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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변화시키는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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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가람지기 작성일06-02-08 09:27 조회4,0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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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텔 부처님나라 정기참선법문] 2003년 3월



자신을 변화시키는 수행


축서사 무여큰스님




(큰스님) "그래, 한 달 얼마만인가?"


(수련화) "한 달하고 일주일 정도입니다."


(큰스님) "한 달하고 일주일? 그래 공부엔 조금 진전이 있소?"


공부에 진전이 있어야 돼. 공부는 참으로 애쓰면 거의 매일 달라져. 어떤 경우는 하루에도 몇 번씩 경계가 변했다 그런 분도 있어요. 그래서 옛날 큰스님들한테 점검을 받을 때 보통 하루에 한 번씩 들어가요. 어떤 분은, 그 유명한 서장을 쓰신 대혜스님은 하루에 꼭 세 번씩을 드나들었다는 거라. 아침, 점심 때, 저녁 때 청문하고 계속해서 점검을 받았대요. 그래 무려 한 2년 가량이나 매일 세 번씩 청문을 해요. 그럴 때마다 자기 답을 내놓으면 ‘아니다 틀렸어 나가라’ 그런 식으로 맞추질 못하다가 그 뒤로 경중하는데 어쨌든 그 사람에 따라서 매일 경계가 변할 수도 있어. 한 달에 몇 번씩 변할 수도 있어요.


공부는 아주 지극하게, 아주 성의껏, 아주 간절하게 그래 하면 의외로 쉽게 되고, 느낄 수 있는 것이 공부래요. 공부가 느껴지고, 공부가 진전이 있고, 공부가 된다는 것은 자기 인생이 그만큼 발전한다는 거래요. 어쨌든 그 공부가 되도록 해요. 어떻게라도 되도록 해요. 설사 안 되더라도, 한 번 한 번이 결코 헛되질 않도록 하고, 한 번, 한 번을 예사롭게 하지 말아요. 아주 지극하게 간절하게 아니면 아주 성의껏. 그 한 번, 한 번이 바로 자기 인생이라. 그 한 번, 한 번 아주 짧은 그런 순간이고, 아주 별 것 아닐 수도 있지만 그것이 바로 자기 일생이라. 일생의 한 순간 순간이래. 그래서 한 번, 한 번이 결코 헛되질 않아야 돼요.


실수를 한다든가, 잘못을 저지른다든가, 문제가 있게 한다든가 그런 일은 없고, 제대로 하면서 아주 분명하게 좀 갖추도록 그렇게 살아가는 그 자체가 자기 삶을 아주 충실하게 하고, 제대로 살아가는 거래. 공부를 예사롭게 생각할지 몰라도 절대 예사로운 게 아니래. 직장보다도, 어쩌면 가정보다도, 사실 어쩌면 이라는 말을 해서 그렇지 가정보다도 훨씬 중요한 것이 사실은 공부라. 뭐 그렇다고 가정을 멀리하라 그런 뜻은 아니고, 지금은 직장이 더 중요하게 느껴지고, 돈 버는 것이 더 중요하게 느껴지고, 가정이 훨씬 중요하게 느껴지겠지. 그러나 직장 생활은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이래. 돈이 있으면 뭐 직장 나갈 필요 없잖아요. 돈벌이 하러 나가는 거예요. 가정도 금생에는 아주 중요한 것이지만, 결국은 내가 떠나면 내생에는 그 가정이 내생까지 지속이 되느냐, 그렇진 않잖아요.


그런데 공부는 내생, 다음생, 다음생 세세생생 내게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공부래요. 그래서 나한테는 어떤 것보다도 소중하고, 어떤 것보다도 대단하고 그 무엇하고도 비교가 안 되는 그런 것이라는 거래요. 그렇게까지는 느끼기가 좀 어렵겠는데, 어쨌든 중요하고 대단한 것이다, 내 인생 자체다, 그런 생각을 해요. 그러면서 그 한번 한번을 아주 지극하게 해. 아주 정성껏. 혹 망상이라도 피우면, 살아가면서 큰 실수라도 한 것처럼 생각하고. 또 사실이고. 그렇게까지 느끼지 못할 따름이래. 그래서 공부가 어쨌든 되도록 하세요, 공부가. 공부에 참으로 진정한 삶의 보람과 긍지를 꼭 공부에서 느껴요. 그러면서 내가 몇 번 이야기 했지만, 살아가는데 반드시 공부가 된 것만큼 더 잘 살고 더 열심히 사셔야 돼요. 더 능률 있어야 되고. 그래야 그 공부의 가치가 있는 거래요. 그렇지 못하면 공부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그러면 공부에 대한 중요성도 느끼지 어려운 기라. 실제 내면적으로도 느끼지만 외형적으로도 달라져야 돼요.


어쨌든 공부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잘한다는 거래요. 부처님하고 가까워진다는 거예요. 부처님하고 멀었을 때하고 가까울 때하고 다르지요. 어쨌든 그 공부를 아주 지극하게 하고, 뭐 참 그렇게 하기는 사실상 어려워요. 그러나 그렇게 하는 습을 들여요. 그래서 일상 생활까지도 그래 살려고 애쓰고 노력하시고. 이 삶 자체가 아주 참 알토란 같은 그런 삶이 되도록 해야 해요. 요새 그 노무현 정권이 무슨 그 시험 내각 같데요. 실험적인 그런 공부가 아니래. 어쨌든 고래 열심히 하시고, 그 공부가 좀 되게 하려면 우선 마음가짐 자체가, 마음가짐이 아주 편안하게 해요. 아주 편하게 가져요.


