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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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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가람지기 작성일06-12-13 19:49 조회4,1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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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행복




존경하는 불자 여러분!
따스하고 싱그럽고 신록이 우거지며 설레이는 계절 ‘부처님
오신 달’이 되었습니다.
화창한 초여름에 꽃들은 만발하고, 새들은 노래하고, 짐승들은 춤을 추며 만물은 희희낙락(喜喜樂樂)하는 좋은
계절입니다.
지금부터 2천5백여 년 전에 삼계(三界)의 영원한 스승이시고 사생(四生)의 자부(慈父)이신 거룩하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우리
곁으로 오신 달입니다. 부처님의 법신(法身)이야 시공을 초월하여 오고감이 없으시고, 아니 계신 곳이 없지만 진리의 화신(化身)으로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하여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사바세계에 오신 뜻 깊은 달입니다.
우리 불자들은 이 땅에 오신 성스러운 당신 앞에 등불을 밝히고,
향을 사르오며 감로의 차(茶)를 올리고, 온갖 꽃으로 장식하고, 세상에서 진귀한 과일과 음식을 올려 육법공양(六法供養)으로 당신의 오심을
축복하며 당신과 인연됨을 한없이 기뻐해야겠습니다.
그리고 당신 앞에 엎드려 절하며 발원합니다.
영원히 당신의 모습에 귀의할 것을
발원합니다.
영원히 당신의 가르침에 귀의할 것을 발원합니다.
영원히 당신을 예경하며 당신을 닮고 따르도록 발원합니다.


5월은 ‘부처님 오신 달’이기도 하지만 ‘가정의 달’이기도 합니다. ‘가정의 행복’이라는 법문으로
부처님께서 오신 뜻을 되새기며 여러분 가정에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가득하기를 축원합니다.


옛날, 그 옛날에 두 소년 소녀가 파랑새라는 행복을 찾아 집을 나섰습니다. 마을을 떠나서 산을 넘고
들을 지나서 강을 건너도 행복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도시로 들어가 화려한 거리를 지나서 고대광실(高大廣室) 웅장한 집을 누벼도 파랑새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다니다가 자기 집에 돌아오자마자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실컷 자고나니 따스한 한낮이었습니다. 문득 사방을
둘러보니 볼품없는 오두막집과 쓰러져가는 돌담과 마당 여기저기에 제멋대로 자란 잡초에 행복이 가득했습니다. 어디 그뿐인가, 늘 불만스럽고 괴롭기만
하던 아버지 어머니의 시커멓게 그을린 얼굴과 초라한 모습에서 파랑새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것이로구나’, 행복은 먼 곳, 화려한
곳에 있지 않고 가까운 곳, 순박한 곳에 있으며, 바로 나의 가정과 나의 마음속에 있는 줄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가정은 행복의 보금자리이고 삶의 터전입니다. 가정은 어버이와 자식들이 공동생활하는 사회의 가장 작은
집단입니다. 가정의 주축이 되는 부부는 세상의 그 많고 많은 남녀 중에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합하여 혼인관계를 맺은 선택된 사람들입니다.

