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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과 생활이 둘이 아닌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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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가람지기 작성일06-02-08 09:28 조회4,2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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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니텔 부처님나라 정기참선법문 ] 2003년 4월



수행과 생활이 둘이 아닌 삶



축서사 무여큰스님

요새는 사회가 좀 불안하다고 하데요. 경제적으로 IMF 한파 당시보다도 더 어렵지 않느냐. 지방에도 IMF 한파 왔을 때, 당시에는 여긴 별로 못 느꼈고, 한 2년쯤 뒤에 여기까지 그 여파가 오는 것 같아요. 이 마을에도 좀 어렵다, 어렵다 그런 얘기가 들리던데, 그것이 작년이었는가 그런데 요새는 작년보다도 더 그런 이야기가 들려요. 그리고 저번에 이라크 전쟁을 운동경기 현장 중계하듯이 텔레비전에서 중계해서 보니까 우리도 전쟁이 오지 않느냐, 저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느냐 그런 우려가 돼요. 전쟁에 대한 공포와 그리고 북한의 핵문제라든가. 며칠 전에 신문을 보니까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나오는데, 그런 말은 안 하잖아요. 있어도 쉬쉬하고 숨기는데 스스로 자발적으로 있다하니, 애들 말로 공갈 비슷하게 협박 같은 그런 느낌이 들어요.


이북이라는 나라는 상대하기가 참 어려운 나라다 그런 느낌이 들어요. 우리 한 민족인데, 같은 종족인데 그렇게까지. 어떻게 보면 막가는 사람들 같은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너무 순진한 듯한, 그것도 연극인지 몰라도,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하고. 어쨌든 그런 문제, 사회적인 여러 가지 불안 문제, 그런 것들로 인해서 좀 불안하고 괴롭다는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아마 여러분은 서울에서 피부로 가장 직접적으로 많이 느끼실텐데, 이런 때일수록 참선하시는 분은 참선을 하시고, 염불하시는 분은 염불을 잘 해서 일단은 마음의 평화를 찾고요, 그리고 사고를 아주 온전하게 아주 건전하게 해요. 그래서 살아가시는 것도 아주 원만하게 좀 열심히 잘 살면, 세상이야 조금 어렵고 괴롭더라도 또 주변이 불안해 하더라도 내 마음은 늘 고요하고 평화를 즐겨가면서 사는 재미를 느껴야 좋지 않겠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수행자는, 꼭 뭐 수행자가 아니더라도, 관심을 갖는 분은 주변에서 영향을 미칠 정도면 그 사람은 대단칠 않아. 주변이 어떻든 나는 전혀 영향을 안 받을 정도로 좀 독야청청할 정도로 그렇게 살아가시면 남다른 그런 행복을 느끼면서 살 수가 있어요. 물질적인 것이라든지 사회적인 분위기는 영향을 안 미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무리 크게 미치고 영향을 주더라도, 마음만 고요하게, 마음만 잘 다스리면, 어떤 상황의 변화가 오더라도 능히 대처를 할 수가 있고, 남들은 죽느니 사느니 하더라도 내 마음은 고요해서 아주 안정된 행복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요새는 그 수행원이라든가 수행처를 찾는 그런 분들이 많다고 하던데 좀 다행스럽지 않느냐, 좀 고무적인 그런 일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어쨌든 여러분들은 늘 하시는 분이고, 관심이 많은 분이라 이럴 때일수록 좀 열심히 해서 더 관심을 가져서 주변의 상황의 변화에 관계없이 잘 살아 갈 수 있는 그런 하루 하루가 되도록 노력하고 애 쓰시면 그분이야말로 잘 사시는 분이다 할 수가 있을 겁니다. 그간 하시면서 느낀 점이나 또 물어볼 일, 질문을 하시면 내 대답을 해드리면서 법문을 대신 할게요.



( 질문 ) 다른 보살님의 질문인데, 첫 번째는 염불을 하면서 맑고 깨끗한 순간이 예전에 비해서 아주 길어졌는데, 어떨 때 갑자기 무서운 생각의 잡념이 한꺼번에 몰아 닥쳐서 무서울 정도여서 거기에 끄달릴 정도인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 큰스님 답변 )) 맑고 깨끗한 그런 순간이 길어진다는 것은 잘 된다는 것인데, 어쨌든 맑고 깨끗한 그런 상황, 그런 순간들이 더 길어져서 하루 종일 그렇게 초롱초롱한 그런 상태가 되면 아주 이상적이래요. 흔히 깨어있는 사람이다 그런 말 들었지요? 깨어 있는 사람이 정신이 좀 깨어 있는 그런 상태는 깨어 있는 사람이라고 하질 않아요. 좀 맑고 초롱초롱한 그 상태가 유지 되는 것을 깨어 있는 사람이라고 해요. 그 상태를. 그런 상태를 유지시켜서 늘 살아가는 사람하고, 그냥 좀 답답하게, 좀 탁하게, 좀 둔한, 어두운 그런 상태로 살아가는 사람하고는 훨씬 달라요.


어쨌든 맑고 초롱초롱한 그런 상태가 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 순간은 가급적이면 길어야 돼. 가급적이면 길게 하려고 애 써야 되고. 흔히 수행을 한다 도를 닦는다 마음 공부를 한다 그 순간부터 제대로 출발을 하는 거예요. 저렇게 되질 않으면 형식적이고, 초보단계래요. 초보단계도 안 되는 그런 단계다 할 수가 있어요. 맑고 깨끗한 그런 상태가 되야 드디어 제대로 한다 본격적인 출발을 한다고 할 수가 있어요. 저런 상태가 되면 기분이 좋아요. 몸이 맑고 가벼우면서도 아주 기분이 좋은 그런 상태가 되요. 약간 설레는 그런 상태가 되고요. 무슨 일을 해도, 하려고 하면 막 하고 싶은 그런 생각이 들고요. 얼른 가서 열심히 빠지고 싶은 그런 생각도 들고. 그런 때가 바로 저런 때인데, 저런 때가 되면 어쨌든 사는 진정한 그런 재미를 느끼는 초보 단계래요. 진정한 재미란 뭐냐, 참 행복을 말해요.


