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로법문

  >   무여스님   >   감로법문

감로법문

인생에서 조미료를 빼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가람지기 작성일06-02-08 09:13 조회3,701회 댓글0건

본문

[유니텔 부처님나라 참선법문]2002년 1월



인생에서 조미료를 빼라



축서사 무여큰스님(2002. 1. 6)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고 하는 일이 잘 되고 소원하는 바가 성취가 되도록 다 노력하고 애를 쓰시오. 좀 열심히 살아야 돼요. 무슨 일을 하든 열심히 살면 사는 것만큼 인생에 값어치가 있지요. 그래서 노력하는 것만큼 값어치가 있다... 어쨌든 좀 노력해서 참으로 값진 그런 인생이 되도록 하시오. 사람이, 수많은 사람이 살지만 나름대로 각자 차이가 있게 다르게 그렇게 사는데,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아주 잘 사는 분이 있는가 하면 못사는 분이 있고, 남에게 존경을 받고 공양의 대상이 되는 분이 있는가 하면 부끄럽고 괴로워서 가실 때도 눈을 못 감고 가시는 그런 분도 있어요. 같은 삶이지만 천차만별이라... 그런가 하면 하늘과 땅이다 할 정도로 굉장한 그런 차이가 날 수도 있고요. 하여튼 좀 잘 살아야 돼요, 잘 사는 방법중에 부처님의 좋은 말씀이 큰 힘이 되고 좀 보탬이 돼서 아주 바르게 살고 정말 잘 살고 후회없는 인생이 될 수 있도록...


해인사 큰스님이 돌아가셨다는 뉴스 들었지? (네) 그 스님은 키가 아주 작달막해, 일미터 육십이 안될 거야, 오십 얼마쯤 될 거야, 적은 키지, 몸도 아주 약하고. 그런데도 조계종의 얼굴이라고 할 수가 있는 종정까지 될 수가 있었던 것은 그만큼 노력하고 애를 썼기 때문이래요. 그 분은, 아주 일생동안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그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했어요. 등을 허리에('방바닥에'를 잘못 말씀하신 듯^^) 닿게 해서 자지를 않았어요. 자도 꼭 앉아서 자. 늘 앉아있는 모습이지, 밤새도록 앉아서 공부하다가 자다가 공부하다가 자다가 평생을 보낸 분이라.


장좌불와는, 장좌불와나 용맹정진은 하루만 해도 어떤 분은 코피가 터지는 분이 있어, 하루만 해도. 일주일씩 보통 하는데, 일주일씩 하면 막 코피가 터지고 아주 괴로워가지고 몸부림치듯이 아주 괴로워하는 그런 분도 있어요. 그만큼 힘든다는거래요. 하루종일 일을 하고 시달리다가 저녁에 침대위에 올라가서 두다리 뻗고 누워있으면 그렇게 편하지, 시원하고. 그런데 그러지를 않고 앉아있는 기라. 앉아서 피로도 풀고 괴로운 마음도 풀고, 계속 수행하는 그 자세라, 참선하는 그 자세라. 그것이 일생동안 계속이 된 분이라. 몸이 약하기 때문에 졸기는 많이 졸아요, 안 졸 수 없고. 졸더라도 밤새도록 남들은 뜨뜻한 방에 두터운 이부자리 깔고 코를 들들 골면서 편히 자는데, 앉아 있는 기라. 앉아 있으면 방안이 웬만큼 더워도 앉아있는 분한테는 차게 느껴져요.


(종정스님께서) 저 해인사 뒤의 토굴에 있을 때, 전에 보면, 문도 제대로 달리지 않은 그런 토굴이래. 그야말로 토담으로 지은 집 같애요. 형편없는 그런 집이지, 그런 집에서 사시대요. 저 지리산에 가면, 청매 스님, 옛날 큰스님인데,토굴터라고 있어요. 거기에다가 백년쯤 방치됐던 토굴터인데 거기다 올라가서 텐트를 치고 산 적 있어. 텐트안은, 여름에는 너무 덥고 어떨 때는 한 40도 이상 올라가더라... 그런가 하면 겨울에는 물이 얼어. 공양도 보면 밥을 했는지, 생쌀 같애요. 그런 밥을 드시면서 산 분이래요. 어쨌든 좀 지독하다 싶을 정도로 아주 사람이 참 작달막한 분이지만, 좀 깡말라요, 그런 분이지만 그 기개는 훤칠했어요. 사는 거 보면 대단하다 싶을 정도로요. 그런가 하면 하루 한끼를 들어요, 한끼를. 세끼 들다가 한끼쯤 들어봐요. 앉으나 서나 밥 생각이지. 한끼도 많이 드시나, 그렇게 많이 안 들지, 잘 드나, 잘 드는 것도 아니지. 그야말로 나물밥, 나물 죽이지. 음식을 하루 한끼씩 들고 공부하신 분이래요.


