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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마음 여읜 그 곳에 ‘참 부처’ 여여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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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상행 작성일10-12-15 15:58 조회7,718회 댓글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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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서사 금곡 무여 스님.
 

경북 봉화 축서사에는 두 개의 선원이 있다. 하나는 수좌가 머물며 정진하는 ‘문수선원’이고 다른 하나는 재가불자를 위해 문을 연 ‘보현선원’이다. 이 두 선원은 여느 선원과는 다른 독특한 특징이 있다. 문수선원의 하루 정진 시간은 15시간이며 결제도 5개월이다. 해제는 딱 한 달인 셈이다. 보현선원의 하루 정진 시간은 10시간인데 큰 방이 따로 하나 더 있다. 이 방은 24시간 개방되어 있어 10시간 이상 정진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 이곳에서 가부좌를 틀 수 있다. 묵언은 물론이고 한 번 입방하면 마칠 때까지 산문출입을 하지 않는다.

이쯤 되면 문수·보현선원을 일러 한국대표 용맹정진 선도량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축서사를 찾는 수행인들은 정말이지 ‘큰 마음’ 세우지 않고는 방부 들일 엄두조차 낼 수 없을 것만 같다. 어찌 보면 ‘초보자는 들어 올 생각 말라’는 듯 가혹하게도 느껴진다. 하지만 여기에 축서사가 세우고자 하는 가풍이 서려 있다. 분명 이 속에 무여 스님이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깊은 뜻이 담겨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섰기에 길을 나섰다.

무여 스님은 고등학교시절부터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길인가’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졌었다. ‘삶과 죽음이라는 물음 앞에서 눈물 흘리며 밤을 지새우는 날들이 많아졌으니, 이러한 진진한 물음들이 출가의 끈으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직접 술회한 것을 보면 생사의 문제는 이미 청년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잡힌 ‘화두’였을 싶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군복무를 하던 중 휴가차 나왔을 때 일이 생겼다. 조계사에서 들은 ‘반야심경’ 강의가 그의 가슴을 울린 것이다. 제대 후 직장에 다니면서도 ‘나의 존재’에 대한 물음은 계속 이어졌고 잠시 수행 차 들른 해인사에서 결단을 내렸다. 송광사 등 몇 개의 산사를 거쳐 오대산 상원사로 들어가 한 해 넘게 행자생활을 시작했다.

산에서 나무를 해 오고, 하루 종일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서도 공양주와 채공까지 맡았으니 한가할 틈이 없었다. 하지만 오대산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들기 시작 한 ‘이뭣고’ 화두만은 놓지 않으려 무던히도 애를 썼다. ‘눈은 늘 3미터 앞에 고정시켰고, 가급적 옆은 보려 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오대산에서의 하루 한 달 일상의 고된 일도 무여 스님에게는 힘든 일로 다가오지 않았다. 오히려 ‘잘 왔다. 여기서 마쳐야 한다’는 신심에 힘을 넣어 줄 뿐이었다. 고봉 스님을 비롯한 수많은 선지식이 말했던 ‘간절함’을 무여 스님 스스로 뼈에 새겼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화두를 어떻게 들어야 하는가는 이미 옛 분들이 고구정녕하게 말씀하셨지요. 정말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해 들어야 합니다. 드는 둥, 마는 둥 해서는 안 됩니다. 사막에서 물을 찾듯이, 어머니가 집 나간 아들을 기다리듯이 하라는 말은 모두 일맥상통한 가르침입니다. 닭이 알을 품듯이 하라는 가르침도 있지요. 닭은 한 여름 무더운 날에도 알을 품습니다. 더위에 지쳐 입을 벌리며 숨이 넘어갈 듯 헐떡거리면서도 절대 둥지를 떠나지 않습니다. 간절해야 합니다. 간절 절(切)자 하나를 이마에 평생 붙이고 살다 보면 소식이 있을 것이라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화두는 현대인에게 잘 맞지 않는다고 푸념 하는 사람이 많다. ‘의정(疑情)은 아무나 일으킬 수 있는 게 아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다. 그 만큼 화두를 든다는 게 쉽지 않다는 말일 것이다.

“본말이 전도됐습니다. 화두에 대한 확고한 믿음 없이 화두를 드니 ‘어렵다’, ‘안 된다’, ‘맞지 않다’고 하는 겁니다. 이 공부는 ‘세수하다 코만지는 것 보다 더 쉽다 했습니다. 무조건 어렵다 할 게 아닙니다. 화두가 안 되는 사람은 우선 자기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확고한 믿음 없이 불법의 큰 바다를 건너려 하는 것은 한낱 수고로운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실 그렇다. 부처님 마음에 이르려는 공부가 어디 쉬울 수만 있겠는가. 그 어떤 수행도 어렵다면 다 어려운 법 아닌가. ‘어려움’을 탓할 게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따져 보아야 한다.

