어요 .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공간이 법당인지 집인지 모를 정도로 그렇게 꼿꼿하게 앉아서 지극하게 하는 그런 정도가 되거든 화두를 꼭하세요.


그 때쯤 되면 반드시 화두를 받아서 화두참구를 하시기 바랍니다. 이 관법을 하는 분들도 관법은 화두참선을 위한 준비 작업이다, 과정이다 그런 정도로 생각하세요. 관법이 되거든 반드시 화두 참구를 하십시오.


[질문 2]

2년 전에 끽다거라는 화두를 받았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느 정도 되면서 굉장히 답답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풀어 가야 할지 모르겠고 답답하게 느껴지기만 합니다. 답답하다가 바로 졸음에 떨어집니다.


사실은 스님께서 말씀하신 답답함과 의정하고의 관계를 잘 모르겠고요. 굉장한 졸음에 떨어지는데 할 때마다 오 분도 안 되서 졸음에 떨어집니다. 뭘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잘 몰라서 여쭙니다.


[무여스님]


화두는 한순간도 없어지지가 않아야 합니다. 한 순간도 없어지지가 않아야 되요. 화두가 없어지지 않으면 즉 화두가 성성하면 졸음이 오질 않아요. 졸라고 해도 안 졸아요. 그런데 답답한 것은 의심이 조금 나는 그런 상태예요.


그런 상태로 의심 자체가 꾸준하게 연결이 안 되는 거 같은 데 그래서 졸린다든가 번뇌 망상이 들어오기도 하는데 이 때 정신을 좀 바짝 차리세요. 그러면서 졸음에 안 떨어질 정도 까지는 되야 되요.


졸음에 떨어지고 그런 정도가 되면은 「나는 화두할 정신적인 자세가 안돼 있다」 그렇게 생각해도 좋아요. 안 졸 정도는 되야 해요. 화두 뿐만이 아니라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시더라도 그런 정신상태로 일하면서 꾸벅꾸벅 조는 사람한테는 사표를 받아야 해요 그런 상태로 무슨 일을 할 수가 있겠어요?


그래서 여기는 정신 그런 사람은 빳따로 좀 맞아야 되요. 즉 제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요. 그것이 바로 아가씨들 같으면 훗날 주부 생활하는데도 그래야 해요. 남자들 같으면 돈벌이하면서 꾸벅꾸벅 졸면서 하면 돈 벌 수 있겠어요? 그런 사람이 돈이 벌리겠어요?


그래서 화두하는 사람은 좀 달라야합니다. 눈이 총총해야 되요. 똘망똘망해야 되요. 막 야심에 불타야 되요. 오로지 그것뿐인 생각을 해야 해요. 그렇게 자신을 개조하고 만들어 가세요. 그래서 화두하는 사람이 흐리멍텅하면 안됩니다.


졸음이 오면 정신을 좀 바짝 차리세요 그리고 화두자체를 지극하게 들고 처사님도 하면 된다는 가능성을 보여 준거예요. 답답한 것은 그것은 하면 되는데 아까 이야기했듯이 불을 제대로 못 떼는 것 같네요. 못 때는걸 알아요? 남편도 사표내야 되요. 어쨌든 이 공부는 화두가 되게하는 것이지만 정신을 개조해야해요. 그래서 어떤 일을 하든 확실하게 분명하게 하고 열심히 해야 합니다.


보살님들 같으면 밥을 한다면 이층삼층 밥은 안해야 되요. 화두참구할 때요 여기저기 다녀 보면 눈을 감고하라는 데가 있고 눈을 뜨고 하라는 데가 있는데요 그게 참 방법이 있는 건지 아니지만 눈을 뜨고 하세요.


눈을 감고도 하는데 눈은 떠야 우선 망상이 좀 덜합니다. 그리고 아까 얘기한 졸음이 덜합니다. 눈을 감으면 졸음도 많이 오고 이런 저런 번뇌망상도 많이 들어옵니다. 그래서 눈을 뜨시되 눈을 부릅뜨면 하루도 못해요.