밥 먹는 거 그래 먹으면, 잘 자시다가 그래 먹으면 며칠만 먹으면 헐떡거려요. 그거 먹고 어떻게 사나 할 정도로. 즉 그렇게 자신을 절제해가면서 좀 부족하게 모자라게 빈한하게 춥고 배고프게 그래 살면서도 공부는 가장 애쓴 분중의 한분이래요. 어쩌면 수행자의 표본이지. 그렇게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사실은 그만큼 훌륭하고 존경받는 인물이 돼서 조계종의 얼굴이 되셨는데, 그런 수행은 흔히 각고의 수행, 피를 토하는 수행이라고 할 수가 있어요, 안해보면 가치를 몰라요.


혜암 스님이나 성철 스님, 잘 아시지, 많이 알려졌기 때문에. 그 분도 사는 거 보면 음식을 담식(澹食)했거든, 담식, 간을 넣지 않은 소금기가 없는 음식을, 밥하고 국, 소금기가 안들어갔으니까 아무 맛도 없지. 그렇다고 뭐 조미료를 넣느냐, 조미료를 조금, 조미료는 기름에, 들기름이나 참기름 그건 좀 쓰대요. 들기름이나 참기름에 살짝 데쳐 가지고, 깨소금도 좀 쓰는 거 같고... 그래 가지고 찬이라고는 딱 네종류인데 그건 아주 고정돼 있어요. 린징, 빨간 무 그거 한 네쪽, 그것도 아주 얇게 썰어요. 그거하고 시금치, 콩나물, 그리고 또 있던데... 어쨌든 네 종류라, 네 종류. 매일 꼭 같은 거. 아, 콩자반있더라. 보통 잘 자시다가, 잘 안 자셔도 맛을 내는 여러 가지를 넣어가지고 먹다가 그래 먹으면 맛 없어도 못 먹어요. 그걸 평생 드셨는기라, 즉 맛을 모르고 드셨는기라. 먹는 것도 그렇고 삶 자체가 어떤 기분을 낸다던가 재미를 낸다던가 흥미진진하게 이런 거하고는 거리가 먼, 담을 쌓는 그런 삶을 살았는 기라. 아무 재미없게 산 셈이라.


음식의 맛을 낼려면 조미료가 들어가고 각종 맛내는 게 들어가야 되잖아요? 그래야 음식이 맛이 나듯이, 삶도, 술도 마시고 노래방에도 가고 어디 어울려서 왔다갔다 하기도 하고 여행도 해야 사는 재미를 느낀다고 하잖아요? 그런 것을 전혀 안한 그런 담을 쌓은 삶, 즉 순수한 삶을 살았는 기라. 조미료도, 예를 들어서, 그거는 입을, 사실은 속이는 거래요, 조미료 자체가, 입을 속이는 거래요. 맛을 내는 것은 그 조미료 자체에 무슨 영양가가 있는 게 아니라 입을 속이는 것과 다름이 없어요. 그렇게 맛을 내서 먹게 하는데, 즉 조미료를 치듯이 그런 삶은 삶 자체가 즉 흥미를 내게 하고 기분을 내게 하는 것은 조미료를 넣는 거나 다름이 없는 거라. 즉 순수함에서 거리가 먼 그런 그 조작된 삶이라는 거라. 그래서 그런 것을 떠나 아주 순수하게, 때묻지 않게 일체 조미료도 안 넣듯이 심지어 간도 안 치듯이... 그래 먹으면, 막 먹으면 아무 맛도 없어요, 그런데 꼭꼭 씹어먹으면 진짜 맛이 나요. 꼭꼭 씹어먹으면 음식의 참 맛이 나요. 조미료 넣어서 먹는 맛하고는 전혀 다른 그런 맛이 나요.


즉 인생도 그렇다는 기라, 인생도. 남자친구하고 만난다면 막 화장도 하고
옷도 잘 입고 뭐 악세사리라고 하는가, 그런 것도 중얼중얼 달고(웃음) 어쨌든 잘 보일려고 지혜를 짜내 가지고 단장을 잘 해서 가잖아, 단장 그것이 바로 조미료를 넣는 것과 다름이 없어, 그렇지? 화장기도 없이 고대로 있는 고대로 아주 순수한 모습대로 사는 것이 스님들의 삶이라면 화장을 하고 악세사리를 붙이고 단장을 하고 보기좋게 해서 사는 것이 보통 사람의 삶이라는 기라. 그렇게 살면 마음이 늘 불안하고 괴로워요, 어쨌든 화장품이라도 사야지, 하루에도 몇번씩 찍어발라야지(웃음), 표현이 어떨지 몰라(웃음) 안그래? 거울을 보고 틈만 나면 신경이 쓰이잖아요? 틈만 나면 신경이 안쓰이면 처녀답지 않지, 즉 외형적으로 번거롭게 하고 그것이 사실 괴로움이래.


그래서 내면이 좀 허하더라도 속에 든 것이 없더라도 겉으로는 잔뜩 치장을 하고. 그래서 물건 값은 10원짜리 물건인데도 막 100원짜리, 1000원짜리가 되도록 하는 기라. 말할 때도 100원짜리, 1000원짜리 되는 것처럼 말을 하고 외모습이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는기라. 없는 사람이 있는 체하고 못난 사람이 좀 잘난 체하고 10원짜리가 1000원짜리, 10000원짜리 되게 만들려면 속은 괴로워 다 타 버려요. 늘 불안하고 괴로운 기라. 그러면 순수성은 온데 간데 없어요, 내면수행하고는 거리가 멀어요, 즉 부처라는, 불성(佛性)이라는 보물이 있는데도 그 보물이 드러날래야 드러날 수 없어요. 그런 그 포장이나 조미료같은 그런 걸로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그래서 정작 참으로 빛이 나고 보물적인 가치가 있는 것은 드러나지를 않고 느끼지도 못하는 기라.