마음이 편해지려면 번뇌망상이 없어야 돼요. 이런 생각, 저런 생각 그 뭐 망상이 많은데, 특히 화두 하는 분은 망상이 더 많이 떠오르고요. 화두나 염불이나 기도하는 분은. 수식관은 망상이 조금 덜 하지. 관법 하시는 분이나. 어쨌든 마음을 아주 고요하게 해요. 마음을 고요하게 하려면 번뇌망상이 없어야 되. 이런 생각 저런 생각 잡생각이 없어야 돼. 잡생각이 없게 하려면 욕망을 일으키지 않아야 해. 욕망이나 집착을 없애야 돼. 뭘 하고 싶다, 갖고 싶다, 뭘 이루고 싶다 그런 욕망도 갖지 말아야 돼, 공부할 동안에는. 집착도 하지 말고. 욕망과 집착에서 번뇌망상이 일어나요. 그래서 그런 생각을 다 쉬어요. 하고 싶다는 생각도, 갖고 싶다는 생각도 어디 누굴 만나고 싶다는 생각도. 전화가 오더라도 생각하지 말고, 일체 생각을 쉬어요. 이런 저런 잡생각 일체를 쉬고 놓아버려요. 무슨 할 일이 있더라도 놓아버려요.


어쨌든 참선 할 때는 일체를 놓고, 만사를 쉬어요. 부처님 말씀에도 쉬면 깨닫는다고 했어요. 즉 쉬면 번뇌망상 일체가 사라져요. 사라지면 맑아지고, 맑아지면 깨달음이 와요. 그 쉬면 통한다는 게, 그 마음을 비운다 하는 것이, 다 마음을 비우라는 거예요. 아주 텅텅 비워요. 그래서 마음을 아주 고요하게 해요. 전화가 오더라도 받지 말고, 할 일이 있더라도 하지도 말고, 그 순간은 일체 주변에 신경을 쓴다든가 관심을 갖는다든가 하고 싶은 생각까지도 일체를 놔요. 마음을 아주 고요하게 아주 편안하게 해요.


그러면서 호흡하는 분은 호흡을 아주 적당하게 하는 기래. 아주 고요한 상태에서 호흡을 아주 적당하게. 그러면 이내 빠져버려요. 이내 빠져요. 아주 쉽게 빠져요. 그런데 호흡법은 아주 깊게 들어가기는 어려워요. 그건 그 한계가 있어요. 수식관도 그렇고. 기분이 좀 좋고, 법력을 느끼는 그런 정도까지는 가능해요. 그러나 깊게 빠지기는 어려워요. 어쨌든 아주 고요한 상태에서 호흡을 제대로만 하면 이내 빠져버려요. 염불하는 분도 아주 고요한 상태에서 염불만 또렷또렷하게 하는 기래. 그러면 염불에 확 집중이 되고요. 화두 하는 분도 아주 고요한 상태에서 이뭣꼬 하면, 평시에는 별로 의심이 안 나는 것 같더라도 의심을 좀 진하게 느끼는 거래요. 그렇게 하다 보면 이내 쉽게 빠져버려요. 일차적으로 고요하게 좀 되고, 고요하게 해서 하는 거예요. 생각을 쉬고 만사를 쉬고 놓으면 좋은데, 만사 놓기가 어려워요.
어쨌든 놓을 수 있는 데까지 놓아. 쉴 수 있는 데까지 쉬어.


그리고 식사할 때 공양을 조금 적게 들어요. 한 위장의 한 팔 할 내지 구 할 정도로. 좀 모자랄 정도로 조금 부족할 정도로. 더 먹었으면 싶고, 숟가락 놓기가 좀 아쉬운 정도로. 위장에 늘 여유가 있을 정도로. 그래 먹으면 아주 편
해. 식곤증이 전혀 없어. 참선하는 분은, 참선하는 분 뿐만 아니라 자기를 제대로 다스리는 분은 전혀 식곤증을 안 느낄 정도로 먹어야 돼요. 먹고도 바로 일하고, 바로 참선해도 괜찮을 정도로. 좀 부담스럽고, 답답하고, 식곤증을 느끼고, 앉으면 졸리고 하는 건 많이 먹어서 그래. 어쨌든 늘 좀 적게 들어요. 적게 들되 꼭꼭 씹어 드시고요. 완전 소화되면 조금 적게 들어도 충분히 소화만 잘 되면 영양이 별로 부족하진 않아요. 어쨌든 공양하고 나서 부담스럽고 괴로운 데에서 앉기도 좀 어렵고 번뇌망상이 일어나는 거래요. 밥을 적당하게 먹을 줄 알아야 돼요.


잠 자는 것도 적당하게 자고요. 조금 적게 자는 것이 좋아요. 적게 자서 정신이 좀 바짝 나게 해서 안 졸리게. 공부는 공부 자체도 공부지만 정신 상태를 고쳐 나가는 것이 공부래요. 그래서 약간 좀 부족하게 뭐 졸음을 못 참는 분은 잘 만큼 자고. 웬만한 분은 약간 좀 부족하게 자요. 그래도 앉으면 눈이 또렷또렷해야 돼요. 초롱초롱해야 돼요. 막 하고 싶고 설레일 정도로. 막 안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런 상태로 만들고요. 뭐 어떤 분은 실컷 운동하고, 참선한다고 착 버티고 앉지. 그리곤 들들 골고. 힘을 적당하게 가급적이면 많이 안 써야 돼요. 다른 데 안 쓰고. 즉 몸도 관리가 좀 적당해야 돼요. 그래서 먹는 것, 자는 것, 몸 관리 그것이 아주 적당해야 돼요. 그래야 앉으면 편하고, 오래 장시간 앉을 수 있고, 하더라도 좀 제대로 할 수가 있어요. 그러고 이제 생각을 쉬고. 고 네 가지만 갖추면 몸은 다 만들어지게 되 있어요. 화두 짓는 것만 남았는데. 어쨌든 고래 먹는 것, 자는 것, 또 힘을 적당하게 좀 몸 관리를 잘해서 적당한 체력을 유지하고 컨디션이 좀 좋게 해요. 그리고 생각 자체를 일체 쉬고요. 그런 상태로 하시면 준비는 제대로 된 셈이래요. 하기만 제대로 하면.



