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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44년(2000) 신년 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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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5-12-28 18:11 조회3,4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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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았습니다. 불기 2544년 희망찬 경진년 용의 해가 밝았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부처님과 여러 보살님들의 자비광명이 가득하여 금년 한 해 동안 온 가족들이 건강하고, 하시는 일이 잘 되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서기를 쓰는 기독교 문명 사회에서는 20세기를 마감하고 21세기 새천년을 맞이했다 해서 뉴밀레니엄의 축제가 요란하고, 온 지구가 들떠있고, 온 세계가 온통 축제 분위기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한국에서도 세계적인 분위기에 편승하여 새해 첫날에는 한반도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뜬다는 동해안의 정동진이나 울릉도, 제주도 성산포의 일출암, 지리산 천왕봉 등지에서는 해맞이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합니다. 또한 올해는 용의 해라 하여 전통적으로 용을 신봉하는 중국문화권에서는 특별한 관심을 갖는 것 같습니다.


용은 신화나 전설에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입니다. 용은 뱀을 원형으로 하여 아홉 가지 동물의 뛰어난 점을 두루 갖춘 혼합된 모습이 용입니다. 그래서 용은 여러 가지 동물들이 가지고 있는 화상의 무기를 모두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용의 입에는 여의주(如意珠)를 물고 있습니다. 용이 여의주를 얻으면 무궁무진한 조화능력을 가질 수 있다고 합니다. 비와 바람을 마음대로 일으키며, 대지를 뜨겁게 한다든가 차게도 하며, 각종 신통 조화를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용은 신령스러운 짐승으로 취급되며, 때로는 신이나 영웅 또는 괴수로도 등장합니다.


이런 용이 희망하는 최후의 목표는 구름을 박차고 승천하는 일입니다. 승천하지 못하는 용은 한갓 웅덩이의 이무기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용은 승천하는 희망의 상징 동물이며 지상 최상의 권위를 상징하는 동물로 숭배되어 왔습니다.


오늘 기도에 동참하신 여러분도 용이 승천하듯이 희망과 포부가 충천하고 힘차고 활기 있는 한 해가 되시기 바랍니다.


지난 20세기는 인류 역사상 가장 혁명적인 격동의 세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사적으로는 1,2차 세계대전과 소련과 그 위성국가의 공산 혁명과 몰락, 미국의 등장, 아세아 국가들의 경제 발전 및 오늘의 지구촌시대의 개막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과학기술은 깜짝 놀랄만한 발전을 하였습니다. 세기 초에 아인슈타인이라는 대천재가 등장하여 상대성원리라는 획기적인 이론을 발견한 이래, 폴 노이만이 컴퓨터시대를 활짝 열었고, 크릿과 왓슨은 DNA(유전자)를 발견하여 세계를 놀라게 했으며, 가공할 원자탄을 발명하고 원자력을 평화적으로 이용하여 안도의 한숨을 쉬게 했으며, 미국과 소련의 우주 경쟁으로 인류에게 우주로의 새 희망을 갖게 했으며 생명 복제의 성공과 세계적인 인터넷망 조직으로 자고 나면 딴 세상이고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 물질 문명의 역기능으로, 개발과 건설이라는 미명 아래 자연환경이 파괴되어 지구상의 생명체에 숨통을 조이고 있으며, 인간성의 타락으로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부끄러운 지경에 놓였으며, 섹스의 범람과 에이즈의 발생으로 신성한 생명 창조가 위협 받고 있으며, 청소년의 범죄나 마약의 확산은 성악설을 재창하게 하고 있으며, 자기 이익과 자기 주장만 하는 민족간 종교간의 전쟁 등 인류의 미래는 첨단과학시대의 밝은 면 못지 않게 어두운 면을 심각하게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 문명 비평가들은 20세기 말의 세계적 위기를 윤리적 내지 정신적 위기로서 인류 역사상 유래가 없는 위기라고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과학문명이 더 발달하고 물질적으로 풍요를 이룰수록 물질 문명의 역기능은 점점 더 심화될 것입니다. 이런 격변하는 시대에 어떻게 대처해야 이 위기를 극복하고 살기 좋은 극락정토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첫째, 인간은 자기를 바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라는 존재를 확실히 알아서 바로 살 줄 알아야 합니다.


신도 여러분! 이 세상은 바로 여러분의 것입니다. 이 세상의 주인공은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그런 여러분은 누구에게서 만들어진 피조물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태어날 때부터 이 세상의 주인으로 태어났습니다. 아무리 혁명적인 시대에 살더라도, 아무리 격변하는 시대가 오더라도 여러분 자신이 주인 노릇을 해야 합니다. 앞으로는 지식이 세상을 지배하고, 수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 살 수밖에 없고, 컴퓨터 같은 기계가 인간을 움직이는 세상이 되더라도 주인공은 여러분 자신이어야 합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여러분의 혼을 빼앗기지 말고 자기를 놓치지 마셔야 합니다. 이 세상은 여러분이 마음 먹기에 따라서 천당과 지옥도 될 수 있으며, 행복과 불행도 여러분 자신이 만들 수 있으며, 생사와 열반까지도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아무리 물질이 풍요롭고, 첨단 과학의 발달로 아무리 편리한 세상이 되더라도 물질이나 기계에서 인생을 찾지 말아야 합니다. 참행복은 오직 자기에게서만 느낄 수 있고 자기를 떠난 그 어떤 것도 허망하고 괴롭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둘째, 인간은 스스로를 개발하여 창조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를 알아서 인생의 성취를 위해서 꾸준히 노력하고 애쓰셔야 합니다.


