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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참구법 제 8강 / 마장과 병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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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축서사 작성일12-07-18 13:26 조회2,6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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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참구법 8 / 마장과 병통

 

날씨가 무더운데 멀리서 늦은 밤에 오시느라고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우리 법회도 여덟 번째인데 아마도 여러분 중에는 상당히 (공부가) 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화두에 진의(眞疑)가 나서 삼매에 빠지기도 하고요. 그래서 시공(時空)을 초월하시는 그런 분도 계실 거래요. 즉 앉았다 보면 몇 시간이 지났는지 분간이 안 되는 그런 분도 있을 겁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분들은 정진하는 곳이 축서사인지 여러분의 아파트인지 분간이 안 되는 그런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분은 눈이 밝아서 아주 맑고 맑아서 폭 빠지면 전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요. 그래서 옆집에서는 찜통더위다, 바캉스다 하면서 여행을 준비를 하고 부산하게 떠들어도 비록 사는 집이 좀 꾀죄죄하고, 좀 비좁고, 좀  못난 것 같은 아파트라도 “천상이 어드메뇨? 나는 예인가 하노라.” 그런 옛 어른 말씀처럼 천상을 느끼고 극락을 느끼시는 그런 분도 아마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서양의 로버트 인젤솔이라는 그런 분이 있는데 그분 말씀 중에서 꼭 선사 같은 그런 말씀이 있어서 들려드리겠습니다. 그분은 “행복을 즐겨야 할 시간은 지금이다. 행복을 즐겨야 할 장소는 바로 여기다.” 그런 말씀을 했어요. 선(禪)은 바로 직관하고 직시하는 거래요. 바로 느끼는 것이래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바로 느끼면 여러분이 앉은 자리가 바로 극락이래요. 즉 최상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선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요즘 좀 덥고 좀 어렵고 좀 힘들지만, 남들은 다 힘들다고 하지만 내 마음은 아주 편안하고 극락세계 같은 그런 느낌을 가지면서 이 이상이 있을 수가 있느냐? 하면서 참으로 수행하는 것을 보람되게 긍지를 가지고 자부심을 느끼면서 그래 사시기 바랍니다. 이런 철야정진이 여러분 인생에 획기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마장과 병통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공부를 하다 보면 마장과 병통을 느낄 때가 있어요. 이 공부 자체도 잘 안 되는 그런 경우도 있지만 공부는 되는데 마장으로 인해서, 병통으로 인해서 공부가 방해되고 장애를 주어서 결국은 못하게 되는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공부는 자기관리가 잘 되어야 돼요. 늘 용심이 원만해야 돼요. 그래야 공부가 무난해서 참으로 수행하는 보람과 긍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마장을 흔히 마구니라고 표현하기도 해요. 악마라고도 하기도 하고요. 어쨌든 공부에 지장을 초래하는, 지장을 주는, 공부를 방해하는 악마 같은 마구니가 바로 마장입니다. 흔히 마장에는 병마(病魔)가 있고 색마(色魔)가 있고 재마(財魔)가 있고 흔히 가장 많이 느끼는 수마(睡魔)가 있고 혼침(昏沈)과 산란(散亂), 상기(上氣)등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병마는 병 때문에 공부가 안 되어서 장애를 일으키는 그런 경우를 말하고, 색마는 이성관계로 공부에 방해가 된다 해서 색마라 그런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분은 돈을 너무 알아서, 재물에 너무 빠져서요, 결국은 돈을 너무 좋아하고 재물을 사랑하는 그 마음이 공부를 방해하는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그 어떤 경우든 공부인의 지혜를 끊게 돼요. 즉 마를 좋아하다 보면, 마에 빠지다 보면 결국은 지혜가 없어서 공부조차도 멀어지기가 쉽습니다. 그 많은 착한 법을 타파하고요. 불법이나 화두법마저도 멀어지게 해요. 그래서 결국은 공부를 또 못하게도 합니다. 그러면서 참선자를 구렁텅이에 빠지게 해요.

 

이 오욕(五慾)에 탐착해서 공부에 큰 장애가 되기도 합니다. 그 오욕이란 뭐냐? 재(財),색(色),식(食),명(名譽),수(垂) 즉 재물과 색(이성)과 먹는 것과 명예와 잠자는 것. 즉 공부를 장애하는, 방해하는 중요한 다섯 가지래요. 그 다섯 가지에 탐착해서 공부에 큰 장애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마장(魔障)은 순마(順魔)와 역마(逆魔)가 있어요.

 

순마(順魔)는 뭐냐? 수행자의 감정이나 의욕에 잘 순응(順應)해서요, 아주 교묘하게 공부를 장애하는 것을 순마라 합니다. 역마(逆魔)란 뭐냐? 수행자의 의지나 감정에 거슬러서 도심(道心)을 파괴하는 그런 마장이래요. 그래서 역마가 훨씬 공부하는 데 장애가 되기도 합니다.

 

공부하다 보면 이런 마구니, 저런 장애가 흔히 있는데, 그 마구니는 선한 모습을 하든, 악한 모습을 하든, 어떤 마장이라도 일어나면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아야 돼요. 그런가 하면 그 마장이, 색마(色魔) 같은 경우는 막 빠지고 자신도 모르게 좋아하게 돼요. 그러나 빠지고 기뻐하지는 말아야 돼요.