“부처님께서는 ‘의식만 있으면 깨칠 수 있다’ 하셨습니다. 만공 스님은 ‘장맛만 알아도 깨칠 수 있다’ 하셨습니다. 누구에게나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는 겁니다. 화두가 안 되면 ‘나는 왜 안 되는가’라는 분심을 가져 보세요. 만공 스님은 되는데 왜 나는 안 되는가! 만공 스님과 내가 뭐가 그리 다르기에 안 된단 말인가! 열심히 하지 않아서 안 되는 것뿐입니다. 절대로 해낼 수 없는 일이 아닙니다.”
스님은 무엇보다 화두에 대한 신심을 더욱 깊이 가져보라 권한다. 화두를 통해 ‘삶과 죽음’까지 초탈할 수 있음을 여실히 믿고 해 보라 한다.

“간절하게 애쓰고 애 쓰다 보면 큰 의정이 일어나 공부가 저절로 익어갑니다. 나와 화두가 한 덩어리가 됩니다. 은산철벽 앞에서 어찌 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을 맞이합니다. 이 때 참선인은 한바탕 죽어 하늘과 땅조차 사라지는 일생일대의 큰일을 겪게 됩니다. 그 때 분명 소식이 있습니다.”
화두가 잘 되고 있음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물론 화두가 익어간다 싶으면 선지식을 만나 점검해 보는 게 가장 빠른 길이지만, 선지식 만나 묻는다는 것 자체도 쉬운 일은 아니다.

“적어도, 화두가 잘 익어간다 하면, 선정에 들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삼매를 맛 본 사람이지요.”
참선하는 동안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내 몸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정도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고 한다. 선가에서 말하는 성성적적의 상태다.

“엄밀히 말하면 성성적적에 이르러야 이 공부의 첫걸음을 걸었다 할 수 있습니다. 이쯤 되면 선지식으로부터 점검을 받아야 합니다. 점검 받을 때는 당당하게 받으세요. 혹, 심한 꾸중을 들으면 어떨까 하는 괜한 걱정을 하는 분도 계신데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건 그 다음 일이 아닙니까?”
무여 스님은 성성적적 상태가 순일하게 진행되면 일체의 번뇌, 망상이 점차 가라앉거나 사라진다고 한다. 혹, 작은 망상이 올라온다 해도 그 망상은 힘이 없다. ‘화롯불에 눈 한 점 앉는 격’이요 ‘불구덩이에 지푸라기 하나 던져질 뿐’이라는 것이다.

“법열(法悅)이 밀려옵니다. 그 어떤 환희심 보다 더 큰 환희심이 샘솟습니다.”
스님은 처음 이러한 법열을 맛본 후 부처님께 절을 올렸다고 한다. 하염없는 뜨거운 눈물과 함께 말이다. 옷섶을 스치는 바람 한 점, 길가에 핀 풀꽃 한 송이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법열을 느낀 순간 정진의 힘은 극대화 됩니다. 화두를 놓으려 해도 놓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가야 할 길이 아직 남아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스님은 간화선을 수행하는 사람은 항상 스스로 겸손하고 하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법열을 느낀 사람은 더더욱 하심해야 그 도(道)가 더욱 높아질 것이라 한다. 그러나 자기 스스로를 높이고 건방진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 도는 점점 멀어져만 갈 것이니 항상 챙겨두어야 한다고 한다.

화두순일 속 망상·번뇌는
화롯불에 눈송이 앉은 격
삼매·법열 맛본 사람이면
이 공부 평생 놓지 못할 것

무여 스님은 지난 해 무여 선사가 들려주는 선 이야기 ‘쉬고, 쉬고 또 쉬고’라는 책 한 권을 내 놓았다. 책 제목이기는 하지만 ‘쉬라’는 말은 무여 스님이 선법문을 통해 자주 설하던 일언이다. 이 한마디는 좀 위험하게 들릴 수 있다. ‘쉰다’는 말은 묵조선이 주로 사용했던 말인데 간화선은 이를 정면으로 비판했지 않은가. 묵조선이 낳은 폐단 때문이기는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안락만 취할 뿐 그 어떤 것도 하지 않는 무책임한 일’이라는 게 간화선이 던진 일침이었다. 그러나 스님이 말하고자 하는 ‘쉼’이 무엇인지를 헤아린다면 묵조선의 ‘쉼’과는 엄연한 차이가 있음을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을 놓는다, 쉰다, 비운다는 말을 좀 쉽게 풀어보면 일체의 잡다한 생각을 않는다는 겁니다. 또한 무엇을 이룬다는 것조차도 놓고, 비우라는 겁니다. 물론 단번에 이 이치를 알아차리기는 어렵겠지만 이 공부를 하다보면 이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스님은 사회에서 말하는 보통의 지혜는 배워서 얻을 수 있지만 근본 지혜는 깨쳐야만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근본 지혜는 밝기가 천 개의 해가 뜬 것과 같다고 합니다. 바다 속에 들어가서 육지를 걸어 다닐 수 있는 수단과 번갯불 속에서도 바늘귀를 꿸 수 있는 지혜를 모두가 갖추고 있습니다. 마음공부와 살아가는 공부는 둘이 아닙니다. 양쪽 모두 지혜롭게 해야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깨달음은 잠깐 사이에 있습니다. 수행을 모르고 지혜를 닦는 사람은 무명만 더할 뿐입니다.”