「화엄경」에서 말씀하시기를 "온갖 중생은 제 번뇌의 주어진 업(業)에 의해서 그 몸과 사는 세계를 스스로 만들어 간다. 하나 하나 제 몸과 사는 세계와 수용해 지니는 것을 스스로 이루는 것이 업을 제쳐놓고 다른 무엇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중생은 지어진 업에 인하여 몸과 세계가 결정됩니다.


우리가 사는 법계에는 삼계(三界)와 육도(六道)라는 광활한 세계가 펼쳐져 있습니다. 이 법계는 진리를 깨닫지 못한 중생들이 윤회하는 곳입니다. 중생들은 어떤 원인에 의해서, 어떤 힘에 의해서 삼계 육도를 윤회하면서 갖은 고통을 다 받게 되고, 즐거운 삶을 살게 되는 것일까. 또 같은 사람이면서 어떤 사람은 행복하고 어떤 사람은 불행하며, 어떤 사람은 건강하고 어떤 사람은 건강하지 못하는 차별 현상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중생 자신이 지은 업으로 인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업은 범어 카르마(Karma)를 번역한 말인데,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일체의 행위가 업입니다. 업은 육체적으로 행하는 행동만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생각만해도 업이 될 수 있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것이 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바른 말이 아니면 입을 열지 않으며, 바른 행동이 아니면 행하지 않으며, 바른 마음이 아니면 생각을 않아야 합니다.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여러분의 인생을 결정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업은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삼업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행하는 업이 도덕적으로 선이냐 악이냐에 따라 선업과 악업으로 구분할 수 있고, 그 행위의 주체와 과보가 개인에게만 한정되는 경우와 여럿인 경우를 따라서 별업(別業)과 공업(共業)으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이 삼업을 세분하면 열 가지가 되고, 이를 십업이라고 하는데 이 업이 선한 업이면 십선업, 악한 업이면 십악업이 됩니다.


신업(身業)은 우리가 몸으로 짓는 일체의 행위를 말합니다. 살생과 도둑질, 음행 등이 이에 해당됩니다.


구업(口業)은 입으로 짓는 업으로 거짓말, 이간질하는 말, 교묘하게 꾸미는 말, 악담 등이 해당됩니다.


의업(意業) 즉 뜻으로 짓는 업은 성냄과 탐냄과 어리석음 등이 있습니다.


이 열 가지를 십악이라 하고, 그 반대가 십선입니다. 이 열 가지의 악업을 행하지 않고 오히려 방생하고 보시하며, 부드러운 말로 대중의 화합을 도모하고 넉넉한 마음과 바른 소견을 가지고 살아가면 곧 십선을 행하는 것이 됩니다.


이처럼 우리가 행하는 모든 행동, 온갖 생각은 업이 되어 생사윤회의 원동력이 됩니다.


이 업에는 반드시 과보가 따릅니다. 지난 세월에 지은 업의 과보가 오늘의 현실이요, 오늘 짓는 업의 과보가 미래에 맞이할 새로운 환경입니다.


그래서 업을 업인(業因) 이라고도 하는데 아무리 사소한 업이라도 결국 아무런 결과를 짖지 않고 스스로 없어져버리지는 않습니다. 비록 현세에는 아무런 과보를 받지 않고 무사히 넘어가는 경우라 하더라도 다음 생에는 반드시 과보를 받을 것입니다. 또한 금생에 받는 과보는 단지 금생에 지은 업의 결과만이 아니라 과거생의 것도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업(業)이 어떤 원칙에 의해서 행복과 불행을 불러오고 생과 사를 불러올까요. 이 윤회의 틀 속에 하나의 법칙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런 기준도 없이, 무질서하게 돌고 도는 그런 삶이 아니라 결코 변하지 않는, 누구도 넘어뜨릴 수 없는 하나의 법칙이 존재합니다. 그것이 바로 인과의 법칙입니다. 인과법칙이란 콩 심으면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듯이, 원인을 제공하면 결과를 낳고, 그 결과가 다시 원인이 되어 다른 결과를 불러들이는 순환 법칙이 바로 인과응보의 법칙입니다. 따라서, 현실 속에서 우리가 겪는 삶의 현상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어떠한 현상도 필연적입니다. 원인에 의한 결과이지 결코 원인이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이 인과 법칙은 우리의 삶 속에는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의 형태로 존재합니다. 땀 흘려 노력하면 그만한 대가를 받아 풍족한 삶을 살수 있고, 반대로 방일(放逸)하여 불성실한 생활을 하면 고통스러운 현실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남이 차려준 밥상을 받으면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밥도 짓고 스스로 상을 차려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차별이 있는 것은 그 누구의 탓도 아니고 자신이 지은바 업력에 의한 과보일 뿐입니다.


신도여러분! 인생은 스스로 지어가는 인생일 뿐 그 누구의 탓도 아닙니다.


스스로 인생의 주체가 되어 괴로운 삶을 과감히 단절하고 즐겁고 보람찬 생활이 될 수 있도록 창조적인 삶을 사는 올바른 수행자가 됩시다.


산림기도 입재일을 맞이하여 불자들은 자기를 바로 보고 바로 알아서 새천년을 맞이했다 하여 해맞이 행사에 요란하지 말고 자기의 마음속의 태양을 밝히고 자기의 참 진리를 찾아 밝고 명랑한 살기 좋은 부처님세계로 만들어 갑시다.




[이 게시물은 가람지기님에 의해 2017-03-02 09:15:51 금주의 법문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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