지나가다가 옷자락만 스쳐도 대단한 인연이라 합니다. 그런데 일생 동안 금슬(琴瑟)이 좋아서 살아서는 동고동락(同苦同樂)하며 같이 늙다가,
심지어는 죽어서도 같은 무덤에 묻히기를 맹세하기도 하니 숙세(宿世)에 지은 깊은 인연이 아니면 어찌 가능하겠습니까.
『잡비유경』에는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옛날 어떤 부인이 딸을 낳았는데 예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 소문을 들은 국왕이 그 아이가 크면 자신의
아내로 삼겠다고 하였지만, 도인들은 이 아이는 다른 남자와 결혼할 것이라 예언하였습니다.
그러자 왕은 높은 설산 중턱에 살고 있는 백조를
불러 여자아이를 그곳으로 데리고 가서 키우도록 하였습니다. 백조는 곧 아이를 자신의 둥지로 데려가 세상과 인연을 끊게 하고는 날마다 궁중에서
밥을 날라다 먹였습니다.
아이는 성숙한 여인으로 자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호수의 상류에 물난리가 나서 한 사내가 통나무를 안고 떠내려
오다가 천신만고 끝에 백조의 둥지 위로 오르게 되었습니다. 사내는 백조 둥지에 홀로 있는 천하절색의 미인을 보자 한눈에 반하였고, 여인도 남자를
백조의 눈에 띄지 않게 숨겨 주었습니다. 그 둘은 애정을 키워나갔습니다.
날마다 여자를 들여다보던 백조는 어느 날 여자의 몸이 달라진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수상히 여긴 백조는 둥지를 샅샅이 뒤져서 한 사내를 발견하고 당장 궁중으로 날아가 왕에게 이 사실을 고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나면서부터 제 짝이 있어서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짝은 만나면 서로 끌려 허락하는 것이니 뭇짐승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리하여 부처님께서는 “부부 인연은 인력(人力)으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지중한 인연이 부부 인연인데,
요즘 사람들은 너무 쉽게 맺어지고 너무 쉽게 헤어지기도 하여 부부 인연이 점점 희석되는 듯해서 답답하고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부처님께서는
부부가 백년해로(百年偕老)를 하고 동혈지우(同穴之友)가 되어 행복하게 살려면 ‘남편은 남편의 도리를 다하고 아내는 아내답게 아내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남편이 남편의 도리를 다하는 것으로 다섯 가지를 들었습니다.
첫째는 처자를 사랑하는 것이요,
둘째는 업신여기고 무시하지 않는 것이요, 셋째는 물질적으로 선사(膳賜)하고 편리하게 살아가게 하는 것이요, 넷째는 마음에 편안함을 얻게 하는
것이요, 다섯째는 아내의 친족을 생각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세상의 남편들은 명심하여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부처님께서는 여성은 남성보다 근기가 하열하고 분별심이 많기 때문에 아내의 도리를 더 자상하게 말씀하셔서
경책하시고 있습니다.


『선생경』에서는 아내는 열세 가지 일로 남편을 공양하고 순종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첫째는
남편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공경하는 것이요, 둘째는 남편을 존중하며 공양하는 것이요, 셋째는 남편을 잘 생각하는 것이요, 넷째는 할 일을 챙기는
것이며, 다섯째는 권속을 잘 거두는 것이요, 여섯째는 먼저 우러러 모시는 것이며, 일곱째는 그 다음에 애정을 품는 것이요, 여덟째는 말이 성실한
것이며, 아홉째는 문을 잠그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요, 열째는 오는 것을 보고는 칭찬하는 것이며, 열한째는 자리와 침상을 펴고 기다리는 것이요,
열둘째는 깔끔하고 맛있고 풍족한 음식을 차리는 것이며, 열셋째는 수행자를 공양하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요즘 젊은 여성 중에는 약간
부담을 느낄 수 있는 내용도 있지만,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여성으로서 아내로서 부덕(婦德)을 쌓고, 인생의 지침이 될 만한 좋은
말씀들입니다.


부처님께서 부부 두 사람에게 동시에 주는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서로 사랑하라.

진정으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아내의 도리와 남편의 도리에서도 각각 첫번째는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부부는 상대편을
존중하여 정성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동정심이 많고 자애로워서 크게 사랑하고 크게 가엾게 여길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부부는 사랑을 하되 받는 사랑보다는 주는 사랑을 하라, 주되 집착하는 마음이 없이 하라는 것입니다. 사랑도 희생과
봉사가 따르는 대승적이고 보살심을 가진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으로 상대방을 위하고 어여쁘게 여기면 반드시 유익하고 발전할
것이며 쉽게 식거나 쇠퇴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부부는 상대에게 최상의 행복을 선사할 것이요,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고 가장 좋은 재산이 될
것입니다.


둘째, 부부는 서로 공경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부부는 오랜 동안 함께 살아오면서
상대를 너무나 잘 아는 사이입니다. 그리하여 자칫 상대를 낮추어 보고 멸시하기 쉽습니다. 부부일수록 상대를 낮추어보고 업신여기는 마음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면 미워지고 싫어져서 부부 간에 금이 가기 쉽습니다. 가장 가깝고 가장 부담스럽지 않은 사이지만 예의와 범절을 지키고 조그마한
일에도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상대가 어리석고 부족하게 보일수록 공손히 섬기고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그것도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같은 보살님처럼 존중하라는 것입니다.