이 수행은 뭐냐, 수행은 뭐냐... 그런 그 치장하고 포장하는 것을 없애는 것이 수행이래요. 조미료를 안치고 순수하게 아주 담박하게 음식을 먹듯이 먹는 것이 바로 수행이라. 그래서 조미료를 넣음으로써 맛이 달라지는 데 그 맛이 달라지는 맛이 아니고 아주 순수한 맛, 아주 진짜배기 맛을 바로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수행이라. 얼굴을 분을 바르고 화장을 안하고 순수한 본 모습 그대로 액면 그대로 있는 그대로 자기를 드러내는 것이 수행이래요. 화장 안하는 여성들 있지, 어쩌다 보면 혹 있을지 몰라요. 그런 사람은 마음이 아주 편안해보일 거예요. 아주 마음이 편한 사람이래요. 약간 요새 사람 아닐 정도로 그래 좀 느껴질 테고. 어디 가도 뭐 그렇게 불안하고 괴로울 사람이 아니라, 어쩌면 조금 모자라는 사람 비슷하게 아주 담담하게 사시는 분들이래요. 그런 사람하고 자상하게 교제해보면 아주 깊은 것을 느낄 수 있어요. 있는 그대로를 그대로 느낄 수가 있어요. 좋으면 좋다 나쁘면 나쁘다 아주 직설적이래요. 그런가 하면 화장을 많이 하는 그런 여성들 막 잔뜩 이래 바르는 옛날 사람들 표현으로, 기생같은 분들(웃음), 남자같으면 기생 오래비같은 사람들 그런 분들은 가만있질 못해요, 잠시도 가만있질 못해요.
혹 친구중에 그런 분 있는지, 그런 분 보면 화장 많이 하고 치장 많이 하는 분들, 불안한 분들이래요. 연신 몸을 흔들고 움직이고 말을 해도 빨리빨리 하고 되게 급하게 일처리를 하고 그래요. 즉 자기의 내면을 숨기려고 하니까, 포
장하려고 하니까 , 겉따로 속다르게 할려고 하니까 불안한 거래요. 그런 사람은 조금 괴로워요. 말을 해도 좀 부품하게 하고 자기 분수이상으로 하고 즉 심하면 막 침소봉대 하고 그래요.


즉 그런 분들은 절에 오는 분이 좀 드물어요. 어쩌다가 오는 분이 있는데 그런 분은 뭐 저지르고 나서 부처님에게 잘 되게 해달라고 오는 분이래요(웃음). 즉 그런 분은 부처님한테 오는 것 자체도 맞지도 않고 그런 상태기 때문에 마음을 내기가 좀 어려워. 낸다고 하는 게 좀 잘못된 마음을 내는 정도라. 어쨌든 그런 분은 늘 마음이 불안해요, 괴로워요. 그래서 순수성을 잃어요. 거짓말 잘 하고, 어디 가면 사기 잘 치고. 즉 자기를 분수이상으로 드러낼려고 하니까 그런 거래요. 못나도 좀 잘난 체 하고, 학력을 물으면 국민학교, 중학교만 졸업하면 아무개 대학 나왔다고 할테고... 마음이 늘 구름이 잔뜩 끼었는 거래요. 피부색깔 같은 것도 안 좋고, 마음이 불안하고 괴로우니까요.


고런 모습이 현대인의 삶이라, 현대인의 삶... 요새 사람들 먹고 살만하니까 의식주 걱정이 해결이 되니까 자기를 치장하고 포장하는 데 많이 신경을 쓰는 셈인데, 그러면 도(道)하고는 아주 거리가 멀어요. 그런 사람은 행복을 몰라... 행복할려고 하면서도 사실은 행복을 놓치고 있어요, 멀리하고 있는 셈이래요. 그렇게는 안 살아야 돼요. 그렇게 안 살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놓고 순수하게 살고자 하는 것이 불교적인 생활이래요.


그래서 세상이 점점 그런 식으로 발전이 돼가는데, 요새 성형수술 안하는 분이 드물다고 하대요. 웬만하면 성형수술 한다고 하대요. 그것도 속이는 거라... 좋게 보일려고 하는 거, 뭐 좋은 점은 있어요, 어쨌든 그래 못난 얼굴을 좋게 한다는 그런... 그러나 모습보다는, 얼굴보다는, 마음이 좋아야, 고와야 되는데, 마음은 정작 못나져 가면서 외형적으로 좋게 보이게 하고 곱게 한다 그래서 마음까지 그럴 수는 없거든. 공부인은, 수행하는 사람은 고런 것에서 우선 탈피해야 돼요. 좀 순수하게 살아야 돼요. 그렇게 아주(100%) 살 수는 없어, 그러나 상당히 좀 순수하게 좀 때묻지 않게, 그래 살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마음이 편해지면 행복이 뭔지 알아요. 편하지 못한 분은 절대 행복을 몰라요. 사는 재미를 몰라요. 어쨌든 마음을 좀 편안하게 하고, 그래야 즉 순수한 마음을 가져야 이런 저런 괴로운 생각, 온갖 번뇌망상, 자기를 치장하고 포장할려는 마음, 자기를 필요 이상으로 남에게 내세울려고 하는 마음, 그런 것이 없어져요. 그런 것이 없어지면 마음이 고요해져요. 고요해지면 마음이 편해져요, 편해져야 행복을 느껴요.


