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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하(言下)의 대오(大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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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축서사 작성일10-02-25 15:14 조회3,1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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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하(言下)의 대오(大悟)

 

 

‘지학성보리(智學成菩提)이요 우학성보생사(愚學成普生死)니라.’

어리석은 곳에 떨어져서 어리석은 업을 지어 놓으면 천하를 호령하는 영웅이라도 생사의 고(苦)를 면치 못하지만, 우치를 끊고 지혜롭게 닦으면 생사 없는 해탈도(解脫道)를 증득하리라. 보시하고 지계하고 인욕하고 정진하고 방생하여 지혜와 복덕을 닦는 반야 학자여! 희유(稀有)하다. 어찌 지혜를 닦는 도문(道門)을 만났던고?

‘병자봉의원(病者逢醫院)이요 유아봉자모(幼兒逢慈母)니라.’

꼭 죽을병에 걸린 환자가 편작 같은 명의(名醫)를 만나고 어린아이가 자비스런 어머니를 만나듯이, 억겁을 두고 윤회의 고(苦)만 받던 어리석은 중생이 다행스럽게도 해탈법(解脫法)을 배우는 선문(禪門)을 만나 수도를 하는구나. 어리석으면 믿지 못하고 닦지도 못하는데 지혜로운 대장부들이 출가하여 ‘나’를 찾는구나. 사대육신(四大肉身)은 모체(母體)에서 왔거니와 언어동작 주인공인 참나는 대관절 어디서 왔느냐?

온 곳도 갈 곳도 미(迷)해버린 ‘나’는 도대체 무엇인가? 세상 사람들이 ‘나’를 잃어버리고는 설사 문무(文武)기술을 겸비했다 해도 그것은 쓸데없는 것이다.

자각 밖에 별별 묘한 법을 모조리 익혀서 통달했더라도 그것은 모두 외도법(外道法)이요 타락법이다. 하늘 일을 보기도 하고 하늘 일을 듣기도 하며,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알고 전생의 일과 후생의 일을 자재로이 통했으며, 천상천하를 전파보다 빨리 왕래할 수 있는 신통이 터졌더라도 그것은 외도법(外道法)이지 불법(佛法)이 아니다.

우리 부처님께서 밝은 별을 보고 활연대오 했으니 그때 그와 같은 신통이 터졌던가? 아니면 별의 크고 작고 밝고 어두운 이치를 깨달았던가? 아니다! 다만 별을 보는 그 주인공을 깨달았을 뿐이다. 천안통(天眼通)·천이통(天耳通)·타심통(他心通)·숙명통(宿命通)·신족통(神足通)은 신선들에게도 있고, 별의 크고 작고 밝고 어두운 이치는 과학자들도 다 안다. ‘나’를 깨닫는 누진통(漏盡通)은 오직 부처님만이 성취했던 것이다. 부처님처럼 ‘나’부터 먼저 깨닫고 나머지 오통(五通)이 터지면 모두 정통(正通)이지만, 나를 깨닫지 못하고 오통이 터지면 그것은 낱낱이 외통법(外通法)이다.

어머니 뱃속에 들어가기 전의, 모양도 빛깔도 이름도 성(姓)도 없는 그놈을 깨달아야 한다. 영원히 타락 없는 누진통을 얻어야만 생로병사의 인생고가 완전히 해결되지 오신통(五神通)만으로는 도저히 생사를 해탈하지 못하는 것이다. 생사해탈법이란 누진통 하나뿐이다.

불가(佛家)의 진리에는 제일구(第一句), 제이구(第二句), 제삼구(第三句)가 있다. 제일구란 상신실명(喪身失命)이다. 그 상신실명을 우리말로 어떻게 설명해야 옳겠는가? 몸 죽고 명 잃었다고 해석한다면 몸 죽는 것과 명 잃는 것이 다른가? 몸 죽는 것이 곧 명 잃는 것인데 왜 상신실명이락고 했을까? 그것은 제일구라 했으니 제일구는 격외(格外)다.

“어떤 것이 조사(祖師)가 서쪽에서 온 뜻인가?”

“판자 이빨에 털 났느니라.”

이것이 곧 격외다. 격(格) 밖의 것이란 입으로 해석을 못 하는 법이다. 여기에는 누(漏)니 패궐이니 그런 것이 붙지 못한다.