눈이 빠지는 거 같아요. 그러지 말고 반개해요. 반쯤만 뜨세요. 눈은 에너지를 많이 소모합니다. 사람 에너지의 한 4/1은 눈이 소모한다는 거예요. 그 눈이 소모하는 에너지는 대단합니다. 에너지는 어쨌든 아껴야 되요. 요즘 젊은 여성들은 살 뺀다고 땀을 뻘뻘 흘리고 하는데 사실은 그런 사람이 살 뺀다고 에너지를 그렇게 소모하면 안되요.


이 몸뚱이도 기계예요. 많이 쓰고 땀 많이 빼면 결국은 그만큼 에너지가 나갑니다. 그래서 에너지를 아낄 줄도 알아야 되요 .참선을 하면 마음이 고요해지잖아요. 그러면 많이 안 먹어도 배가 고프질 않아요. 그런 사람은 운동을 많이 할 필요가 없고 그런 사람은 살을 빼고 그런 것하고는 거리가 멀어지게되요.


나름대로 행복을 느끼면서 편안하게 그렇게 살면서 그렇게 몸을 잘 간수하고 다스리면 병도 안 와요. 오래 살 거예요. 화두 잘 하면 장수합니다. 고목에 꽃피우듯이 새로운 인생을 꽃피울 수 있는 거예요.


늙고 병들고 한 육체도 잘 다스리면 건강을 나름대로 찾을 수가 있고요. 사는 것도 상당히 오래 사실 수가 있답니다. 마음을 편안하게 고요하게 다스림으로써 육체까지 잘 다스리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어요. 오래 사시고 싶으신 분들은 참선 잘 하세요.


[질문 3]
앉아서 하는 시간 말고 일하는 시간이 더 많은 데 그럴 때는 어떻게 화두를 들어야 하지요?


[무여스님]


일할 때도 화두를 할 수 있으면 하는게 좋겠지요. 일하는데 큰 지장을 주지 않고 화두를 해서 웬만한 경지가 되면 하는 게 좋지만 일하는 시간에는 일에 따라서 전혀 할 수 없는 경우도 있어요. 그러면 어쩔 수가 없지요. 어쨌든 할 수만 있거든 해 가면서 하는 게 좋습니다.


자세가 문제가 아니고 어떻게 참구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참구는 지극하게 하지는 못할 거예요. 그렇게 하지는 못하더라도 꾸준하게 화두를 놓치지 않고 닭이 알을 품듯이 그렇게만 해도 그 공덕이 상당합니다.


[질문 4]


화두를 하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데 그 이치는 어떤 것입니까.?


[무여스님]


우리 범부는 오리무중이다 그런 말을 하지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어요 그래서 아침에 잘 다녀오겠습니다 하면서 나갔던 분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한시간도 못됐는데 시체가 되고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앞이 캄캄합니다.


그래서 맘이 답답하고 괴로울 때가 많은데 그래서 부처님이 범부를 볼 땐 아주 답답해 보이고 저렇게도 사는구나 그런 생각을 가질 수가 있을 정도로 답답하고 어리석고 못났다는 그런 얘기를 하는데 왜 그러냐?


우리 본 마음의 본 바탕은 본래 면목은 부처님과 똑같아요. 즉 부처님과 같다는 것은 아주 맑고 깨끗해요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나쁜 짓 못난 짓 어리석은 짓을 해 왔고요 업이 두터워요. 그런 가하면 업이 두터우니까 별 생각을 다 해요. 온갖 번뇌 망상을 다 피워요.


그래서 마음이 늘 괴로워요. 그 마음이 고요해져야 하는데 그래야 편한데 말이지요. 고요하고 편해지면 마음이 맑아져요. 저 캄캄한 마음이 탁하고 맑아지는 것을 깨친다고 해요. 맑아지는걸 더 애쓰고 노력하면 환히 밝아져요. 밝아지면 깨치는 거예요.