 

그 마(魔) 자체가 본래는 씨앗이 없어요. 수행자가 바른 생각을 잃는 데서 마는 움이 트고 수행자를 괴롭히게 됩니다. 그 “마구니는 숫자가 대단하다” 그래서 ‘팔만사천 마구니다’ 합니다. 팔만사천이란 수행자의 번뇌망상이 팔만사천 가지나 된다는 거래요. 즉 번뇌망상 자체가 다 마구니가 될 수가 있다는 거래요. 그래서 번뇌망상은 공부를 장애하는 가장 큰 요인이 됩니다.

 

중생들은 그 환경에 순응해서 공부를 하니까 별탈이 없어요. 그러나 도(道)가 좀 높을수록 흔히 “도고마장(道高魔障)이다” 해서 도가 높을수록 마(魔)는 점점 성해져요. 그래서 정진하기가 좀 어렵다 합니다. 그것은 왜냐? 도가 높을수록 환경에 거역해요. 환경을 거부해요. 그래서 마장이 더 성해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옛 어른 말씀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불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魔)가 생긴다” 했습니다. 겨울에 벽에 틈이 생기면 찬바람이 많이 들어옵니다. 그렇듯이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꼭 들어와요. 그래서 수행하는 사람의 마음은 아주 빈틈이 없어야 돼요. 그 어떤 마도 들어올 수 없을 정도로 타이트한 그런 마음을 늘 가져야 됩니다.

 

그래서 옛 선사는 “마군(魔軍)의 일을 보면 일만 개의 화살로 마음을 찌르는 듯이, 한 마군의 소리를 들으면 천 개의 송곳으로 귀를 뚫는 것 같이 하라.”고 했어요. 그 일만 개의 화살로 마음을 찌르는 듯이, 그런가 하면 마군의 소리를 들으면 천 개의 송곳으로 귀를 뚫는 것같이 해라.

그 어떤 소리를 듣거나 어떤 경우도 마음을 움직이지 말라는 거래요. 그래서 수행을 하는 사람일수록 마음은 항시 어떤 마군이 와서 찝쩍이든 흔들더라도 꿈쩍 안 할 정도로 그렇게 대단한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마가 생기면 정신을 바짝 차려서 자신과 공부를 점검해 봐야 됩니다. 바른 법에는 절대 마가 없어요.

 

이 공부하는 데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을 흔히 수마(睡魔)다 합니다. 졸음, 잠이라고 해요. 좀 애써서 정진하다가 보면 망상은 차츰차츰 줄어들어요. 그러나 연일 계속되는 그런 정진을 애쓰다 보면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이 수마다.” 흔히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도를 닦는 데는 잠이 아주 장애가 된다” 해서 수마라는 표현까지 씁니다. 그래서 선방 스님들 중에서 흔히 하는 이야기가 “이 잠만 없으면, 이 졸음만 없으면 벌써 견성했을 것이다.” 그런 말씀도 하시는 분이 있어요. 즉 그럴 정도로 졸음은 공부하는 데 아주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이 졸음이 오기 시작하면 눈가죽이 좀 뻣뻣해요. 그런가 하면 아주 무거워져요. (졸음이) 온다 싶으면 정신을 좀 바짝 차려서, 허리가 그럴 때는 대체적으로 굽어요. (그러면) 허리를 쭉 펴고 뒷 좌복을 좀 높입니다. 그래서 정신을 바짝 차려서 화두를 들되, 화두가 약한 사람은 한두 번 소리를 내서 화두를 바짝 들면 화두가 잘 들리기도 합니다.

 

그래도 졸음이 물러가지 않는 사람은 방 밖으로 나가가지고요, 뒤꿈치는 들고요, 걷는 거래요. 한 몇 분만 걸어도 아주 좀 맑아집니다. 기분이 좋아지고요. 화두 할 그런 가뿐한 기분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래도 졸음이 오시는 그런 분은 냉수로 세수를 한다든가 아니면 체조라도 한다든가 좀 경행을 한참 더 한다든가 그래서 이 졸음을 물리쳐서 앉을 때는 좀 바짝 앉고 아주 짬지게 그렇게 앉으시기 바랍니다.

 

수면은 흔히 알맞게 해야 된다 그렇게 말합니다. 적당하게 해야 됩니다. 보통 수행자는 한 4시간 내지 한 5시간이면 적당하다고 해요. 수행이 잘 되는 분은 두 시간 내지 한 세 시간만 해도 하루 종일 막 초롱초롱한 정신으로 그렇게 공부할 수도 있습니다. 두 시간 내지 세 시간 자도 반 시간 정도는 숙취하고요. 한 시간 반 정도는 선잠에 들어요.

 

그래서 바깥에 바람이 부는지 비가 오는지 문이 삐그덕 소리 나고 심지어 도반이 들락거리는 것까지 느낍니다. 그렇게 잠을 안 자도 하루 종일 초롱초롱한 정도가 돼요. 현대의학에서는 보통 사람은 여섯 시간 내지 한 일곱 시간을 자야 된다 하지만 사실은 잠도 습관이래요. 잘 되면 그렇게가지 안 자고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어쨌든 잠은 적당하게 자야, 도 닦을 마음이 나고요. 좀 간절하고 아주 성심성의껏 애쓰면 그런 마음이 일어나기 쉽습니다.