흔히 행복행복 하는데, 저 순간에서 드디어 행복을, 진정한 행복을,
참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다 할 수가 있어요. 그냥 보통 여러 분이 돈을 벌고 집에서 살림을 하고, 애기를 갖고 이런 저런 일상적인 보통의 행복을 사시면서 느낄 수가 있는데, 그런 행복은 진정한 행복이 못 돼요. 그런 행복의 뒤에는 꼭 괴로움이 따라요. 그런데 저 순간부터는 한 번만 느껴도 두고두고 잊지 못할 정도로 묘한 행복과 기분을 느끼는 것이 바로 저 순간인데, 어쨌든 여기서부터, 저 순간부터 본격적으로 수행의 길에 들어간다고, 극히 초보단계지만 그렇게 이야기할 수가 있어요. 저렇게 되려면 좀 애를 써야 돼. 애를 쓰되, 번뇌망상이 일어나고 좀 괴롭고, 어렵고, 힘이 드시더라도 좀 참고 견뎌 가면서, 바짝 애를 쓰면, 잘 안 되는 염불이나 참선이라도, 애 쓰다가 보면 어느 사이에 선에, 염불에 좀 폭 빠지는 상태가 돼.


즉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내가 하는 공간이 어딘 줄 모를 정도로 폭 빠지는 상태가 돼요. 그 폭 빠지는 상태란 일체의 번뇌망상이 거의 사라진 상태래요. 번뇌망상이 사라지면, 좀 어둡고 혼란스럽고 탁한 그 마음이 안정이 되면 맑아져요. 깨끗해져요. 저렇게 깨끗한 상태가 좀 더 깊게 돼서 더 깨끗해지면, 더 맑아지면 밝아져요. 밝아지면 깨친다 하는데 어쨌든 저런 상태는 좋은 상태예요. 근데 저런 상태에서 약간 무서움을 느끼는 그런 어떤 경계라든지 어떤 느낌이라든지 그런 것이 오기가 쉬운데, 즉 과거 살아오면서
이런저런 그런 인연이나 업이 조금 녹음으로 드러나고 나타나는 현상인데, 어떤 현상이 나타나더라도, 거기에 대해서 전혀 신경을 쓰지 말고, 그럴수록 더 열심히 더 지극하게 그래 해 가라고 해요.



( 질문 ) 맑고 깨끗한 상태가 오래 지속이 된다는 상태는 망상이 통제가 되면서 없어진다는 건데, 갑자기 망상이 한꺼번에 몰아 닥치듯이 무서울 정도로 올 수 있는 건지요?



(( 큰스님 답변 )) 그건 생각이 아니고, 그런 것은 일종의 경계라고 하는데, 순간적으로 무서움도 들고, 순간적으로 어떤 경계가 올 수가 있어. 그건 망상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영화 필름처럼 스쳐 가고 지나 가. 그걸 망상으로 볼 수도 있지만 망상하고는 질이 달라.



( 질문 ) 두 번째 질문입니다. 처음에 염불을 할 때는 눈물이 많으셨는데, 눈물이 뜨겁게 느껴지고, 그 다음 단계는 손이 뜨겁더니, 다음은 가슴이 뜨거워지더랍니다. 그 다음에 요새는 단전 쪽으로 뜨거움을 느끼는데 그 뜨거움이라는 게, 거의 화상 입을 정도로 아주 뜨겁게 느껴진다고 합니다. 표현상의 용어를 보면 뜨겁다는 말도 미비하고, 화상을 입을 정도로 뜨겁게 느껴진다고 하면서 순간적으로 걱정이 되기도 한답니다.



(( 큰스님 답변 )) 그런 어떤 뜨거움이라든지, 화상을 입을 정도의 표현이 그래서 느낌이 그래서 그런데, 절대 그런 화상을 입는다든가 육체적으로 안 좋은 그런 현상은 없을 테니까 걱정을 하지 말고, 그럴수록 더 열심히 더 지극하게 애 쓰고 애 쓰라고 해요. 좋은 현상이래요. 잘 돼가는 현상이니까, 한참 뜨거울 때 찬물을 끼얹듯이 안 한다든가 잡생각 하면, 그것은 그 뜨거운 기가 사라져. 즉 공부하는 분위기가 흩어지고, 공부 자체가 안 되니까 그럴수록 더 열심히 더 지극하게 더 애 써 나가라고 해요. 실제 마음 자체도, 육체 내부도 상당히 뜨거워 지는 경우가 있어요. 우리 몸뚱아리는 체온이 39도 내지, 한 40도만 넘으면 내부에 있는 세균 종류가 거의 다 죽는다고 하데. 그래서 장질부사 있지? 장질부사(염병) 잘 앓고 나면 살 찐다고 하잖아요. 40도 41도 심지어 42도까지 올라간다고 하는데, 즉 열이 많이 올라감으로써 내부에 있는 잡균들이 다 없어지는 거라. 그래서 장질부사 잘 앓고 나면 살 찐다고 하는데, 그렇듯이 다소 열이 올라도 그렇게까지는 열이 안
오르고, 세균이 사라질 정도로 오르는 분도 있어. 그래서 더 건강해지고, 더 좋아지는 거래요.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문데, 다만 그렇게 뜨겁지 않은데, 뜨겁게 느껴질 따름이래. 실제는 그렇게 안 뜨거워. 좀 훈훈할 정도인데 그렇게 느끼는 그런 분도 있어요. 그런 느낌이 오더라도 겁을 낸다든가, 안절부절 하지 말고, 그럴수록 더 열심히 더 지극하게 그래 해나가라고 해요.



