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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호및지난호

봄쑥처럼 예쁘고 향기로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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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05-12-28 20:27 조회3,36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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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하루 법회 전날, 수덕화 김인화 보살님(48)은 전화기 앞에 앉아 어딘가에 줄곧 전화를 한다. 가만 들어보면 촛대며 향로 등 불기(佛器) 닦는 봉사팀 빠짐없이 챙기는 전화다. “보살님, 내일 불기 닦는 봉사일인 거 아시죠? 나오실 수 있어요? 아이구 그럼요, 꼭 나오셔야 해요.”


마치 소풍 가기 전날 밤 어린아이처럼 목소리가 생기 넘치고 즐겁다. 불기 닦으러 가는 일이 그렇게 설렌다는 그녀. 매일 가게를 보다가 한 달에 두 차례 나들이 가듯 달려가는 부처님 품속 같은 축서사. 가게문을 닫아놓고라도 빠짐없이 가는 자원봉사 순례길이다. 이렇게 열성인 그녀를 두고 사람들은 ‘진짜 보살’이라고 한다. ‘지극정성’이라고 한다. 이런 그녀는 관세음보살님처럼 포근하고 후덕해 보이는 인상이다.


그녀와 단짝 도반처럼 어울려 다니는 심일화 전화자 보살님(50). 보라색 칡꽃처럼 우아한 기품이 있는 보살님이다. 시집을 가보니 남편이 그렇게 독실한 불교신자더란다. 생전 절이라곤 가본 일 없는 그녀에게 남편은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집에 시집 왔으면 무조건 절에 가야 해요.”


아침 출근 전에는 꼭 목탁 치고 예불을 모시는 남자, 월급 타면 만 원짜리 새돈 척척 불전 앞에 내놓는 남자, 자루에 몇 되씩 공양미 올리는 이 남자가 새댁은 가슴이 철렁철렁 내려앉도록 놀랍고 불안하기만 했다. 그런데 남편 따라 어쩔 수 없이 다니게 된 절이 이렇게 편안한 마음의 고향이 될 줄은 몰랐다. 지금은 불교대학 1기 회장을 맡은 이래 내 일처럼 열심인 남편이 믿음직하기만 하다.


기껏해야 몇 살 차이에 불과하건만 “젊은 사람들과 한 달에 두 번씩 함께 봉사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하는 자운화 백태숙 보살님(54). 신행 경력이 20년이나 된 연륜 깊은 불자이다. 불기 닦는 날이라고 절에 올라오면 사람들이 다들 반겨주고 챙겨주는데 그것이 그렇게 고맙다고 한다. 물론 제일 좋은 것은 바로 큰스님을 뵙는 것. 덕 높으신 큰스님을 가까이서 뵙는 것만으로도 불기 닦는 날이 두 배는 더 행복하다.


자운화 보살님이 ‘막둥이’라고 불렀던 법련성 한선희 보살님(48). 사실 진짜 막둥이는 딸내미를 만나러 호주에 가 있는 월정인 김미화 보살님(42)이다. 불교대학 4기 총무이기도 한 월정인 보살님은 얼마나 ‘짬지게’ 사는지 보는 사람마다 칭찬을 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 월정인 보살님이 잠시 없는 틈에 자운화 보살님이 ‘귀여운 막둥이’ 노릇을 했다.


시원하고 싹싹한 성품의 이 막둥이 보살님은 아직 초발심자라고 내내 부끄러워했다. 수덕화 보살님이 가자고 이끌어서 불기 봉사팀에 참여했을 뿐 자기는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단다. 그러나 겸손의 말일 뿐이라고 다른 세 보살님이 얼른 합창을 한다. 초발심 신자가 봉사까지 마음내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한 신근(信根)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좋은 봉사 인연이 맺어진 것일 게다.


큰스님께서 어느 날 말씀하셨단다. 불기 닦으면 미스코리아 된다고. 그렇게 말씀하시며 그 자비로운 얼굴로 환히 웃으셨겠지. 미스코리아는 그만두고 그 자비안(慈悲眼)을 반만이라도 닮을 순 없을까. 그래서 불기를 닦는 손에 자꾸만 정성이 더 깃들고, 금빛 불기는 반짝반짝 빛난다.


해마다 여름이면 축서사에 올라와 여름 한 철 농사를 지어주는 본심화 보살님(76)을 포함해서 불기 봉사팀 모두는 불기 닦는 일을 수행의 하나로 생각한다.