밝아져서 완전히 본래 면목이 드러나는 것을 깨친다 그럽니다. 이 깨침이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예요. 그것을 맛을 보느냐, 그런 경계를 체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서 잘 살았느냐 못 살았느냐 이 가부가 결정이 되요.


보통사람들은 돈을 얼마나 벌었나, 명예나 권세가 얼마나 대단했느냐, 그걸 가지고 성공이냐 실패냐를 따지지 않습니까?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에요. 중요한 것은 본래 면목 근본바탕을 깨쳤느냐 못 깨쳤느냐 그것이 성인의 경지인데 그 경지에 갔느냐 못 갔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래서 처음 이야기했듯이 조문석사(朝聞夕死)라, 과연 이런 말을 할 수가 있느냐? 이런 말의 뜻이 이해가 가느냐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깨쳤다 합니다.


[질문 5]


참선한지 4년째 됐습니다. 요즘 잠에 든 지 두시간 정도면 잠에서 깨어나고 잠잘 때나 깨어 있을 때나 벌이 한 마리 날아다니는 것 같이 항상 신호가 있습니다. (화두를 안 들어도
아침에 새벽에 눈뜨자마자 어때요? ) 똑같습니다. 항상 눈뜨자마자 아주 피곤할 때는 조금 그렇지 않을 때는 두 시간 정도마다 깹니다. 하루에 두 번 내지 세 번 정도 깼다가 잡니다. (지금 말씀하실 때는 어때요?) 지금은 두근거립니다.


[무여스님]


그것을 굳이 말씀 드리자면 동정(動靜)에 이른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동정에도 마음대로 조금도 변함이 없이 일여(一如)한 그런 상태까지는 못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상태까지 되기까지 어렵고 애쓰셨는데 이제 참으로 제대로 할 때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직업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공부에 참으로 전력을 투구하고 좀 애쓰시면 정말 보람과 긍지를 느낄 만 합니다.


저 정도만 해도 「화두하지 말라」 해도 안 할 수가 없어요. 절에 가지 말라고 옷깃을 부여잡고 아무리 막고 방해를 해도 안 올 수가 없는 것이 절(寺)이고 화두입니다. 어쨌든 화두하는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상태입니다. 열심히 하십시오. 수고했습니다.


[질문 6]


화두를 하면서도 글자에 끄달리게 되는데 화두선을 할 때는 어떤 책을 어떤 방식으로 읽어야 하나요? 화두선을 할 때는 책을 읽지 말라고도 하는데...스님께서는 화두들기 전에 화두선에 대한 책을 읽으라고 하셨는데 책과 화두와는 어떤 관련성이 있나요?


[무여스님]


화두를 본격적으로 하시면서 책을 보라는 말은 아닙니다. 화두하기 전에 화두를 할 수 있는 기초 작업을 하시라는 거예요. 즉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시라는 거예요. 그 예로 좌선의 라고 있죠? 그런 책이라든가 요새 「화두 짓는 법」이라고 좀 얇은 책이 나온 게 있습디다.


그런 책이나 꼭 필요한 것 세권정도, 아니면 한 다섯 권 정도를 아주 정독을 하세요. 화두할 수 있는 참선자가 되기 위한 준비 작업을 제대로 갖추고 화두를 하시되 본격적으로 화두할 때는 책을 가급적이면 읽지 마세요.


책을 읽고 번뇌망상을 피우게 되면 그때는 책을 보지 마세요. 책을 보실 때는 여러 중요한 대목들이 있어요. 그런 중요한 대목을 기억한다든가, 체크를 해 놨다가 참으로 보고 싶을 때에, 공부에 유익할 때에, 아픈 곳이 있으면 아픈 곳을 꼭 찌르듯이 바로 거기에 필요한 약을 바르듯이 그런 책의 부분 부분을 알아서 읽고는 치료가 되면 화두공부를 하듯이 책을 보되 많이 보지는 마시고 그저 한 두 장 잠깐 봐요.


