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로법문

  >   무여스님   >   감로법문

감로법문

큰스님 7월 참선법회 법문 전문


페이지 정보

작성자 축서사 작성일08-07-29 15:18 조회3,629회 댓글0건

본문

큰스님 7월 참선법회 법문 전문                                              글정리 : 서암
 
 
                                                                                       
 
흔히 공부는 순일해야된다, 그런 말을 많이 합니다. 기복 역시 잘 됐다 안됐다 하지 않고 늘 고르게 그렇게 되는 것을 순일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것을 여여하게 해라 그렇게도 말합니다. 공부가 아주 순일하게 여여하게 되듯이 여러분의 마음도 좀 그래 되도록 애를 쓰셔야합니다. 어떤 감정이 있을 때나 기후 변화에도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고 항시 여여하게 순일한 마음을 가지셔야 공부하기가 쉽습니다.

오늘은 대혜스님께서 증시랑에게 답하는 여섯 번째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본문

보내온 편지를 여러 번 자세히 읽고 철석과 같은 마음을 갖추고 결정적인 뜻을 세워 대강 대강하지 않음을 보았습니다. 다만 이와같이 점점 나아가서 죽는 날에 이르면 또한 능히 염라대왕과 서로 겨룰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최고의 눈을 열어서 금강왕 보검을 잡고 비로정상에 앉겠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제가 일찍이 바깥 도우(道友)에게 말하기를 “지금 도를 배우는 사람들은 다만 빠른 효과만 구하고 그릇되어 있음은 알지 못합니다.”라고 했습니다.

큰스님 해설

(증시랑이) 보내온 편지를 여러 번 자세히 읽었다고 하셨습니다. 대혜스님의 큰 면목을 드러내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 대혜스님은 아주 큰 스님이래요. 대단한 스님이었습니다. 그런 스님이 신도가 보내온 편지를 여러번 읽었다. 했습니다.

대단한 애정이 아니면 그렇게 여러 번 읽기가 어렵습니다. 대혜스님은 아주 자비하신 분이래요. 애정이 많은 분이래요. 그래서 많은 사대부와 교류를 할 수 있었고 서장이라는 책을 편집할 수 있었습니다.

공부하시는 분은 철석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결정적인 그런 뜻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면서 공부하는 것도 그저 대강 대강해서는 안되요. 아주 짬지게 아주 분명하게 아주 확실하게 그렇게 하는 서원을 세워야합니다.

철석과 같은 마음이란 뭐냐? 대신심을 말해요. 아주 큰 신앙심을 가져야해요. 조금도 움직임이 없는 꼿꼿한 아주 철저한 그런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참선자는 불성과 화두에 대해서 온전한 아주 철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첫째 불성에 대해서는 나도 불성이 있다 나도 부처님과 꼭 같은 불성을 타고 났다 금생에는 비록 좀 못나고 어릭석고 공부에 진전이 없지만 나의 본 바탕은 부처님과 꼭 같다 그래서 나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확고 부동한 마음을 갖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부처님 말씀에 깨치고 나서 제 일성이 일체 중생이 부처님과 꼭 같은 지혜와 덕성을 갖추었네 했습니다. 부처님과 초롱초롱한 지혜 그 천재성을 갖추었다는 거래요. 그런가 하면 부처님과 같은 아주 후덕한 32상 80종호를 일체중생이 다 갖추었다고 했어요.

사람은 물론이고 개나 소나 돼지나 그 동물에서 부터요, 저 땅 속에 있는 개미나 지렁이새끼 같은 아주 못난 미물까지 다 모두 지혜와 복덕을 갖추었다는 거래요. 이 말을 법화경에서는 일체중생이 개유불성이다 했습니다. 모든 중생이 즉 부처가 될 수 있는 자질을 성품을 갖추었다는 거래요.

열반경에서는 일제중생이 개유불성 이라고 했습니다. 꼬물거리는 미물까지도요 다 불성을 갖추었다는 거래요. 그래서 여러분께서도 나도 불성을 갖추었다. 나도 부처가 될 수 있는 자질을 갖추었다 나도 본래는 부처다 그러한 확신을 갖는 것이 아주 중요해요.

또한 화두는 삼세제불 삼세의 모든 부처님들 역대의 조사들 천하의 선지식의 진수를 쏘옥 뺀 것이 화두래요. 살림살이를 그대로 드러낸 말씀이 바로 화두래요. 화두는 법문 중에 법문입니다. 법문 중에도 아주 대단한 그런 법문이 화두에요. 그 말씀은 불과 몇 말씀이지만 그 내용은 팔만 장경이 그대로 들어가 있는 천하의 이론과 천하의 철학과 어떤 종교도 다 포함이 되어있는 것이 바로 화두입니다.

