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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마음으로 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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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가람지기 작성일06-02-08 09:23 조회4,701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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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텔 부처님나라 참선법문]2002년 11월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라



축서사 무여큰스님


(아둥바둥 사는 세속의 일과는 비교도 안 되게 중요한 진리의 분야를 체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성인의 말씀과 함께 늘 간절하게 성심성의껏 지극정성으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면된다는 방법까지 자상하게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 녹취가 다소 매끄럽지 않더라도 말씀 그대로를 옮기려고 노력했습니다.)



(큰스님께 모두 지극한 마음으로 삼배를 드리고 자리에 앉은 후)
(정우님) "큰스님, 녹음기가 하나 더 늘었습니다."
마이크를 큰스님 옷자락에 꽂아야 하는데 어설픈 총무가 어찌할 줄 모르니 모두들 웃는다.
(총무) "꽂겠습니다"
마이크를 꽂고 법문이 시작된다.


(큰스님) "병원에서 주사 맞는 기분이다."(마이크를 꽂아 드리니 하시는 말씀) (모두 웃음) 하하하…


"음… 반야월은 밤샘했나?"(보라를 아주 귀여워서 보시는 눈빛…)
"아니요" 보라가 나직이 대답한다. "안 했어? 으음..그, 이름값을 해야 된다이…"


그래, 공부가 좀 되는 거 같아요?
(모두를 향해 질문 하신 후 법문을 시작하신다.)



돈벌이나 세속의 일은 사실은 별로 발전이 없어도, 뭐 발전이 있으면 좋긴 하겠지만, 발전이 별로 없어도 괜찮아, 사실은. 세속에 사시다 보면 봉급도 많아지고, 직급도 좀 올라가고 해야 당연하고, 또 보람을 느끼기도 하지만,그것은 결국 먹고 살기 위한 방편이라. 물론 거기에서 돈도 더 벌고 명예나 권세도 그만큼 더 가져서 또 보람도 긍지도 느끼기도 하겠지만 사실은 그것은 별 것 아니다, 전부가 허망하다 할 수가 있어요.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재벌처럼 아성을 쌓더라도, 또 권세가 아주 등등해서 나는 새도 막 떨어뜨릴 정도가 된다고 해도, 그리고 관직이 좀 높아서 직책이 높아서 하늘을 찌를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 정도로 높아져도 사실은 별 것 아니래요.


그러나 보통 사시다가 보면 그것도 중시하긴 해야 되는데, 보통 사람들은 그것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해. 그것은 아주 대단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놓치거나 성취하지 못하면 헛 사는 정도로 생각하고. 어쨌든 인생의 잘 사느냐 못 사느냐를 그것 가지고 따지고 이야기 하기도 하는데… 뭐 그럴 수도 있지. 어쩌면 당연할지 몰라. 그러나 깊은, 그 진리의 세계에서는, 넓은 그 우주 법계에서, 아주 미약한 그 한 점의 인간으로서 볼 때는 그건 너무 보잘것 없어요. 아주 별 것 아니고. 그런가 하면 전체가 아주 허망해. 허망하다는 것은, 허무주의를 부르짖는 것이 아니고 그 실체가 바로 그렇다는 거래요. 그래서 그것은 그렇게 중시 안해도 되고 거기에 아둥바둥 안 해도 되고, 거기에 청춘과 인생을 안바쳐도 된다고 하는 것이 성인들의 말씀이래요. 그 대신에 보통 사람들이 가볍게 생각하고 아주 예사롭게 생각하는, 또 별것 아니게 생각하기가 쉬운, 아니면 아주 모르는 그런 진리의 분야 그것을 아주 대단하게 생각하는 거래요.


실제 체험해 보지 않으면 그것을 느끼기 어려운데 체험해 보면, '아 그것이로구나, 바로 이것이로구나, 이 이상이 없구나!' 하고 느낄 수 있는데, 체험하기 전까지는 그냥 세속의 범주를 넘지 못해요. 어쨌든 그 진리는 꼭 체험해야 되고, 진리에서 인생의 그 보람과 참 행복을 못 느끼면 그 분은 잘 못사는 사람이다, 그 인생은 뭐 별 것 아니다, 훗날 부끄럽고 후회스러운 그런 인생이 될 수 밖에 없는데, 지금은 공부하는 과정에서는 오히려 참 어렵고 괴로워요. 사실은 그렇게 어렵고 그렇게 괴로운 것이 아닌데 보통 사람이 하기는 좀 어렵고 괴로운 것이래요. 그러나 안 할수 없는 것이 그것인데 '꼭 해야 된다! 반드시 해야 된다! 그것은 참으로 대단하고 귀중한 것이다!' 그런 생각을 늘 하면서 어쨌든 거기에 접근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 잘 사는 사람이래요. 그런 사람이 훗날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요. 그것이 좀 가미된 그런 인생은 어디 내놔도 뒤지지않지만, 그러나 전혀 가미가 안된 그런 인생은 별볼일 없는(속된 말로 애들이하는 야기처럼) 그런 인생으로 봐도 좋을 거래요.


어쨌든 그 진리를 위해서 공부를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고 애를 써야 될 거래요.거기에서 진정한 보람과 긍지를 꼭 느껴야 잘 산다, 참으로 인생 자체가 값지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어요. 어쨌든 열심히 하기는 좀 어렵겠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좀 애를 써서 잘 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애를 써요. 그것을 좀 체험을 해서 실제 생활에 바로 또 적용이 돼야 되고, 실제 생활에!
즉 생활 자체를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요, 기도하는 마음으로!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요.


이 기도하는 마음이란 어떤 마음이냐? 희망이 있고 포부가 넘쳐나고 남보다 더 잘 살려고 애쓰고 더 앞서 가려고 노력하고, 그래서 참으로 인생의 진정한 그 보람을 느끼려고 애쓰는 마음이 바로 기도하는 마음이래요. 기도란 뭐냐? 뭐 많이 알겠지만 빈다는 뜻인데, 지극한 마음으로 빌고 비는 것이 바로 기도래요. 옛날에 우리 할머니나 그 이상 선조들이, 그 주로 이제 여분들이 장독 위에 정화수 떠 놓고 비는 것 봤어요? 난 그거 많이 봤는데.그 할머니들은 대부분 일자 무식이래요. 그런데도 장독에서 서서 그 누구에게인가 빌때는 몇 시간이고 꼼짝안 해요. 그분들이 부처님을 아는 분도 있었겠지만, 장독 위에 물 떠놓고 비는 분들은 부처님도 몰라. 뭐 하느님이나 그 어떤 절대적인 존재도 모르고 마냥 빌었어요. 빌 때는 아주 지극하게 빌었던 거래요. 막 정성껏 빌었던 기래요. 뭐 눈이 오나비가 오나 몇 시간씩 그 겨울 추울 때도 꼼짝 않고 비는 거래요. 그때는 정신없이 오직 거기에 폭 빠지듯이 빌었어요. 그래서 소원을 성취했고, 나름대로 가문을 형성했고,아들 딸들을 그런 식으로 키웠던 거래요.