 

그런데 잠을 많이 자면 자연히 도가 멀어져요. 그러다가는 마침내 도 닦을 마음까지도 서서히 멀어집니다. 심하면 마음이 어두워져서 선근(善根)을 잃게 돼요. 반대로 너무 적게 자면 수행다운 수행을 할 수도 없는 그런 정도가 됩니다. 적당히 알맞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정진할 때 예사롭게 조는 분이 있어요. 어떤 분은 앉으면 졸아요. 또 조는 분 중에서는 수시로 조는 것을 즐기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드는 분도 있어요. 그렇게 습관적으로 조는 분들은 정신을 좀 바짝 차려서 적어도 정진시간에는 안 졸려고 노력하고 애를 쓰셔야 됩니다. 노력하고 애쓰는 정도가 아니라 정진시간에는 절대! 절대! 안 졸 수 있는 정신적인 무장이 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졸음은 어떻게 해서라도 참고 견뎌서 자기의 정신상태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되셔야 됩니다. 졸면 좌선이 아니래요. 참선자는 졸면 이미 참선자가 아니래요. 참선자는 졸지 않을 정도로 정신력이 아주 강해야 됩니다. 그러려면 참선에 대한 간절한 그런 마음이 있어야 되고 지극한 정성이 있어야 됩니다.

 

조는 것도 습관이고 조는 그런 흐리멍텅한 정신으로 수행은 물론 안 해야 되고요. 여러분이 세속에서 사시면서도요, 어떤 일을 한다든가 무슨 일을 하드래도요, 안 졸 정도로 그렇게 정신적으로 무장이 되어서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시도록, 즉 수행으로서 여러분의 근본 마음까지도 습관까지도 고칠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되시기 바랍니다.

 

숫타니파타에서 말씀하시기를 “일어나 좌선하라! 잠을 자서 너에게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독화살에 맞아 고통 받는 이에게 잠이 웬말인가” 하면서 잠에 대한 심한 경책을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참선자는 자신이 독화살에 맞아서 죽어가고 있는 그런 사람에 비유하라는 거래요.

 

부처님께서는 무상(無常)에 대한 여러 말씀을 많이 했지만 “이 순간 숨 한 번 들이켰다가 내쉬지 못하면 바로 내생(來生)이다.” 그런 말씀을 여러 곳에서 말씀했어요. 건강한 것 같고 젊은 것 같고 어디 가도 막 큰소리치고 당당할 것 같지만 아무리 건강체라도요, 젊은 사람도 아주 팔팔한 사람도 숨 한 번 들이켰다가 내쉬지 못하면 바로 내생이라는 거래요. 그것을 직시하라는 거래요.

 

그래서 항상 ‘이 몸뚱이가 언제 어찌될지 모른다’라는 최악의 상태를 늘 생각하면서 이 공부를 한 번 한 번 예사롭게 하지 마시라는 것이 부처님 말씀입니다. 죽음의 먹구름이 늘 서서히 여러분 자신을 덮고 있는 줄 알아서 꾸벅꾸벅 존다든가 망상을 피우는 그런 일은 절대 절대 없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부처님의 십대제자 중에서 아나율존자라고 있었어요. 그분은 흔히 ‘천안제일(天眼第一)이다’ 그렇게 존경을 받는 분인데 그분은 졸음이 많았던가 봐요. 어느 날 꾸벅꾸벅 졸다가 부처님께 꾸중을 듣습니다. “아나율이여, 출가수행자가 그렇게 졸면서 어떻게 도를 닦을 것이냐? 그렇게 하면서도 수행자라 할 수 있느냐?” 하고 대단한 질책을 받습니다.

 

어찌나 부끄럽고 괴롭던지 그 순간은 얼굴을 들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큰 결심을 하는 거래요.“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졸지 않으리라.” 그런 큰 결심을 하고는 칠일간이나 눈 한 번도 안 붙였어요. 그렇게 애쓰니까 너무 심하고 너무 지나쳐서요 양쪽 눈이 다 물러 버렸어요. 그래서 실명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애쓴 덕분에 천안통(天眼通)을 얻는 거래요. 즉 깨쳐서 아라한과를 얻어서 천안통, 거리의 멀고 가까움이나 어떤 장애물이 있고 없고 관계없이 수 십리 수 백리 밖을 볼 수 있는 아주 대단한 천안통을 얻게 됩니다.

 

하루는 부처님이 안 계셨는데 대중이 막 부처님을 찾느라고 부산했어요. 찾을 수가 없는 거래요. 그래 아나율존자가, 그 봉사가 나타나더니 “지금 부처님은 몇 십리 밖에서 몇 백 대중 앞에서 법문을 하고 있다. 여러분 안심하시오.” 하는 이야기를 듣고 모두 감동해서 존경했다는 그런 일화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 공부를 잘하면 그런 천안통과 같은 신통한 경계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어제 그저께 서울에서요, 어떤 처사가, 여기 자주 드나드는 처사이기도 한데 하루는 공부를 하다 보니까 막 벽이 무너지는 것 같더라는 거래요. 그 뭐냐? 벽이 무너지는 것 같더니 바깥이 훤히 보이더라는 거래요. 바로 천안통이래요. 그렇게 바깥 경계 뿐만 아니라 여기 앉아서 봉화 터미널에 차가 들어오고 나가는 것도 알 수 있는가 하면 아주 대단한 분은 서울이나 대구의 아파트에 지금 누가 뭐하고 있는 것까지도 알 수 있습니다.