요새 사람들은 참선한다 기도한다 하면서 잔뜩 분을 바르고 하는 격이래요. 잔뜩 포장을 하고 하는 격이래요. 그러니까 내면이 늘 불안하고 괴로운 기라. 그러니 기도나 참선이 될 리가 없어요. 중간에, 기도나 참선하는 사람과 부처 사이가 거리는 그렇게 멀질 않는데 잔뜩 어두운 장막으로 가려져 있어, 그래서 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을 정도로 이익을 느끼질 못해요. 그래서 수행하는 사람은, 수행하는 사람이 아니래도, 본래 자기로 돌아갈 줄 알아야 돼요, 본래 자기. 즉 화장을 안하고 포장을 안하고 원래 순수한 모습 그대로, 외형적인 거보다 내면적인 것도 그래요. 그것으로 본래 자기로 돌아가지 않으면 수행이 될 수가 없고 수행이 안된다는 것은 아무런 재미나 행복을 못느끼면서 산다는 기래요. 그런 사람은 돈을 수십억 수백억 벌고 아무리 직책이 높고 주변의 환경이 마련된다고 해도 늘 불안하고 가시방석이래요, 즉 사는 재미를 못 느껴요. 그런 사람은 참선한다고 아무리 앉아 있어도 선(禪)이 안돼요. 그냥 흉내낼 따름이래요. 그래서 수행자는, 수행자 아니래도, 아니래도 아주 그 순수하게 본모습대로 살 줄 알아야 돼요. 그래서 좀 잘 사시는 분, 참으로 성공하고 나름대로 내면을 좀 갖춘 분들은 가서 보면 대개 달라. 즉 그런 것이 드러나는 기래요. 그것이 안 드러나고 포장되듯이, 단청하듯이 그렇게 자기관리가 되는 분은, 그 사람은 남을 속이는 사람이고 불행한 사람이래요.


어쨌든 처사, 보살들은 좀 때묻지 않게 좀 순수하게 화장을 안한 그런 살결처럼, 조미료를 안치는 그런 담식처럼, 아주 순수하게 깨끗하게 사는 습(濕)을 들여요. 화장을 아주 안할 순 없어요. 하더래도 좀 안하는 것처럼 하고, 즉 자기를 너무 가리지 마라는 기래, 숨기지 말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순수하게 그래 살면 근본에 도달하기가 쉽고 삶 자체도 어쨌든 나름대로 평화롭게 행복을 느끼며 살 수가 있어요. 혜암 스님이나 성철 스님 큰스님들이 사는 모습이 바로 순수한 고 모습이래요. 아주 자기를 절제하는 모습, 그래서 늘 하심(下心)하고 겸허하고 양보하고 좀 청빈한... 그래서 안팎을 제대로 갖출 수가 있어야 돼요.


그런 것이, 그렇게까지는 좀 되기가 어렵지만, 어쨌든 그렇게 좀 삶 자체를 그런 식으로 안 살면 점점 때묻어가요, 점점 포장되듯이 포장이 돼 가요. 포장도 그냥 한겹 포장이 아니라 몇겹 정도로 포장되듯이 자기를 포장해가면서 살아가는 것이 현대인이래요. 어쨌든 그것이 포장을 벗기듯이 완전히 좀 적나라하게 그래 살지 않으면 삶의 값어치가 없어요. 수행이란, 도를 닦는다, 수행을 한다, 참선을 한다, 기도를 한다 그 본 뜻을 알아야 돼요. 본 뜻을 알고, 어떻게 하는 것이 참으로 수행하는 길이란 것을 아셔야 돼요. 그래야 설사 안하더래도, 안하더래도 쉽게 접근이 돼요. 저 태백에 가면 석탄을 캘려면 몇백미터를 파고 들어가야 쥐꼬리만한 그런 광맥을 찾을 수가 있는데 그런데 이제 호주같은 데 가면 노천 탄광이 있대요. 거기는 포크레인 갖다가 막 실으면 그대로 석탄이란 기래요. 노천에 드러난 탄광이 있다는 기래요. 그렇듯이 사람도 그래, 여기 이 태백처럼 수백미터 수천미터 파고 들어가야 겨우 탄광을 발견하듯이 , 탄맥을 발견하듯이 발견할 수 있는 그런 분이 있어요. 그런가하면 노천에서 그냥 막 실으면 그대로 용광로에만 넣으면 그대로 불이 붙는 그런 탄맥처럼 그런 사람이 돼야 돼요.