그 마음은 어떤 마음이냐. 기도하는 마음은 우선 간~ 절한 마음이래, 간절한. 비는 마음은 그 마음이 바로 간절함이래. 간절함이란 뭐냐? 아주 절실하게 성심성의껏하는 것을 말해. 일을 하거나 즉 직장에 다니거나, 학생은 공부를 하거나, 아니면 집안에서 가사를 하거나 뭐든지 내가 하는 일은 좀 절실한 심정에서 해야 돼요, 절실한 심정에서. 그냥 봉급만 얼마 타 먹고 만다? 가가지고(가서) 뭐 주는 것만큼 적당히 일하다가 온다? 일을 하더래도 농땡이 치고 게으름을 피우고 남 안볼때 놀아가면서,그래하는 분은 발전성이 없어요. 내 일이든 남의 일이든 내가 하는 일은, 꼭 직업이 아니래도, 뭐 직업도 물론이고요, 아주 절실한 심정에서 해야 돼요, 절실한 심정에서, 즉 당면한 최상의 일이다. 오직 이것뿐이다. 거기에 막 빠질 정도로요.


사실 그래 하는 분은 많지 않을 거래요. 그래하면 안될 일이 드물 거예요. 아주 절실하게 해야 돼요, 즉 기도하듯이. 그 할머니가 그~ 막~ 그냥 빌듯이 그렇게 지극하게 빌면 대상이 없어도 이루어져요, 달라져요, 좋아지고요. 지성이면 감천이래요. 이 무슨 일이든지 그런 더 절실한 심정으로 하세요. 내가 하는 일은 내 천직으로 생각하고요. 하루를 하더래도, 한 시간을 하더래도요. 그래 하면 안 될 일이 없을 뿐만 아니라 상사나 내 주변 사람이 나를 안 좋아할 리가 없을 거래요. 그래 하면 또 일 자체가 잘 되고. 빠지고 열심히 하는데 왜 안 돼? 어쨌든 아주 간절한 심정으로 그렇게 그 일을 하는 것이 기도하는 마음이래요.


그런가 하면 지극하게 하세요, 지극하게. 내 정성을 다 해서요, 최선을 다하듯이. 이 보통 사람은 일을 한다든가 공부를 해도 그렇고 자기 역량을 다 발휘하는 정도까지 하는 분이 드물 거래요. 하더래도 즉 100의 역량을 가졌으면 한 70~80, 한 50~60만 해도 많이 하는 그런 분도 있을 거래요. 이 100의 역량을 가졌으면 110, 120, 100 이상이 돼야 해요. 그런 정도로 빠지게 하면 일하는 데도그렇게 지루하지도 않아요. 괴롭지도 않고요. 설사 괴롭더라도 그 시간은 괴로운 줄 모릅니다. 하고 나면 힘이 빠지고 괴롭지. 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요, 일에 빠지는 거래요. 그래서 능률이 오를 수 밖에 없고요. 그렇게 지극하게 하면 그것도 참 또 안 될 일이 없을 거래요. 이 지극하게 하는 분은 모습만 봐도 달라요. 말하는 것만 봐도 말투가 달라져요. 보통 하는 사람하고 지극하게 하는 사람은 말투가 달라요.


저 보살이(정혜님) 간호원이죠.(간호사로 알고 계신 듯…) 보살은 그래 하겠지만, 보살이 아주 지극하면 환자가 감흥을 받아요. 손만 척 대도 환자 약을 안 줘도, 뭐 치료 안 해도 아마 병이 좀 나을 거예요. 어쨌든 좀 지극하게~~ 이 가정을 꾸리는 것도 그럴 거예요. 늘 그래 꾸리는 것은 어려운 일인데, 좀 지극하게 그렇게 주부가 가정을 꾸리고, 그런 남편이 된다면 그 가정은 화목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런 가정이 뭐 문제가 있고, 뭐 불화가 있고 그럴 리가 없을 거래요. 부부가 그렇다면 그 아래서 자라는 애들은 말할 것 없고, 따를 수 밖에 없고요. 부모 이상 스승이 없거든. 그런 좋은 스승 밑
에서 공부를 하든, 자란 애들 같으면 뭐 잘 자랄 수 밖에 없을 거래요.


저 소식지에 화엄사 그 중창 이야기가 있지요. 화엄사 가면 지금도 그 이야기가 많아요. 임진왜란 때 그 화엄사가 전소했다는 거예요. 전소하고 나니까, 주지로서는, 이건 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큰 고민을 안겨 주었던 기라요. 요즘 같으면 물자도 풍부하고 기계도 좋고 해서, 사실 뭐 중창하는 것이 그때에 비해서야 훨씬 수월하지. 근데 그 당시는 아주 어려운 때라 중창할 길이 없었던 거래요. 그러나 이제 주지니깐 어떻게 해도 해야 되는 거래요. 그래서 금생은 아주 중창하는 데 다 바치겠다 그런 대단한 결심을 하고는 기도를 시작했다는 거래요. 하 여튼 밤낮없이 계속 찾는 거에요. 또 기도 아니면 뭐 나가서 활동할 그런 형편도 못 됐던 거래요. 오직 기도에 매달려 있는 거래요. 죽자 사자 기도했던 거래요.


얼마를 기도를 아주 지극하게 하니까 감흥이 됐던지 어떤 도승이 꿈에 나타나 가지고요. 외출을 하기로 됐는데, 외출하기 그 전날 저녁에 도승이 나타나더니 "내일 외출하느냐?" "예… 합니다" "마을에 내려가다가 가장 먼저 만나는 분에게 붙들고 늘어지라"는 거예요. 사정해 가지고... 어쨌든 그 분한테서 중창할 수 있도록 매달리라고 하더라는 거래요. 깨니까 꿈이라네. 그 다음날 아침에 목욕 재계하고, 그 때가 추운 겨울이었다는 거래요. 목욕재계 하고는 정장을 해서 풀을 빠닥빠닥하게 풀한 옷을 입고는 내려 갔던 거래요. 내려 가도 전혀 인기척이 없어요. 내려가다가는 인기척이 없으니, '그렇지 꿈이지. 내가 설사 아무리 어렵더래도 꿈에 의지해서 되겠는냐' 그런 생각이 문득 들더라는 거래요.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래도 내가 그렇게 지극하게 하니까 도승이 나타나서 나한테 좋은 언질을 준 것이다' 그래 생각하면서 내려갔던 거래요.