셋째, 부부는 서로 신의가 있어야 한다.
『불본행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라나시국의 태자가 부왕의 미움을 사서 궁에서 쫓겨났습니다. 부인과 단 둘이 산 속으로 쫓겨난 태자는
어느 날 사냥하러 나갔다가 큰 짐승 한 마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부인에게 주며 삶으라고 하였습니다. 한참을 삶자 물이
졸아들었기에 부인은 물을 길어오려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 사이 태자는 너무나 배가 고파 익은 고기를 꺼내 다 먹어치우고 부인 몫은 하나도
남겨놓지 않았습니다.
물을 길어온 부인은 고기가 없어진 사실을 알고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남편은 고기가 갑자기 살아나 제발로 달아났다고
딱 잡아떼었습니다. 너무나 완강하게 잡아떼는 남편의 진실하지 못한 태도에 질려버린 아내는 그후 남편과 지내는 날들이 조금도 즐겁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부왕이 세상을 떠나자 신하들의 간청으로 태자는 왕위에 올랐습니다. 자연히 태자비도 궁궐로 돌아갔습니다. 왕은 나라에서 가장
값비싼 보물을 왕비에게 선물하였지만 왕비의 얼굴은 조금도 밝아지지 않았습니다.
영문을 모르는 왕은 왕비에게 그 이유를 물었고, 왕비는
산속에서 가난하게 지내던 당시 자신을 속인 남편에 대한 원망이 가득 차 그 때의 서글픈 마음을 씻을 수 없음을 고백하였습니다.
그때의
왕자가 바로 지금의 석가모니 부처님이고, 그 왕자비가 지금의 야소다라라는 것입니다. 그때 왕자가 몰래 고기를 먹고 왕위에 오른 뒤 재물을
왕비에게 주어 친근한 마음을 나타내었지만 왕비는 조금도 마음을 열지 않고 원망의 마음만을 더하였습니다. 그 인연으로 말미암아 석가모니 부처님이
태자 시절 보배를 야소다라에게 주어도 부인의 마음을 기쁘게 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부처님의 전쟁에도 이런 어리석은 일이 있었다니 믿기가 어렵습니다. 어떤 사건도, 설사 부처님이라도
저지른 잘못은 그 생뿐만 아니라 몇 생 후까지도 이렇게 심각하게 영향을 미친다니 새삼 인과응보의 법칙이 무섭게 느껴집니다.
부부는
결혼서약서에 신의를 강조하고 도장을 찍습니다. 신의는 부부관계를 연결하는 중요한 고리와 같습니다. 신의가 굳건하면 결혼에의 찬가를 부르며 행복과
보람을 느끼면서 살아가겠지만, 신의가 사라지면 부부관계가 단절되며 그때부터는 결혼이 곧 무덤이요, 지옥이 될 것입니다.
살다가 보면 별별
어려움과 괴로움이 있겠지만 어떤 경우라도 부부는 믿고 의지할 만한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넷째는 사음(邪淫)하지 말라.
부처님께서 부부들에게 가장 강조하신 말씀 중의 하나가 삿된 음행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삿된 음행이란 부부가 상대 이외의 사람과, 즉 남편은 아내 이외의 여성과, 아내는 남편 이외의 남성과 성관계를 맺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부정한 관계를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음란(淫亂)하지 말라는 것은 중생의 음행은 번뇌의 뿌리가 되어 해탈을 방해하기
때문이요, 거룩하지 못한 행위는 밝은 마음을 어둡게 만들고 청정한 마음을 물들여 생사 윤회의 씨앗이 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삿된
음행에 열 가지 죄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1. 자기 아내에게 사음을 당하고 있는 남편이 항상 이에 위해를 가하려고 원한다.
2. 부부
사이가 화목하지 않아 항상 다투고 싸운다.
3. 많은 불선(不善)의 법이 나날이 늘어가고, 많은 선(善)이 나날이 해쳐지고 줄어든다.

4. 몸을 보호하지 못하고 처자는 고독하며 교섭이 적어진다.
5. 재산이 나날이 줄어든다.
6. 여러 가지 나쁜 일이
생겼을 때 항상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환영을 받지 못한다.
7. 친척과 지식 있는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환대받는 일이 없다.
8.
남에게 원망을 받는 업의 인연을 심는다.
9. 몸이 상하고 목숨이 끊어진 뒤에 지옥에 간다.
10. 만약 다시 여자로 태어난다면
많은 남자의 여자가 되고, 만약 남자로 태어난다면 그 아내가 정결하지 못하다.