(큰스님) 여기에 화두 참선하는 분 있는가요? 누구?



(진여정) 예.



(큰스님) 보살하고?



(여련화) 지난 번에 주셨지요.



(큰스님) 아 그런가요? 보살하고? 또? 그러면 화두는 한 분이고. 염불이나 기도는? (수련화를 보시며) 수련화. 나머지는 전부 관법인가요? 수식관. 네. 다른 분도? (법천님을 보시며) 음, 저번에 언제 전화 주셨지? 그 이후 소식은?



(법천) 그것마저도 놓쳐버렸어요.



(큰스님) 그래 농사지어 되겠나. 그래 수련화는 좀 어떤가?



(수련화) 지난번 통화한 다음에 생각을 해봤는데, 요새 앉으면 금새 몰입은 되는 것 같습니다. 마음도 많이 안정이 됐고. 시간을 좀 늘이려는 차원에서 조금 계획을 세워 보려 하는데, 아직도 좀 갑갑한 것이 제가 워낙 모자란 사람이다 보니까, 뭘 좀 구체적으로 공부 프로그램이라 그러면 거창한데, 제 단계에 맞는 그런 것의 필요를 느끼고, 뭔가 변화가 돼야 될 것 같은데, 시간을 늘이는 것 이외에 목표를 세워서, 목표에 끄달리지 않도록 목표를 조금씩 세워나가며 좀 더 열심히 해나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다시 큰스님께 여쭙고 싶었습니다.



(큰스님) 목표는 세워서 하는 것이 바람직해. 세우긴 세우되, 좀 너무 무리한 그런 목표는 말고 실현 가능하면서 조금 무리하다 싶은 그런 목표를 세워서. 어쨌든 그 하는 자체가 중요하니까. 하는 것은 평시에 얼마나 하는지는 몰라도, 그것도 좀 늘려서 애 쓰는 것도 여법하지. 어쨌든 평시보다
좀 더 잘한다, 더 애쓴다, 더 열심히 한다 싶을 정도로 하면 좋지.



(수련화) 큰스님께서 어떻게 해라 하고 말씀을 해주시면 제가 그것을 쫓아 하는 게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거든요. 제가 스스로 만들 수도 있지만…



(큰스님) 나중에 한 번 이야기를 나누지.



(수련화) 질문이 하나 더 있는데요. 예전에 단전 말씀을 드렸는데, 요새 들어서는 단전에서 집중은 되지만 벋쳐 나간다고 해야 될까요, 벋쳐 나가는 영역이 늘어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냥 놔두면 되는 건지요?



(큰스님) 그건 자연스러운 기라. 점점 커져. 그렇게 애 쓰면 돼.



(큰스님) 여기 또 저 보살이 호흡법 해요?



(법천님 지인) 예. 화두는 억지로 자꾸 들어야 되고 늘 잊어버려요. 가끔씩 생각해서 화두를 생각해내는데, 그것은 저와는 먼 것 같아요. 호흡만 관하는 것을 해보니까 일단은 저한테는 늘 일어나는 일이라 화두보다는 훨씬 쉽더라고요. 잡념도 좀 덜 나고 집중하기가 좋아서 요새는 그렇게 해보거든요. 스님들이 주시는 화두가 ‘아 그래 맞아 그렇지’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것이 저에게 절실하게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큰스님) 화두를 하든 호흡법을 하든 한 가지만 잘 해요. 보살은 지금 화두 하기는 사실상 조금 어려울 거라. 호흡법으로 기초를 좀 다져가지고 좀 되는 상태에서 화두 하면 좋지. 우선 맛을 보는 것이 중요해. 느끼는 것이. 그래서 아, 이런 것이로구나 나도 하면 되겠구나 가능성과 자신감이 좀 생기도록 실제 좀 느껴보는 것이 중요하지. 그리고 시간적으로나 아직은 발심이나 신심 정도로 화두 하기는 조금 어렵지. 그래서 일단 호흡법을 좀 열심히 해봐요. 그냥 뭐 보통 하지 말고, 좀 열심히 한다, 아주 애쓴다 싶을 정도로. 그래야 느껴질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좀 느끼기가 조금 어려울 거예요.



(큰스님) (맨 왼쪽을 보시며) 보살은 뭐 하는가?



(진여정) 이뭣고 화두요.



(큰스님) 화두가 조금 되는 듯 해?



(진여정) 되는 듯한 느낌은 별로 없고요. 화두를 들고 앉아 있는 게 편한 느낌은 있었는데요, 많이 앉을 시간이 없고, 육체적으로 피곤하니까 따로 시간을 내서 화두를 들지 못하고 있거든요 요즘.



(큰스님) 직장인들은 하더라도, 뜻이 있고, 나름대로 애 쓰더라도, 시간이 너무 짧아. 제대로 못 하시는 그런 분이 많을 거예요. 그러나 또 짧은 시간이래도 아주 의외로 쉽게 바로 접근이 될 수 있기도 한데. 어떤 자세나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 그것이 중요한데. 바로 지극하게 하면 의외로 쉽게 또 와 닿는데. 바로 그래 하기는 좀 어려울 거라. 어쨌든 그 화두도 그냥 예사롭게 하지 말아요, 아주 예사롭게. 화두는 특히 더 그래요. 호흡법은 그냥 예사롭게 하고 보통 해도 때로는 조금 되는 것 같아. 그러나 화두는 그래 하면 참 뭐 며칠을 해도 몇 달을 해도 별로 그 진전이 없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드는데, 그러면서도 화두는 참으로 애 쓰면 의외로 빨리 돼버려요. 그래서 마음가짐이 아주 중요해.