한참을 내려가도 인기척이 전혀 없는 거래요. 그땐 꼭두새벽이라. 근데 얼마를 더 내려가니까 사람 소리가 나는 거래요. 그 막 반가운 생각이 들더라네요. 얼른 사람 있는 쪽으로 막 달려갔던 거래요. 달려 가니까 화엄사에 간혹 와서 공양도 지어주고, 밥이나 얻어 먹는 노파 할머니라. 아주 크게 뭐 실망해버렸던 기라. 그러나 도승의 이야기라 그 할멈한테 인사를 하는 거래요. 삼배를 했는 거래요. 삼배를 해놓고는 그 어두운 데서 계획서를 펴 놓고 이야기를 하는 거래요. 내가 이만저만하게 중창하려고 하니까 중창을 꼭 해주셔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그 노보살은 중창하려고 하는 줄도 알고 절 사정을 너무나 빤히 아는 그런 분이래. 그런데 그 스님이 혹시 자기를 잘못 보지는 안았나 그런 생각이 문득 들더라네요. 그래서 "스님, 스님, 저는 공양주 할머니입니다" 해도 뭐 막무가내라 펴놓고 자상하게 이야기 하면서 신신당부를 하는 거래요. 그래 그 할멈은 기가 차는기라. 자기는 그야말로 입에 풀칠하기가 바쁜 사람인데, 뭐 화주나 시주할 존재가못 돼.


아 그런데 그 주지 스님이 아주 고매한 분이라. 화엄사 주지 같으면 요새도 교구본사지만 당시는 지금보다도 더 유명한 그런 사찰이었다는 거래요. 그래서 주변 스님들이나 신도들에게도 아주 신망이 두텁고 아주 존경을 받는 큰스님 중의 큰스님이셨대요. 아 그런 스님이 그 공양주 보살님한테 절을 삼배하고 그 추운데 자상하게 안내하듯이 계획을 이야기하면서 신신당부 하는 거래요. 꼭 지어달라고. 그러니까 뭐 말문이 완전히 닫혀버리는 거예요. 그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까 정신이 없어져버리는 거래요. 그리고 우두커니 서 있다가 보니까 그 스님은 이야기를 마치고 절 삼배까지 하고는 저만큼 올라가는 거래요. 그 올라가는 스님을 보고는 스님 스님 하면서 따라 올라갔는 거래요. 올라 가도 그 스님은 걸음이 빠른지라 따라 갈 수가 없었는 거래요. 그래 스님을 놓치고는 그 마을집 담장에 기대고 있으니까 아, 그 한 숨 뿐이라. 말로 표현할 길이 없는거라. 그래 이런저런 생각하다가 결국은 그 할머니가 죽어버려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게됐는 거래요. 얼굴 들고 화엄사를 못 올라 가겠는 거래요. 화엄사 아니면 또 밥 얻어 먹을 데도 없는데. 그 주지 큰스님에게 절을 삼배까지 받고 절 지어 달라고 그렇게 신신당부하는데 지어 줄 길이 없어요. 그런 건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이래.


그래서 이런저런 생각하다가는 아, 뭐 자살해야 되겠다 그런 생각으로 아주 굳어져버렸어요. 그러다가는 그날 저녁에 저 화엄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큰 웅덩이가 있는데 거기서 빠져 죽어버렸는 거래요.
그 사흘 뒤에 그 시체가 떠올라 왔는데 그래서 그 절 공양주 보살이 죽었다는 소문 이 절까지 올라갔는 거래요. 주지스님은 그날도 기도하고 있었는데 공양주 보살이 죽었다는 거예요. 그렇게 낙심하는 거예요. 그래서는 내가 사람을 죽이고 여기 있을 수가 있느냐, 나는 그 불사할 위인도 못 되고 주지 자격도 없는
사람이다 해서 떠나기로 했는 거래요. 그래 조그마한 걸망 하나 지고는 말없이 절을 떠나는 거래요 .


그래 걸어서 계속 북쪽으로 북쪽으로 올라 갔는 거예요. 두만강을 건너서 만주로 들어갔는 거래요. 그때가 명나라 시절인데. 그래 그 만주 중국을 헤매면서 거의 한 1년 가량 그렇게 헤맸는 거래요. 1년을 헤맸는데도 단 하루도 내가 중창 불사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잊지 않은 거래요. 지극한 정성을 계속 가지면서 어떻게 하면할 수 있을까 고심의 고심을 하면서 또 공양주 보살 돌아가신데 대해서 계속 참회 했는 거래요. 그러면서 기도하면서 계속 그 중국 땅을 한 1년 가량 다녔는 거래요. 다니다가 이제 북경을 가게됐는 거래요. 그 때가 명나라 어떤 왕인데 늦게 애기를 하나 낳았어요. 딸을 낳았어. 60이 넘어서. 요새도 뭐 60넘어서 낳는 분이 있다고 하긴 해도 그 당시에는 아주 나이 많은 그런 분이라. 아 그런데 임금이, 중국 황제가 딸을 나았다.. 뭐 온 나라가 잔치를하고 그랬다는 거래요.


그렇게 좋아하고 잔치를 하고 축하를 받았는데 그런데 애를 낳고 보니까 애가 낳는 그 순간부터 계속 우는 거래요. 한 순간도 안 그쳐요. 아무리 귀한 아이이고 황녀지만 계속 우니까, 하루 이틀도 아니고 큰일인기라. 그래 궁중에서 키울 수가 없어서 궁중 밖에 집을 하나 지어 가지고 거기서 키우면서 전국의 유명한 명의는 다 불러들였는 거라. 어떻게 해서라도 아이의 울음을 좀 그치게 해달라고. 이건 병중의 보통 병이 아니고 큰병 중의 큰 병이다. 근데 그 오는 의사마다 울음을 그치게 할 수가 없었는 거래요 그래서
계속 거의 한 1년을 울었다는 거래요. 그런데 그 주지스님이 마침 그 황녀가 사는 그 아이가 사는 그 집 앞을 마침 지나가게 됐는 거래요. 그날 마침 황제도 궁에서 나와 가지고 애 우는 모습을 보고 황비가 애를 안고, 황제가 이제 애 울음을 그치게 하려고 달래고 있는 중인데, 그 스님이 그 앞을 지나갔다는 거래요. 그 임금 부부가 나오니까 모두 그 사람들 죽 나와서 보곤 했겠지. 그 많은 사람 중에 아이가 손가락으로 누굴 이렇게 가리키더라는 거래요. 가리키면서 울음을 덜컥 그치는 거래요.
한 1년간 계속 울던 아이가요.