무여 스님 방에 걸려 있는 작은 액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오대산의 한암 스님이 쓴 글씨로 중봉(中峰) 선사의 ‘화두참구 가르침’을 담고 있었다. 중봉선사는 ‘선요’를 쓴 고봉원묘(高峰原妙 선사 제자다. 그 중 첫 구절 해석을 부탁드렸다.

‘도를 닦는 마음 견고히 하여 모름지기 반드시 견성하라(道心堅固 須要見性). 화두를 꼭 붙들고 마치 생철을 씹는 듯이 하라(捉着話頭 如咬生鐵).’

“생철을 씹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모기가 무쇠 솥을 뚫듯이 하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하지만, 오묘한 맛이 있습니다.” 용맹정진 속에서 화두를 들어본 사람만이 맛볼 수 있는 오묘함이리라. 무여 스님은 불자들에게 다음 일언을 전했다.
위없는 보리도를 구하려 한다면
화두일구에 목숨을 걸어라.
몸과 마음까지 잊어버린 곳에 이르면
참부처가 여여하여 자색광명 비추리라.
축서사가 초보 수행불자를 막는 게 아니다. 누구든 대신심과 분심, 그리고 의심을 내었다면 백척간두진일보 하는 마음으로 언제든 방부를 들이라고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모든 수행인은 생철을 씹듯, 목숨을 걸어 용맹심으로 이 공부를 지어가라고 무여 스님은 이르고 있는 것이다.

혹, 수행 중 두려움이 생겼거나, 아무리 애써도 화두가 순일하지 않다면 축서사로 발길을 돌려 보라. 분명 앞을 가로막았던 장애가 거두어 질 것이다. 

채한기 상임 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무여 스님은
오대산 상원사에서 희섭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동화사, 해인사, 송광사, 관음사 등 제방선원에서 20여년간 수선안거한 후 칠불사와 망월사 선원장을 맡았다. 조계종 초대 기초선원운영위원장을 역임한 바 있는 스님은 현재 운영위원으로서 선의 가풍을 새롭게 정립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현재 봉화 축서사에 주석하며 납자들을 제접하고 있다.
[이 게시물은 가람지기님에 의해 2012-07-16 17:45:02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이 게시물은 가람지기님에 의해 2017-03-02 09:15:51 금주의 법문에서 이동 됨]

댓글목록

무상행님의 댓글

무상행 작성일

축서사 금곡 무여 스님
몸·마음 여읜 그 곳에 ‘참 부처’ 여여하리라
2010.12.15 13:24 입력 발행호수 : 1076 호 / 발행일 : 2010년 12월 15일

화두 어렵다 탓하기 전에
간절했는지부터 점검해야
‘목숨을 걸라’ 말 하지만
세수하는 것만큼 쉬운 것..

낯익은 글..
얼마나 반갑던지..
보자마자 바로 담아 왔습니다요..ㅎ

따숩고 포근한 시간 되소서^^

남영자님의 댓글

남영자 작성일

무상행님 은 불교에 있서 큰일을하시는 징검 다리입니다.
보고듣고 좋은글 곳곳 속속히 찾아서 올려 주심에서 감사드림니다
화두 너무어려움에 감히 어떻게 한발도 뗄수없는  사면초과에있읍니다?

무상행님의 댓글

무상행 댓글의 댓글 작성일

보살님....
잘 지내시지요..

언제나 처럼..
늘 건강 하시옵고..
이 추운겨울 따숩고 평안히 보내시길 소망해 봅니다.

언제나 안전 운전 잊지 마시구요~~

영영님의 댓글

영영 작성일

큰스님의 말씀들은 언제나 심금을 울립니다.
그래서 늘 같은 내용의 댓글만 올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들에게 고구정녕, 간절하게, 심혈을 기우리셔서
노심초사 말씀하시고 또 하시지만 우매한 심정이기에
잊고 또 잊어버리고 방일에 방일을 거듭한답니다.
또 해가 바뀌는 새로운 시점에 만난 좋은 말씀이기에
초석으로 삼아 날마다 새로운 마음일 것을 기원해 봅니다.

나무 서가모니불!!!

맑은하늘님의 댓글

맑은하늘 작성일

큰스님 뵙고
마음을 다스리고
큰스님께서 일러주신 염불
일념으로 하였더니
부처님께서 저에게 그 환한 미소로
제앞에 오셨습니다
이제야 알았습니다
"아무아미타불" 여섯자의 염불은
부처님을 만나는 지름길 이었습니다
무여큰스님 감사합니다
멀어서 자주가 뵙지 못함이 아쉽지만
큰스님의 책안에서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