( 질문 ) 저는 앉아서 수식관을 하다 보면 배꼽 뒷부분에서 찬 기운이 척추를 타고 위로 올라오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거든요. 그 다음에 코의 윗부분이 상쾌한 정도를 좀 지나서 차가운 기운의 숨이, 박하사탕 같이 차갑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고, 배 부분이 기분 나쁠 정도는 아닌데, 서늘한 기운이 빙 돌면서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 큰스님 답변 )) 그것도 좋은 현상이래. 맑아지면 그렇게 약간 차게, 냉하게 느껴져요. 그렇더라도 거기에 대해서도 신경을 쓰지 말고, 그것이 좋은 그런 느낌이니까, 느낌 자체는 좋은 느낌이니까, 그럴수록 더 지극하게 열심히 잘 해나가요. 하다가 보면 어떤 경우는 아주 막 붕 공중에 뜨는 것 같아. 그네 타 봤죠? 막 내려갈 때, 말로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묘한 기분을 느끼는 그런 경우도 있어요. 그런 기분 같아. 어쨌든 여러 가지 뭐 묘한 기분, 말로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기분을 느끼는데, 그런 어떤 기분을 느끼더라도 절대 기분에 빠지지 말고, 그럴수록 더 지극하게 그런 마음을 담담하게 안정시켜서, 하는 그것만 더 잘하고 더 열심히 하고, 더 지극하게만 해요. 그러면 그런 상황이, 그런 환경이, 더 좋은 그런 공부로 막 빠져들어요. 그런데 한 번 느끼면 겁을 내고, 어떤 분은 화두를 하다가 호흡을 하다가 덜컥 쉬고는 얼른 나가기도 하고, 안절부절 하는 그런 분이 있는데 아주 좋은 현상이래요. 그럴 때 스승이 필요하다는 거래요.



( 질문 ) 숨을 들이 마시고, 내쉬는 기능이 코로부터 들이 마시고 내쉰다는 느낌인데, 뒤쪽에서 들이 마시고 내쉰다는 느낌인데요.



(( 큰스님 답변 )) 그것도 실제, 사실은 코로만 숨쉬는 게 아니래요. 따지고 보면, 온 몸 자체가 다 숨을 쉬고 있어요. 다만 코로 가장 많이 쉬고, 숨을 쉬는 기관이지. 몸 전체가 숨을 쉰다 할 수가 있어요. 그래서 공부가 좀 되면 오장육부에서 시원한 바람이 들락날락해요. 그래 어떤 노장이 여름에 덥다고 선풍기 가지고 오라 하니까, 아니 내 몸에 수 천개, 수 만개 선풍기가 있는데 뭐 하려고 가지고 오냐고.



( 질문 ) 개인적인 사항으로 여러 가지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좀 쉽게 결정을 내리기가 힘든 상황이 많거든요. 막연하긴 한데, 살다 보니까 혼란스러운 부분이 많아서요.



(( 큰스님 답변 )) 처사가 그 기준의 핵심을 알기는 좀 어렵겠지만, 가장 핵심은 뭐냐. 진리래요. 불교적인 진리, 그 알맹이가 가장 핵심이래요. 그 방향으로 일 처리를 해도 해야 되고, 그 방향으로 살아 가기도 해야 되고, 공부도 해야 되고, 결혼도 그 방향으로 해야 돼요. 그런데 그 방향을 알기가 좀 어렵기 때문에 실제 체험하지 못하면 어려워요. 그러나 그 방향을 모르되, 불교적인 소양으로, 즉 불교적인 소양이란 그 진리를 바탕으로 한 말씀을 체계화하고 학문화한 것이 불교적인 소양이래. 그 일상 생활에 맞는 그런 교양적인 것이 불교적인 소양이다 할 수가 있는데, 처사가 일상적인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갖춘 교양이라든지, 또 세속적인 그런 지식, 그 위에 불교적인
교양 그런 것이 바탕이 돼서 판단하는 것이 가장 적당해요. 근데 사실상 그걸 요거다 저거다 꼬집어서 이야기 하기가 좀 어렵겠지만, 그런 것을 전체적인 안목으로서 총체적으로 점검하고 따져서 그렇게 판단하는 것이 가장 현명할 거예요. 그래서 본인이 판단하기 어려우면 주변에 어떤 사람이 있거든 자문도 좀 구하시고
사람은 잘 산다고 하면서 가장 바른 길을 간다고 하면서, 오히려 그 반대 현상이 되는 그런 경우도 있고, 큰소리 땅땅 치면서도 엉뚱한 길을 가는 그런 분이 있어요.


그래서 참 잘 산다든가, 뭘 판단을 적당하게 잘 해서 원만하게 해결하기는 쉬운 일 일수도 있고, 참 어렵고 어려운 일 일수도 있어요. 아까 내가 수련화한테 이야기 하기는 했지만, 누구한테 보시하는 것, 베푸는 것, 보시 자체는 아주 좋습니다. 베푼다는 것, 남을 위하고, 남에게 도움이 되고, 남에게 이익을 준다는 것 그 자체는 아주 좋아요. 나한테는 보시하는 입장에서는 아주 좋아. 그러나 보시 받는 입장에서는 무조건 보시한다고 해서, 베푼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무조건 다 좋으냐 그건 아니래요. 그래서 예를 들어서 거지가 온다. 밥을 주되, 거지라고 무조건 밥 주는 것 보다는 밥을 안 주어서 오히려 도움이 될만한 그런 거지가 있으면 설사 몇 끼 굶은 그런 거지라도 차라리 안 주는 게 나아요. 줄 사람이 있고, 안 줄 사람이 있어요. 베풀 사람이 있고, 안 베풀 사람이 있어요. 거기까지는 알기가 조금 알기가 어렵겠지만, 안목이 있는 분은 그렇게까지 처신을 해야 돼요. 또 베풀어야 되고. 어떤
조치가 있어야 돼요. 무조건 주는 그런 정도는 아주 낮은 차원이래요.