그래서 애가 울음 그쳤다 하면서 안고 있는 임금 부인이, 애가 어쨌든 울음을 그치니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는 거래요. 그때 그 임금이 옆에 있다가 애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분을 봤는 기라. 그 분이 바로 주지스님이래요. 그 임금도 대번 느끼는 점이 있었던지 그 스님을 부르더라는 거래요. 스님이 이래 가니까 자초지종을 묻는 거래요. 당신은 어디 계시느냐,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 그래 그 화엄사 불사를 위해서 지금까지 이렇게 다니고 있다고 아주 자상하게 이야기 했는 거래요. 하니까 그제사 임금이 무릎을 탁 치면서 화엄사 불사는 내가 해주겠다, 이것은 보통 인연이 아니다. 불가에서 인과법을 이야기하고 윤회를 이야기하는데 우리 딸이, 내 딸이 바로 그 공양주의 후신인 것 같다. 그러면서 약속을 하더라는 거래요. 가 있거라, 그러면 내가 신하들을 보내가지고 중창을 해주겠다.


그제서야 그 주지스님은 '아… 참, 그 기도가 내가 한 기도지만 헛되지가 않았구나 그 도승의 말씀이 조금도 헛되질 않고 결국은 이렇게 중창을 하게 되는구나 ' 하면서 기분이 좋아가지고, 북경 그 주변에 구경 할 것 구경 좀 하고 느긋하게 내려왔는 거래요. 내려왔더니 이미 중국에서 사신이 화엄사에 당도해서 불사 계획을 하고 있더라는 거래요 그래서 3년 만에 화엄사가 중창이 되었다는 거에요. 실화래요. 정성이 지극하면, 참 지성이면 감천이다라고 하듯이 그렇게 아주 대단한 일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불사하는 주변에는 기적이다, 불가사의한 그런 일이, 다 그런 말이 맞는 그런 그 불가사의하고 기적과 같은 그런 일들도 흔히 있어요. 그만큼 불사 공덕이 크다는 건데. 어쨌든 그렇게 죽 하면서, 그 스님은 만 3년 간 인데, 한 3년간 단 하루도 불사를 안 해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한 번도 없었다는 거래요. 어떻게라도 불사를 해야 되는데 어떻게 할 수 있느냐… 그 공덕을 쌓으려고 그렇게 노력하고 애를 썼는 거래요. 그런가 하면 그 공양주에 대한 지극한 마음으로 늘 천도가 되기를 바랬는 거래요. 어쨌든 그런 지극함, 그런 그 공덕이 결국은 부처님의 감흥을 받았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기도하는 스님이 갖는 마음은 그런 지극함이래요.


처사님들이나 보살님들도 무슨 일이든지 사실 그렇게 지극하게 하기는 어려워요. 그러나 그런 지극함을 가지려고 좀 애는 써야 되요. 그러면 안 될 리가 없어요. 안될 리가. 능력이 좀 없는 분이래도 그런 지극함이 있으면 능력이 개발이 돼요. 역량이 좋아지고 개발이 돼서 아주 특별한 그런 분이 아니면 웬만한 것은 이루어 집니다. 설사 아주 바보 천치 같은 그런 분도 참으로 애쓰면 그 나름대로 참 기도 가되듯이 큰사람이 될 수가 있고요.


세번째는, 기도하는 마음이란 성심 성의껏 하는 거래요. 그, 비슷한 말이긴 하지만 성심 성의껏. 지극한 것하고 성의껏 하는 것하고는 다르지. 실제 실천 자체를 아주성심 성의껏 하는 거래요. 내 능력과 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그러면 안될 일이 사실은 없어요, 안될 일이. 저 소련에 강제 수용소라고, 구소련 뿐만 아니라 제정 러시아 때부터 강제수용소가 있었다고 하는데. 2차 대전 때 그 일본군으로서 저 만주에서 근무하다가 일본군 중위로 우리로 말하면 잡혀가지고 소련에서 가장 춥다고 하는 베로얀스크인가 그 주변의 어떤 수용소에서 수용소 생활을 하다가 나온 분이 있었어요. 그분이 후에 일본의 그 대장성인가 우리로 말하면 재무부장관까지 하신 그런 분이 있어요 그분이 쓴 소설이, 소설이 아니라 논픽션이 아주 유명한 게 있지.
"사각지대"인가, 거기 보면 이런 대목이 있어요.


그 분은 아주 성실한 분이다. 아주 성실한 분이라 그런데 강제수용소 체포가 되어가지고 전쟁이 끝나고 포로가 되어서 간 곳이 그 북극에 가까운 베로얀스크 주변의 어떤 섬인데 이분은 아주 성실한 사람이래. 포로가됐지만 아주 성실했는 기라. 하라는 자기 몫 이상을 늘 했는 거래. 포로들은 되도록이면 일을 안 하려고 하고 잘 하는 분 있으면 막 못하게 하고, 막 모르게 구타도 하고 여러 가지로 방해를 했는 거래요. 그러나 이 사람은 진심이라 늘 열심히 했는 거예요. 자기 할당량 이상의 일을 늘 열심히 늘 했는 거예요. 근데 거기는 아주 추운 곳이라 일을 안하고 가만히 있으면 그대로 바짝 어는 그런 경우도 있다는 거에요. 영하 보통 50도 이하로 내려 가는 그런 강추위, 그럴 때도 일을 시킨다는 거래요. 거기는 할 일이 없으면, 이 수용소 사람은 일을 안 시키면 일을 저지른다는 거래요. 그래서 꼭 일을 시킨다는 거래요. 아주 할 일이 없으면 벽돌을, 하루는 여기에서 이쪽으로 옮기게 하고, 그 다음 날은 또 저쪽으로 옮기게 하고, 매일 겨우내 어떨 때는 이 벽돌 옮기기를 시킨다는거래요. 가만히 두면 어떤 사건이나 사고를 저지른다는 거래요. 그런 일도 어쨌든 남보다 더 했는 거래.


그런데 하루는 그 수용소 모스크바에서 고관이, 차관급인데 수용소를 방문했는거래요. 근데 일본 포로 중에 한 분이 늘 누구, 고관만 오면 죽이려고 그렇게 항시 칼을 품고 있었던 그런 분이 있었는데 마침 지나가는데, 그 분이 막 죽이려고 하는찰나에 바로 그분 옆에 그 성실한 분이 서 있었는 거래요. 그걸 보자마자 막 껴안고 뒹굴어 버렸는 거래요. 즉 못 죽이게 했는 거래요. 그 여러분이 지나가는 데 그런 소동이 일어난 거래요. 그러니깐 수용소가 발칵 뒤집어졌겠지. 그래 죽이려고 한 사람은 그날로 바로 처형되고요, 그 성실한 사람, 막은 사람을 부르더라는 거에요. "당신은 왜 그렇게, 같은 포로고 날 죽이는 게 좋을 텐데 왜 막았느냐?" "나는 당신을 살리려고 한 게 아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불법이고 내가 알면서 내가 보고 안 막는 것은 내가 내 할 일을 안 하는 것이기때문에 나는 다만 내 할 일을 했을 뿐이다" 하더라는 거래요. 그래 차관이 보니까 아주 꾀죄죄한 것 같지만, 사람이 됐거든. 바로 그 비행기를 태워가지고 모스크바로 달려갔는 거래요. 그래서 그 사람만은 아주 특별포로 신세를 면하게 하고는 차관이 근무하는 옆에 일본 담당 어떤 직책이 있는데 거기에서 근무를 하게 했는 거래요. 거기에서도 아주 성실하게 근무를 했는 거래요.