그런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화장 안하고 조미료 안치고 먹는 사람이래요. 고런 것이 조금 상당히만 갖추어져도 세속에 살대는 아주 남보다 특별하게 보이고 삶 자체도, 남이 볼 때는 약간 좀 꾀죄죄하고 즉 가구가 별것 아니고 사는 집이, 아파트가 평수가 적고 뭐 사는 게 별 것 아닌 것 같더래도 거기에서 깊은 행복을 느껴요. 그런가하면 어떤 분은 아파트도 막 백 몇평쯤 되고 요란한 그런 외제 가구를 갖다 놓고 남보다 떵떵거리면서 잘 사는 것 같더래도 늘 불안하고 괴로워요. 먹어도 완전 소화가 안되고. 그 요새 젊은 여성들 보면 살빼는그런 운동을 많이 한다고 하대요, 다이어트라던가. 그런 건 안하는 게 좋아요. 살을 뺀다는 생각을 안해야 돼요, 살을 뺀다는. 살이 찌는 것은 그만큼 찔 만한 정도가 되니까 찌는 기라. 즉 마음이 나름대로 편하고, 너무 많이 먹어서 살찌는 그건 문제가 있어요(웃음). 그거는 안 찌게 해야 돼요. 즉 음식 자체를 줄이는 기라.


그런데 그냥 보통 이래 적당한데 살쪘다 잘못생각하고 오해를 하고 막 빼는 분이 있는 갑대. 저 우리 신도 딸 하나는 매일 세시간도 뛰어다닌다는 거래(웃음). 걔가 왔기에, '너 미쳐도 어지간히 미쳤구나' (웃음) 목표가 37키로가 목표라 그래요, '니가 임마 대학 나온 놈이가, 걔가 대학 나왔거든, 이놈아, 대학 나왔거든 뒷문으로 들어갔다가 뒷문으로 나왔는가보다(웃음) 그랬지. '앞문으로 들어갔다가 앞문으로 나온 놈이 그렇게 머리를 못 쓸 수가 있느냐, 이놈아. 니가 돌대가리다. 이 놈아, 행복은 다이어트에 있는 게 아니라 니 마음속에 있어, 대학 나온 놈이 이런 정도로 생각이 좁고 못나서야 어디를 대학 나왔다고 할 수 있겠느냐, 여자의 매력은 날씬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있다 이놈아' 그러면서 장황스레 이야기를 해줬더니 그 다음날부터 안 한다고 하대요(웃음). 그렇다고 자기 어머니가 좋아가지고, 불사하는데 돈 안내는 분이거든(폭소), 돈을 좀 많이 가지고 왔대.


수행이나 행복이나 아름다움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 돼요. 요새 사람들은 생각이 조금 잘못된 사람도 있는 것 같애요. 어쨌든 어떤 것이 수행인지, 고거를 잘 알아서 그렇게 해서 어쨌든 사는 행복을 느끼고 보람을 느끼세요. 이래 오더래도 올 때뿐만 아니라, 집에서 사시더래도 아주 알뜰하게 살아요. 일을 하더래도 무슨 건성으로 하는 분이 있지, 책을 보더래도 그냥 형식적이고. 그러면 아는 게 별로 안 생겨요. 일이 또 돼 가질 않고요. 자기를 좀 짬질게, 짬질게. 책을 읽었다 하면 기억이 될 정도로. 일을 했다 하면 알맹이가 있도록. 장사를 상업하는 분 장사했다 하면 이윤이 나도록. 요새 그 뭐 기업체가 있다고 하대요. 이윤이 남지도 않는데 팔 수 밖에 없는 그런 기업체도 있는가 보대요. 인생을 그래 살아선 안돼요. 인생은 아주 경제적으로 살아야 돼요. 반드시 이익이 있도록 살아야 짬질게 사는 거래요.


서울엔 저번 날 좀 추웠죠? (네) (보광화에게) "넌 집이 어디쯤 있나?"
"아, 강남에?" (큰스님, 저희는 오늘 내려가구요, 보광화는 방학이라서
일주일정도 더 있다가 내려갈 예정입니다) "아, 그래, (방학이니) 해방이다"(웃음) "그래, 소제같은 것도 좀 돕고, 아침 저녁으로 예불이라든가
기도도 나름대로 좀 하고 방학을 보람있게 그래 보내라"


며칠 전에 눈 왔을 때 어떤 학생들 몇이 하루종일 눈싸움이나 하더니 그 다음날, 요샌 그 학교에, 좋은 일 했다고 그 뭐 확인서를 받아오라고 하는가 보대요, 몇시간 했다고. 하루 종일 눈싸움하고 등산하고는 선행했다고 그래, 그것도 뭐 일곱시간인가, 여덟시간했다는 거라(웃음). (보광화에게) "그러지 말아라?"(웃음). (정우의 지원사격- 보라가 설거지를 아주 잘합니다) "설거지를?" (네)