( 질문 ) 많은 사람들이 왜 사느냐에 대해 회의를 갖기도 하고, 그냥 살아 가기도 하고, 괴로움을 느끼면서 살아갑니다. 예전에 저도 그랬고, 왜 사느냐에 대한 절박한 질문을 가슴에 앉고 살아갈 때,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살아가야 할지 말씀을 해주시면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



(( 큰스님 답변 )) 그런 분은 우선 그 나란 어떤 존재인가. 내가 누구인가, 내가 무엇인가를 알 필요성이 있어요. 내 삶도 내 인생도 결국은 나에서 출발해요. 남을 위해서 사는 것은 아니래요. 오직 내 자신을 위해서 결국은 살게 되는데, 가장 핵심적인 것이 내 자신이래. 그래서 나란 어떤 존재인가 알 필요성이 있어요. 존재가 어떤 존재면서, 어떻게 내가 살아가는 것이 바른 길인가, 바른 길이지만 내가 꼭 살아야 되는가 그렇지 않으면 안 살아도 되는가, 그런 기본적인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또 자문도 구하고. 생각하고 자문만 구해서 되느냐 그것은 고것만 가지고는 부족해요. 그 남의 이론은 결국은 남의 말이고, 남의 인생에서 오는 이야기래요. 내 자신의 것은 아니래.


내 자신의 인생을 내 나름대로 확신을 가지고, 진정한 당위성을 갖게 하려면 스스로 좀 나란 존재를 느껴봐야 돼요. 스스로 내가 어떤 것이다, 내가 무엇이냐, 내가 어떤 존재라는 것을 느껴봐야 돼요. 느껴보려면 역시 그 수행을 해보는 것이 가장 첩경이래요. 느껴보면 대번에 아 이것이로구나. 대번에 느껴요. 그러면 모든 문제가 그냥 다 풀려버려요. 그것이 느껴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뭐 복잡한 이론, 복잡한 생각들이 아주 다단할 수가 있는데, 그것만 느껴보면 아주 단순하고, 아주 여러 이야기가 필요치가 않아요. 바로 느껴요. 그러면 잘 살아야 되겠다, 열심히 살아야 되겠다, 최선을 다해야 되겠다는 것이 그냥 드러나요. 뭐 보통 그것을 느끼지 못하니까, 회의적인 생
각도 하고 이런저런 복잡한 번뇌망상도 많이 피우고, 인생의 시행착오도 흔히 있는데, 그것은 자기를 모르기 때문에, 자기를 진정으로 느껴보지 못하는 데서, 그런 어리석음이나 그런 그 못난 행동도 할 수가 있어요. 자기가 어떤 사람이냐 자기란 누구냐, 진지하게 사고하고, 체험부터 먼저 하시라. 그리고 나서 이론적인 것을 나름대로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면 그냥 해답은 바로 풀려요.



( 질문 ) 지나가다가 옷깃만 스쳐도 전생에 인연이 있다고 하는데요, 부모 자식 간에는 어떻게 해서 그 인연이 맺어지는지요?



(( 큰스님 답변 )) 흔히 불가에서 동업중생이다, 업이 같은 그런 중생들 즉 끼리끼리 모이는 걸 말하는데, 친구도 유유상종이라고, 비슷한 성격이나 환경이나 비슷한 친구끼리 모이잖아요. 그런 친구끼리 또 교제도 하는데, 부모와 자식간도 결국은 따지고 보면 전생, 전생, 수 십 생, 수 백 생 살아오면서 같은 부류에서 산 그런 인연들이래. 그런데 그 인연들이지만 특별한 인연으로 그렇게 부모가 되고, 자식이 되는데, 참 지나가다가 치맛자락만 스쳐도 보통 인연이 아니다 하는데 그럴 정도로 인연이 아주 소중하다는 거래요. 그 인연으로써 내가 태어나고, 만나고, 또 일생을 보내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보통 부모와 자식 간은 한 3백 생의 인연을 맺어야 드디어 부모와 자식이 된다는 거래요. 3백 생. 보통 인연이 아니래. 그냥 치맛자락만 스쳐도 보통 인연이 아닌데, 3백 생을 3백 번 죽었다 태어났다, 죽었다 태어났다, 3백 생을 인연을 맺는 거래요. 한 생만 해도 무한한 여러 인연들이 얽히고 설키는데, 3백 생이면 얼마나 대단한 인연이래요. 그러니까 인연의 소중함을 늘 생각해서, 부모가 조금 부모 노릇을 못한다든가, 좀 싫다든가 살다가 보면 괴로울 수도 있잖아요. 그렇더라도 또 자식이 맘에 안 들더라도, 자식에 대한 온갖 잡생각이 들더라도 담담하게 인연을 수용해 가면서 좀 싫더라도 부처님처럼 우리 부처님 하듯이 부처님처럼 모시고, 가깝게 대해드리고, 위해 드리려고 애를 써요. 자식도 아무리 문제아고, 뭐 참 공부도 안 하고 그 막나니 같은, 내놓은 놈 같더라도 부처님처럼 생각해요, 부처님처럼. 그러면서 어쨌든 내가 할 수 있는 선을 다하듯이 잘 해주고, 잘 해주되, 내가 해주었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절대 반대 급부를 바라지 말아요. 내가 해주고, 베풀고, 희생하고 봉사한 그걸로 끝을 내지 더 이상 바라거나 요구하는 그런 마음 없이 담담하게 그래 늘 좋은 생각으로 살면 그 사람이 훗날 복 많은 사람, 팔자 좋은 사람이 될 거예요.