그래 근무를 하다가는 일본하고 무슨 그 외교관계 마찰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가가지고, 일본 가니까 마침 자기 동창들이 외교관 중에서 여러분이 있더라는 거래요. 그래서 이리저리 어쨌든 해결을 잘 했을 정도로 그래 해결을 하고. 일을 잘 했는 거래요. 한 5년 가량 일을 하다가 특별히 사면이 돼가지고 일본에 가는 거래. 일본에 가 가지고 정의원에 출마를 해서 정치가의 길을 걷다가 나중에 재무부 장관까지 한 분인데 그 당시에 일본에서 성실해라, 성실해라 아무개만큼 성실해라, 50년대 말인가 60년대 초인가 그런데, 그런 유행어가 번졌다고 할 정도로 아주 성실하게 산 분인데 그 뒤에 그 분이 논픽션을 써서 아주 유명하게 된 그런 분인데.


어쨌든 그 기도하는 마음이, 바로 그런 마음이래요. 기도하는 마음이. 보통이 뭐 기도하면 뭐 기도 하는 걸로 그칩니다. 기도하는 걸로 그쳐서는 별로 기도한 보람과 긍지를 못 느껴요. 기도하는 그런 자세나 그런 생각으로 살아야 돼. 그것을 실천을 해야 되. 기도 공덕도 실제 다 느껴야 되겠지만 그런 그 공덕으로 인해서 가지게 된 마음 자세나 그 행동거지까지도 기도하는 모습 그대로여야 돼. 그래야 기도하는 참다운 보람이 있어요. 그것이 안 갖춰지면 보람이 없어요. 근데 보통은 기도하는 걸로 끝내는 거래. 반드시 기도하는 자세로 살려고 노력하고 애를 쓰셔야 돼. 그렇지 않으면 사실 큰 이익이 없어요. 기도 성취가되는 경우도 있긴 있겠지만 그런 사람은 그만큼 안팎으로 갖추니까 돼. 그냥 기도할 때 법당에서 아주 잘해, 일류라. 그런데 법당만 나오면 삼류, 사류라. 그러면 안돼. 법당을 나와도 일류가 돼야 돼. 그것이 집에 가도 일류가 돼야 하고, 직장에서도 그래야 되고요, 학교 가서도 그래야 되고요. 그래야 참으로 기도하는 사람다워요.


수행하는 분들이 그냥 정신적으로 하는 행위 이상 더 생각을 않는 분이 많아요. 그냥 기도하는 그 자체로 만족해요. 참선하는 그 자체로 만족하고요. 그것이 생활에 적용이 되고, 행이나 말이나 그 모습에서 드러나질 않아요. 그래서 선방에서 공부할 때는 아주 거룩해보이고 부처님 비슷하게 보이고 나와서 행동하는 것 보면 세속사람하고 비슷해. 어쨌든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려고 노력하고 애를 쓰셔야 돼요. 참선하는 마음으로 애쓰셔야 되고요. 그런 마음 그런 자세 같으면 참 어렵다 괴롭다, 남들은 이런 저런 이야길 많이 하겠지만 IMF 한파 같은 때 다들 어렵다고 해도 나는 무풍 지대에서 살 수 있어요. 설사 뭐 좀 느껴진다고 해도 영향을 미친다고 해도 크게 영향을 못 미쳐요. 그렇게 사는 분에겐. 보통 사는 사람이 남이 당하면 나도 당하고, 남이 어려우면 나도 어렵고, 남이 괴로우면 나도 괴로워해요.


그러나 특출하면 그것을 초월해요. 초월할 정도로 살면 어떤 상황의 변화가오더라도 어떤 환경의 변화가 오더라도 나만은 끄떡 없어요. 나만은 조금도 영향을 안 미치고 안 받고 살 수가 있어요. 그런 정도로 살아야 됩니다. 그런 것이 기도에서 얻어지는, 바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살면 기도가 안 된다 안 된다 어렵다 이런저런 이야길 많이 하는데 기도가 안 될 일이 없어요. 참선이 안 될 리가 없고요. 사실은 참으로 지극하게 그렇게 대단하게 간절하게 성의껏하는 그런 분에게는 의외로 쉬운 것이 기도고 참선이래요. 그리고 또 기도 잘 하는 분이, 실제 이야기 인데, 대구가면 서문시장 있지? 거기 어떤 보살인데 그 보살은 기도 잘 한다고 소문이 났다고요. 늘 기도하는 모습으로 사는 거래요. 그, 시장에 가도 그 남들처럼 왔다 갔다 하고 하나 더 팔려고 지나가면 뭐 사가라고 하고 그러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 거래요. 그래도 손님이 그렇게 많이 온대요. 즉 기도하는 모습만 봐도 그냥 지나가다가 다른 것 사러와도 그 집 앞을 지나가면 안들어 갈 수가 없다는 거래요. 끌리는 거래요. 묘한 매력이 풍겨지는 거래요.


즉 얼굴이 달라지고 자세가 달라지고 말이 달라지고요. 여러 가지가 보통 사람 이상으로 달라지는 거래요. 그래서 아주 잘 하면 사람만 봐도 그냥 절이 나와요, 존경스럽고. 어쨌든 그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시라. 즉 간절하게 사시고요 내가 하는 일은 어떤 일이든 무엇이든 아주 간절한 생각을 가지세요. 한 번을 하더래도 하루를 하더래도 임시채용이 되었더래도요. 내 직업이 아니더래도요, 직업은 물론이고요, 무슨 일이든지 좀 간절한 마음으로 하고요, 지극하게 하고요. 정성이 늘 지극해야 돼요. 요즘 사람은 비교적으로 근기가 하열하고, 인간 됨됨이 자체가 왜소하다 그런 말을 하는데, 그래서 뭐 자주 변하고 자주 바꾸고 뭐 하루에도 몇 번씩 이랬다 저랬다 한다고 하는데, 정성이 지극하면 그런 생각이 없어져버려요. 그럴 수도 없고. 설사 봉급을 조금 받더라도 그 옆집에서 봉급을 더 많이 주고 더 좋은 자리라고 하더라도요. 그래 살면 설사 처음에 들어갈 때 조금 받더라도 몇 개월만
돼고, 몇 년만 돼도 그런 사람 많이 안 주겠어요. 일 잘 하지 능률 오르지 뭐
모범적이지, 그런 분 오면 자연스럽게 그래 되니까.