"음, 전에 저 어떤 절에 미세스 설거지란 분이 있었는데(웃음), 그 분 참 설거지 잘해요. 절에 들어올 때는 남편하고도 이혼한 상태고 애들도 뿔뿔이 헤어지고 아주 참담한 그런 심정으로 온 분인데, 설거지 잘 하고, 어쨌든 마음이 참 고와요, 말 없고. 한 일년 반쯤 하고는, 절에 처사중의 한 분이 괜찮은 처사가 있어요, 가정도 사는 것도 괜찮다고 해요, 애는 둘인가 있고. 어쨌든 다들 좋다는 분인데, 살기도 좋다고 그러고... 그 처사가 아주 좋게 보고는 데리고 가데? (웃음) 그러고는 아주 잘 산다고 그래요. 설거지만 잘 해도 그렇다는 기라(웃음). 무슨 일이든지 남이 하기 어려운 거, 안할려고 하는 거 그런 거 잘 하고 즉 자기를 희생해가면서 남에게 봉사하고 선행하면 그만큼 쌓여요. 공덕이 크면 팔자까지도 고치고, 적으면 사탕 한봉지래도 얻어먹겠지. 공덕은 무슨 공덕이든지 쌓으면 쌓은 것만큼 결국은 내게 선(善)으로 돌아와요.


몇 시에 갈란가? (공양하구요 두세시쯤 갈 예정입니다) 오늘 차 몰고 왔어?
(네, 봉고차 한대 빌려왔구요, 또 승용차도 한대 왔습니다) 아, 봉고 차 빌려서? 어쨌든 절에 오는 보람을 늘 느끼도록 잘 살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애를 쓰시오.


혜조에게) 공부가 잘 돼? (웃음) (전에 큰스님 말씀- 사람은 좋은 데 물렁하다^^-을 듣고 혜조가 많이 생각을 했나봅니다, 어제 보광전에서 철야정근을 했습니다) 음, 저 처사도 했어? (웃음) (새벽예불 바로 전까지 했습니다) 아, 기록적이다? (웃음) 사람은 좋은데(웃음) 잔뜩 물렁해빠져서...(웃음) 어쨌든 그래 세시까지 할 정도면 상당한데, 그렇게만 살면 완전히 달라질 거예요. (웃음)


수선각: 큰스님 질문 드리겠습니다. 어제 염불을 하면서 처음으로 여섯시간 좀 못되게 정근을 했는데요, 전에는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두시간 세시간도 서있을 수 있다는 것을 느꼈구요, 오히려 한 네시간 정도 지나니까 소리가 더 맑아지고 염불이 힘들지가 않았고 환희심이 들면서 예전에 다리밑으로 뿌리가 내려가는 듯한 느낌이 들고 두 팔이 가지가 된 듯이 제 자신이 나무가 된 듯한 느낌을 받은 것처럼, 어느 순간 제 입이 마치 샘물이 된 듯이 느껴져 정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염불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너무나 간절한 마음이 되었는데, 이런 어떤 것이 된 듯한 느낌 같은 것이 만약에라도 끄달리게 되면 마구니의 역할을 할 수도 있는 건가요?


큰스님: 고거는 보살이 보기에 인제 나무 가지 느낌을 갖는다던가 뿌리 느낌을 갖는다든가 그런 저런 번뇌망상을 피우고 그런 생각을 하면 그게 마구니가 될 수가 있고, 그런 생각없이 좀 생생한 그런 느낌을 가지면가질수록 더 열심히 하고 더 잘 하면 그거는 마구니가 아니고. 어쨌든 그렇게 좀 되는 현상이라, 한마디로. 그렇게만 하면 참으로 고런 기분이라든가 고런 느낌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느꼈던 어떤 느낌과도 비교가 안될거라. 아직은 조금 미미한 그런 정도지만 조금 더 나아가면 어쨌든 지금까지 어떤 기분이나 느낌과도 비교가 안되는 그런 느낌이라. 그것은 돈을 번다든가 친구를 만나고 어디 뭐 바닷바람을 쏘이고 어떤 느낌보다도 아주 묘한 참 기분이 좋은, 그걸 뭐 좋다고도 표현이 안되는 아주 오묘한 기분이라, 그런 느낌의 극치가 극락이라. 조금 되는 기분을 좀 느꼈는 기라. 그것이 참으로, 저런 정도만 느껴도 보살은 하지 말라고 해도 안 할 수가 없어.


그 정도만 되면 너 절에 가지 말라 하지 말라 해도 안할 수가 없어요. 왜냐,
고 이상은 없다는 걸 조금은 느낀 사람이래요. 사실은 그렇게, 기도에서나
참선에서 느끼는 그런 느낌은 세속에서는 맛볼 수 없어요. 그거는 무슨 짓을 하더래도 못 느껴요. 그런 그 아주 대단한 뭐 대단하다는 말로도 표현이 안되지, 어쨌든 그런 오묘한 그런 기분과 행복을 느낄 수가 있는 것이 이 공부래요. 그래서 거기서 행복을 못느끼면 행복이란 말을 몰라. 그냥 이렇게 뭐 밥 먹는데서
라던가 친구하고 사귀는 데서 일상 생활에서 뭘 느끼지만 그건 진정한 행복이 못 돼. 즉 가식적이라, 과장되고. 아니면 아까 얘기했듯이 포장되고. 조미료 쳤듯이 그런 행복이라. 그런 행복에선 순수한 행복을 몰라. 요거는 인제 적나라한, 적나라한 정도가 아니라 아주 나름대로 좀 피부로 바로 느낄 수 있는 것인데, 어쨌든 보살도 하면 된다, 눈물 잘 흘리더니 그 공덕이다(웃음), 즉 하면된다 가능성을 시사해준 거라. 그렇게 하면 돼. 보살이 좀 순수한 사람이거든, 좀 때묻지 않은 분이라. 좀 쉽게 와 닿을 수가 있어요. 그래 좀 열심히 해요.