그래서 그 화두로 참으로 깨치면 부처가 될 수 있다. 즉 우리 중생계 우리 중생이 사는 세계를 흔히 고통의 바다다 합니다. 괴로움의 세계래요. 그래서 사시는 것이 좀 어렵고 괴롭고 힘들어서 못살겠다 죽겠다 나 좀 살려주셔 그런 분들이 있는 이 세상이 바로 중생계예요. 중생계의 괴로움의 언덕에서 저 피안의 언덕으로 건너갈 수 있는 것이 바로 화두래요.

저 뗏목과 같은 것이 화두래요. 화두를 타파하면 바로 부처의 경계다 그런 확신을 갖는 것이 중요해요. 그 확신은 온전히 믿어야해요. 철저히 믿어야해요. 100% 아니 그 이상 믿고 확실하게 이해를 갖는 것이 바로 화두다 그렇게 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대확신의 바탕에서 이 공부를 해야 참으로 흔들림이 없는 진지한 그런 공부를 할 수가 있습니다. 흔히 공부가 안된다 화두가 안된다 그런 말을 예사롭게 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의 상당수가 근본이 헛헛해요.

즉 불성이나 화두에 대한 확신을 못가졌어요. 남들이 하니까 하면 좋다고 하니까 스님들이 하라고 하니까 그래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확신을 가지고 해야 올바른 공부를 할 수가 있습니다. 확신을 못가지면 공부에 흔들림이 와요. 그래서 진의가 돈발하지 않아요.

그래서 참선자는 어쨌든 대 신심을 내서 이 공부를 반드시 해 마치고야 말겠다 그런 결정적인 마음을 낼 필요가 있습니다. 즉 결정적인 뜻을 세워서 그냥 보통 뜻이 아니래요. 아주 결정적인 뜻이래요. 이것뿐이다 이것은 안할 수 없다. 여기에 모든 것을 바쳐도 조금도 아깝지 않다는 그런 결정적인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확신에서 즉 철석과 같은 마음을 갖추고 쇳덩어리와 돌덩이와 같은 굳은 결정적인 마음을 세워서 그렇게 하면 참으로 잘 될 수가 있는 공부가 이 공부이기도 합니다.

이 공부는 절대 대강 대강 해서는 안돼요. 즉 대충해서는 안되요. 건성으로 주마간산으로 해서는 안되요. 화두를 챙겨도 아주 알뜰하게 아주 짬지게 아주 빈틈없이 해야돼요. 그런데 형식적으로 흉내 내듯이 꾸벅꾸벅 졸아가면서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오래 하다보면 그럴 수도 있고요.

이 공부는 늘 초심해서 한번 한번에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치듯이, 한번 한번에 끝나면 바로 죽음이 올것처럼 최선을 다해서,  작가가 작품을 만들 듯이 그렇게 애쓰고 노력해야 참으로 진의가 돈발합니다.

본문

다만 이와같이 점점 나아가서 죽는 날에 이르면 또한 능히 염라대왕과 서로 겨룰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최고의 눈을 열어서 금강왕 보검을 잡고 비로정상에 앉겠다고 말하지 마십시오.제가 일찍이 바깥 도우(道友)에게 말하기를 “지금 도를 배우는 사람들은 다만 빠른 효과만 구하고 그릇되어 있음은 알지 못합니다.”라고 했습니다.

(화두)공부를 점점 공부해서 죽음에 이르면 능히 염라대왕과 상대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죽으면 염라대왕의 심판을 받는다고 합니다. 죽음의 세계에서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분이 바로 염라대왕이래요.

그 염라대왕의 심판에 따라서 지옥 아귀 축생의 세계도 가고, 그렇지 않으면 천상, 인간, 아수라 세계에도 간다 그랬습니다. 즉 죽음의 세계에서 결정적으로 심판하는 분이 바로 염라대왕이래요. 그래서 싫더라도 죽을 수밖에 없는 분은 죽어야하고 그렇지 않으면 살고 싶어도 살 수 없는 분이 바로 죽음입니다.

보통 사람은 염라대왕의 심판에 따라 생사문제가 결정이 됩니다. 그러나 이 공부를 지극히 하면 염라대왕에 관계없이 내 생사문제를 자유자재 한다는 거래요. 며칠 전에 어떤 책을 봤더니 이런 분이 계셨다고 합니다. 이런 분의 경우는 우리 조사스님들 중에서는 많다할 수 있는데 이분도 대단하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국 당나라 때 쌍봉산이라는 산이 있답니다. 경험 광허화상이라는 아주 유명한 스님이 있었다고 그래요. 그분은 참 견성하신 아주 대단한 선지식였다고 합니다. 태평 2년(당나라 연호) 2월 3일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훈계를 하더라는 거래요.