( 질문 ) 꼭 부모님 관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지만, 부모님이 원하시는 바를 충족시켜 드리다 보면, 제가 원하는 삶하고 틀려지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사이에서 고민을 하는데, 어떻게 선택을 해야 할까요?



(( 큰스님 답변 )) 그런 것을 어느 정도 해주느냐, 그 방향이나 정도는 수행에서 느낌을 가지고 그걸 판단하라는 거래요. 수행이 아주 일천하거든, 불교적인 소양으로 고것을 잣대로 삼으라는 거래요. 예를 들면, 구더기가 변소 안에 있잖아요. 그 구더기 부자는 어던 것이 구더기 부자겠어요. 변을 많이 모은 놈이 구더기 부자라. 변은 보통 어떤 동물이나 사람이 생각할 때는 없을 수록 좋은데, 구더기는 많이 모은 놈이 부자라. 즉 구더기는 그만큼 어리석은 거라. 물론 자기 먹을 것이기는 하지만. 즉 그런 판단을 제대로 하라는 거래요.



( 질문 ) 질문 하나 더 드리겠습니다. 염불 수행 하다 보면, 생각들이 고개를 드는데, 어떤 때는 갑자기 평상시에 생각을 많이 했던 것들, 고민 했던 것들이 퍼즐이 맞춰지듯이 차분히 정리가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게 망상인 것인지 마음 자체가 정리가 된 것인지요?



(( 큰스님 답변 )) 그거는 처사의 그런 상황, 그런 단계를 내가 그런 정도 가지고는 이해하기가 조금 어려운데, 그러나 수행이 좀 되면, 되는 것만큼 이익이 되고, 바로 이익이 있다는 것은 판단이 빠르고, 판단 자체가 바르게 판단이 되고, 사고 자체가 바르게 되요. 그래서 평시에 생각 못 했던 것도 문득 생각이 들고, 이내 착 일도양단하듯이 해결이 되기도 하고, 그런 방향으로 일 처리를 해요. 그것은 수행의 결과고, 수행에서 얻는 이익인데 그렇게 하는 것은 당연하고, 잘 해가는 좋은 현상이지. 그래서 수행이 좀 깊어지면 평시에는 늘 자기 자신이 좀 꾀죄죄하고 좀 못나고 어리석은 그런 존재로 스스로 좀 비하했던 그런 사람도 어느 날 문득 남들하고 이레 비교를 해보니까 자기가 상당하거든. 나도 대단하구나. 아 이 정도면 됐지, 그럴 때가 있어요. 주변 사람들하고 뿐만 아니라, 훤칠하다는 분들, 좀 유명세를 날리고 대단하단 그런 분들하고 비유를 해 봐도 훨씬 나은 기라. 아 나도 이 정도구나. 그제서야 수행의 공덕을 스스로 느끼기가 쉬운 그런 단계가 오는데. 수행할 때는 사실 잘 몰라. 크게 느끼질 못하고. 늘 안 되는 것 같고, 안 돼서 찜찜하고, 이렇게 해서 될 거냐 별 생각을 다 하지만, 사실은 안 되는 것이 아니고, 상당히 크고, 잘 되고 있는데도 느끼질 못할 따름이래요. 그런 경우가 많아요. 어쨌든 수행은 내면적인 그런 닦음이니까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그런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 수행은 하루 아침에 부처가 된다 하는데, 하루 아침에 부처가 되기는 어려워요. 그러나 하루가 아침에 부처가 되듯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문득 어느 날 참 부처가 되는 그런 경우도 있어요.



( 질문 ) 아침에 상쾌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되는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말을 하다 보면, 그런 마음들이 흐트러지고, 말을 하고 나서 내가 가지고 있던 그런 정신을 실제 잃게 되고, 그렇다고 말을 안 할 수도 없고. 불자로서 향기로운 말을 해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그렇게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내가 흐트러지는 것을 자주 느낄 때 뭔가 잘 못 된 것인지 정상인지요. 그리고 또 한가지는 나쁜 마음으로 하는 것은 아닌데 상대방에게 없는 말을 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안 좋은 의도로 한 것은 아니고, 자신을 위해 변명을 하는 말 같기도 한데, 향 싸는 종이에서는 향냄새가 나고, 생선 싸는 종이에서는 생선 냄새가 난다고 하거든요. 이것이 내 스스로 위안하고 있는
것인데, 나쁜 길로 가고 있는 것인지요?



(( 큰스님 답변 )) 사람은 어떤 분위기에 따라서 순간순간 마음이 좀 변할 수도 있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기의 마음도 변하고, 분수도 잃을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말은 가급적이면 조금 적게 해요. 사실은 침묵이 금이라. 말을 하되, 할 말만 하고, 쓸 말만 하고, 필요한 말만 하되, 웬만하거든 말은 삼가고 좀 아끼면서 그래 사시오. 말을 많이 하다가 보면, 자기도 모르게 말에 정신의 혼란이 와요. 그래서 분수도 모르고 자기하고 거리감 있는 그런 말을 지껄이다 보면 자기도 스스로 괴롭기도 하고, 나중에 후회스럽기도 한데, 자기 억제를 좀 잘 하고, 말을 하더라도 또박또박하게 아주 할 말만 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은 그래 하기는 좀 어렵거든요. 그래서 좀 자기를 억제하
고 다스리기가 조금 어려운 그런 분일수록 말을 어쨌든 적게 하고 꼭 필요한 말, 쓸 말만 하시고요. 그래서 말은 늘 스스로 생각해도 좀 부족하지 않은, 괴롭지 않은 그런 정도로 하려고 애를 쓰시고. 또 뭘 물으셨지?