 

아주 심안(心眼)이 맑으면 보통사람이 헤아리기 어려운 좀 불가사의한 어떻게 기적과 같은, 그건 기적이라고 할 수도 없어요. 누구나 심안이 맑으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래요. 그렇게까지 볼 수가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심안(心眼)입니다. 여러분께서도 좀 지극하게 졸지 않고 좀 애써서 그런 신통한 경계도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옛 선사들은 졸음이 오면 바늘이나 송곳으로, 어떤 분은 막 허벅지를 찌르면서 공부했다는 그런 분도 있어요. 그런가 하면 저 천장에서 로프를 내려 목에 걸고 했다는 그런 일화도 있고요. 그런 분은 많아요. 그런가 하면 어떤 뾰족한 칼끝이나 송곳 같은 걸로 목에 대고 까딱만 해도 찔릴 수 있도록 그렇게 애썼다는 그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옛날에 자명스님이라고 아주 유명한 스님이 계셨어요. 도에 참 대단한 뜻을 두신 분이래요. 그래서 조석으로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애쓰고 애쓰는데도 저녁에는 그렇게 잠이 많이 오는 거래요. 그래서 잠 올 때마다 송곳으로 자기 허벅지를 막 찌르면서 정진했는 거래요. 허벅지가 그 송곳에 찔려서 피맺힌 얼룩이 마치 돌 같았다.’그런 기록이 있습니다.

 

그분의 말씀에 이런 말씀이 있어요. “옛 사람은 생사(生死)의 큰일을 위해서 먹지도 자지도 않았다던데 나는 어떤 사람이기에 이렇게 방종한가? 살아서는 시대에 도움이 못 되고 죽어서는 남을 이름이 없으려니 이것은 자신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하면서 아주 애썼다는 거래요. 생사의 큰일을 위해서, 즉 이 공부는 생사까지도 초탈할 수 있는 대단한 공부 아주 큰 공부가 바로 이 공부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말도 생각을 해 보셔도 좋겠어요. 내가 과연 이 시대에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죽어서는 남을 이름이 없으려니, 죽기만 죽으면 그 이름이 없어질 것 같은 거래요. 대부분이 그렇잖아요. 아주 대단한 분 아니면 뭐 돌아가셔서 몇 년만 지나면 잊혀지는 그런 존재가 됩니다.

 

우리 자신이 바로 느끼는 그런 말씀이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극성을 다해서 공부하더니 훗날 크게 깨치는 거래요. 그래서 분향선사라고 아주 유명한 대도인이 있었는데 그분의 법을 이었어요. 훗날 “서하의 사자다.” 서하라는 곳의 사자. 사자는 부처님을 비유해서 사자라고 합니다. 사자라고 칭송을 받았다는 그런 분이 있었어요. 그분이 어찌나 어찌나 송곳으로 많이 찌르면서 공부했던지 늘 피맺힌 허벅지였다는 그런 기록이 있습니다.

 

참선자는 졸음이 와도 이겨낼 정도로 의지가 강해야 돼요. 그래서 눈은 언제나 초롱초롱하고 생기가 넘쳐야 돼요. 그런가 하면 화두는 분명하게 생기 있게 의정을 일으켜야 돼요. 즉 산 의정을 일으켜야 돼요. 세속에 사는 여러분께서는 정진뿐만 아니라 일상생활도 그렇게 선(禪)적으로, 즉 화두 하듯이 하려고 애를 쓰셔야 될 거래요. 그래 하면 사실은 알 될 일이 거의 없을 거래요.

 

그래서 옛 선사는 “화두참구는 고양이가 쥐 잡듯이 한다” 했어요. 고양이가 쥐 잡을 때는요 쥐가 쥐구멍에 들어가는 것만 보기만 보면 얼른 가가지고 쥐구멍 앞에 탁 버티고 앉는다는 거래요. 그러고 꼼짝 않는다는 거래요. 나오기만 나오면 처치하려고. 고양이가 평소에는 자기보다 큰 사람이나 짐승이 가면 눈치를 보고 피하기도 하는데 쥐구멍 앞에 앉아 있을 때는 눈치도 안 보고 꼼짝 않는다는 거래요. 그렇게 앉아 있을 때는 두 눈에 불이 철철 흐를 정도로 그렇게 오직 쥐구멍만 노려보다가 쥐가 나오기만 나오면 그냥 덮쳐서 포식을 한답니다.

 

그렇듯이 화두할 때는 주변을 조금도 의식하지 않아야 돼요. 그러면서 마음의 눈인 화두를 한 곳에 매어두고요. 아주 또렷또렷하게 아주 생기 있게 살아있는 정신으로 화두를 해야 돼요. 흔히 화두가 안 된다, 안 된다 하는데, 그렇게 안 하니까 흐리멍텅하게 하는 둥 마는 둥 그 의정(疑情)이 일어나는 둥 마는 둥 하니까 잘 안 되는 거래요. 화두할 때는 막 빠지듯이 막 오직 그것뿐이듯이 대단한 마음을 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분명하게 깨어있는 공부, 살아있는 의정을 일으켜야 돼요.