나는 오래지 않아 세상을 떠나겠으니 그대들은 본산에 가서 무덤과 탑을 만들어라 하더라는거래요. 오래지 않아 내가 죽을테니까 본산에 가서 탑을 세우고 내 무덤을 만들어 놓으라 하는 거래요. 그 다음날 제자들이 가서 무덤을 만들기 시작해서 2개월 반만에 그 무덤을 만들고 탑을 쌓고 돌아와서 큰스님에게 다 준비가 되었습니다 했는거래요.

그러니까 다음날 자시(새벽1시)에 떠나리라 하더라는 거래요. 그래 때가 되어서 그날은 초저녁부터 제자들 가운데 연세가 높은 스님 몇분을 불러서 호령을 하면서 이런 저런 담화를 하고 있는데  시자가 자시가 되었음으로 알리니까 가사 장삼을 수하더니 일어나서서 향을 잘 사루어서 꽂더니 합장하는 자세로 그대로 가시더라는 거래요.

그런 분이 바로 염라대왕과 겨루는 분이다. 그렇게 이야기할 수가 있습니다. 공부가 참으로 깊으면 생사도 초탈한다 합니다. 바로 그런 모습이 생사를 초탈한다 자재한다 하는 그런 말을 쓸 수가 있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생사까지도 초탈한 것이 이 공부의 목표다 할 수가 있습니다.

최고의 눈이란 깨달음의 눈을 말하고, 금강왕 보검이란 지혜의 보검을 말합니다. 그 지혜는 온갖 번뇌 망상을 다 소멸시키는 그런 지혜를 여기서는 금강왕 보검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최상의 자리에 앉겠다고 말하지 말라 했습니다. 왜 그러냐?

대혜스님 당시에도 공부하는 분들이 속효심을 많이 낸 것 같습니다. 대혜스님께서 세속의 있는 도우들에게 속효심을 내지 말라 이렇게 말했다는 거래요. 사람은 누구나 이런 속효심을 내기 마련입니다. 그럼 속효심이란 뭐냐? 그것은 속히 효과가 나기를 바라는 마음이래요.

즉 얼른 깨쳐야지 얼른 공부가 잘되게 하야지, 얼른 화두가 성성하게 해야지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이 바로 속효심입니다. 이 공부는 속효심을 내면 안돼요. 그런 속효심이 날 수록 공부를 잘하고 싶고 빨리 하고 싶고 얼른 하고 싶은 생각이 들수록 마음은 더 담담해야 해요. 마음은 더 고요하게 해야 해요. 마음은 더 안정이 되게 해야 해요. 그러면서 오직 화두만 성성하고 아주 적적하게 들어가야 해요. 얼른 해야지 빨리 해야지 그런 속효심을 내면 그것이 번뇌망상이 되요.

그런가 하면 그것으로 인해서 마음의 혼란이 일어나요. 그러면 공부하기는 점점 어려워집니다. 어쨌든 공부가 안될 수록 이 속효심을 내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안될 수록 더 지극하게 더 간절하게 그런 마음을 가지시면서 오직 애쓰고 애쓰고 애써야한다는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참선하시는 분은 지난 날도 생각하지 말고 그런가하면 미래도 조금도 어떤 기대도 걸지 말고 현재에도 조금도 미련을 두지 말고 오직 순간순간 화두만 성성하게 아주 적적하게 들어가야 합니다. 수처작주 입처개진이라는 말이 있듯이 곳에 따라서 주인이 되다시피 화두만 아주 성성하게 아주 적적하게 들어가면 선 자리가 바로 진리다 하듯이 참행복을 느끼고 진정한 보람과 긍지를 느낄 수가 있는 것이 바로 화두입니다.

그래서 화두하시는 분은 절대 빨리 하기를 원하는 마음을 갖지 말아야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속효심을 너무 많이 냅니다. 그러면 공부하기는 점점 어려워 집니다. 어쨌든 마음이 속효심이 날수록 마음이 번거롭고 괴롭고 번뇌망상이 날 수록, 빨리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록 더 안정을 시켜야합니다. 그래서 아주 담담하게 화두만 들어가셔야 합니다.

본문

그런데 도리어 말하기를 “일을 없애고 인연을 덜고 고요히 앉아서 참구하며…

큰스님해설

화두하시는 분은 흔히 일을 없애라 합니다. 이런저런 일을 많이 하지 말라고 해요. 일은 꼭 해야할 일, 반드시 해야할 일, 한 두가지에 집중하지 여러 가지를 하지 말라고 합니다. 즉 번거롭게 살지 말라고 하는 겁니다. 일을 아주 단순화 시켜야 합니다. 일을 집중시켜야 돼요.

또 인연을 줄여라 합니다. 이런저런 반연을 갖지 말라는 거래요. 인연은 맺어야할 사람만 맺고, 끊어야 할 사람은 과감히 끊어서 번거롭지 않고, 번뇌망상이 되지 않아야합니다. 우리 스님들이 출가하는데 공부하시는 분들은 대단한 그런 마음을 내는 분도 많아요.