한 두 장 잠깐 보고 싶을 때를 제외하고는 웬만하면 보지 마시고 문자 외면해가면서 그렇게 오직 화두 참구로 애쓰십시오. 대학 좀 졸업하시고 책을 좀 보시고 머리를 많이 쓰시는 분들은 책을 안 읽으면 직성이 안 풀려요.


책을 읽어야 뭘 좀 한 거 같고요. 법문이 나와도 이론적으로 따지고 생각하려고 해요. 즉 사량분별을 많이 해요. 그건 사량분별을 일으켜서 될 일이 아니잖아요. 그냥 보는 거예요. 오직 화두로서 됩니다.


어쨌든 요새사람들은 지식 공부를 어릴 때부터 해서 머릿속에는 지식이 잔뜩 들어있어요. 지식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번뇌나 망상을 일으킬 수 있는 살림살이가 많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식자우환이라 아는 것이 병이라는 것이예요.


옛날에 어떤 스님이 계셨는데 한 20~30년 전에 일인데 그 스님은 대학출신이라면 아주 상종을 하지 않으셨어요. 화두 공부 제대로 안 한다고 말입니다. 일자무식인 그런 상태를 더 좋아하신 그런 분이 있었어요.


절에 들어가서 책만 보면 야단치고 심지어 서울 도봉산에 계시던 어떤 스님은 한 스님이 책을 들고 다니면서 요책 저책 보면서 입만 살아서 별 이야기 다하니까 하루는 그 책을 부엌에 갖다 집어넣곤 불을 질렀어요. 불질러도 직성이 안 풀리니까 쫓아 버렸어요. 쫓아 버려도 돈 한푼 안주고 쫓아 버려요.


그래야 저 놈이 어디 가서 참선한다는 거예요. 즉 선하는 분은 선하는 기본적인 소양은 갖춰야 합니다. 그러나 너무 많이 알 필요가 없어요. 미주알고주알 몰라도 괜찮아요. 그리고 평시에 가급적이면 책을 안 보는 게 좋아요. 책보고 나면 참선하는데 유익하지가 않아요. 그래서 참선은 좀 무식한 사람이 하기가 쉽다는 예기가 예로부터 있어요.


반드시 그렇지는 않은데 선하는 분이 알음알이가 많으면 참선하기가 어렵다 해서 선방에 가면 아는 소리하는 사람을 되게 꾸중하고 무섭게 다룹니다. 그 뜻을 아시고 아시더라도 너무 깊게 아시려고 하지 마시고 지식에 대해서는 너무 깊게 생각을 안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질문 7]
세속에 살면 참 계를 지키는게 어렵습니다. 이럴 때 재가 불자들은 어떻게 해야하나요?


[무여스님]


세속에 살면서 게를 지키기는 어렵지요. 그러나 계는 지켜야 되요. 계는 천상으로 가는 좋은 사닥다리입니다. 계는 지켜야 하는데 가급적이면 예를 들어서 고기 먹지 말라 하는데 아주 안 먹을 수는 없잖아요?


아이들을 위하고 식구들을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아버지되는 분들이 안 먹으면 온 식구가 먹어도 기분이 안나지요. 그럴 때는 조금 먹어 주는 거예요. 먹되 두 번 먹을 것을 한번 먹는다든가 한 그릇 드실 것을 반그릇만 드신다든가 그렇게 가급적이면 안 드시려고 애를 쓰고 그 대신에 다른 것은 얼마든지 지킬 수 있어요.


거짓말하지 말라 이런 것을 할 수 있잖아요. 여기가서는 이 말하고 저기가서는 저 말하고 양설, 악담, 죽일 놈, 살릴 놈, 벼락 맞아 죽일 놈, 그러면서 번지르르하게 미사여구를 많이 써서 듣기 좋게 하는 것들은 가급적이면 그런 것은 안 할 수 있어요.