요새 화두 이외의 여러 가지 방법들이 많은데, 화두에 대한 비판적인 이야기도 하는 분들이 있는데, 사실은 화두를 정작 애 쓰고, 화두에 참 일생을 걸다시피 참으로 애 쓰는 분은 화두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해요. 화두도 안 하고, 화두에 대해서 사실은 잘 모르시는 분들 중에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가 많은 것 같아. 화두는 자기 스스로 깊은 체험을 안 하면, 화두에 대한 이야기를 못해요. 그렇게 그 오묘한 아주 대단한 것이 화두래. 실제 느껴봐야 아 이것은 좋다 나쁘다, 이런 저런 분별심, 사량심을 붙일 수가 있어요. 전혀 체험이 안 된 상태에서 몇 번 해보고, 제대로 해보지도 못 하고 화두에 대한 평을 할 수 없는 것이 화두래요. 그런 대단한 법력이래요. 아주 대단한 것이래요.


그런데 화두는 진의가 돌발하면, 진짜 의심이 돌발해서, 본 궤도에만 오르면, 궤도까지 오르기가 조금 어려워서 보통 사람들은 어렵다 힘들다 그래도 의외로 쉽게 되는 분이 있는데 그러면 탄탄대로를 고급 승용차로 올라가는 격이래. 일단 궤도에만 오르면 그냥 쏜살같이 막 달리듯이 질주할 수 있어요. 좀 빠르고 오히려 훨씬 더 쉽고, 의외로 기쁨을 느끼는데, 거기까진 조금 어렵다고들 하는데, 그러나 깊게 들어가려면 반드시 화두를 해야 되고요. 초보단계에서 수식관이나 호흡법이나 기도나 다라니나 그런 것을 하더라도 결국에는 화두로 마지막을 장식해야 돼요. 마지막은 꼭 화두를 해야 돼요. 그래야 깊게 들어가고 빠르고. 또 한국에서는 화두로, 화두대사가 많기 때문에 지도 받기가 쉽고요.


어쨌든 그 화두는 기초가 좀 다져진 뒤에 그래 하면 좀 쉬운데 그렇지 않으면 조금 어렵다고는 하는데. 그러나 아까 얘기했듯이 기본적으로 좀 갖추고, 아주 지혜롭게, 적당하게, 알맞게 고래 참구하면 의외로 또 쉽게 바로 될 수도 있는 것이 화두예요. 그래서 화두 참구는 아주 지혜롭게 해라. 알맞게나 적당히라는 말이 자주 쓰여지지. 알맞게 해라. 적당하게 해라. 그 알맞게, 적당하게 라는 말에는 온갖 그런 여러 가지 뜻이 함축돼 있어요.



(큰스님) (법혜님과 장휴창님을 보시며) 그래 그 두분은 뭘 하시는가? 수식관. 하루에 한 얼마쯤 해요? 한 시간. 음, 저녁에 해요? 그럼 처사는요? 한 시간 정도는 적다. 한 시간 정도 해가지고는 된다 안 된다 이야기할 자격이 없어요.



(법천님지인) 그럼 하루에 어느 정도 해야 하나요?



(큰스님) 그런데 사람에 따라서 한 시간 해서 효과가 나는 분이 있긴 있어요. 근데 보통은 한 30분 내지는 1시간은 뜸들이다가 볼 일 다 보지. 안정이 돼서 될만하면 죽비 놓고 눕지. 정작 좋을 때가 되면 아이고 죽겠다 이불 펴기가 바쁘지. 그래서 이 지혜로운 사람하고 지혜롭지 못한 사람하고의 차이래. 지혜로운 사람은 앉자 마자 바로 빠질 수 있어요. 지혜롭지 못한 분은 억지로 한 시간쯤 하고는 될만하니까 눕는 거라.



(선일) 저 같은 경우는 1시간 정도는 괜찮은데요. 1시간이 넘어가면 다리가 아프기 때문에 한 자세로 있기가 어렵습니다.



(큰스님) 자세는 바꾸고 싶거든 바꾸세요. 그런데 1시간 정도 되거든 바꾸시고, 한 30분 정도는 바꾸지 마시고요.



(선일) 1시간 정도는 문제 없습니다.



(큰스님) 그래요 ,그 정도면 바꿔 가면서 그래 해도 괜찮아요.



(법천님지인) 그럼 한 번 할 때 2시간 달아서 하나요? 한 시간, 한 시간 나눠해요?



(큰스님) 달아서 해요. 조금 지루하고 다리가 아프거든 조금 다리를 편다거나, 기분을 조금 전환해서 바로 해요. 그래서 공부가 안 될수록 2시간, 3시간 정도 달아 하듯이 계속 하면 좋아요.



(법천님 지인) 스님 말씀하신 듯이 지혜롭지 못한 사람임을 계속 느끼거든요. 저의 쇠 같은 답답함을 저를 보면서 많이 느끼고 있거든요. 불교 공부를 만나서 너무 좋긴 하고 일상이 변해서 좋긴 한데, 이 공부를 할 수 있겠나. 게으르고 공부를 할 자세가 안 되 있단 생각이 요즘 자꾸 들더라고요.