그래서 스님들처럼 출가도 하고 세속에 있으면서도 스님들 같이 외형적으로 갖추는 분도 있습니다. 그렇게 까지 해야 해는 공부가 이 공부다 합니다. 공부를 위해서는 자기의 모든 것을 바쳐도 아깝지가 않다 그렇게도 말하기도 합니다.

이 세속에 사시는 분도 마찬가지래요. 요즘에는 인연 그 자체를 재산이다 할 정도로 인연을 아주 소중하게 여기면서 사시는  이런 인연 저런 인연 많은 인연을 가지면서 사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떤 분을 직업적으로 그렇게 인연을 맺고 사는 분들도 있지만 큰공부를 하기 위해서, 큰 일을 하기 위해서는 가급적이면 번거롭지 않고 단순화 시켜서 집중해야 공부도 잘 되고 어떤 일도 성취하기가 쉽습니다.

서양의 화가 중에 폴 고갱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인상파 화가 중에서 아주 대단한 그런 화가라고 정평이 있는 분이래요. 그 분도 그림을 위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바쳤어요. 고갱이 42세까지 은행원이었답니다.

그분을 프랑스 파리에서 은행원 생활을 했는데 당시에는 아주 인기가 좋은 직업이었던가 봐요. 그래서 생활수준도 높고 직업도 남들이 부러워할 그런 직업을 가졌고요, 예쁘장한 부인과 똑똑한 아이 둘이 있었어요. 외형적으로 보면 어떤 분보다도 참 좋게 보이는 그런 분이었다고 해요.

그런데 은행에 다니다 보니 아무 재미가 없는 거래요. 돈은 좀 많이 버는 거 같은데 실재 직업을 갖는 재미는 없다는 거래요, 그래서 내가 그림을 그려야겠다 하는 대단한 마음을 냈다는 거래요. 그래서 하루 아침에 사직서를 내고 그림을 그립니다. 파리에서 그림을 그리니까 세계에서 그림을 그릴 분들은 파리로 파리로 묘여드는데 정작 자기는 너무 번거로운거래요. 그래서 조용한 곳으로 가자 2년 만에 남태평양의 타이티 섬으로 들어가서 거기에서 오직 그림에만 빠졌다는 거래요.

하루종일 그림밖에 몰랐다는 거래요. 그렇게 애쓴 그림들이 훗날 역사적으로 그런 유명한 그림으로 남습니다. 그분은 마지막에는 풍토병 즉 문둥병에 걸렸어요. 어찌나 문둥병이 심하던지 전신에 냄새는 근처만 가도 진동하고요 진물이 나고 그래서 전신을 붕대로 막 감을 정도였어요.

어찌나 아프던지 누워있으면 송장같았다는 거래요. 그러나 억지로 일어나 죽자사자 그림을 그렸다는 거래요. 그래서 훗날 그렇게 유명한 화가가 됐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세속인들도 보통 일반 직업을 갖는 분들도 그렇게 참으로 집중하듯이, 오직 한 곳에 빠지듯이 그렇게 애쓴 분들이 훗날 크게 성공하고 큰 인물로 존경을 받기도 합니다. 우리 불교는 무상심심 미묘법이라, 위 없고 아주 깊고 깊은 미묘한 법입니다. 종교라고 하면 어떤 종교보다 수승한 종교입니다.

철학이라면 어떤 철학보다도 심오합니다. 이론이라면 어떤 이론 보다도 대단해요. 학문이라면 그 어떤 학문보다도 깊은 학문이 불교다 그렇게 말을 합니다. 그래서 이 공부를 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스럽다 복이 많다 그런 말들을 예사롭게 합니다.

사실은 여러분이 화두를 하는 것만으로도, 화두란 불과 몇자 밖에 안되는 아주 간단한 법어래요. 그러나 그 내용은 아주 엄청난 거래요. 그래서 화두하는 자체만도 다행스럽다 복이 많다 그렇게 생각해도 좋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모든 것을 바칠 만한 것이 바로 화두다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화두공부를 위해서 이런 저런 일을 가급적으로 덜고 인연을 덜고 인연마저도 웬만한 인연은 끊을 것을 끊고, 버릴 것을 버리고, 쉴 것은 쉬고, 고요히 앉아서 참구하는 것을 소위 참구하는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일이라 그렇게 말을 합니다.