어쨌든 좀 지극하게 일하고 살려고 노력을 하는 것이 바로 기도하는 마음이래요. 그런가 하면 성심 성의껏 하구요. 어쨌든 그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려고 애쓰고 노력하면 좋을 거래요.



(BC님 질문)


일을 하면서 일에 좀 빠지다 보면 일에 대한 고민 때문에 자꾸 머리가 복잡한 것같고 그러면서 또 앉아서 정진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면서, 일을 가끔 소홀하게 하게 될 것 같기도 하고, 시간적으로 좀 더 하고 싶단 마음 때문에 일을 조금 등한시 하게 되기도 하고 가끔 마음 속에 갈등이 많이 생깁니다. 큰스님 말씀은 지극하게 뭐든지 하면 된다는데 그것이 아직은 저희들이 많이 힘든 부분이 있거든요. 그래서 일과 공부를 동시에 잘 할 수 있는 방법이 어떻게 하면되는 건지 여쭤 보고 싶고요, 그리고 또 하나는, 요즘 수식관을 하고 있는데 앉아서는 가끔 수식관을 할 수 있습니다. 걸어 다닐 때, 뛰어 다닐 때, 일을 할 때에는 어디에 의식을 집중해야 되는지 그것을 여쭤보고 싶습니다.



(((((((큰스님 답변)))))))


사실은 일을 좀 열심히 하고 바로 수식관도 열심히 하기는 어려울 수 있어요. 그러나 자기를 관리를 잘 하고 훈련하기에 따라서 그것도 얼마든지 가능해요. 예를 들어서 흔히 대인이라고 하는 분들, 그릇이 크다고 하는 분들 그런 분들은, 그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 풍신수길이, 그 분이 그런 분이었다고 하대요. 그 분은 한참 일본 정국을 평정하고 할 때 어렵고 괴로워도 누우면 바로 코골았다고 하대요. 보통 사람 같으면 며칠씩 고민하고 괴로워 하고 할 일도, 바로 코 골았다고하는 거래요. 남성 분들 중엔 그런 분들 많지, 즉 친구하고 치고 받고 하다가도 그 순간 딱 지나면 웃으면서 맞이해요.


여성들은 한번 그렇게 싸움하면 그건 뭐 평생 참, 고개를 돌릴 정도로 그런 분도 있을 텐데. 그런데 그릇이 좀 큰 사람들은 그래요. 막 논쟁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막 싸우고 화를 내고 치고 받고 하다가도 그 순간 딱 지나면 악수 턱턱 하고 풀자 하면 바로 풀어버려요. 그런가 하면 그렇게 싸우고 바로 누우면 코 고는 분이 있어요. 그런 분을 흔히 대인이다, 그릇이 크다 그런 말을 하는데 그런 분들은 선천적으로 그런 분이지만, 이 훈련으로써, 일 할 때는 바짝 열심히 하고, 풍신수길이처럼 싸움할 때 싸움 하더라도 딱 돌아서면 공부할 수 있는 그런 정도가 사실은 되면 좋아요. 그런 훈련을 좀 쌓고요.


그래서 이 수행하는 분들 중에서 직장을 가진 분이 고민하는 이유가, 직장 일은 직장 일대로 열심히 해야 되는데 직장 일을 좀 열심히 하려고 보면 공부가 잘 안 되고요, 공부에 좀 애쓰다 보면 직장 일에 또 소홀해져. 그래서 양립하기가 어렵다 그런 말을 하는데 그건 좀 처사님이 자신을 좀 잘 다스려 가면서, 또 공부도 좀 심도 있게 애써보면 변화가 좀 생기고 하면, 공부할 때는 좀 바짝 하고, 일 할 땐 일에 좀 폭 빠질 수 있는 그런 정도까지 될 거래요. 그래서 일 할 때는 공부를 그렇게 방해 받지 않고, 공부할 땐 또 일에 신경을 쓰고 할 수 있는 그런 정도가 되면 좀 짧게 해도 공부를 상당히 잘 할 수가 있어요. 훈련이 좀 필요하고 긍지를 키울 필요가 있고요. 그건 좀 노력
을 하셔야 될 거래요.


그리고 수식관을 호흡을 관하는 분은 호흡만 관하면 되고요, 호흡을 관하지 않고 헤아리는 분은 호흡 자체에 대해서 정성껏 하면서 헤아리기만 지극하게 헤아리세요. 그러면 그것이 되면 자연적으로 어느 한 곳으로모아져요. 그것이 어떤 분은 목전일수가 있고 어떤 분은 단전일 수가 있고, 주로 두 곳인데 어디로 모은다는 생각 없이 그 자체만 지극하게 하세요. 그러면
저절로 모아져요.



(BC님)


그러면은 식사하거나 뭐 책을 보거나 일을 하거나 할 때에도 그냥 수식을 하나요?



(큰스님 답변)


그 때는 헤아리진 말고 호흡 자체만 지극하게 하면서 그 때는 호흡을 관하세요. 근데 호흡을 관하기가 조금 어려울 거예요. 어렵거든 단전으로 집중하고요.



(BC님) 의식을 단전으로 집중하라고요?



(큰스님) 예. 그렇지요.



(BC님) 그럼 걸어 다니거나 뛰어 다닐 때 수식이 가능한 상황에서 수식을 하는 건가요?



(큰스님) 예. 수식을 할 때는 어떤 경우라도 수식을 하는 것이 좋고, 잘 안 될 때는 단전으로 그렇게 하시고요.



(BC님 질문)


한가지 더 질문 드리는데, 이건 조금 별개의 문제인데요. 가끔 일하면서 접대를 하기도 해야 되고, 뇌물을 줄 때도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업보가 생기고 그런 일을 하지 말아야 되는지 어떻게 해야 되는지 말씀을 해주십시오. 저 개인이나 회사나 받는 사람이나 업보가 어떻게 되는지요?



(((((((큰스님 답변)))))))


그 사람이 직장 생활 안 할 수 없잖아요? 하다가 보니까 그런 경우도 있을텐데, 그런 죄업들이 쌓이고 쌓이면, 좀 별 것 아니고 할 수 없이 하는 그런 일들이라도, 결국은 나를 근본적으로 흐리게 하고, 못난 사람으로 서서히 만들기도 하는데, 그런 것도 박차고 나올 정도로 무시하고 내 뜻대로 살면… 사실은 크게 먼 장래를 보면 그래야 돼요. 지금 뭐 상황이 어떤 지는 몰라도, 그럴 수는 없잖아요? 조금 부정이 있고 설사 괴로움이 있더라도 안 할 수 없는 그런 처지인데, 직장 생활은 순수한 수행자의 입장에서 안 할 수도 없고, 할 수도 없는 것이 바로 직장 생활이고 보통 사람들의 삶이래요. 그런 가운데 선업보다는 악업이 많이 쌓이는 거래요. 그래서 결국은 좀 공부한다고 애써도 공부 자체도 잘 안되고, 결국은 어렵고 괴로운 그런 상황을 크게 못 면하는 거에요. 훌훌 털어버리듯이 정말 깨끗하고 여법하게 살면, 그런 것이 좀 지속이 되고, 그런 생이 몇 생만 계속 되면, 공부 이것은 뭐 아주 쉬운 일 중의 쉬운 일일 거래요.


