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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호및지난호

초보 발심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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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축서사 작성일09-11-15 13:23 조회2,9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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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발심수행

 

 

강경구_동의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10월의 늦은 가을이다. 버석대는 가을 풀 사이로 시든 국화가 바람에 흔들린다. 생각해보면 젊은 시절의 삶은 이렇게 시들하게 흔들리는 것이었다. 현실 생활은 쳇바퀴처럼 무료한 반복이었고, 꿈은 실망의 씨앗이었고, 이상은 뻔한 결말일 뿐이었다. 사랑? 우정? 애국? 봉사? 거기에는 비겁과 위선, 치기와 우월감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음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치명적인 자포자기와 자기학대까지……. 그저 절망이었다. 이렇게 회고하다 보니 내 젊은 시절의 절망을 풀어준 묘약이 바로 불교수행이었다고 말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느낀다. 그런데 정말 그랬던 것일까?

어린 시절부터 대학원을 졸업하고 교수가 되기 직전까지, 나는 매년최소 몇 달씩 절에서 지낸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그러니까 내 정서의 절반쯤은 불교에 기대고 있지 않았을까? 초등학교를 막 졸업한 학동으로 산중의 작은 암자에서『명심보감』,『고문진보』,『초발심자경문』과같은 책들을 배우며 겪었던 일들이 또렷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지금 생각해도 그 기억은 샘물처럼 시원하고, 저녁 연기처럼 포근하고, 봄바람처럼 훈훈하다.

결국 나는 학창시절의 모든 방학을 절에서 보낸 셈이다. 절에 들어갈 때마다 밖에서 겪던 고민과 갈등이 눈녹듯 사라지는 것이 좋았다. 그렇지만 사회와 절을 반복적으로 오가는 이러한 생활양상이 좋았던 것만은 아니었다. 이후 나에게 사회적 삶이 여의치 않을 때 절로 도피하고, 절의 변화없는 한적함이 지겨워지면 거기에서 다시 나와 사회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버릇이 생겼기 때문이다.

실체없는 무지개를 잡으려 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삶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한 곳에서 한 곳으로 도망가기를 반복하는 삶이 건강할 리는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젊은 시절은 그저 습관적 절망일 뿐이었다고 말했던 것이다.

선친께서는 생전에 사주를 잘 보셨는데 내가 대기만성의 팔자를 타고났다는 말씀을 하시곤 했다. 그 말씀과는 정반대로 나는 젊지 않은 나이로 접어들면서 점점 사회적 성취에 조급해하지 않는 태평함을 갖게 되었다. 이 때쯤일 것이다. 생활이 단순해지고, 마음 속에 빈 공간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그 빈 공간으로『노자』도 들어오고,『논어』도 들어오고,『금강경』도 들어왔다. 그리고『금강경』을 읽으면서 절망일 뿐이고, 절망일 뿐이던 젊은 시절의 삶이 따뜻하게 이해되기 시작했다. 우리의 삶과 세계의 본질이 생성과 소멸의 운동과 작용일 뿐이라면, 무엇을 희망하고 동경할 것인가? 그런 의미에서 무엇인가 절대적 가치를 설정하고 희망을 세우는 일은 결국 절망을 세우는 일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불교서적을 읽는 일이 최고의 즐거움이 되었다. 그 때 읽었던 서적의 양만 해도 박사논문 쓰던 때의 몇 배는 넘을 것이다. 주제넘은 생각이기는 하였지만 당시 나는 스스로에게 경전을 보는 눈, 즉 경안(經眼)이 열렸다고 믿었다. 보는 대로 이해되고, 보는 대로 설명이 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자신감과 환희심을 가지고 참선 공부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참선은 경전공부와 달랐다. 환히 알듯 하다가도 다시 살펴보면

30그저 모두 오해이고 착각이었다. 그것은 하늘높이 날아올랐다가 땅으로 꺼지기를 반복하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느낌과 비슷했다. 어느 날은 자신만만하게 시작했다가 참담한 마음으로 끝나고, 어느 날은 맥없이 시작했다가 세상을 다 가진 듯한 충만함으로 하루를 마쳤다. 어느 날은 묵은 체증이 풀리듯 시원하고 상쾌하였다가, 다시 어느 날은 가슴이 꽉 막히고 아파서 숨을 쉴 수 없었다. 어느 순간에는 유리처럼 맑고 청명하던 머리가 어느 때에는 무겁고, 어둡고, 후끈거렸다.

무엇을 열심히 하는 천성이 아니라서 이 답답한 상황을 겪으면서도 누구에게 질문을 해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대신 옛 조사님들의 어록이나, 훌륭한 스님들의 법문을 자주 읽고, 종종 듣게 되었다. 혹은 크게 믿는 마음(大信心), 크게 분발하는 마음(大憤心), 크게 의심하는 마음(大疑心)을 참선의 요체로 강조하고, 혹은 성성적적을 설하고, 혹은 오매일여를 전달하고, 혹은 돈오를 주장하고, 혹은 점수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혹은 중도로의 귀결을 거듭 밝히는 설법들이었다. 이해가 되고, 고개가 끄덕여지고, 또 분발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훌륭한 법문들이었지만 막상 실참에 들어가면 까마득하였다. 참선이 무엇이고, 활구선이 무엇이고, 깨달음의 길이 어떤 것인지 설명을 할 수는 있겠다. 조사들의 법거량이 어디가 통쾌하고 어디가 불만인지 말로 하라면 천언만어라도 하겠다.

그렇지만 실참에 들어가면 여전히 꽉 막히고, 막힐 뿐이다. 나는 이렇게 별 진전도 없고, 그렇다고 큰 회의도 없이 미지근한 참선을 계속하고 있다. 틀림없이 소위 말하는 둔하고 하열한 근기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상생활에서 참선의 덕은 보고 있다. 단순한삶, 행복한 하루, 고집이 없이도 불안하지 않은 자아. 모르는 사이에 참선수행이 실생활을 물들여가는 것을 확인하는 일, 이런 것들. 참선의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치열한 수행자였던 원효스님은 이 몸이 끝나면 무슨 몸을 받을지 모르므로, 발심수행이야말로 다급하고 다급한 일이라 후학을 격려하고 채근하는 말씀으로 <발심수행장>을 끝맺었다. 그렇지만 이에 앞서 스님은수행이 가능하도록 생활을 갈무리하고 환경을 가꾸는 일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시기도 하셨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참선은 스님이 추천하신소나무 푸른 깊은 계곡(碧松深谷), 울림깊은 바위 암굴(助響巖穴)을 지금, 이 자리에 조성하는 초보 발심수행쯤은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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