( 질문 )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선의인데 없는 말, 거짓말을 하게 되는데, 스스로는 좋은 마음으로 했기 때문에 괜찮다고 위안하는데, 다르게 생각하면 생선 싸는 종이에서는 생선 냄새가 난다고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아예 거짓말을 안 할 수도 없고요



(( 큰스님 답변 )) 거짓말을 아주 안 하고 살면 제일 좋은데, 아주 안 할 수는 없긴 없는데.근데 웬만하면 안 하고 사는 그런 습을 들여요. 조금 사는 데 어려움이 있고, 또 괴로움이 있고, 어떻게 하다 보면 좀 부드럽지 못한 그런 경우도 있긴 있는데, 어쨌든 거짓말은 안 하는 게 좋아요. 설사 상대에게 도움이 될지언정. 이야기 하다 보면 도움이 되는 그런 경우가 있어서 일부러 상대를 위해서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기도 모르게 본의 아닌 거짓말을 하는 그런 경우도 있는데, 그런 도움도 사실 따지고 보면 별로 도움이 안되. 결국은 내입만 더럽혀진 그런 결과가 되기 쉽거든요. 그래서 웬만하면 흰 것은 분명히 희다고 하고, 검은 것은 검다고 하듯이 실제 실다운 말을 할 것이지 거짓스러운 말, 허황된 말, 미사여구를 쓰는 즉 번지르르하게 듣기 좋게, 화사한 그런 이야기는 가급적이면 안 하는 게 좋아요. 사회가 그런 것을 요구하고 그런 분위기이긴 하지만 예를 들어서 물건을 하나 파는데 거짓말을 해서 좀 많이 받는다고 해도 거짓말을 해서 파는 물건은 술값이라든지 필요 없이 쓰게 되요. 대부분 그렇게 나가요. 따지고 보면 결국은 통장에 들어가는 돈이 안 되기가 쉬워요. 그렇게 들어오는 돈은, 즉 거짓으로 어떤 이익을 얻는다든가 수익을 봐도 결국은 내 것이 되기가 어렵다는 거래요. 따지고 보면 좀 유익한 것 같아도 결과적으로는 불이익이 많다는 거래요. 어쨌든 살아가다 보면 그런 문제에 봉착해서 이럴까 저럴까 하다가 결국은 사회적
인 분위기나, 어떤 분위기에 휩쓸리기 마련인데, 그럴 때도 좀 제정신 바짝 차려서 바르게 그래 살면 훗날 후회스럽지 않아요.



( 질문 ) 속세에서는 기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살다 보면 기가 막히다, 기가 질린다 어떤 사람은 기가 세고, 어떤 사람은 약하다. 또는 대가 세다 그런 말을 하는데, 기가 약한 사람이 기가 센 사람하고 있으면 정말 기를 뺏기는지, 아니면 기가 센 집이 있으면, 기가 약한 사람이 그 집에 가면 나쁘게 되는지요? 또 기는 수련 여하에 따라 강해 질 수 있는지요?



(( 큰스님 답변 )) 그것은, 강해 질 수도 있고, 아주 대단해 질 수도 있는 것이 기입니다. 그래서 기는 어떻게 수련하느냐에 따라서 상당히 좋아질 수도 있고 안 좋아 질 수도 있는데, 기는 수련을 통해 좋게 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그 기를 참으로 다스릴 수 있는 원천적인 마음가짐 그 자체가 중요해, 마음이. 마음만 올곧고 대단하고 지극하면 설사 기가 좀 약한 분도 어디 가도 떳떳하고 당당해서 큰소리 치면서 살 수가 있는가 하면, 그것이 약하면 기가 조금 살아 있다고 하더라도 어깨가 축 늘어지는 사람처럼 맥아리 없는 그런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어떤 마음을 갖느냐 그것이 중요하고, 기 자체도 수련하면 상당히 융통성이 있습니다. 좋아질 수도 있고, 나빠질 수도 있고. 근데 보통 사람은 기가 강한 사람 옆에 가면, 즉 친구 중에서도 기가 센 사람 옆에 기가 약한 그런 친구들은 똘마니 비슷하게 졸졸 따라다니면서 심부름이나 하고 그런 경우도 있는데. 역시 그 똘마니형이, 즉 마음 가짐이 약하기 때문이래. 그걸 뭐 기라고 할 수도 있는데, 기하고 근본 마음은 달라요. 마음 자체는 강하면 기를 억제할 수 있는데 보통 사람은 그것이 억제가 잘 안 되는 그런 경우도 있어요. 그것이 억제가 잘 안 되고, 컨트롤만 좀 안 되면 살아 가는데, 좀 어렵고 괴롭고 뭐가 잘 안 될 수도 있는데, 어쨌든 수련을 해야 돼요.


예를 들어 부부간에 어느 한 분이 즉 남편이 너무 기가 센데, 여자 분이 너무 약하면 그 집안 안돼. 그러면 남자분이 자기 기를 아주 낮춰서 여자하고 맞추려고 애를 써야 되. 여자는 좀 약하지만 강해지려고 애를 써서 비슷한 좀 밸런스가 맞도록 고래 해야 살아가는 데 좀 무난하고, 일생을 백년해로 할 수가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못 살아요. 도망을 가도 가야지. 이웃집에도 그런 분이 있으면, 이웃 사촌처럼 그래 살려면, 강한 사람이 좀 참고 억제를 많이 해야 돼요. 근데 보통 강한 사람이 참고 억제하는 분은 백 분 중에도 한 두 명 있을까 말까 해요. 그래서 기가 너무 세도 화합이 안 되고, 이웃 사촌이라는 말 듣기 어려울 정도로 기가 약한 분이 보면, 너무 약하기 때문에 말은 못하지만 속은 늘 부글부글 끓는 거래요, 요놈 하면서. 그러면 결국 자기를 못 다스려서 건강도 안 좋아지고 생활 자체를 원만하게 하기가 어려워요. 그런 경우는 이사를 가면 좋지. 근데 이사 안 가고도 자기를 잘 다스리려고 노력하고 애를 쓰면 나름대로 무난한데 그렇게 되기는 보통은 어렵지. 어쨌든 기가 센 분 입장에서 양보하고 자기를 늘 낮추고, 상대를 좀 치켜주면서, 맞추어 살려고 노력하면 그 강한 기가 좋은 덕이 될 수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으면 혼자 독불장군이 패가망신하듯이 될 수도 있어요. 그런 것을 잘 다스려 가는 것이 지혜래요. 그래서 어떤 분 보면 너무 강해서 결국은 제멋대로 자칭 도인, 자칭 대통령질 하다가 그냥 쓰러지는 분 있지.