그러나 예를 들어 고기 먹는 것 같은 것도, 고기 안 먹기가 어렵잖아요? 그런데 그것은 큰 살생이래요. 우리, 사람은 고기 먹는 것을 별 것 아니게 생각하고, 그건 예 사로운 일처럼 생각하는데, 사실은 불자는 조그만 피라미를 한 마리 죽이든, 살인을 하든 사람을 죽이든, 같이 봐야 돼요. 죄업 자체를 같이 취급해야 되고요. 근데 사람은 한 사람 죽이면 그것은 큰 죄나 지은 것처럼 생각하는데 비해서 뭐 미물 같은 것 살생하는 것은 지나가다가도 장난 삼아 죽이는 거래요. 장난 삼아 미물을 죽이는 것도 살인처럼 죄업이 많다는 것을 생각해야 돼요, 살인처럼… 그런 것이 쌓이고 쌓여서 어렵게 만들고 괴롭게 만들고 뭘 해도 잘 안 되고 즉못난 사람으로서 범부의 신세를 벗어나기가 어려운 거래요.


(JH님 질문)


정근을 할 때 잘 될 때가 있고 잘 안 될 때가 있는데 연상이 막 될 때가 있거든요. 제가 관세음 정근을 하면서 제 목소리를 들으려고 하는데 제 목소리가 어떨 때는 좀 된다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요. 그런 느낌이 제가 간절하다는 느낌이 들면서 연상이 되는데 도솔천 밖에서 관세음 보살님을 간절하게 부르는 연상에서 관세음보살님께서 문을 열고 들어 오너라 하고 해주실 것처럼 제 목소리가 정말 간절하게 관세음보살님을 찾는다는 느낌이 들 때 신심이 나거든요. 그렇게 안 될 때는 그냥 염하는 부르는 것처럼만 되다가 연상이 되다가 하는데 그런 연상이 들 때 그걸 무시하고 계속 해야 되는 건지 연상을 하면서 신심을 불러 세워야 하는지요.



(((((((큰스님 답변)))))))


연상을 하지 말고. 그게 망상이라. 망상을 일부러 키우는 격이라. 그런 연상은 하지 말고 소리를 관하거든. 소리만 잘 내려고 애를 써요. 소리에만 빠져요. 소리도 그냥 보통 내는 소리하고 소리를 관해서 소리를 잘 내려고 애를 쓰면 아주 묘음이 나와, 아주 묘음이. 이 천상의 소리가 나와. 그래서 주변 사람이 막 감동할 정도가 돼. 이건 뭐 누구나 그래. 어쨌든 소리만 잘 내고 소리만 지극하게 제대로 부르려고 애쓰지 다른 건 일체 생각하지 말아. 천상 생각하다가 떨어지면 뭐, 낙동강 오리 알이 돼(웃음).



(SRW님 질문)


큰스님, 그럼 아까 BC님 질문하고 연관이 있는 건데요. 제가 보통 앉아 있을 때 제외하고 움직일 때, 잠잘 때 관세음 정근하고 숨길을 관하는 두 가지가 앉아 있을 때는 되는데 행동할 때는 잘 안 되고 숨만 관하게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정근 소리가 나오면 일하기가 힘들 때가 있고 보통은 단전에 힘이 모아지면서 일을 하는데요. 저는 정근이 주라고 생각을 했는데 정근이 부가 되고, 숨길 바라보는 것이라든지 단전에 힘 모아지는 것이 주가 되다 보니 일 할 때 정근 빼고 해도 괜찮은 건지요? 저는 어쨌든 염불자인데요.



(((((((큰스님 답변)))))))


두 가지로 관하면 잘 안돼, 일도 하기가 조금 어렵고. 하다가 보면 정근만 할 때는 정근 자체가 되면 숨은 자연스럽게 관하게 되는데 그 사실은 염불을 하면서 일 하기가 어렵거든. 아주 어려운데, 그럴 때는 염불 자체에 대해서 너무 신경을 쓰지말고 염불, 기도는 신경을 쓰지 말고 일에 좀 빠져요. 일만 좀 잘 하려고 애를 쓰고 일을 일단 놓거든 염불에 빠져버리고.



(SRW님) 쉬는 시간에 하는 건요?



(큰스님)


어. 쉬는 시간에 가끔 하는 건 좋아. 어쨌든 일을 안 할 수 없으니까 일은 잘 해야 되고 일 잘 하려고 하면 염불에 빠지기가 어려워요. 염불 하다가 보
면 또 일은 자연스럽게 좀 소홀해 질 수 밖에 없고.



(SRW님이 법문중에 잠시 졸다가 꽃다발을 받은 이야기를 함)


서울로 가다가 보면 뭐 별 사람 다 보잖아요. 좋은 정경도 있고 좋은 경치가 있다고 해서 가다가 쉬고, 가다가 놀다 가고, 가다가 이것저것 보는데 빠지면 서울 못가. 서울 갈 사람은 앞만 보고 열심히 서울을 보고 차를 몰아야 빨리 갈 수 있어. 그런 사람에게는 원주를 지나도 원주인 줄 모르고, 저 경기도 여주, 이천을 지나도 여기가 여주다 이천이다 의식하지 못해. 그런 사람이 빨리 가는 사람이래. 그렇듯이 공부도 이런저런 여러 가지 상황이나 경계가 나타나기도 해요. 근데 의식을 하지 말고 고속도로를 질주하듯이 서울만 보고 계속 차만 몰아. 차만 몰고 가듯이 공부만 해가요. 어떤 경계나 어떤 꽃다발이 떨어지더라도 신경 쓰지 말고. 꽃다발 조그마한 것 받아가지고 희희낙낙 하다가는 남들은 다 서울에 골인해버려. 그런 경우가 많아요. 어떨 땐 아주 기분 좋은 그런 경우도 있고. 별 경우가 다 있는데 그런 어떤 상황이더라도 신경 쓰지 말고 그럴수록 더 애를 쓰면 그냥 막 지나가듯이 그렇게 잘 돼가요.