(큰스님) 이 공부할 자세가 안 돼 있으면 사실은 그런 사람은 밥을 안 먹어도 괜찮아. (일동웃음) 공부할 자세가 안 돼 있는 사람이 주부 노릇을 잘 하겠나, 애를 잘 키우겠나, 뭐 돈벌이를 잘 하겠나. 다 비슷비슷해요. 이 지혜롭게라는 말을 했는데, 이 자신의 현재 처지를 자상하게 점검해봐요. 뭐 점검할 필요도 없지. 돈 잘 버나 못 버나, 그렇지 않으면 직장이라도 반반한 걸 가졌나 못 가졌나, 집안이 어떤가, 애들 꼴은? 그냥 들어나는 거래. 지혜롭지 못하기 때문이래. 화두 지혜에서, 수행 지혜에서 그것이 고쳐져야 되요. 수행을 지혜롭게 함으로써, 가정도 지혜롭게 다스리고, 애들도 지혜롭게 좀 키우고, 내 하는 일 전부가 좀 지혜롭게 달라지도록 만들어 가는 거래요. 이
수행만 지혜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인생 자체가 서서히 지혜롭게, 좋게 변하는 기라. 거기까지 영향을 미쳐야 되요.



(법천님지인) 그것은 느끼겠고요.



(큰스님) 그래 지혜가 그렇다는 기라. 수행자는 그래야 된다는 거고.



(법천님지인) 개인으로 정말 1시간 기도하고, 공부하려고 앉아있을 때 마음에 일어나는 걸 보면, 뭐라 해야 할지 업장인지 정말 공부하려는 것 같지가 않고, 생각으로 하는 공부라는 걸 많이 느껴서, 약간 억지스럽게 더 기도를 하려고 하는데 잘 모르겠어요.



(큰스님) 어쨌든 그 공부 한다는 것이 자기를 고쳐 나가고, 자기를 발전시키고, 자기 근본을 다스리는 것이 공부다 그렇게도 이야기를 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무엇을 잘 못한다, 잘 안된다, 어렵다 그런 것도 공부로 고쳐나가고, 공부할 자세나 마음가짐으로써 그 외의 근본적인 마음 가짐으로써 서서히 고쳐나가야 되는데, 공부가 꼭 기도면 기도, 화두면 화두 고것만 되게 하는 것만 공부가 아니라, 공부를 접근할 때, 공부 자체에서도 지혜롭게 살기도 하지만, 일상 생활의 지혜에서, 일상 생활의 좋은 점, 그 장점들이 공부를 더 잘 하게 하고 더 좋게 하고, 그래서 공부도 좋아지지만 나라는 인간 자체도 좋아져야 되요, 고쳐져야 되고. 원만해져야 되고.


그래서 공부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부처님하고 가깝다는 거래요. 즉 자기가 그만큼 잘 하고, 발전한다는 거래요. 그래서 무엇이 잘 안 된다, 잘 못한다 그러면 그건 즉각 고쳐야 되요. 그것이 공부든 공부 외 것이든 이 공부나 공부 외 것이나 결국은 한 가지라, 둘이 아니래요. 공부가 잘 되면 그것이 잘 되고, 그런 것이 제대로 갖춰지면 공부가 또 자연스럽게 되고요. 다만 공부는 마음을 근본적으로 다스리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를 가장 잘 알기 쉽고, 자기의 부족한 부분, 못난 점, 어리석은 점을 가장 잘 고치기 쉬운 것이 공부래요.



(선일) 저 같은 경우 축서사 법회에서 큰스님께 화두를 받았고, 수계법회에서 큰스님께 선일이라는 법명까지 받았습니다. 그 인연으로 숨을 들이 쉬고, 내쉬면서 화두를 드는 수식관에 가까운 화두 참선을 한 1년 반에서 2년 정도 했는데요. 일종의 망상일 수 있는데, 화두가 궤도에 오르지 못하니까 역으로 이런 불성이 있으니 그걸 알아야겠다 하면서 질문들이 생깁니다.



(큰스님) 그런 불성이나 이런 그런 의심, 저런 의심 살아가면서 또 의심 나는 점이라든지 모르겠는 그런 것들까지도 어쨌든 총체적으로 똘똘 뭉치듯이 그 화두 의심에 힘을 보태요. 그래서 화두를 더 지극하게, 간절하게 그래 힘을 지어 가세요. 천만 의심을 똘똘 뭉치듯이 화두 의심에 보태고 뭉쳐요. 그래서 화두로 삼으래요. 어쨌든 그 화두를 들 때, 수식관이면 수식관을 할 때, 아주 예사롭게 하지 말아요. 아주 지극하게 하면 아주 참 정성껏 하면서 아주 지혜롭게 하려고 애써요. 아주 지혜롭게. 알맞게 적당하게 고래 해요.


그러면 화두도 그렇게 딱딱하지 않고, 친근감이 생기는가 하면, 의심도 평시에는 의심이 안 나는 것 같더라도, 아주 고요한 상태에서 알맞게만 들면, 의심에 대한 묘한 그런 기분을 느껴요. 요것이 의심이로구나. 이내로 의심을 느낄 수가 있어요. 그냥 의심이 안 되는 것을 느끼는 것 하고, 정말 좀 돼서 느끼는 것하고는 좀 다르지. 어쨌든 그렇듯이 마음공부는 아주 고요한 상태에서 고것만 분명하게 확실하게 살펴보면서 나가요. 그래서 한 번 한 번을 예사롭게 하지 말아요. 그렇게 좀 지극하게 하면, 수식관도 뜸들일 필요 없어요. 바로 앉으면 바로 돼요.



(***님) 공부하고는 조금 성격은 틀린 질문이지만 집안에 우환이 있어서 여쭤보고 싶습니다. 스님께서 공부랑 관련 지어 답변을 주셔도 좋고, 그냥 답변을 안 주셔도 괜찮고요, 일단 여쭙겠습니다. 형이 문제를 일으켜서, 부모님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돼서, 식구들이 조금씩 어렵게 됐는데, 마무리 단계기 때문에 뭐 어차피 정리될 건 다 정리 될 건데요. 부모님이 지금 연세가 78이신데,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겠지만, 가실 때 한을 많이 품지 않을까 조금 걱정이 되고, 형 같은 경우는 50이고 앞으로 살 날이 많은데, 잘못하다 폐인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아들과 동생으로써 어떤 기도를 한다든가 어떤 방법으로 해서 그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까요?