 

그래서 참선하는 분은 언제 어디서나, 항시 조금도 화두가 어둡지 않아야 됩니다. 이렇게 어둡지 않을 정도로 하면 자연스럽게 용맹정진이 돼요. 그래서 꽉 잡고 의심이 맹하지 않아야 돼요. 의심덩어리가 참으로 크게 되어서 놓을 래야 놓을 수 없고 버릴래도 버릴 수가 없는 그런 대단한 의정이 됩니다.

 

둘째는 뭐냐? 혼침(昏沈)과 도거(悼擧), 혼침과 산란입니다. 혼침과 산란도 정신을 바짝 차려서 가급적이면 안 하도록 해야 됩니다. 정진하다 보면 혼침과 산란, 도거에 빠지기도 합니다.

 

혼침은 뭐냐? 정신이 혼미해서 화두 없이 정신이 몽롱한 상태를 말해요. 즉 화두 없이 멍청히 앉아 있는 그런 상태를 말해요. 도거(悼擧)는 뭐냐? 마음이 안정이 되지 못하고 산란하고 번거롭고 막 흔들리는 그런 경우를 말합니다. 즉 정진이 참으로 안 되는 그런 상태를 흔히 도거다, 산란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혼침은 어떤 때 오느냐? 화두가 제법 성성하게 들리다가 졸음에 빠지면 혼침이 와요. 화두가 아주 힘이 강하면, 아주 성성하면 아무리 졸아도 혼침에 안 빠져요. 혼침에 빠지는 것 같아도 화두는 전혀 없어지지 않아요. 그건 좀 졸지만 ‘졸음이 아니고 혼침이 아니다’, 그렇게 볼 수 있어요.

 

어쨌든 화두가 제법 되지만 아주 성성하게 되지 않는 상태에서 졸음에 빠진다든가. 둘째는 화두가 되다가 말다가 하는 그런 주작 화두(做作話頭, 화두가 잘 되다가 말다가 하는 상태)에서, 즉 맹렬하지 못한 상태에서 화두를 놓치면 혼침에 빠집니다. 그럴 때는 절대 화두를 안 놓쳐야 돼요.

 

셋째는 화두가 적적한 상태에서 이 고요함을 좋아하다 보면, 그 고요한 것이 좋아아져요. 그래서 옛 어른들은 “마치 꿀을 먹는 듯하다.” 그 꿀 먹으면 얼마나 좋아요. 아주 달콤하지. 그래서 고요함에 빠지면 고요함을 놓치려 하지 않아요. 그러다 보면 화두는 자연스럽게 없어져서 아주 몽롱한 그런 상태가 됩니다. 그런 상태라든가 어떤 분은 화두가 막 뜻과 같이 안 되니까 좀 잘 되게 하려고요 막 끌어올리듯이 하는 분이 있어요. 그러다 보면 혼미한 상태에 빠지기도 합니다.

 

혼침과 도거는 참선자의 대표적인 병통이래요. 그래서 큰 장애가 됩니다. 혼침과 도거의 두 마구니는 참선자의 정신이 나태한 마음과 망상으로서 또렷하고 분명하게 오롯이 깨어있는 공부를 안 하기 때문이래요. 즉 흐리멍텅하게 공부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가 하면 화두는 간절하게 해야 하는데 간절함도 없고요. 진심으로 성심성의껏 해야 되는데 그런 마음도 없이 하기 때문이고 뜻을 돈독히 세워서 오직 이 길 밝힐 것만 힘쓰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경우가 생깁니다.

 

참선자는 “오직 이것뿐이다. 이것은 안 할 수 없다. 반드시 해야 된다. 꼭 해야 된다.” 라는 그런 마음을 가지면서 한 번 잡으면 놓지 않는 그런 대단한 정신 상태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어쨌든 혼침과 산란이 일어나거든, 그걸 혼산(昏散)이라 하는데, 혼산이 일어나거든 정신을 좀 바짝 차려야 돼요. 그래서 좀 바짝 차린 그런 상태에서 화두를 참으로 애쓰면 화두가 의외로 잘 되기도 합니다.

 

어쨌든 화두하는 분은‘적어도 혼침과 산란은 없어야 된다. 그런 정신 상태로는 아무것도 하기가 어렵다.’그런 생각을 하면서 평소에도 여러분이 가정생활에서도 그런 분이 계시거든 정신을 바짝 차려서 뭘 하더라도 정성껏 간절한 마음으로 하는 그런 습을 꼭 들이시기 바랍니다.

 

혼침과 산란이 일어나면 좀 눈을 부릅뜨고요. 그럴 때는 보통 허리가 구부정해요. 그래서 허리를 쭉 펴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요. 뒷 좌복을 좀 높이고요. 척량골(脊梁骨, 등골뼈)을 좀 꼿꼿이 해서요. 그래서 좀 힘차게 좀 되게 그렇게 밀어붙이듯이 애쓰면 화두가 됩니다. 그렇게 애쓰되 마음이 움직이거나 그치는 곳에다가 화두를 분명하게 들어가야 돼요. 그냥 막연하게 화두를 들어가면 잘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화두가 아주 진실하고 간절하면 혼산은 저절로 서서히 사라집니다. 혼침과 산란은 본래 자성(自性)이 없어요. 실체가 없어요. 알고 보면 우리의 근본자성이라, 그래서 “정신이 혼미하고 마음이 산란해지는 그대로가 즉 본래면목이다” 그런 것을 느낄 날이 있을 겁니다.