(HJ님이 두 달 동안의 자신의 생활을 큰스님께 말씀드림)


(HJ님의 착실한 아르바이트 생활에 모두 박수를 쳐줌)



(((((((큰스님 답변)))))))


거 좋은 체험을 했는데 아르바이트생이든 한 시간을 일해 주든 무슨 일이든 내게 주어진 일은 성의껏 해야 돼요. 열심히 해야 되고. 그러면 요새 취직하기가 어렵다 어렵다 하지만 어떤 회사든지 들어 가서 내 일처럼 정말 성의껏 지극하게 간절한 마음으로 일하면 그 분 바로 채용 해버려요. 아르바이트생은 할 수 없이 부득이해서 일 시키는 분인데 그래서 내가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직장 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질 않아. 물론 어떤 시험에 통과 하는 것은 실력을 갖춰야하고 나름대로 그만한 경력이나 뭐가 있어야 되겠지만, 그런 것도 결국은 그래. 나만 잘 한다 틀림없다 저 사람은 믿을만한 분이다 그런 정도로 인식이 갈 정도 같으면 어떤 직장에서도 그런 사람은 환영해. 그런 사람은 개별적으로 얼마든지 뽑아주고.


결국은 내가 어떤 사람이냐가 중요한데. 같은 아르바이트생이라도 일주일간 잘 참으니까 일도 쉬운 일 하고 돈은 같이 받잖아. 아, 반장 소리 듣고. 그 장 소리가 보통 소리가 아니다. 십장이든 뭐 반장이든. 어쨌든 늘 그렇게 살아. 그런데 처사는 앞으로 어떤 직장이든 시험이든, 시험에 합격되고 직장을 구하기 전까지는 아르바이트도 하지마. 알겠어요? 설사 아주 어려워서 안 할 형편이 되면 모르되 먹고 공부할 정도가 되거든 아르바이트도 하지말아. 즉 당면한 최상의 목표를 향해서 모든 힘과 노력과 시간을 총체적으로 다 한 곳에 집약해. 그래서 어떻게라도 합격이 되고 직장을 구하려고 애를 써요. 그런 마음으로 애쓰면 시험에 안될 리가 없고 어떤 직장이라도 아마
박수 치면서 어서 오십시오, 할 거래요.



(YYS님 질문)


큰스님, 집에서 정진을 할 때는 크게 몰입하는데 무리가 없는데요, 사찰 법당에서 정진을 대중들하고 같이 있을 때는 몰입도 잘 되고 그러는데 어떤 때 법당에혼자 남게 될 때 무서움증 같은 것이 많이 밀려올 때가 있거든요, 큰스님. 그럴때는 내가 아직 몰입이 일념이 안 돼서 공부가 이정도 밖에 안 돼서 무서움증이 밀려오는 구나 그런 마음이 들면서도 한 편으로 계속 정진을 해야겠다는 마음도 죽 갖고 나가는데요, 그럴 때는 계속 그런 식으로 해야 되는 건지 아니면 그런마음이 들 때는 그냥 차라리 접고 그 마음이 수그러들 때 다시 정진을 해야 되는 건지요?



(((((((큰스님 답변)))))))


이, 보살이나, 보통 그런 걸 많이 느끼는데, 집에서 하면 잘 안 되는데, 법당에서 하면 잘 되는 거야. 또 혼자 하기는 어려운데 여럿이 하면 잘 되거든. 시간 가는줄 모르고. 혼자 하면 무서움이나 괴로움이 많은데 여럿이 하면 모르는 기라. 즉 사람은 여럿이 할 때처럼 법당에서 할 때처럼 또 그리고 아주 신심이 돌발해서 막빠질 때처럼 그런 심정으로 살아야 되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야 되고요. 그 정도는 살아야 돼요. 그런데 마음은 자주 변하고 간사하고 또 자기를 억제하기 좀 어려울 때는 보살 비슷한 그런 상황이 느껴질 수도 있는데, 그건 결국은 보살의 마음 가짐이 좀 돈독하고 분명하고 철저하지 못하기 때문이래. 그래서 무서움증이나 다른 뭐 어떤 느낌이 오더래도 그런 것에 상관없이 법당에 혼자서라도 집에서라도 법당에서 여럿이 해서 잘 될 때처럼 그렇게 공부할 수 있도록 그래 해나가요. 보통 사람은 혼자 하느냐 여럿이 하느냐 절이냐 집이냐에 그 차이가 있어요.


그런데 아주 대단한 분은 차이가 없어요. 그런 분이 뭘 해도 잘 하고 이루어도 잘 이루어요. 그런 자신을 잘 알아서 어쨌든 그런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미리 대비도 하고. 아주 오래 하다가 보면 자기의 장단점을 미리 알아서 그때그때 적당한 처방을 할 수가 있어요. 그래서 원만하게 하는데 어쨌든 자기를 다스리는 것도 자기를 훤히 알아서 자기를 운전할 줄 알아야 돼요. 자기를 마음대로 운전할 줄 알아야 돼요. 보통은 자기를 다스리기가 어려운거래요. 그래서 뭐가 잘 안 되고, 어렵고 힘이 드는데 수행을 좀 깊게 하고 자기를 자상하게 알고 또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그런 역량이 갖추어지면 마음대로 운전하듯이 그렇게 해 나갈 수가 있어요. 그런 정도가 돼야 공부도 별로 손해도 안 보고 하고 싶으면 그냥 바로 들어가고 전천후 풀 가동이 될 수가 있어요. 그런 정도로 만들어 가야 되요. 그런 정도로 만들어 가면 공부하고 싶을 때는 공부가 그래 되고, 일 하고 싶을 때는 일에도 그래 빠질 수가 있고 마음대로 자신을 운용할 수가 있어요. 그 정도 되도록 어쨌든 해 보이소.



(JYJ님 질문)


이뭣고 화두를 들고 있는데요, 앉는 게 조금 익숙해지는 것 같긴 한데 대신에 의심은 별로 안 생기고요, 망상이 많이 생기는 것 같아요. 화두 의심을 어떻게 하면 더지을 수 있을지요?



(((((((큰스님 답변)))))))


화두가 안 될 때는 뭐 앉아 있기도 괴롭고, 온갖 번뇌 망상이 떠오르는데 어떨 때는 평시에 좀 기억하고 싶었던 것을 평시에는 기억이 안 되는데 그럴 때는 그렇게 잘 기억이 되는지. 아 심지어 어릴 때 젖 먹던 때도 기억이 나지. 평시에 전혀 생각이 안나. 누가 뭐래도 전혀 기억이 안 되던 그런 것도 기억이 잘 되는 그런 경우가 있는데. 그 정도로 번뇌 망상이 많이 떠 오르는데, 화두 하기 전에 마음을 화두나 기도나 하기 전에 마음을 아주 고요하게 해요. 즉 하고 싶은 일이 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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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원해님의 댓글

최대원해 작성일

늘 느끼면서 살고 있고 실천한다고는 했지만  큰스님 법문 보고는 참으로 성심성의껏 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