현대는 성(性)이 너무 개방되어 있고 성도덕이 극도로 문란해지고 있습니다. 대로마제국이 멸망한 원인도
윤리와 도덕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 성적(性的)인 타락이 가장 심각하였습니다. 성문화 타락은 나라도, 가정도, 개인도 결국 파멸을
몰고 옵니다.


다섯째는 남편이나 아내를 부처님에게 인도하라.
흔히 부부를 일심동체(一心同體)라고 합니다.
부부가 행복하려면 일심(一心)이 되어야 합니다. 일심, 한 마음이 되려면 생각의 뿌리가 같아야 합니다. 생각을 같이 하려면 인생관(人生觀)과
세계관(世界觀)이 같아야 합니다. 인생의 뿌리는 종교입니다. 종교 중에서도 불교가 가장 심오하고 최상승법입니다.
『잡아함경』에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에 바라문 한 사람이 부처님께 따지러 왔습니다. 자신의 아내가 삼보에 귀의하고부터는 집안에서
대대로 믿고 따르던 외도들에게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불교에 귀의한 뒤부터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언제나 부처님이 계신 곳을 향해
‘부처님께 귀의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습에 화가 난 남편은 부처님을 만나 이렇게 물었습니다.

“내가 어떤 것을 죽이면 편안하고 걱정없이 살 수 있겠소?”
부처님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한다는 뜻인데, 부처님은 그에게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성냄을 없애면 편안히 살 수 있다. 성냄을 없애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성냄은 모든 독(毒)의 근본이다. 그것은 모든
선근(善根)을 해친다.”
이어서 부처님은 그에게 보시와 계율의 공덕과, 번뇌를 없애는 법을 차례로 설하셨고 바라문은 새하얀 천에 염료가
쉽게 배어들 듯이 모든 의혹이 사라져 그 자리에서 바른 지혜를 얻었습니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아내를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 덕분에 부처님을 만났소. 오늘부터 나는 참다운 부처님의 제자가 될 것이오.”


참다운 부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바르게, 여법하게 살겠다는 것입니다. 부부가 한
길을 가지 못하고 한 사상을 갖지 못하면 같은 생각을 하며 같은 길을 걸으며 살아가기가 어렵습니다. 진정한 부부가 되어 남다른 행복을 느끼려면
정법의 울타리에 들어와서 진리 속에서 부부의 연(緣)을 맺어야 합니다.


이상으로서 부부의 도리를 마치고, 가정의 한 축(軸)인 자식의 도리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부처님은 “자식은 마땅히 다섯 가지 일로써 부모를 받들어 공경하고 공양하여야 한다.”고 간곡하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첫째는
재물이 불어나게 하는 것이요, 둘째는 많은 일을 처리하는 것이며, 셋째는 하고자 하는 것을 대어드리는 것이요, 넷째는 방자하게 부모의 뜻을
어기지 않는 것이며, 다섯째는 자신이 가진 재산을 다 받들어 올리는 것이다.”


또한 부처님은 “남의 자식된 자는 다섯 가지 일로써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 번째는 이바지해 받들어 모시면서 부족함이 없게 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할 일이 있으면 무슨 일이든지 먼저
부모에게 아뢰는 것이며, 세 번째는 부모가 하는 일은 순종하고 거스르지 않는 것이요, 네 번째는 부모의 바른 명령을 감히 어기지 않는 것이며,
다섯 번째는 모든 부모가 하던 바른 가업을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자식은 반드시 부모를 받들어 공경하고 공양하고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식된
도리이기 때문입니다. 효는 인간의 윤리와 도덕의 기본이기 때문에 항상 강조하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불자(佛子)는 효심을 가져야 합니다.
효심이 곧 불심(佛心)이며, 효행이 곧 불행(佛行)인 것입니다. 효도는 백 가지 행의 으뜸이니 누구나 부처님과 같아지려면 반드시 부모에게
효도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부처님은 효로써 종(宗)을 삼으며, 『범망경』에서는 효로써 계(戒)를 삼는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참다운 효도는 어버이를 교화하는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부모는 자식을 낳고 키워주신 사람이다. 진자리 마른자리 가려가면서 온갖
궂은 일 다하시면서 사랑하며 보살펴 주시고 어른이 되게 해주신 참으로 고마운 사람이다.”하시면서 그 은혜가 얼마나 지중하던지 “왼쪽 어깨에
어머니를 메고, 오른쪽 어깨에 아버지를 메고 천년이 지나도록 꼬박 잔등 위에서 소변을 보게 할지라도 부모에게 원망하는 마음을 낼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해도 이 아들은 부모의 은혜를 다 갚지 못하는 것이니 “만일 부모가 믿음이 없으면 믿게 하여 마음이
편히 쉴 곳을 얻게 하며, 들은 것이 없으면 듣게 하고, 인색한 마음이 있으면 보시를 좋아하도록 가르쳐서 즐거움을 권하고, 지혜가 없으면 지혜를
밝히게 하고 편안히 쉴 곳을 얻게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한 뒤에 “부처님을 믿게 하고, 법을 믿게 하고, 승가를 믿게
하여서 법을 성취하고, 삼매를 성취하고, 지혜를 성취하고, 해탈을 성취하고, 해탈지견(解脫智見)을 성취하게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어느 날 모든 사문(沙門)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자식이 어버이를 봉양하되 감로맛과
같은 여러 가지 음식으로 그 입에 맞게 하고, 즐거운 음악으로 마음을 즐겁게 하고, 고운 천으로 옷을 만들어 드리고, 양쪽 어깨에 지고
사해(四海)를 돌아다니면서 수명이 마칠 때까지 하여 길러 준 은혜를 갚는다면 가히 효자라 하겠는가?”
제자들이 대답했습니다.