그런 것은 절대 하지 말고 먹는 거라든지 부득이 하게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지키려고 애를 쓰고 혹시 못 지키거든 참회하고, 그래서 설사 지키지 못하더라도 마음만은 깨끗하게 여법하게 계를 잘 지키는 사람처럼 그렇게 잘 살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애를 쓰다보면 차츰차츰 좋아져서 어느 단계가 되면 지키지 말라 해도 자연스럽게 지키게 돼요.


그 때쯤 되면 계가 참 좋은 것이구나! 계는 인간을 외형적으로 갖추게 하는 것입니다. 요즘에 보면 젊은 보살님 같은 분들이 길을 다니면서 뭘 먹으면서 다녀요. 옛날 같으면 상스러운 사람이라고 시집도 못 갈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어요.


이렇게 말하면 오히려 문제를 삼을지 몰라도 적어도 그런 정도는 가릴 줄 알아야 되요. 요새사람들 유행이라고 옷을 질질 끌고 다녀요. 뭐 내 옷가지고 끌고 다니는데 누가 뭐래요. 그러나 남 보기 싫지 않게 입어야 돼요. 남 보기 싫게 눈살을 찌푸리고 입에 오르내릴 정도가 되면 문제가 있는 분이에요.


그런 것은 자연스럽게 갖춰야 되요. 옷이나 질질 끌고 다녀서 부처되겠어요? 부처님이 그런 분 같으면 절이 문 닫을 거예요. 부처님이 되려면 어떤 경우든 어떤 세대에도 존경을 받고 예배대상이 되는 분이에요.


말씀하시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나 즉 외형적으로 사람이 갖춰져야 되는 거예요. 갖춰져야 내면이 쌓여요. 수행은 우연히 되는 거 아니예요. 밤이 생기려면 껍질이 먼저 생겨야 되요. 그런 다음 내면에 밤알이 생겨요.


그렇듯이 외면이 갖춰져야 내면이 쌓여서 인격이 드러나요. 껌이나 쩍쩍 씹고 말하는 것이 상스럽고 한 그런 분이 어떻게 남을 위하고 어떻게 남의 위에 군림할 수가 있겠어요. 사람을 외형적으로 인격적으로 갖추게 하는 것이 계입니다. 그래서 계는 꼭 계행을 잘 지켜서 부처경계까지는 안되더라도 지키기는 지켜야 되요. 즉 분명히 해야 합니다.


[질문 8]


좌선할 때나 화두를 들 때, 의식을 단전에 두어야 한다고 하는데 어떤 것이 효과적인가요?


[무여스님]


가장 좋은 것은 목전에 눈앞에 두는 것이 가장 좋아요.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이 어려우니까 아까 호흡에 의지해서 하는 관법도 좀 해 보셨고 호흡에 의지해서 나름대로 수행을 해 봤고 여러분은 세속생활을 하시기 때문에 내면에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가 많아서 여러 문제점들이 많은 분들이에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해소시켜가면서 화두라는 것을 하시게 하기 위해서 그냥 호흡에도 관계없이 하는 방법이 화두입??. 사실상 화두만 보면 좋게 됩니다. 그러나 화두하는 방법으로 호흡에 의지하는 방법도 있고 목전에 집중을 시켜서 하는 방법도 있고 단전에 집중시켜서 하는 방법도 있지요.


요즘 많이 하는 방법으로 호흡에 의지해서 하기도 하는데 목전에 집중해서 하시는 분은 그렇게 하시고요. 그 외에 오늘 시작하시는 분들은 단전에 의지해서 즉 호흡에 의지해서 지극하게 하십시오.


[질문 9]


화두 책을 보면 제 관심을 끄는 화두가 있고 무관심해지는 화두가 있었는데요. 자기에게 맞는 화두가 따로 있을 수 있나요?