법륜월: 스님, 지난번에 염불을 하면 눈물이 너무 많이 난다고 말씀드렸는데 스님께서 나사를 하나 풀라고 하셨는데요, 그 말씀을 깊이 새기면서 염불을 하니 그 다음부터는 눈물이 적어지고 하고나면 기분이 너무 좋고 또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얼마 전부터는 염불을 하려고 앉으면 너무나 무서워져서 그 무서움을 이기지 못할 때가 있는데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지요?


큰스님: 무섭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말아요, 무서운 마음도 결국은 보살이 만드는 거라, 무섭더래도 무섭다는 생각 하지 말아요, 보살님 업고 갈 사람 없어요(웃음). 와서 칼 들고 해칠 사람 없어, 그러니까 무섭다는 그런 생각을 아예 갖지 말아요. 설사 무섭다는 경계가 오더래도 이내 사라지고 무섭지가 않아요. 그건 무섭게 한다던가 괴롭게 하는 것이 아니고 기분좋게 하고 즐겁게 하고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것이거든. 어쨌든 무섭더래도 무섭다는 생각도 하지 말고 겁을 내지 말고 그럴수록 담담하게 잠깐만 더 하면 그냥 없어져버려요. 어쨌든 그 무서운 경계에서 조금만 더 나아가. 그러면 보살도 하는 보람을 느낄 정도가 될 거예요.


혜조: 정근을 하는 중에 관세음 보살님의 그림이 마치 영화 필름처럼 계속
지나가는데요...


큰스님: 그런 생각이 떠오른다든가 그런 정경이 떠오른다든가 그럴수록
관세음보살을 더 정성껏 똑똑하게 지극하게만 해나가요. 관세음 보살이
영화필름처럼, 웃기는 이야기라(웃음). (처사가) 좀 엉뚱하거든(웃음). 저렇게 하다보면 이제 그런 수도 있는데, 고런 것도 없어야 돼요. 좀 물렁하니까 그런 게 보이고 하지(웃음). 어쨌든 그것도 이제 했기 때문에, 나름대로 애썼기 때문에 그런 데 어쨌든 처사도 좀 더 알뜰하게, 지극하게 하면 그런 것도 없어지고 점점 좋아져요.


관음행: 수식관을 하면요, 앞이 뿌옇다가 어느 순간 주위가 밝아지는 느낌이 가끔 듭니다. 그러면서 앞에만 보였던 것이 퍼져서 다 보이거든요, 그러면서 좋은 느낌이 들구요, 어떨 몸이 가볍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요, 그러면 너무 기분이 좋아서 아, 이건 잘되는 거다 하고 제 스스로 생각을 하는데요(웃음), 어떤 건지요?


큰스님: 완전히 원맨쇼하네(폭소). 혼자 차치고 포치고 다하는 거네(웃음).
그런데, 고걸 조금 이제 맛을 보는 기라. 고렇게 뿌옇게 된다는 것이 집중이
된다는 기라, 집중이. 그러면서 기분을 느낀다는 거 고것이 된다는 기라. 사실은 고것도 값진 거예요. 보살의 고런 거라든지, 이 보살의 고런 느낌 이런 것은 돈 주고는 못 사. 별것 아닌 것 같은 느낌이 혹 본인은 들 수 있을지 몰라도, 고것도 대단한 기라. 어쨌든 좋은 것은, 이제 살짝 냄새만 한번 풍겼는 기라, 비유하면. 좀 애써서 어쨌든 더 깊어져서 본격적으로 아주, 아주 맑아야 돼요. 아주 맑을 정도가 돼야 돼요. 고래 되도록 해요.


어쨌든 뭐 서울 팀들이 그렇게 오래 한 분들은 아닌데, 나이가 젊으니까, 많이 하는 분들도 아닌데 고런 것을 느낀다는 것은 상당히 나름대로 가능성을 시사한 거라, 가능성을. 아주 긍정적으로 보면 되겠어요. 좀 애써요. 이거는 어쨌든 직장이라든지 돈 버는 거, 남자 친구 여자 친구 그런 것보다도 그 어떤 것보다도 사실 부모나 형제보다도 더 값진 거래요. 지금은 이런 말을 이해를 못하겠지만 훗날 참으로 좀 지극하게 될 정도가 되면 세상의 (것) 다 줘도 요거하고 안 바꿀라 그래요.


보현행: 큰스님, 정근을 시작하기만 하면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그래서 어떨 때는 도저히 더 나아가지를 못할 정도로 가슴이 아픕니다. 관세음보살 하고 부르기만 해도 가슴이 아프구요,


큰스님: 부르기만 해도?