“그러하옵니다. 이보다 더 큰 효도가 없을 것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효도가 아니니라. 만일
어버이가 완고하여 삼존(三尊)을 받들지 아니하고, 흉악하고 잔인하여 외람되게 횡포한 짓으로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거짓으로 도에 어긋난 것을
말하거나, 거칠고 어지럽게 술을 즐기거나, 바른 소견을 거슬리거나, 흉측한 허물이 있거든 아들은 마땅히 극구 간언(諫言)하여 깨닫게 하고, 만일
그래도 몽매(蒙昧)하여 깨닫지 못하거든 곧 의리를 위하여 마땅히 교화하여야 한다.”
설혹 그렇게 해도 고치지 않거든 식음까지 전폐하고
울면서 애걸복걸 해보고, 그래도 고쳐지지 않거든 더 강도를 높여 반드시 조복을 받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어버이가 뜻을 바꾸어
부처님의 오계(五戒)를 받들어 어질고 측은하게 여겨 죽이지 않고, 맑고 겸손하여 훔치지 않고, 곧고 맑아서 음란치 않고, 신의를 지키어 속이지
않고, 효순하고, 술에 취하지 않게 하여야 하느니라. 그러면 종문(宗門) 안에서 곧 어버이는 사랑하고 자식은 효도하며, 지아비는 바르고 지어미는
정결하며, 구족(九族)이 화목하고 하인들은 순종하며 그 은혜가 넓어지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도덕 있는
임금과 충성스런 신하와 머리 검은 만민이 존경하고 사랑하지 않는 이가 없고, 누구나 도와서 편안케 할 것이며, 잘못된 정치와 편벽된 보좌와 흉한
사나이와 요망한 아녀자와 천 가지 그릇된 일과 만 가지 괴이한 일이 있더라도 어찌하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양친은 살아계시는
동안 항상 편안하고, 수명이 마치면 혼령이 천상에 왕생하여 모든 부처님과 함께 모여 법문을 듣고 도를 얻어 세상을 뛰어나서 길이 괴로움과
작별하리라.”했습니다.
이런 효도야말로 세상 사람이 보기엔 효도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진정한 효도라는 것입니다.
어버이로
하여금 “능히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게 하고, 오계(五戒)를 받들어 지니게 하고, 삼자귀(三自歸)를 받게 하면, 설사 아침에 받들고 저녁에
마칠지라도 그 은혜는 어버이가 젖 먹여 기른 무량한 은혜보다 더 무거우니라.”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만일 삼존(三尊)의 지극함으로써 그
어버이를 교화할 수 없는 이는 비록 효양할지라도 효도가 되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존경하는 불자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은 행복의 원천입니다. 파랑새의 행복은 여러분의 가정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한 마음만 비우면 꾀죄죄하고 볼품없는 집안 구석구석과 불만스럽던 남편과 못나게만 보이던 아내, 말썽꾸러기 아이들에게서
한없는 행복감을 느낄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에 시달려도 가정에만 돌아오면 피로나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희망과 용기가
솟아나고 힘이 넘치는 기분을 느낄 것입니다. 가정이 화목하면 사회가 건전한 사회, 살 만한 사회가 될 것이고, 가정이 안락하면 세상이 안락하고
만사가 순조롭고 원만할 것입니다.
그런 화목한 가정, 즐거운 가정, 살 만한 가정이 되게 하려면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합심하고 협력하며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부부는 남남인 남녀가 만나서 이룬 가장 가까운 사이로서 숙세의 깊은 인연인 줄 다시 한 번
상기하십시오. 그 깊은 인연을 항상 감사하게 여기면서 서로 공경하고 존중하고 사랑하여 화목한 가정, 즐거운 내 집이 되게 해야겠습니다. 부부는
마음먹기에 따라서 ‘부부 싸움은 칼로 물베기’라고 하듯이 깊은 정(情)이 들 수도 있지만 ‘부부도 돌아누우면 남’이라고 하듯이 하루아침에 관계가