본문

헛되이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몇 권의 경전이라도 보고 염불을 하며, 부처님 앞에 예배를 많이 하고 평생 지은 죄와 허물을 참회해서 염라대왕의 손 가운데 쇠몽둥이를 면하는 것이 더 낫다.” 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어리석은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마음 공부하는 것을 헛되다 그렇게 보통사람들을 생각합니다. 즉 돈을 번다든가, 어떤 물건을 만든다든가하는 이익이 없으니까 그것을 헛되다 하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금방의 이익이 없는 헛된 마음공부보다는) 경전이나 염불을 잘 해서 훗날 복이라도 잘 지어서 지옥이라도 면하는 것이 낫다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다는 거래요. 그러나 대혜스님께서는 그것은 어리석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어떤 분에게는 그것이 좋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공부는 참으로 고차원적이라 처음에는 별로 유익함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참 허송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공부는 지극하게 잘 하면 대단한 것을 느끼고 보람을 갖게 됩니다.

 본문

지금 도가(道家)의 무리들이 망상하는 마음으로 해와 달의 정화(精華)를 상상하며, 노을을 삼키고 기운을 복용하더라도, 오히려 몸을 세상에 두어 추위와 더위의 핍박을 면하는데 하물며 이 마음과 이 생각을 돌려 오로지 반야(般若) 가운데 두는 것이겠습니까?

옛 성인이 분명이 말씀하시기를 “비유하자면 파리가 어느 곳에나 능히 앉을 수 있으나 오직 불꽃 위에는 앉을 수 없으니, 중생도 또한 이러해서 곳곳에 능히 반연(攀緣)하되 오직 반야 위에서는 반연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진실로 생각마다 초심에서 물러나지 않고, 세간의 진로와 반연하는 자기의 심식(心識)을 잡아 반야 위에 돌려놓으면, 비록 금생에 철저하지 못하더라도 임종할 때에 결단코 악업에 끌리거나 악도에 흘러 떨어지지 아니하고, 다음 생에 태어날 때 나의 금생 원력을 따라서 반드시 반야 가운데 있어서 현성(現成)하여 수용(受容)할 것입니다. 이것은 결정적인 일이라 의심할 것이 없습니다.

큰스님해설

도가(道家)의 책 가운데 열선전(列仙傳)이라는 책이 있어요.

거기에 보면 “봄에는 아침 노을을 먹고 여름에는 이른 이슬 기운을 먹는다” 라는 설명을 해놓았어요. 즉 사람들 중에서 남자는 “아침에 해를 보면서 아침노을을 먹고 여자는 달을 보면서 이슬 기운을 먹는다” 했습니다.  그렇게 쉬지 않고 한다면 아주 총명해진다는 거래요 그래서 오장에서 꽃이 핀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몸을 세상에 두고 그렇게 해도 세상에 몸을 두어서 추위와 핍박을 면하는데 하물며 이 마음과 생각을 돌려 반야(지혜) 가운데 두는 것이겠는가? 하고 묻습니다.

화두공부나 염불 하려고 할 때는 번뇌 망상은 왜 그렇게 끓는지, 이런 망상 저런 망상 온갖 망상이 다 떠오릅니다. 그런 망상이 떠오를 때는 화두하시는 분은 어떻게 하느냐? 이뭣고 어째서 마삼근인가 어째서 무(無)라고 했을까? 그 화두를 망상이 떠오른 곳을 향해서요. 얼른 드세요. 그 망상 위에 화두를 올려놓는 것이 공부예요.

그렇게 지극하게 화두를 들어도 안되거든 두 번 세 번 화두를 강하게 드세요. 그러면 망상은 없어집니다. 이런 망상 저런 망상 별 망상이 다 일어나요. 그런 망상은 어디서 주로 일어나느냐 그것은 사랑하고 애착하는 마음에서 많이 일어날 수가 있어요. 그런 망상이 자주 일어날수록 아주 강하게 들어나가시기 바랍니다.

진실로 초심에서 물러나지 않고 즉 화두를 들 때는 언제라도 매일 이 순간 순간 늘 초심에서 드세요, 처음 그 마음을 내었을 때, 초발심시 변정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처음 마음을 냈을 때 문득 정각을 이룬다는 거래요.

어떤 마음이냐? 그것은 아주 순수한 마음이래요. 아주 때 묻지 않은 마음이래요. 그러면서 화두를 향하는 아주 간절한 마음이 부처의 마음이래요. 그런 마음은 참으로 지극하고 참으로 간절하면 그 마음이 바로 깨침으로 직결이 돼요. 그래서 늘 초심에서 물러나지 않고 그렇게 언제라도 초심을 벗어나지 않는 그런 마음을 내서 그런 마음으로 화두를 들고 애쓰고 노력해야 됩니다.

본문

중생계 안의 일은 배우지 않아도 시작 없는 옛날부터 습성(習性)이 익숙하며, 길도 또한 익숙하여 저절로 취함에 좌우에서 그 근원을 만나니 모름지기 버려두십시오, 출세간에서 반야를 배우는 마음은 시작 없는 옛적부터 등지고 어긋났습니다. 잠깐 선지식이 말하는 것을 들어도 저절로 이해하지 못하니, 모름지기 결정적 뜻을 세우며 그것과 더불어 주관을 세워 결단코 두 가지를 세우지 마십시오.