보현행: 가슴이 아파서 힘들고 그래서 안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큰스님: 염불이나 화두나 수행은 보살을 기분좋게 하고 즐겁게 하고 잘 되게 하는 것이라. 그것은 어디를 안좋게 하고 괴롭게 하고 잘못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생각을 아예 갖질 말아요. 설사 하다가 조금 어떤 그런 안좋은 느낌이 순간적으로 들더라도 아, 내가 어디 뭐 좀 잘못됐나 보다 그냥 그런 정도로 생각하면서 염불만 지극하게 해 나가요, 해 나가면 자연스럽게 좋아지고 달라질 수 밖에 없어요. 어쨌든 마음가짐 자체가 중요한데, 어떤 마음을 갖느냐, 일체가 유심조다 하듯이 마음먹기에 따라서 그때그때 기분을 좋게도 느끼고 안 좋게도 느낄 수가 있는데, 할 때 늘 마음을 편하게 갖고 해요, 편하게.


하되 또 너무 무리하게 너무 되게 하지 말고. 부드럽게 하고, 좀 쉽게, 편하게. 그래 해 나가면 절대 안좋을 리가 없어요, 답답하거든 단전으로 집중을 내려요. 단전으로 집중을 하면서 관세음 보살 지극하게 부르면 돼요. 어쨌든 보살도 이래 좀 약간 안정을 좀 시켜요, 마음을. 마음을 좀 편하게 부드럽게 가지면서 그래 할려는 그런 생각을 늘 가지고 그렇게 해나가고. 어쨌든 이것은 참 좋은 일이다, 내게 유익한 것이다, 하면 좋다 그런 생각을 할 것이지, 절대 어디가 안 좋다, 나쁘다 그런 생각을 추호도 하지 말아요. 순각적으로 혹 그런 것이 느껴지더라도 아까 여기 두 보살 이런 정도를 느낄 수가 있을 텐데 어쨌든 염불은 아주 좋은 것이고 행복을 ,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래요.


법륜월: 평소에 금박으로 된 관세음보살님을 품에 지니고 다니는데요, 어제 철야를 하면서 1000배를 하고 내려와서 잠을 청하는데, 눈앞에 금박으로 된 그 관세음보살님 형상이 나타났습니다. 잠이 든 상태는 아니었고 눈을 감기만 한 상태였는데, 나타나셨다가 사라지고 또 나타나셨다가 사라지고 두차례 반복했습니다.


큰스님: 관세음보살 상을 보고 또 부르고 하니까, 그렇게 열심히 하고 잘 못했다고 평시 생각을 하더래도, 그렇게 한 것이래도 결코 헛되지가 않아서 보살의 머리속에 잠재되어있는 기라. 그것이 문득 문득 나타난 거라.


수선각: 저도 어제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요, 3시가 되기 직전에 1분 정도
졸았는데요, 손이 나타나서 하얀색 종이를 주셨습니다. 저도 모르게 받으려고 손을앞으로 내서 받았는데 나중에 생각하니까 표창장이 아닌가(웃음) 싶었습니다.


큰스님: 이왕이면 표창장으로 생각해(웃음). 그래 하다보면 관세음보살이 척 나타나서 표창장같은 것도 주기도 하고 어떤 분은, 돈을 벌려고 기도한다든가, 직장을 구할려고 기도하는 그런 분은 금으로 된 열쇠를 주기도 해요. 열쇠를 주면 막 좋아서, 꿈에도 어떤 분은 좋아서 꿈꾸다가 벌떡 일어나요, 어찌나 좋은지. 그런 분도 있고 부처님이 내려와서 어깨를 툭툭 두드리면서 선재선재라, 착하고 착하다 네가 참 공부를 했으니까 잘 될 거다, 수기라고 하는데 예언도 해주기도 하고 그래요. 그런 등등 여러 가지 애썼던 것이 나름대로 꿈에서나 꿈 아닐 때나 나타나고 느끼게 돼요.


법륜월: 저희 염불을 지도해주시는 분이, 관세음보살이 나타나도 모른 척하고 정근을 계속하라고 지도해주셨거든요, 그런데 관세음보살님이 나타나셔서 열쇠를 주시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웃음)

큰스님: 그래, 그 스님이(달마님^^) 좋은 말씀을 하셨는데, 이렇게 염불을 할 때 어떤 경계가 나타난다든가 누가 나타나서 표창장이든 금 열쇠든 돈 뭉치든 그런 데는 관계를 안해야 돼. 그저 주면 주는대로 주는 그대로, 주거든, 기분 좋거든 더 열심히 하고 더 애를 쓰는 기라. 그러면 참으로 큰 열쇠를 받고 참으로 잘 돼 가는데, 상당수가 그런 걸 받으면 기분이 좋아가지고 그 날은 그만 염불을 놓아버려요, 기분 내느라고(웃음). 그러다가 보면 잘 되던 것이 그냥 없어져버리고 말아요. 즉 어떤 경계가 일어나더래도, 고런 걸 이제 경계라고 하는데, 경계에 관계없이, 경계에 조금도 관심을 두거나, 신경을 쓰지 말고, 그럴수록 더 애써 나가야 돼요. 그러면 참으로 큰 것을 얻어요.



[이 게시물은 가람지기님에 의해 2017-03-02 09:15:51 금주의 법문에서 이동 됨]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