끊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어떤 도인은 부부 관계는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먼 관계이고, 가장 쉬운 관계이면서 가장 어려운 관계라고
하셨습니다.
부부 관계가 원만해야 자식도 제대로 낳을 수 있고 올바르게 키울 수 있습니다. 문제의 자식을 보면 그 부모를 알 수 있다는
말이 우연한 말이 아닙니다. 자식에게는 부모 이상의 스승이 없고, 교육 중에서 으뜸은 가정교육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아이를 올바르게,
제대로 키워내지 못하면 아무리 학교 교육을 부르짖고 사회 교육을 애를 써도 때 묻은 마음과 비뚤어진 행동을 바로잡기는 어렵습니다.
효심도
가정에서 키우고 부모가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부처님은 세간적인 효행뿐만 아니라 출세간적인 효행도 누구보다도 먼저 실천하신 분입니다.
깨달음을 얻고 명실공히 ‘석가족의 성스러운 어른’이 된 부처님은 곧 그의 몸을 이루게 해주신 부왕 정반왕이 계신 곳, 고향 가비라 성으로 돌아가
설법을 베풀어 삼보에 귀의하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부처님은 부왕이 돌아가신 뒤 장례식에 나아가 직접 향로를 받쳐들고 장의(葬儀) 행렬에
동참하기도 했습니다. 부처님을 낳아주신 부모의 은혜 및 효행의 가르침은 후세에『부모은중경』이란 경전으로 이어져 오늘날까지 돌아가신 부모를 위해
추선공양(追善供養)을 하기도 합니다.
효도도 인과(因果)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해야 자기도 자식들로부터 효도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에 “효도하고 순종하는 사람은 자기도 다시 효도하고 순종하는 자식을 낳을 것이고, 불효한 죄를 범한 사람은 자기도 불효한
자식을 낳을 것이다. 이 말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저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을 보라. 방울방울 떨어지고 떨어져서 조금도 어기거나 옮기는 일
없이 제자리에 떨어진다.”고 하셨습니다.
근래 우리 가정은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가정은 근본 윤리와 도덕이 무너지고 있고, 가족
상호간의 사랑과 정(情)도 옛조상들을 못 따르고 있습니다. 일심동체(一心同體)라는 부부지간도 이제는 옛말처럼 들리고 자기 몫을 챙기기에
바쁩니다. 부모 자식간의 사이는 천륜(天倫)이라는 옛어른의 말씀도 무색해지고 있습니다. 아직도 부모는 사랑은 내리사랑이라 하여 희생과 봉사를
무릅씁니다. 부모가 죽으면 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도 있듯이 부모들의 사랑은 이토록 큰데 자식들은 부모의 은공(恩功)을
모르니 부모들은 한탄하며 눈물짓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불자 여러분!
금년에는 ‘부처님 오신 달’,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여러분의
가정을 다시 한 번 점검하고 반성하여 ‘행복한 우리 가정’, ‘즐거운 나의 집’이 되게 하시고, 불법에 대하여 진정으로 발심하고 돈독한 신앙심을
일으켜 수행에서 참행복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느끼는 행복을 외형적인 행복이라고 한다면 수행에서, 마음에서 느끼는
행복은 내면적인 행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불자 여러분께서는 안팎을 갖춘 행복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불하십시오.


[이 게시물은 가람지기님에 의해 2017-03-02 09:15:51 금주의 법문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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