이곳에 만약 들어가기를 깊이 하면 저곳에는 물리쳐 보내지 아니해도 모든 마군과 외도가 저절로 없어지고 굴복할 것입니다. 생소한 곳은 익숙하게 하고 익숙한 곳은 생소하게 하는 것이 정히 이것입니다. 날로 공부를 하는 곳에 칼자루를 잡아서 점점 덜림을 아는 때가 문득 힘을 얻는 곳입니다.

해설

중생계의 안의 일은 배우지 않아도, 아주 오랜 생을 살아오면서 수십생, 수백생을 살아오면서 익숙해졌다는 말씀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여러 생을 살아오면서 도(道)하고는 거리가 먼 그런 습성을 많이 익히게 돼요. 그래서 공부하기가 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길도 또한 익숙하여 저절로 취함에 좌우에서 그 근원을 만나니” 했습니다. 그 근원이란 뭐냐?
이기심과 같은 욕망의 강으로, 즉 나(我)라는 생각을 말해요. 그 근원을 만나니 모름지기 버려두라는 것입니다.

"반야를 배우는 마음은 처음부터 등지고 어긋났다" 했습니다. 그  반야를 배우는 마음은 처음부터 등지고 벗어나서 그래서 선지식이 말하는 말을 들어도 이해가 안됩니다. 그러하니 “모름지기 결정적 뜻을 세우며 그것과 더불어 주관을 세워 결단코 두 가지를 세우지 말라했습니다. 두가지는 출세간의 반야와 세간의 욕망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것에(출세간의 반야) 들어가기를 깊이한다는 말은 즉 공부가 잘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공부가 여여하게 되어서 점점 깊게 들어가면 저곳에는 굳이 물리쳐 보내지 아니해도 그 모든 마구니와 외군을 저절로 굴복 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공부를 장애하는 그 마구니 즉 번뇌나 망상이나 또는 여러 가지 공부에 장애를 주는 그런 마구니 또는  외도가 저절로 없어지고 굴복할 것이다 했습니다. 즉 공부만 순일하게, 아주 여여하게 되면 저절로 없어진다 거래요.
 
"생소한 것은 익숙하게 하고 익숙한 것은 생소하게 하라"는 말은 바로 이 뜻입니다. 그렇게 되면 화두를 참구하는데 의도적으로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는 것이 ‘힘 덜림’입니다. 즉 화두에 진의가 돈발하면, 진짜 의심이 참으로 크게 나면 놓을래야 놓을 수가 없고, 버릴래야 버릴 수도 없어요. 늘 소소영영하게 현전해요. 그럴 때를 말합니다. 점점 ‘힘 덜림’을 알 때 문득 “힘을 얻는 곳이다” 했습니다. .
 
화두를 참구하는데 의도적으로 들지 않아도 점점 저절로 들리는 것이 힘 덜림입니다. 즉 화두에 진의가 돈발하면 진짜 의심이 참으로 크게 나면 놓을래야 놓을 수가 없고 버릴래야 버릴 수도 없어요. 늘 소소영영하게 현전해요. 그럴 때를 말합니다. 점점 힘덜림을 알 때 문득 힘을 얻는 곳을 안다고 했습니다.


본문

[요지]
속효(速效)를 구하지 말고 다만 반야를 연마할 것을 권했다. 철석같은 마음으로 결정적인 뜻을 가지고 공부를 꾸준히 해 나갈 일이지 도를 빨리 이루겠다는 조바심을 내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화두 참구로 세월만 헛되이 보내지 말고 경전 읽고 염불하며 부처님께 예배하여 자기 죄와 허물을 참회하여 염라대왕의 쇠몽둥이나 면하는 것이 낫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해설
빠른 효과를 얻으려고 하지말고 화두만 지극하게 들어가기를 권합니다. 절대 조바심을 내지 않아야합니다.그러면서 마음은 철석 같아야합니다. 돌덩이와 쇳덩이와 같아서 결정적인 뜻을 세워서 오직 이 것뿐이다 이 일은 안할 수없다, 반드시 해야한다, 꼭 해야한다 하는 결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공부를 꾸준히 해갈 일이지 공부는 잠깐 해서는 안되요. 짧은 시간에 해치우겠다는 생각을 가지셔도 안됩니다. 꾸준히 고집스럽게 아주 끈질기게 그렇게 해 가야합니다. 도를 빨리 이루겠다는 조바심을 내서는 안된다 했습니다.

세월만 헛되이 보내지 말라는 이 말은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마음공부는 바로 느끼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세월만 보내듯이는 안해야합니다. 한번 한번을 아주, 아주, 아주, 아줍니다. 아주 정성껏 해야합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해야합니다. 자기의 모든 것을 바치듯이 해야합니다. 새벽에 눈 딱 뜨자 마자 화두가 들려있어야 합니다. 눈 뜨자 마자 화두가 들려있다는 것은 자면서도 화두가 여여하게 들려있다는 것입니다. 자면서도 화두가 여여하게 될 정도로 들려있어야해요.