 

다만 혼산은 참선하는 사람의 생각이 아주 진실하지 못한 데서 와요. 간절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늘 하시면서 아주 진실하게 아주 간절하게 아주 성심성의껏 하려는 마음을 늘 가지셔야 합니다. 그래서 화두는 더 순순히 돼서 화두가 아주 성성하고 아주 적적하게 들려야 됩니다.

 

성성(惺惺)이란 뭐냐? 아주 또렷또렷하고 깨어있는 상태. 적적(寂寂)은 뭐냐? 아주 고요하고 고요한 상태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성성은 어둡지 않고 깨어있음으로써 흐릿하고 멍청한 마음을 다스리는 작용을 말해요. 그런가 하면 적적은 한결같이 고요함으로 객관의 경계와 온갖 번뇌망상을 다스리는 본체를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흔히 화두가 잘 되느냐 못 되느냐는 “얼마나 성성하고 얼마나 적적하냐?”로 따지시면 됩니다. 그래서 화두가 성성하고 아주 적적하게 들리면 그것이 적당하게 아주 밸런스가 맞으면 깨침이 서서히 가까워집니다. 이 혼침은 공부하는 데 큰 장애가 된다 해서 옛날 어른스림들은 혼침에 빠지면, 산란심에 빠지면 야단치셨어요. 아주 심한 경책을 했습니다.

 

화두도 없고 멍청하게 아주 혼미한 상태로 나무덩굴처럼 앉아 있는 그런 참선자는 사람 취급도 안 하는, 수행자 취급도 안 하는 그런 스님도 있을 정도입니다. 어떤 분은 큰 몽둥이 같은 장군죽비로 그냥 막 내려치듯이 사정없이 때린 그런 분이 있는가 하면 멱살을 잡고 막 따귀를 치기도 하고요. 그런가 하면 어떤 분은 물구덩이에 처넣기도 했어요.

 

또한 한겨울에 옷을 발가벗겨서 그 추운데 내몰아치기도 하고요. 어떤 분은 그런 사람은 밥값도 못한다 해서 아예 밥도 주지 않는 그런 선사가 있을 정도로 그렇게 엄하게 다스려도 괜찮은 분이 바로 혼침과 산란에 빠진 분이다. 즉 가장 장애를 많이 받으면서 정진하는 분이다 해서 아주 엄한 경책을 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40년 가까이 전에 여름 안거를 경상남도 원래 관음사라고 했던, 향곡스님이 계시는 묘관음사에서 살고, 서울 도봉산 망월사에 춘성스님이라는 아주 도인스님이 계신다 해서 망월사에 올라가서 해제철을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춘성스님은 누구냐? 만해 한용운스님의 그 유일한 상좌래요. 그런데 성격이 아주 괄괄하고 남성적이고요, 선지도 있는 분이라 흔히 도인이다 소리를 듣던 그런 분이래요.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6.25사변 직후라 그때 망월사는 퇴락이 되어서 아주 형편이 없었다는 거래요. 절을 고치려고 해도 고칠 길이 아주 막연한 거래요. 그래서 노장이 그 주변에 한 200-300년 된 소나무가 많았답니다. 그 소나무를 수십 그루를 베어냈던 거래요. 그래가지고 어떻게 해서라도 중창을 하려고요. 그 소나무를 그렇게 많이 베어 제꼈으니 신고가 들어간 거래요.

 

의정부 서장이 아무 날 온나 하면서 오라고 통지가 왔더랍니다. 그래 노장이 갔는 거래요. 망월사 큰스님이 내려왔다 해서 서장이 직접 취조를 하더라는 거래요. 취조하는데 서장이 “스님, 스님 본적이 어디입니까?” 물은 거래요. 그러니까 노장이 성큼하시는 말씀이 “내 본적이 우리 아버지 자지지.” 했다는 거래요. 그러니까 그 말을 들은 서장이 하도 기가 막히니까 버럭 화를 내면서 책상을 꽝 치면서 무슨 소리냐고 야단치더라는 거래요.

 

그러면서 또 “스님, 그거 말고 본적을 물었는데 그리 말씀하시면 되느냐” 본적이 어디냐?”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 그거 아니면 우리 어머니 그거지.”하더라는 거래요. 그런데 그 노장님은요 그런 말을 해도요 조금도 부끄러운 생각을 하지 않는 분이래요. 직설적으로 그대로 표현하는 분이래요.

 

그러니까 서장이 할 말도 없고 더 물어볼 것도 없는 거래요. 고래고래 고함을 치면서 “이 늙은 중이 미쳐서 환장했구나.” 하면서 가라고 하더랍니다. 그러니까 노장이 나오면서 하는 이야기가 “바른 말 했는데 그것도 못 알아들어” 하면서 나오시더라는 그런 이야기가 있는 분인데.