(큰스님) 우선은 본인들이 마음을 다스린다든가, 즉 호흡법이라든가, 기도라든가 하게 하는 것이 가장 동생으로써 또 아드님으로써 좋은 일이고, 바로 느끼게 하고, 바로 본인이 직접적으로 영향이 미치도록 하는 것이 좋고. 그러고 간접적으로 처사가 그렇게 기도를 한다든가, 정신적 수련을 해서 미치게 하는 그런 방법이 있기는 있고, 하기도 하는데, 그 방법은 미치기가 조금 어려워. 그러나 지금 처사 입장에서는 그런 방법도 강구해가면서, 또 본인들이 직접적으로 하도록 하고, 집안 분위기 전체를 좋은 분위기로 만들려고 좀 노력을 하고, 3중으로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님) 어떤 식으로요?



(큰스님) 즉 본인들에게 직접 하도록 하는 것이 제일 좋고, 그게 안 쉽더라도. 본인들이 연세가 높은 분이 한이라고 하셨는데, 한은 안 품어야 되. 한은 안 품어야 되고, 돌아가실 때쯤 된 분은 어떤 분이더라도 미워하고 싫어하고 한스러움이 없이 그대로 가시는 것이 좋아요. 그런 것이 훗날 악업이 될 수가 있어요. 그래서 저 처사님들이나 보살님들도 혹시 그 어릴 때 누굴 막 미워하고, 싫어했던 그런 분이 혹 있더라도, 심지어 미워하고 싫어한 것까지, 뭐 한스러운 것이 있으면 더더욱 그렇고 풀 수 있는 것은 푸세요. 즉 아주 안 풀리면 하다 못해 뇌물을 주더라도 풀어요. 그렇게 한은 안 품어야 되는 기라. 특히 남의 가슴에 못을 박듯이 결정적인 한 같은 것은 더더군다나 없어야 되고.


어쨌든 연세가 높아서 가실 때쯤 되면 어디에든 걸림이 없이 좀 괴롭지 않게, 편안하게 그래 갈 수 있도록 해드려요. 또 본인 스스로 그래 노력하면 더 좋고. 어쨌든 본인들이 좀 알아서 직접 하시는 것이 제일 좋고, 두 번째는 가정적인 분위기 자체를 좋은 분위기로 만들려고 애를 쓰세요. 분위기 자체만 좋아도 아무래도 영향이 미치니까. 그래서 아래 위로 적당하게 물을 갈듯이 분위기를 좋게 하는 것이 두번째고, 세번째는 처사님이 기도를, 선을 좀 지극하게 해요. 기도나 선 자체가 미치는 영향은 사실은 미미해요. 그러나 그런 마음, 그런 자세가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이 될 수가 있고, 형을 그래도 이해하면서 분위기 전체를 좋게 하는 근본 마음이 될 수가 있어요. 그 마음이 없으면 몇 번 하다가는 에라 모르겠다 집어 던져 버려요. 그러면 이익이 없으니까, 늘 본인 스스로 샘 솟듯이 그런 마음을 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기도라. 그 자체가 인제 좀 미치게 하는 것도 좋고요. 그런 정도로 해보세요. 가정의 특히 아버지고 형 같으면 꾸준하게 관심을 가져 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님) 어머님이 사찰 여기저기 일반 어머님들처럼 기도하러 다니셨는데, 스스로 공부하실 수 있게 경전을 공부하도록 해드리고 싶은데, 어떤 경전을 권해드리는 게 좋을까요?



(큰스님) 연세가 높을 텐데? 염불을 잘 할 수 있는 분 같으면, 한 가지 염불을 잘 하는 게 제일 좋아요. 만약에 그래 하기가 좀 어려운 분은 경전도 좀 읽고, 염불도 하는 시간을 갖게 하고요?



(***님) 경전은 어떤 경전이요?



(큰스님) 경전은 법화경 정도 읽으시라고 해요.



(***님) 정근은 관음정근이요?



(큰스님) 관음정근? 뭐 아미타불을 불러도 좋겠네. 나무아미타불. 아미타불이 좀 되는 듯 하고, 아미타불에 막 빠질 정도가 되거든 경전도 필요 없어요. 읽지 마시고, 오직 아미타불만 하고, 그래 잘 하셔서 더 좋은 것은 마지막 숨 딱 끊어질 순간까지 부르다가 가는 것이 제일 좋은 거래요. 그렇게 숨 끊어질 순간까지 부를 정도가 되면, 염불에 좀 지극하게 부를 정도가 되면 아마 별로 크게 건강이 안 좋지도 않을 거래요. 중병 같은 건 아마 잘 안 들거예요. 가실 때도 아주 편안하게 가고. 주변도 이렇게 보기 좋게 나름대로 당신 정리는 되고요.



(***님) 형은 관심을 좀 갖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형한테 수식관을 권하는 게 좋을까요?


(큰스님) 그냥 관법을. 그런 분은 숫자 헤아리는 것까지도 부담스러울 수가 있어요. 호흡 자체만 지극하게 하게 하지요.



(법천님지인) 저희 아버님이 80이 넘으셨거든요. 돌아가실 때 가까우신 분은 한이 없게 해드리는 게 좋다고 하셨는데, 저는 사실 자식이 하나 거든요. 부모님 원은 어쨌든 결혼 하는 건데 저는 결혼이 생각이 없고. 우리가 죽고 나면 너 어떻게 살래. 그게 늘 걱정이시거든요. 근데 부모님의 한을 덜어드리기 위해 제가 결혼을 해야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제가 선뜻 내켜지지가 않거든요.