( 질문 ) 아까 인연의 소중함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인연이라면 가까이 해야 될 인연이 있고, 멀리 해야 될 인연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게 좀 혼돈이 되거든요. 예를 들면 오랫동안 사귀었던 친구가 있었는데, 한쪽은 그 친구에게 모든 것을 다 주면서 관계를 유지했는데, 다른 한쪽에서 그 관계를 이용을 했을 때, 그 인연을 끊는게…



(( 큰스님 답변 )) 사시다가 보면 그런 경우가 있는데, 인연을 끊지는 말고 그냥 무심해버려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친구도 떠나요. 무심해버리면, 즉 너 나하고 만나지 말자, 널 상대 안 하련다, 그러면 또 오해를 사요. 그러면 또 그런 이야기를 하는 본인이 더 괴롭고요. 그냥 내가 상대하기 껄끄럽다, 상대해서는 안 되겠다 그런 분은 말만 하지 말아요. 좀 무덤덤하게, 그냥 뭐 상대만 하지 말고, 말만 하지 말아. 말만 안 해도 자연적으로 끊어져 버려. 친구 사이래도 만나도 말도 안 하고 본체만체 하면, 친한 친구도 한 두 번 그러면 세 번 째는 안 만나요. 전화 안 합니다. 그러면 자연적으로 끊어져 버려요. 일부러 끊으려고, 억지로 끊으려고 하면 문제가 될 수가 있어요. 처사 같은 분은 성격이 좋은 분이라 혼자 더 끙끙 앓을 거래요. 그냥 말만 하지 말고, 저 쪽에서 인사 하거든 인사나 받고, 그냥 말 없이 인사나 묵묵히 하는 그런 정도가 되면, 저절로 정리가 되어 버려. 지혜가 있는 사람은 자기도 알아 차리고요.



( 질문 ) 그럼 별로 안 만나고 싶은 사람은 무심하면 되는데, 그렇게 안 만나고 싶은 것이 아닌데, 가깝게 지내는 사이에서도 성격이 무심하다는 말을 듣거나, 말이 너무 없다 그런 얘기를 듣는데, 그런 건 고쳐야 되는 거죠?



(( 큰스님 답변 )) 그런 거는 조금 고치는 게 좋지. 그런데 관심을 갖더라도, 너무 많은 관심을 가지고 필요 없이 관심을 갖는 것은 안 좋고, 그것도 좀 적당하게 조절을 할 필요가 있어요. 적당이란 말이 아주 좋은 말이면서, 여러 가지가 함축된 그런 말인데, 인간 관계나 살아가는데 아주 적당히 지혜롭게 사는 것이 아주 중요한데, 너무 자신을 신경을 쓰고, 그런데 대해서 너무 자상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 좋기도 하지만 또 너무 하면 안 좋거든. 사람은 약간 넘치는 것보단 조금 부족한 게 좋아. 넘치는 것 보단, 무뚝뚝한 것도 너무 말 많이 하고, 떠들어 대고 하는 것 보다는, 약간 모자란듯한 약간 부족한 것이 더 좋을 거래요. 적당히 지혜롭게 다스려 가는 것이, 내 인생을 좀 따지고 보면 가장 알차게 하고, 훗날 보람 있게 하고 잘 살아가는 그런 방법이래. 보살은 잘 살 것 같아.



( 질문 ) 사람이 살다 보면 인간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 생기고, 하늘만 쳐다볼 때가 있는데요. 예를 들어 생명을 놓고,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상태에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을 일이 생기면 그럴 땐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나요.



(( 큰스님 답변 )) 그럴 땐 기도를 해. 수행을 해. 기도로 수행을 하면서,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 즉 처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고, 지극하게 기도를 하면서, 천명을 기다리듯이 기다려요. 뭐 되면 다행이고, 안 되면 그만이고. 아주 불가항력적이라든지, 전혀 불가능할 것 같은 그런 것도 일단 내가 설사 손해가 좀 가더라도 해 봐야 되고, 하되 최선을 다해 보는 거예요. 그러고도 안 되면 그건 뭐 어쩔 수 없고. 보통 사람은 그러기가 좀 어렵고, 안 될 것 같으면 아예 근처도 안 가듯이 포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뭐 그런 경우가 있고, 해야 될 경우가 있는데, 어쨌든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다 해보고, 천명을 기다리듯이 기다리면서 지극하게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마음이란 뭐냐 간절하고 성심 성의껏 하는 것을 말해. 그런 마음으로 살아 가면 무난할 거예요.


늘 지혜롭게 사시려고 애를 써요. 지혜롭게. 일도 지혜롭게 하고, 친구하고 사귀는 것도 지혜롭게 사귀고, 가정 살림도 지혜롭게 하고요. 즉 지혜롭게란 내 분수에 맞게, 이치에 맞게 아주 적당하게 알맞게 하는 걸 말하잖아요. 그래서 내가 하는 일은 무슨 일이든지 하나의 작품이 되야 되요, 작품이. 설사 소제를 하는 것도 그렇고, 휴지 하나 버리는 것도 그래요. 그냥 뭐 코 풀고 아무데나 버리듯이 그렇게 휴지를 버려서는 안 되요. 휴지 버리는 것도 따지고 보면 내 인생의 극히 일부분이래. 그것도 그냥 마구 버리듯이 그렇게 버리는 것은 결국은 휴지 하나 버리는 것만 봐도 그 사람을 알 수가 있다고 하듯이, 그 분의 정도가 그분의 인간 자체가 드러나요. 아주 사소하고 아
주 대수롭지 않은 것 같지만 거기에서 인품이 드러나요. 인격이 노출되고요.