[무여스님]


화두는 옛날 큰 스님들이 선지식들의 개인 기질에 따라서 적당한 화두를 드리기도 했어요. 그런데 화두가 나한테 맞느냐 안 맞느냐 하는 것인데, 사실 처음 화두를 들으면 맞는 거 같기도 하고 어떤 분은 전혀 안 맞는 거 같기도 한 그런 분도 계십니다.


해인사 성철스님같은 분은 화두타러 수백명이 오잖아요. 당신이 쓰시지도 않아요. 상좌한테 마삼근 써라! 그래가지고는 조그만 쪽지에 마삼근이라 써서 발표하듯이 읽어 주는 거예요. 마삼근 하시오! 하는 거예요. 그리고는 더 이상 이야기도 않아요.


마삼근이 뭔 지, 어떻게 하는지, 도대체 화두인지 뭔지도 모를 정도로 그냥 집어던지는 거예요. 할려면 하고 말라면 말라는 식으로 던져 줍??. 화두는 그렇게 주는 것도 화두예요. 그러니까 더 의심이 나는거예요. 이게 뭔가? 무엇이 있는가? 오히려 그것이 의심을 일으키기가 쉽다는 거예요.


어쨌든 옛날 스님들 중에서는 간택이라는 말도 쓰는데 여러 화두 1700공안 중에서 자네는 이걸 하게, 이걸 하소, 하셨는데 질문하신 보살같은 경우에는 화두에 대한 생각을 너무 하지 마시고 즉 분별심을 일으키지 마세요.

잘 안되더라도 하던 화두를 하세요. 화두는 절대 바꾸지 말아요. 어떤 분은 이 화두 했다가 저 화두하고 해서 아침에는 무(無)자, 점심 때는 마삼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화두가 안 된다고 이야기 들어보면 그 까닭이 다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서도 캄캄한 사람이 있어요. 화두는 오로지 한 화두여야해요. 이 수행은 절대 외길로 걸어야합니다.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듯이 그렇게 해야 수행을 할 수 가 있어요. 요새 사람들이 하기가 어려운 이유 중에 하나가 분별심을 자꾸 해요.


이것이 좋을까 저것이 좋을까 온갖 생각 온갖 분별심을 다 일으키다가는 심지어 잘하고 있던 화두까지도 놓고는 이것이 어떠니 저떠니 하는데 결국은 누워서 침뱉기예요. 그러다가는 평생 화두 한번을 못해요. 그래서 화두하는 분은 아주 우직해야 되는 거에요. 뭘 하나하면 그것 밖에 몰라야 되요. 요거 해라하면 고것 밖에 몰라야 해요 답답해서 달아날 정도로 해야합니다.


[질문 10]


인터넷은 소식이 한번 올라오면 전국으로 순식간에 퍼져 가는 특성이 있는데 얼마 전에 있었던 간화선에서 성본스님의 논문에서 조주 무자가 아니면 깨닫지 못한다라는 발표를 하셨습니다. 이뭣고 화두로는 깨달을 수가 없다고 발표를 하셨는데 의견이 많이 나왔습니다만 스님 말씀을 통해서 확인해보고 싶습니다.


[무여스님]


그건 성본스님이 말씀을 잘 못 하신 거 같아요. 그런 말씀하시는 정도가 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화두는 오직 무자 뿐이다 그런 말은 성립이 안 되요. 화두는 1700공안이 있고 사실은 두두물물이 다 화두가 될 수있어요.


그러나 옛 스님들의 길을 답습하는 것이 쉽겠다고 믿고 그래서 옛 어른들이 하셨던 화두를 요즘 많이 주장하고 참구를 하는데 사실은 참으로 대단한 그런 스님이 계셨다면 얼마든지 좋은 화두를 줄 수 있습니다.