(큰스님) 보살이 한하고 바람하고 조금 혼돈을 하는 것 같네. 따님이, 마치 하나뿐인 딸이 결혼하길 바라는 것이지 안 하는 것이 한스럽지는 않을 거예요. 꼭 했으면 한이라는 말을 조금 써도 괜찮겠지만 그건 한이라기 보단 염원인데. 꼭 했으면 좋겠다 당신의 바람인데, 서울 시내 총각들 많으니까 소원 좀 들어주던지 그렇지 않으면 정 인연 없으면 살아 계실 동안 잘 해드리면서 이해를 잘 시켜요. 그거는 한이 아니래. 거기까지는 걱정을 안 해도 괜찮겠네.



(법천님지인) 한하고 바람하고 차이가 잘 이해가 안 됩니다.



(큰스님) 한이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아주 괴롭게 한다거나 그렇지 않으면 어떤 큰 사건이나 사고를 일으킨다거나 그래서 마음 속에 막 꼭 맺히듯이 잊혀지지 않고 정신 건강이나 육체적으로 크게 타격을 받는 그런 것을 보통 한이라고 하잖아요. 그러면 한은 보통 한스럽다는 것하고 보통 원하는 것 바람하고는 상당히 차이가 있어요.



(선일) 스님 여쭤볼 게 있는데요. 평소에 혈압이 높았던 것도 수행 하는 하나의 원인이었습니다. 화두를 들 땐 화두에만 집중하고 눈 앞에 화두를 두라고 참선법회 때 말씀하셨는데, 수행과 건강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겠다 생각 때문에 수식관을 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이 있어서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 화두를 하는 그런 식이였습니다. 아까 운동을 줄이라고 하셨는데, 소식을 하고 적게 움직이는 게 건강한데,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뛰어다닙니다. 하루에 열바퀴 정도 운동장을 2~3킬로씩 뜁니다. 천천히 뛰면서 화두를 합니다. 두발 정도 뛰면서 숨을 들이 쉬고, 두발 정도 뛰면서 내쉬면서 화두를 드는데요. 혼선을 어떻게 정리를 하면 좋겠는지, 뛰면서 하는 행선도 아닌 그런 것이 무리가 있는 것인지요?



(큰스님) 제가 이야기한 것은 일반적인 이야기를 한 거래요. 사람에 따라 특수한 이유나 원인이 있는 사람은 특별한 그런 수행을 할 필요가 있거든요. 그래서 자기에게 맞는, 적당한 이라는 말이 고런 데 필요한데. 처사님은 호흡에 의지해서 하세요. 목전에 두지 마시고.호흡에 의지해서 하고, 달리기가 건강에 좋으시거든. 내가 그 에너지를 어디 필요 없이 소모하지 말라는 거래요. 운동을 해서 그 이상의 나름대로 에너지를 또 기른다면 그것도 또 좋은 일이니까, 운동을 하더라도 어쨌든 좀 적당하게 하고, 에너지를 가급적이면 소모하지 말라는 건데, 운동을 하시더라도 적당하게 하고, 뜀뛰기가 좋거든 뜀뛰기 하시고요. 처사님은 뜀뛰기 하되 너무 빨리 뛰지 마시고, 아
주 천천히 뛰시고. 그리고 걸음걸이는 좀 느린 편인 것 같은데 말씀하시는 것 보니까 좀 빠른데, 말씀도 좀 느리게 하이소. 좀 천천히 느리게요. 그래서 말이나 행동 자체도 느리면서, 말 한 마디 한 마디나 행동 하나는 분명하게 또렷또렷하게 하시고요. 그래서 내게 좀 부족한 것, 못난 점 그런 점이 있으면 어쨌든 수행으로써 바로 고칠 수 있도록 고래 해 나가세요.


그래서 아까도 이야기 했지만 수행 한 번 한 번이 실수란 없도록 해야 되요. 헛되게 한다는 그런 기분을 조금도 안 느끼도록 하는 거예요. 그래서 호흡 한 번 해가지고, 바로 호흡 자체가 내게 힘이 되고, 피가 되고, 그야말로 참 몸 전체를 움직일 수 있는 그런 신진대사까지도 촉진이 되도록 그렇게까지 하는 거예요. 그래서 호흡 한 번이 쉽게는 호흡 한 번이지만, 크게 보면 그것이 전체 온 몸에 영향이 미칠 정도로 그래 해나가는 거래요. 그런 식으로 하면, 호흡이지만 엄청난 효과를 거둘 수가 있는데 그렇듯이 본인이 알아서 적당하게 하되, 조금이라도 좀 문제가 있다 고치면 좋겠다 이렇게 하는 게 좋겠다 저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 싶은 것은 바로 고치세요. 바로 효과가 나도록 하시고요.



(선일) 하나만 더 여쭙겠습니다. 저는 목전에 화두를 못 두기 때문에 단전에 두는데, 화두에 치중을 하면 자세가 흐트러집니다. 자세를 바로 하고, 단전에 다시 힘을 주면 그 순간 화두가 빠지려고 하다가 중단 됩니다. 그럴 때 자세에 치중을 해야 됩니까, 화두에 치중해야 됩니까?



(큰스님) 자세도 너무 치중하지 말고, 자세는 좀 바르게, 단정하게, 여법하게 앉는 그런 정도로 만족하세요. 자세가 처음부터 완벽할 수 없어요. 자세는 조금 원칙을 중시하되, 부족하지 않게 앉으려고 하면서, 화두 자체만 제대로 들려고 하세요. 화두만 제대로 들리면, 법당의 부처님처럼 똑바른, 아주 여법한 부족함이 없는 그런 자세가 저절로 돼버려요. 처음부터 화두가 안 되는 상태에서 자세만 완벽하게 하려고 하면, 자세가 완벽해질 수 없어요. 그런가 하면 화두에 자세를 너무 무시해도 안 되고요. 자세는 화두가 좀 될 만큼만 갖추세요. 좀 어려운 말인데, 자세도 나름대로 갖추고, 화두도 될 만큼 양립할 수 있도록 고래 하세요.