혹 그렇게 안되더라도 내가 오늘은 내가 해 마치고야 말겠다, 내가 오늘은 꼭 성취하고야 말겠다, 진의가 아직 돈발하지 않는 사람은 오늘은 반드시 진의를 낳게 하고야 말겠다, 그런 각오와 희망과 포부를 늘 피력하면서 어떻게든 그냥 쉬어가면서 망상 피워가면서 그럭저럭 세월만 보낼 수도 있어요,.

마음공부하는 사람은 절대 그래서는 안돼요. 마음을 아주 대단하게 아주 돈독하게 먹어야해요. 오늘 못하면 내가 내일 죽을 것처럼 한번 한번이 마지막 한번 한번인 것처럼 그래서 최후로 하듯이 최선을 다해가면서 늘 아주 알뜰하게 자기의 모든 것을 바치듯이 그렇게 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선원에는 어떻게 보면 아주 편한 곳이래요. 누가 일체 말을 안해요. 망상을 피워도 말을 안하고 졸아도 말을 않습니다. 알아서 본인이 적당하게 하기를 바라는 분위기래요. 어떨 때는 나태해 질 수도 있고, 구렁텅이에 빠지듯이 타락될 때도 있어요. 온갖 번뇌망상으로 하루종일 괴로울 때도 있어요. 그러면 공부가 부끄럽고 공부가 안되는 그런 답답한 시간을 전혀 안가질려고 해야해요.

그래서 한 순간도 화두가 없으면 벼락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참 꼭 죽기라도 할 것처럼 그런 마음을 늘 가져서 한번 한번에 자기를 바치듯이 애를 써야합니다. 세철을 해서 안되는 분, 좀 길게 잡아서 삼년을 해서 안되는 분은 자기에게 큰 견책을 하든지 일도양단하든지 특단의 조치를 해야한다고 보통은 이야기 합니다.

어쨌든 한번 한번을 예사롭게 하지 말고 처음이고 마지막이듯이 애쓰듯이 그런 마음을 늘 가져서 세월만 헛되게 보내는 마음을 보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본문 요지

파리가 어디나 앉을 수 있지만 불꽃 위에 앉지 못하듯이, 중생의 분별심은 반연(攀緣)하지 않은 곳이 없으나 오직 반야 위에서는 반연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양변을 떠남으로써 계발된 반야 지혜는 분별 망상심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경계에 반연하는 분별심을 잡아 반야 위에 옮겨 두는 공부를 지속하면, 악업에 끌리지 않고 금생 원력에 따라 다음 생에 반야를 현성하여 수용하게 된다는 확신을 보였다.



해설
망상이 떠오르면 화두를 챙겨야합니다. 챙기더라도 강하게 챙겨야합니다. 그래도 망상이 없어지지 않거든 두 번세번 강하게 드는 거래요. 그러면 저절로 없어집니다. 그렇게 좀 애쓰고 애쓰면 설사 견성은 못하더라도 악업에 떨어지지 않고요, 악한 경계에 빠지질 않는다는 거래요..

그래서 다음생에는 그 원력에 따라서 반야를 형성해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했습니다.

본문

시작 없는 옛적부터 중생계 일에 익숙하고, 반야를 배우는 마음은 생소하지만, 반야를 배우는 데 깊이 들어가면 마군(魔軍)과 외도가 저절로 사라져서 생소한 곳이 익숙해져서 차차 힘을 얻게 될 것임을 강조했다.

해설
그렇게 안되는 화두래도 애쓰고 애쓰다 보면 참으로 진의가 돈발하고, 더 지극하게 더 간절하게 밀고가다 보면 의심이 타파가 되고 참으로 깊은 경지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어쨌든 화두 하시는 분은 절대 절대입니다. 속효심을 말아야합니다. 이것은 깊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늘 철석과 같은 마음을 갖추시고 결정적인 뜻을 세우셔서 하더라도 대강 대강 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나오는 몇마디만 해도 화두하는 자세나 생각에 대해서는 아주 만족한 말씀이다 할 수 있겠습니다. 

 삼대독자였지만 출가하신 어떤 스님이 있었습니다. 그 분의 어머니는 그 스님은 낳기 위해서 절에서 기도를 많이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집에서 아주 곱게 자랐던가봐요. 그런 분인데도 불구하고 불가(佛家)하고 인연은 대단한지라 집에서 “가지 말라, 가지 말라” 해도 결국 출가를 했습니다.