제이구는 미개구착(未開口錯)이다. 입 열기 전에 그르쳤다 했으니 뭐라고 해야 옳겠는가? 무슨 모양을 붙이고 무슨 빛깔을 붙이고 무슨 해석을 붙여서 말할 것이냐?

제삼구는 분기소추(糞箕掃)니라. 불불불상견(佛佛佛相見)이다. 석가유미회(釋迦猶未會)다 하고 별의별 깊은 말을 다 붙여 놓았지만 말로 해서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빗자루로 똥 쓰는 것이다. 제일구 상신실명(喪身失命)은 깨닫기 전에는 그 이치를 바로 보지 못한다. 귀로 듣고 아는 것은 중화(重禍)의 문(門)인데 사량분별로 알겠는가? 제일구에서 깨달으면 불조(佛祖)의 스승이요, 제이구에서 깨달으면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지만, 제삼구에서 깨달으면 빗자루로 똥 쓰는 격이다. 깨끗한 빗자루로 똥을 쓸어서 빗자루와 바닥에서 더러운 똥냄새를 풍기게 해서야 되겠는가? 요새 강사들이 별별묘구(別別妙句)로 해석을 붙여서 생각으로 알게 하는 것이 모두 제삼구다.

선사의 도덕(道德)을 중히 여기지 않고 나를 위해서 설파하지 않음을 중히 여긴다고 옛사람들도 말씀하셨으니 해석은 활구학자(活口學者)에게 무척 해로운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인가한 것이 아니기에 삼구로 해석을 한마디 해주겠다.

“견성을 했습니다.”

“견성을 했으면 네가 견성한 도리를 일러 보아라.”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습니다.”

견성한 도리가 쥐가 밥을 먹은 것이라 했으니 그것이 무슨 소리인가? 쥐란 고양이 밥이니 제가 저를 먹어버렸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내가 나를 먹어버렸다는 뜻이다. 내 마음 속에서 하늘도 나왔고 땅도 나왔고 일만 가지 모양들도 생겼지, 내가 없으면 우주만물 삼라만상 산하대지가 어디에서 존재할 것인가? 하늘도 내가 만들었고 땅도 내가 만들었고 우주만물의 명상(名象)도 내가 만들어냈으니 우주의 주인공은 ‘나’다.

그런데 내가 나를 먹어버렸다. 일체의 번뇌 망상을 일으키고, 일체 돌이회가 붙어 있는 내 마음을 내가 먹어버렸으니 무엇이 있겠는가? 아무것도 없다. 내가 공(空)했으니 모든 경계도 공했다. 공만 하나 남았으니 그 공도 떼어버리자. 공까지 떼어버린 그곳에 들어가서 누(漏)가 있다. 그것이 허물이고 패궐이니 그놈을 타파해야 한다.

그 공만 지키고 앉아 있으면 정력(定力)이 뭉쳐서 천안통(天眼通)도 나고 천이통(天耳通)도 나고 숙명통(宿命通)도 나고 타심통(他心通)도 나고 신족통(神足通)도 나지만, 생사해탈법인 누진통(漏盡通)은 꿈에도 못하는 것이다. 일체 경계가 공해버리고 공까지 없애버린 그곳이 누인데, 거기에 가서 격외선(格外禪) 공안(公案)이 있는 것이다.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인가?”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이놈을 바로 깨달아야만 삼계(三界) 밖을 뛰어나는 것이다. 여지없이 깨달아야 되지, 알면 안 된다.

해석과 묘의(妙意)를 아무리 붙여 봐야 그것은 망상이지 화두 참선은 아니다. 다만 알 수 없는 의심을 들여서 깨달아야 한다. 판치생모(板齒生毛)의 알 수 없는 생각이 없어지기 전에 연이어 자꾸 의심을 일으켜서 조사의지(祖師意旨)를 확철히 봐버리면 그 깨달은 지경을 누구와 이야기할 것인가?

급히 스승을 찾을지니라

‘금생약부 종사어(今生若不從斯語)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限萬端)이니라.”

금생에 이만큼 건강할 때 이 법문 듣고 여지없이 믿어서 용맹스럽게 닦지 아니하면, 후세에 한이 만 가지도 넘을 것이니 주의할지어다.

산승이 천만담(千萬談)을 했으나 누(漏)를 벗고 내려가지 못해서 저 바람 부는 난간에다가 걸어놓고 하좌(下座)하노라.

-‘쥐가 고양이 밥을 먹다’가운데

전강스님의 법문을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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