이 화두가 무자뿐이다. 그것은 전혀 안 맞는 말입니다. 무자가 화두의 대명사처럼 쓰인 적은 있었어요. 이 화두를 제일 먼저 참구한 것도 무자구요. 그리고 대혜 종고스님이라고 임제종에서 화두법을 수행법으로 만드신 대혜 종고스님 당시에 어떤 선방에는 전 대중이 다 무자를 했다는 거예요.


그 당시에는 웬만하면 다 무자 할 정도로 무자가 아주 화두의 대명사처럼 불려지던 그런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 여러 가지 많은 화두가 나왔습니다. 여러 화두에서 선지식도 많이 나왔구요. 지금까지 가장 많이 참구한 화두는 무자예요.


그런가하면 선지식도 많이 배출했구요. 아까 이뭣고는 육조스님의 화두입니다. 그래서 화두를 무자에 국한 시키는 것은 안 맞는 말이예요. 그런 말은 안 해야 되고 그런 토론 자체도 안좋습??. 그 때 선원에서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사실은 거기 나가서 토론하는 분 중에서 실제 화두를 하는 분은 한 분도 참석을 안 했어요.


정작 공부하는 분은 한 분도 참석을 안 했는데 말 가지고 써먹고 말로 해결하시는 분들만 다 모셨어요. 물론 그 말 중에서 틀린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그러나 화두에 대한 간화선에 대한 얘기를 하려면 실제 화두를 하고 있는 선원 대중이 비구 비구니 합쳐서 아마 한 2000명은 넘을거예요.


거기서는 한 사람도 모셔지질 않고 화두하고는 거리가 먼 학자출신들이라든가 아니면 좋은 글 쓰시는 분들 말씀은 잘하시는 그런 분들만 모셨는데 화두는 보통 말로 이야기 할 수 없는 것이 화두에요. 왜냐? 표현이 될 수 없는 것이 화두예요. 말이 끊어져요. 마음 작용이 끊어지 곳에서 참으로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 화두예요.


그것은 아무리 학자가 연구를 많이 하고 그 화두에 대해서 이론적으로 많다고 해도 실제는 알 수가 없어요. 예를 들어 여기 박카스가 한 병 있다고 합시다. 그 화두를 공부하고 연구하시는 분들은 어떤 분들이냐 박카스에 대한 맛은 어떻고, 유통과정 즉 여기까지 오게된 여러 가지 과정을 연구하는 분입니다.


아무리 연구를 해도 박카스 맛은 몰라요. 박카스 맛은 바로 마셔 봐야 되요. 맛을 보면 이것이다 대번에 느껴져요. 그런데 이 박카스를 한번도 마셔보지도 못했으면서 유통과정이니 맛이니 아무리 떠들어봤자 배가 불러요? 맛을 알아요?


그 맛은 실제 먹어봐야 「아 이거로구나」 바로 느껴요. 그렇듯이 바로 느낄 수 있는 분 그런 스님을 모셔서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비록 말이 어눌하고 표현이 제대로 안 되는 분이라도 그래도 맛에 근사한 이야기라도 듣지. 전혀 맛을 모르니까 안 먹어 본 사람은 맛을 전혀 모릅니다.


안 그렇습니까? 즉 먹어본 분을 모셔다가 박카스 맛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야지 전혀 먹어 보지도 않은 분을 모셔다가 박카스 맛이 어떻고, 무자가 어떻고, 그것은 안 맞는 일이었어요. 그래서 종단에서도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가 있었는데 어쨌든 무자를 그렇게 단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 무자입니다.


그런 말은 안 하는 것이 좋아요. 그래서 그 이야기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가 많아서 뒤에 여러 가지 표현이 나오기도 했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책도 있죠? 그런데 그렇게 하지 말고 옛 조사스님들이 만든 화두를 하세요. 그래야 훗날 후회스럽지 않아요. 그렇게 임의로 특별한 화두를 한다든가 스스로 화두를 하게 되면 잘 될 때는 괜찮아요. 잘 안되면 이런 망상 저런 망상 지금 내가 화두를 잘 못 택한건 아닌가 이 화두가 견성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이어집니다.