(수련화) 큰스님 처사님 말씀 들어 보니까, 수시관을 단전을 이용해서 하시면서 화두도 하시는 것으로 들었는데, 둘 다 병행하시는 건가요?



(큰스님) 들이켰다가 내쉬면서 하지요? 그래 뭐 이뭣꼬 화두 같은 것은 호흡에 의지해서 하거든. 고 말씀이라. 수식관이라기보다 심호흡에 의지해서 화두를 든다는 기라. 고래 들면 괜찮아요.



(큰스님) (법천님 지인을 보시며) 보살은 어머니, 아버지한테 효도를 좀 많이 해요. 굉장히 뻣뻣할 것 같애. 아무 재미도 없고.



(법천) 예전보다 너무 많이 바뀌었고요. 너무 부모님을 잘 모셔요. 제가 예뻐서 같이 데려 왔어요.



(큰스님) 어쨌든 뻣뻣하고, 애교도 없고, 이건 뭐 나무장작깨비래. (일동 웃음) 그러니 부모가 아이고 저 어떻게 하나 그러시지



(법천) 스님 제가 축서사 와서 스님 뵙게 된지 1년 3개월쯤 된 것 같은데요, 언제쯤 저한테 화두 주실 건지요? 한 1, 2년 정도 수식관을 더 할까요?



(큰스님) 한 1년 정도만 더 하시지. 1년 정도 더 하시고 내년 이맘때 정도 이야길 하시지. 어쨌든 그 수행을 하면서 내가 좋아져야 돼요. 성질도 바뀌고, 자세도 달라지고, 말도 달라지고, 직장에서 좋은 평을 듣고, 가정에서는 아버지로서나 남편으로서 또는 아내로서 애기 엄마로서 다 잘 해야 돼요. 변화가 없으면 수행이 필요치가 않아요. 반드시 변화가 있도록 하고, 변화는 근본적인 변화여야 돼요. 자기의 아주 밑바탕부터 좀 고쳐야 돼요. 다른 표현으로 팔자 고치는 공부가 돼야 돼요.


원천적으로 좋게 되고, 달라져서 자기의 못난 점 부족한 점이 자연스럽게 고쳐져서, 잘 하고 좋게 하고 장래가 밝은 그런 사람이 돼요. 성격에 문제가 있으면 성격이 고쳐지고, 직장 생활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직장 생활 자체가 고쳐져서 잘하고 존경 받고 승진도 해야 되고요. 가정에서도 가정이 원만하지 못하다든가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 문제가 있는 그런 사람 같으면 그 문제점이 고쳐져야 돼요. 그래서 아이고 참 아무개는 절에 가더니 많이 달라진다. 훨씬 더 좋아졌다 그런 말 들을 수 있을 정도로요. 변하는 것은, 자기의 가장 치부점, 근본적으로 아주 문제점 그런 것이 고쳐져서 결과적으로 자기 인생까지도 변할 수 있어요. 그것이 고쳐지지 않고, 그것이 좋게 되지 않으면, 수행해도 수행한 공덕이, 물론 그것 아니래도 공덕은 쌓이겠지만. 남들이 봐 가지고 좀 느낄 정도로, 주변이 달라질 정도로 해야 돼요. 어쨌든 수행은 마음과 행이 즉 안팎이 둘이 아니도록 애 써요.



(수련화) 스님 죄송합니다만 다시 여쭙겠습니다. 아까 마음을 아프게 하면 안 된다고 하셨는데, 예전에 어떤 사람의 마음을 많이 아프게 한 적이 있는데, 수행 생활을 하면서 제대로 된 인간으로 살려고 하는데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를 한다거나 하는 게 필요한 건지 아니면 제가 현재 잘 살려고 하는 자체로 괜찮은 건지요?



(큰스님) 글쎄 무슨 원인으로 그래 됐는지 원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지금 신경 써야될 원인이 있으면 신경을 써 주면서 그래 풀어주는 것이 좋고, 신경 쓸 필요도 없는 그런 경우는 나만 잘 살아가요. 그러면 저절로 좋아지고,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거니까.



(수련화) 저희 어머님은 성당을 다니시는데, 요새 절에 대해 많이 생각도 좋아지셨지만 염불을 권하면 부담감을 가질까봐 염려되는데 어떻게 수행 방법에 대해 말씀을 드리면 좋을까요?



(큰스님) 그분은 성당에 가더라도 염불을 권해봐도 괜찮을 분 같아. 즉 성당에 가더라도 염불 한다고 해서 크게 마음에 어떤 부담을 안 가질 분 같고. 그것이 중요하고. 그리고 성당에서 뭘 수행 쪽으로 하는 것이 있는지 몰라도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염불은 설사 그쪽에서 조금 불이익이 있더라도 그 이상의 좋은 점이 있으니까 염불을 한 번 권해봐도 괜찮을 것 같아.



(수련화) 제가 권하는 것 보다 나중에 다시 한 번 모시고 와서 큰스님께서 말씀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큰스님) 아, 딸이 입에 사탕 넣어 드리듯이 달콤하게 이야기하면 더 와 닿지. 어쨌든 그 보살은 권해도 괜찮을 것 같아. 권하되 너무 무리하진 말고, 당신이 알아서 하시게 하고, 슬쩍슬쩍 한 두 마디씩 해주면 좋을 거예요. 그것이 사실은 효도라.



(큰스님) 그래 오늘 몇 시에 올라들 가시는가?



(총무) 법문 끝나고 바로 올라갈 겁니다.

이상입니다. 합장



[이 게시물은 가람지기님에 의해 2017-03-02 09:15:51 금주의 법문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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