 

그 스님은 그렇게 직설적으로 바로 말을 하는 그런 분이었는데, 즉 그것이 선(禪)이다. 그게 바로 선이래요. 보통사람은 본적이 어디냐 하면 경상북도 봉화군 어떻고 저떻고 이야기를 할 텐데 그거는 몇 다리를 걸친 이야기래요. 이 선은 바로 그렇게 이야기하는 거래요. 즉 직관(直觀), 본래로 느낀 대로 바로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선이래요.

 

어쨌든 여러분께서 그것을 바로 느끼면 바로 이 자리가 부처자리다. 처음에도 말씀드렸지요. 가장 행복한 자리가 이 자리라는 거래요. 그분은 삶까지도 비슷해요. 옷도 한 벌로 사셨어요. 때가 잔뜩 묻으면 저녁에 대중이 다 자는데 살그머니 나가가지고 혼자 빠시는 거래요. 빨고는 설렁설렁 흔들어서 약간 꾸들꾸들하면 그냥 입는 거래요. 어떤 경우는 하도 때가 새까맣게 묻으니까, 비구니스님 절에 가면 옷을 한 벌씩 해주는 그런 예가 있다고 해요. 그러면 그 한 벌 새 옷 갈아입고는 그 헌 것은 그냥 버리고 나오는 거래요. 돈도 객스님들이 오시면 돈이 있는 대로 호주머니에 손 넣어가지고 그냥 잡히는 대로 그냥 주는 거래요. 뭐 헤아리고 그런 법이 없어요.

 

그래 그 참 좋은 평을 듣는 분이라 해서 그분이 과연 어떤 분인가 해서 좀 알고 공부를 배우려고 갔더니 해제라 다른 대중들은 다 내려가고 노장님하고 어떤 수좌 한분이 계셨어요. 그런데 노장님은 열시쯤 되면 눕는 거래요. 열두시 되면 정확하게 일어나요. 이불 덮는 법이 없어요. 늘 좌복으로 배만 덮고 주무시고는 했는데 그 수좌는 해제철이고 하니까 거의 책이나 보고 뒷동산에나 가고 서울 시내나 나가고 그래요. 그러니까 하루는 노장님이 부릅디다.

 

“이 사람아, 그래 살면 되나. 그러면 중이 아니다. 잘 살아라.” 정중하게 좀 나무라시대요. 그런데 그 스님이 그 이야기를 듣고도 추석 무렵이 되었는데 더 심해지는 거래요. 아예 앉을 생각을 않는 거래요. 그런데 추석이 지나고 어느 날인데 그날은 좀 일찍 큰방에 와서 앉아요. 앉자마자 막 코를 고는 거래요. 골아도 덜덜 골아요. 무려 두 시간 가량 코를 골아요.

 

마침 마지 종이 울릴 때가 되었는데 종이 울리니까 그제야 노장이 벌떡 일어나더니 그 스님 멱살을 쥐어요. 막 끌고 나가요. 그 앞에 수곽이 있는데 수곽에 그냥 거꾸로 집어넣어 버리는 거래요. 그러니까 그 스님은 물을 먹어도 꽤 먹은 것 같아요. 그 스님이 쓰는 소지품 일체를 막 꺼내더니 태우라고 하는 거래요. 그러더니 그 다음날 속복을 입혀 가지고 산문출송을 시키는 거래요.

 

옛날에 이조 때 우리네 할머니들 시집가서 칠거지악에 걸리면 쫓겨났잖아요. 그렇듯 절에서 쫓겨나는 거래요. 부목 옷을 입혀서 쫓아버리대요. 훗날 노장님 말씀이 “저런 사람이 마구니다. 절대 저래 공부해서는 안 된다. 저런 사람은 죽여도 죄가 안 된다. 세속 법으로는 참 죄가 되지. 그러나 절법으로써, 수행자 입장에서는 죄가 안 된다.” 그렇게까지 강하게 말씀하시대요.

 

그러고 나서 며칠 뒤인데 노장님이 서울 다녀오더니 아주 기분이 좋아가지고 싱글벙글하면서 도량을 왔다 갔다 해요. “스님,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그러니까 “좋은 일이 있지. 좋은 일이 있어.” 그 좋은 일이 뭐냐? 망월사 올라가는데 계곡이 있는데 계곡에 어떤 스님이, 그 스님도 옷을 한 벌만 가진 스님이래요. 오다가 물이 좋으니까 옷을 빨아가지고 바위에 척 널고는 발가벗고 참선한다고 앉아 있던 거래요.

 

그러니까 그 모습이 그렇게 보기가 좋은 거래요. 그래 와 가지고 “좋다. 좋다.” 좋으면 그 스님은 욕을 잘했어요. 금방 욕을 연거푸 계속 해대는 거래요. 욕이 아니라 사실은 보통사람이 들을 때는 욕이지만 욕은 욕이되 욕이 아니래요. 그런데 그 스님이 그날 저녁에 올라오더니 그때 겨울나무 하려고 주변에 나무를 많이 베어놓았었어요.