그래서 공부하는데 지장이 되고 장애가 됩니다. 화두는 1700공안 내에서 하나를 택하면 틀림없어요. 화두에 대해서는 조금도 의심을 안 해도 됩니다. 즉 서울 가는 길 같으면 남들이 갔던 빤히 길이 난 길을 가면 틀림 없어요. 새 길을 만들어 가면 어려워요. 빤히 난 길처럼 무수한 도인들이 지나다녔던 길이 1700공안입니다.


그런 길로만 가면 조금도 의심을 안 해도 괜찮아요 다만 공부 안 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괴로워하시면 됩니다.


[질문 11]


화두하는 사람들은 정근할 시에 화두를 어떻게 해야하나요?


[무여스님]


정근 할 때도 화두는 지극하게 들고 하세요. 만약에 화두 힘이 약하다든가 정근할 때 화두가 안되시는 분이 있어요. 그런 분은 그 순간만은 정근을 따라하구요. 되는 분은 남이야 정근을 하든 말든 나는 오직 화두하세요.



[질문 12]
우리 중생이 전생에 어떤 업을 지었는지는 모르지만 이생에 나와서도 알게 모르게 많은 업장을 짓고 앞으로도 지을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화두를 참구하는 것과 지금까지 지은 업장을 소멸하는 것과의 어떤 있는 것인지요?


[무여스님]


정진하시는 분이 즉 공부하시는 분이 우선 업(業)부터 녹여야 공부가 되지 않겠느냐 하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어요. 그것도 방법은 방법이예요. 그러나 화두가 참으로 되면 화두가 지극하게 되면 저절로 업은 녹아요.


그래서 업에 대한 생각은 말고, 업이 두터울수록 즉 내가 어렵고 괴롭고 안되는 일이 많고 스스로 나는 못났다, 나는 부족한 사람이다, 난 정말 업장이 두터운 사람이 다 그런 생각을 하는 분일수록 화두에 지극하게 애쓰세요.


화두가 되면 업은 저절로 서서히 녹아요. 그래서 업을 먼저 녹이고 화두를 해야 되겠다, 업에 대한 어떤 대책을 세우고 해야되겠다 하는 그것도 한 방법은 방법이지만 그렇게 하면 이 화두가 잘 안되요. 염불 하시는 분은 염불이 잘 안딥니다. 염불하시는 분은 염불 자체를 지극하게 해나가면 업은 저절로 없어지고 소멸이 됩니다.


아까도 얘기를 했습니다만 선은 예사로운 길이 아니예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그런 공부가 아니에요. 반드시 해야 되고 꼭 해야 되는 공부가 바로 선입니다. 여러분은 어쨌든 가장 좋은 길로 들어왔어요. 주사위는 던져졌어요. 인생자체가 얼마나 바뀌느냐 얼마나 참으로 화려하고 거룩한 인생을 만드느냐? 그것이 중요합니다.


이 화두는 가장 화려하고 가장 거룩하게 만드는 방법이에요. 그래서 화두에 대한 의심은 조금도 하지 마시고 화두가 안 된다든가하는 화두에 대한 온갖 번뇌망상이 다 들 수가 있어요. 그렇더라도 화두를 꼭 믿고 어쨌든 화두로써 여러분의 인생에 승부를 꼭 걸어보세요.


그러면 여러분이 훗날 내가 가장 잘 살았다. 자부심과 긍지를 가질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세속에서 돈 벌고 명예나 권세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갖고 사시더라도 그 어떤 방법도 화두보다는 못하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실 화두하는것이 쉽지 않을거래요. 어렵다면 아주 어려운 것이 화두참구입니다. 그러나 꾸준히 묵묵히 애쓰다보면 의외로 쉬운 것이 이 화두입니다.



[이 게시물은 가람지기님에 의해 2017-03-02 09:15:51 금주의 법문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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