집에서는 삼대독자니까 오죽했겠어요. 출가할 때는 며칠만 공부하면 아주 쉽게 공부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더라는 거래요. 그 분은 보통 사람보다는 좀 특별한 분이었어요. 얼굴도 잘 생겼고 공부도 잘했고 어디가면 꼭 앞서는 그런 분이어서 이 공부도 한 삼년이면 간단하게 끝날 줄 알았다는 거래요. 그리고 뭐 삼년씩이나 걸리겠는가? 그랬더래요.

처음 절에 들어와서는 뭔가 공부가 되는 듯 했다는 거래요. 처음에 절에 들어와서 애쓰고 애쓰다 보니 뭐가 좀 되는 듯했다는 거래요. 그러나 절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점점 나태해져 갔고 공부하고 수행하고  거리가 먼 생활을 하게 되는 거래요. 그래서 점점 못난이처럼 되었던 거래여.

그때마다 본인이 알아서 잘 억제하고 자기 관리가 잘 되었으면 다행이었는데 그 스님은 너무 곱게 자라고, 좀 풍요롭게 자란 사람이라 오히려 빠지고 빠져서 점점 더 못되게 되는 거래요.

그러다가는 스님답지 않게 이런 저런 못난이 짓도 하고 그랬는데, 하룻밤에는 부친이 꿈에 나타난 거래요. 부친이 나타나서 야단을 치면서 멱살을 쥐고 “야 이놈아! 네가 이렇게 스님노릇 하려고 날 버리고 절에 들어갔느냐?” 하면서 “너 같은 놈은 죽어 마땅하다” 하고 큰 강으로 끌고 가더라는 거래요.

그리고 그 강에 집어넣고는 나오지도 못하게 하는 거래요. 그래서 나가지도 못하고 얼마간 강에 떠내려가다가는 큰 짐승 같기도 하고 큰 물고기 같은 것에 물려 죽는 순간에 잠에서 깼다는 거래요. 꿈에서 깨고 나니 너무 부끄러워서 울고 불고 했다는 거래요. 그제야 대오각성했다는 거래요.

그래 “이 공부를 하자! 이 공부 뿐이다. 어쨌든 여기서 내가 해내야 된다. 만약에 안되면 죽기라도 하자.” 이런 생각을 했다는 거래요. 이런 상태로 어떻게 훗날 부모를 볼 것이며 주변에서 날 걱정해주는 많은 분을 대할 수가 있겠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큰 발심을 했는 거래요. 그래서 토굴에 들어가자 마자 대단한 발심을 했다는 거래요. 그로부터 열흘간 밥도 안먹고 죽자 사자 애를 썼다는 거래요.

그러니까 그렇게 안되던 공부가가 이틀만에 참으로 됐다는 거래요. 그리고 일주일 동안 선정에 들게 되더라는 겁니다. 아주 깨치지는 못했지만 거기서 큰 재미를 보고 다른 토굴로 옮겨서 더 애 쓰고 있다는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쨌든 그 스님처럼 사람은 발심할 때는 되게 발심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바치듯이 오직 그것뿐이듯 애를 씀으로써 이외로 쉽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즉 이 공부는 무엇보다도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성철 스님이 살아계실 때 어떤 스님이 이 공부가 안된다고 푸념을 하니니까 “네가 얼마나 공부해봤느냐? 참으로 애쓰면 안 될 공부가 아니다. 공부하다 죽은 사람 없고 공부하다 00된 사람 없다, 진심으로 해봐라. 이 공부는 죽을 각오를 하고 살은 사람은 살고, 몸을 보호해 가면서, 살기 위해 애쓰는 사람은 결국 죽고 만다.” 하면서 경책을 주시더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많은데 이 공부는 참으로 죽을 각오로, 죽자 사자 애쓰면 이외로 바로 쉽게 되는 공부가 이 공부입니다. 그런가 하면 쉬어가면서 놀아가면서 온갖 망상 피워가면서 형식적으로 흉내만 내어가면서 하면 어렵고 어려운 공부가 또한 이 공부이기도 합니다. 

오늘 저녁에도 이렇게 비가 오는 날 멀리서 오시느라고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좀 후덥지근하고 끈적끈적한 날이라도 마음을 되게 다 잡아서 부처님께서 마지막 보리수 아래에 앉으면서 맹세 했듯이 “내가 여기에서 죽어도 좋다, 내 뼈와 살이 없어져도 좋다, 나는 이 공부를 마치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겠다” 하는 그런 대단한 생각을 하고 노력하고 애써서 드디어 깨치고야 말았다는 열반경의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오늘 저녁이 마지막인 것처럼, 오늘 저녁 반드시 해 마치고야 말겠다는 그런 큰 마음을 가지시고 애쓰고 애써서 참으로 보람 있는 하룻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불하십시오.

[이 게시물은 가람지기님에 의해 2017-03-02 09:15:51 금주의 법문에서 이동 됨]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