수덕화 보살님은 철야참선정진에 동참하고 싶은데 여의치 않으니 그 대신이라고 생각하고 불기 닦는 일을 기도삼아 한다. 그 시간만큼은 폭 빠져서 일념으로 삼매에 드는 기분이다. 자운화 보살님은 불기를 닦으면 잡념이 없어진단다. 열심히 수행하는 바깥 거사님을 둔 덕분인지 심일화 보살님의 한 마디는 어느 수행자 못지않게 당차다.


“불기 닦는 것이 곧 수행이지요. 마음을 불기처럼 그렇게 깨끗이 닦고 싶어요. 언젠가는 내 얼굴이 말갛게 비치는 불기처럼 마음도 그렇게 맑았으면 좋겠어요.”


보살님들은 기도도 열심히 하신다. 초발심자라는 막둥이 법련성 보살님은 천수경을 외우느라 애쓰고 있는 중이다. 잘 안 외워진다고 웃는다. 카셋트 테이프 틀어놓고 따라서 외우면 더 잘 외워질 것이라고 좀 거들어 본다.


자운화 보살님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시간을 정해놓고 염불을 한다. 재가불자가 시간 정해놓고 기도하는 것은 웬만한 신심으론 어렵다. 그녀는 새벽 4시나 5시면 염주 천 번을 돌리며 관세음보살님을 염한다. 잠들기 전에는 염주 삼천 번을 돌린다. 염주알을 돌릴 때마다 깃드는 정성심이 뽀얀 우윳빛 진주알처럼 영글어가리라.


심일화 보살님과 수덕화 보살님은 틈날 때마다 염불을 한다. 염불을 하면 몸도 가볍고 마음이 참 평화롭고 좋다고 한다. 심일화 보살님은 원래 몸이 약했었는데 많이 건강해졌고, 언제나 집안이 화목해서 부처님 가피로 여겨 감사하며 산다. 수덕화 보살님은 가게에 불이 날 뻔한 것을 부처님 가피 덕분에 면했다. 꿈에 걱정스러워하시는 큰스님을 뵈온 다음날, 외출하기 위해 가게 문을 나서다가 왠지 이상하여 다시 한 번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난로가 새빨갛게 달아 있더라고 했다.


자기 삶이 넘치도록 풍요롭지 않아도 나누고 베풀 줄 아는 사람들. 절집에 와서 기꺼이 팔 걷어붙이고 설거지를 거들고 불기를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아놓을 줄 아는 사람들. 그러면서도 신기하게도 몇 시간씩 불기를 닦아도 팔도 안 아프고 몸도 안 힘들다고 그저 부처님 은혜가 고맙다고 말하는 순진한 사람들. 덕 높으신 큰스님 뵙는 것이 그렇게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말하다가 잠시 목이 메이는 듯 더 말을 잇지 못하는 사람들. 장성한 아이들을 두서넛씩 둔 보살님들이 여린 봄쑥처럼 예쁘고 향기롭다. 연둣빛 새싹같은 그 마음이 바로 불심(佛心)이라는 것 아닐까 싶다.


보살님들과 만남을 마무리하고 절에 돌아와 잠시 있으니 전화벨이 울린다. 수덕화 보살님이다.


“아까 제가 빠뜨린 게 있어서요. 늘 도와주시는 행자님들하고 자주 차 태워 주시는 원주 스님께 고맙다는 말씀을 못 드렸어요.”


그러고 보니 보살님들은 불기 봉사팀을 도와주신 분들이 너무 많다고 몇 번씩 얘기했었다. 72세가 되신 어느 보살님은 큼지막한 앞치마를 만들어 보내주셨고, 서울의 어느 보살님은 4~5년 전부터 불기 닦는 약을 보내주고 계신다. 인터뷰 자리엔 함께 못한 본심화 보살님은 손자 손녀 돌보다가도 불기 닦는다면 얼른 달려오시는 분이다.


불기 봉사팀을 만나고 나서 이틀이 다 지나도록 내내 마음이 푸근했다. 예불시간, 부처님 앞에 엎드려 절을 할 때면 봄쑥처럼 예쁘기만 하던 보살님들 생각이 나서 자꾸 축원해 드리고 싶었다. 우리들의 자성(自性)은 빛나는 광명(光明)이라고 한다. 촛불빛을 받아 은은한 금빛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불기들이 아름답다. 보살님들의 밝은 마음이 빛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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