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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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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혜안등 작성일08-09-11 09:44 조회2,0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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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광야에서
시인 : 문대현
노래 : 김광석

 

찢기는 가슴안고 사라졌던 이 땅에 피울음 있다


부둥킨 두 팔에 솟아나는 하얀 옷의 핏줄기 있다

 

해뜨는 동해에서 해지는 서해까지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벌판


우리 어찌 가난하리오 우리 어찌 주저하리오!


다시 서는 저 들판에서 움켜쥔 뜨거운 흙이여

 

해뜨는 동해에서 해지는 서해까지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벌판


우리 어찌 가난하리오 우리 어찌 주저하리오!


다시 서는 저 들판에서 움켜쥔 뜨거운 흙이여

 

다시 서는 저 들판에서 움켜쥔 뜨거운 흙이여!

 

움켜쥔 뜨거운 흙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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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대현
1982년 성균관대 무역학과 입학
성대 노래동아리 <소리 사랑> 활동
졸업 후 노래 동인 <새벽> <노래를 찾는 사람들> 활동
(현) 레코딩 스튜디오 '문 스튜디오' 운영


촛불 문화제에서, 시국 미사에서, 노동현장에서. 민중 가요로 널리 불리는
문대현님의  [광야에서]를 소개한다.


어느덧 20여년.

한 동안 잊고 지내던 나의 젊은 시절.
그 시절을 정의하는 단어는 한 마디로 절망이었다.
사람들은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깝다고 했지만
나의, 아니 우리의 밤은 너무나 길었고 그 끝은 보이지 않았다.
요즘 우리의 젊은이들이 누리는 자유는
저 먼 서구라파에서나 느낄 수 있을 것으로 여겨졌던 그 시절.

그래서 어느 때보다도
이땅의 청년들은 그 불의에 대한 저항으로 몸부림쳤고
그 크기만큼 희망에 목말라 했다.

그런 시절 “광야에서”는 만들어졌다.
하지만 정작 이 노래를 만든 나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불려지리라곤 전혀 상상치 못했다.
왜냐하면 이 노래는
'우리 민족의 앞날을 위해!' "이 땅의 해방을 위해!’ 같은
거창한 목적이나 이념이 아닌
그 암울한 현실속에서 뭐하나 할 수 없었던
내 존재의 미약함에 늘 자괴감으로 떨던
나의 독백이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단지 나에게는 아주 조금이나마 알고 있던
이 땅의 역사와 그것이 나에게 주는 정확히 알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그 가슴 벅참이 있었을 뿐…

나는 늘 광야를 꿈꾸었다.
그 광야는 어느 시인의 것이기도 하고
또한 늘 술취해 부르던 노래 ‘아침이슬’의 광야이기도 했다.
끝없는 지평선, 광활한 대지, 혹은 만주 벌판을 달리던 고구려 시대,
그런 꿈들만이 나의 절망에 대한 안식처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제목은 자연스럽게 “광야에서”가 되었고
나의 독백은 가사가 되고 멜로디가 되고 또 노래가 되었다.

어찌 됐던 이후로 그 노래는 시대적 상황과 같이하며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고
그로 인해 내 평생의 업(?)이 정해졌으니
누가 뭐래도 이 노래의 태어남은 짧은 내 인생에
가장 큰 기로가 된 것은 틀림 없는 일이다.

이제 세월은 흘러 과연 우리에게 올 수 있을까 했던 21세기가 되었고
언제부턴가 금강산 관광이니 경의선 복구니 하는 말들이
하나도 낯설지 않게 되었다.
지금 나는 그 경의선 기차를 타고 개마고원을 넘어
만주 벌판으로 가고 싶다.

나의 젊은 시절, 그 절망감도 자괴감도 없이
오히려 그 가슴 벅참만을 가지고 그 들판으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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