그래서 매사 지혜롭게 살려고 하고, 신경을 그렇게 휴지 하나 버리는데도 신경을 써서 버리기는 어렵지만 그냥 자연스럽게 버리더라도 갖추어져야 되요. 그래 집에서 아이들한테 내 아이고 내 새끼니까 뭐 마음대로 애한테 이야기 하고, 애한테 집에서 온갖 못난 모습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지만, 내 아이지만, 내 새끼지만, 내가 만든 놈이지만 깍듯하게 예의나 범절을 갖춰야 되요. 꼭 뭐 예의 범절을 갖추려고 해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갖춰지는 그런 정도가 되야 돼요. 부부간도 물론이고요. 부부간도 예의가 있고 범절이 있습니다. 지킬 것은 지키고, 갖출 것은 갖춰야 되요.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그렇듯이 어쨌든 늘 지혜롭게 삶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 되듯이 그래 살아가면 좋을 거래요. 그래 살아야 됩니다. 안 그러면 후회스러워요. 그 저 막가파가 있데, 막가파. 막 가는 사람처럼 절대 그래는 안 살아야 되요. 내일 이 땅덩어리가 어떻게 된다고 하더라도 절대 그런 짓은 안 해야 되고, 그런 모습은 안 보여야 되고. 설사 내가 이익이 있더라도 남에게 해를 준다든가 문제가 될만한 일은 안 해야 돼.


어쨌든 수행 자체가 여러분 삶에, 누누이 이야기 하지만 삶에 바로 직결이 되도록 해요, 삶에. 수행 다르고, 삶이 다르면 그건 진정한 수행자가 아니래요. 바로 결합이 돼야 돼요. 결부가 돼야 돼고. 그래서 여러분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까지도 그대로 표가 나야 돼. 일요일마다 절에 온다는 분들이 집에 가면 아주 우습게 사는 기라. 막살고. 그러면 절에 온 보람이 없잖아요. 그렇듯이 어쨌든 그 수행이, 화두 한 번 한 번이, 호흡 한 번 한번이 바로 삶 자체에 직결이 되도록 하세요. 그래서 위를 보고 걸어요. 큰 마음 대승적인 그런 마음을 늘 가지고요. 설사 조금 어렵더라도 좀 힘들더라도 원칙을 중시하고, 바르고 지극하게 사는 그런 기본적인 틀을 꼭 갖추시고요.



( 질문 ) 수행하시는 분들 중에 요새 화두도 많이 하시지만, 다른 수행도 많이 하는 분들이 있는데 관법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그 분들 하는 얘기는 화두를 해서 마음을 관하는 시간하고, 관법을 해서 마음을 관하는 시간하고 많이 차이가 난다고 하거든요.



(( 큰스님 답변 )) 요새 여러 가지 수련 법들이 많이 있는데, 불교적인 수련 법에서 다 분가해 나간 것들이래. 파생된 것들이래. 원류는 화두 참선이래. 근데 화두 참선이 최상이다 최상승법이다 보통 그래 이야기 하거든. 그 말은 무슨 말이냐 관해지기 시작하면 아주 힘차게 관해지는 기라. 관 자체가 아주 열렬하게 크게 제대로 잘 되는 기라. 그게 첫째고. 둘째는 마지막 관문 즉 부처님까지 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거래요. 그래서 흔히 최상승법이다 하는데, 근데 화두 참구는 흔히 어렵다 어렵다고 하는데, 화두 할만한 정도가 못 되는 분, 화두 할 그런 자질이 없는 분이 하기 때문에 그렇지 그것만 충분히 갖추면 또 의외로 쉬운 게 화두라. 관법은 호흡법 같은 것도
바로 느껴지고, 좀 쉽게 와 닿는 것 같아. 출발은 아주 쉬운 것 같지만, 깊게는 못 들어가. 그걸 아셔야 돼. 아주 깊게 들어가기는 어려워. 그냥 기분이 조금 좋고, 조금 느껴지는 그런 정도는 쉽게 오는 분이 많아요. 화두도 그래 의외로 쉽게 오는 분이 있고요. 그러나 화두보다 보통 그 느낌은 빠르다는 거래요. 사실 빠를 수가 있어요. 그러나 깊게 되고, 참으로 진지하게 되고, 정말 수행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것은 화두를 어느 것도 못 따라요. 요새 뭐 여러 가지 마음 수련원에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는데, 그런 것은 화두에 비하면 아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초보단계고, 깊게 못 들어가고, 수행법으로서 온전한 그런 방법이 아니다 그래 보시면 되요. 어쨌든 절에 오시는 분은 화두 하면 틀림이 없어. 관법이 조금 돼서 화두를 하든지, 결과적으로 화두 하면 그건 뭐 가장 바른 길이고, 똑부러지는 그런 방법이야
어쨌든 그 수행과 생활 그리고 또 살아가는 자세가 둘이 돼서는 안 된다. 바로 접목이 되고, 하나가 되야 된다 그런 생각을 하시면서, 수행이 좀 잘 돼서 바로 느껴지고, 바로 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직장이나 실생활에서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런 수행이 되도록 늘 노력하고 애를 써요. 오늘 ***씨 집안의 제거든. 일찍 가실 분들은 참석을 못 하겠지만, 웬만하면 그래 참석도 좀 해서 나중에
떡도 좀 얻어 자시고, 그래 가요. 그게 도반이요.


[이 게시물은 가람지기님에 의해 2017-03-02 09:15:51 금주의 법문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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