 

그 다음날 그 스님이 그 많은 나무를 한 20일간 걸려가지고 나무를 자르고 쪼개고 반듯하게 잘 개놓고는 하루는 다 하고는 옷을 빨아 입고는 그 다음날 아침에 내려가려고 해요. 막 내려가려고 하는데 노스님이 부릅디다. 그래 불러서 가니까 뭐 이만한 보따리를 하나 줘요. 제법 큰 보따리래요. 다들 멀리 가니까 수고한 스님이라 먹을 것을 좀 싸드리는가 했더니 그 뒤에 그 스님한테 이야기를 들으니까 그게 돈 보따리란 거래요.

 

그때 망월사 종(鐘) 불사하려고 모아돈 돈을, 그때만 해도 저축할 줄 아나? 몰랐을 거래요. 절에 가지고 오는 족족 모아놨는 거래요. 그 모은 돈을 전부 줘 버린 거래요. 주고는 “아이, 종 불사 잘했다. 아이, 종 불사 잘했다.” 하면서 그 잘했다고 막 기분이 좋아하던 그런 기억이 납니다.

 

즉 그런 노장은 공부 잘하고 깨끗하게 사는 사람은 그렇게 막 좋아하는 거래요. 있는 것 다 줘버린 거래요. 그런가 하면 공부 안 하고 못난 짓 하는 그런 스님들은 뭐 볼 것 없이 나무라고, 물구덩이에 집어넣고 한참 이렇게 그냥 물에 푹 잠기게 하는 거래요. 그때 사실은 죽는 줄 알았어요. 그래도 괜찮다는 거래요. 즉 법에 대해서는 그렇게 대단한 그런 분이기도 했습니다.

 

옛날 스님들은 그렇게 공부에 대단한 마음을 가지면서 이 공부를 위해서 아주 애를 쓰고 애를 썼습니다. 참선자의 정신은 살아있어야 해요. 언제 봐도 눈망울이 똘망똘망해야 돼요. 아주 초롱초롱해야 돼요. 쥐 잡으려는 고양이처럼 막 생기가 있어야 합니다.

참선하려는 마음을 낼 때는 거의 졸지 않아야 돼요. 거의 앉으면 조는 분이 많은데 아예 앉으면 안 존다는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어떻게라도 좀 물리치는 그렇게 대단한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참으로 자신의 정신력이 강화돼서 일상생활 살아가는 데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수면이나 혼침은 의지나 정신력을 시험하는 좋은 척도가 됩니다. 수면이나 혼침이 조절되지 않으면 ‘나는 아직 정신력이 부족하다. 나는 아직 공부할 정도가 못된다. 공부할 생각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화두 이전에 자기의 결심을 꼭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셋째는 뭐냐? 화두 공부 중에 가장 참기 어려운 것이 바로 상기(上氣)래요. 기운이 올라가는 것, 열이 올라가는 것. 이 상기는 어떤 때 상기 증세이 오느냐?

 

화두를 머리로 드는 사람이 있어요. 화두를 머리로 들면 그건 백사람이면 백사람, 천사람이면 천사람 다 상기가 있습니다. 화두는 절대 목전(目前)으로 들거나, 눈앞에 30센티미터 정도 아니면 일 미터 전방쯤 정도 아니면 또 단전(丹田)에 집중해서 들지 절대 머리로 들면 안 됩니다.

 

그렇게 머리로 들거나 화두에 진의(眞疑)가 나지 않아서 억지로 막 신경을 쓰고 화두를 참구한다든가, 그 진의가 안 나니까 어떻게 해서도 진의가 막 나게 하려고요, 막 힘을 모아서 애쓰는 그런 분도 있습니다. 그런 분은 잘 안 돼요. 그런 분은 거의가 상기증상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화두가 되다가 말다가 하니까 막 무리하게 밀어붙이듯이 애쓰시는 그런 분도 있어요. 그런 분도 상기증세가 있기가 쉽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분은 속효심(速效心)을 내서 ‘얼른 화두가 되게 해야지. 얼른 깨쳐야지. 얼른 공부가 잘 되게 해야지.’그런 속효심을 내서 막 육단심(肉團心)으로 밀어붙이듯이 애쓰는 그런 분도 상기증세가 거의 있습니다. 화두는 절대 그렇게 너무 심하게 막 억지로 밀어붙이듯이 그런 식으로는 안 해야 됩니다.

 

상기증세가 오면 가슴이 좀 답답해져요. 그런가 하면 열이 올라가요. 목덜미나 머리 뒤로 올라가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다가는 얼굴이 막 불그스레해요. 심하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요. 그런가 하면 가슴이 후끈거리고 꽉 막힌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다가는 온 머리가 후끈거리면서 막 빠개질 것 같기도 해요. 그런가 하면 천근만근이나 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그러다가는 상체 전체로 열이 번지기도 합니다.

 

그러면 눈에는 눈꼽이 끼어요. 막 충혈 돼서 잘 보이지 않고요. 귀는 먹먹하고 잘 들리지도 않아요. 어떤 분은 귀속에서 소리도 나기도 합니다. 입맛도 없고요. 밥을 먹으면 모래를 먹는 것같이 아삭아삭해요. 소화도 안 되고요. 그러면 변비증세가 거의 심해요. 심하면 피를 토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오장육부가 내부가 원만하게 기능을 발휘할 수 없어요. 기능 자체가 서서히 저하됩니다.

 

그런가 하면 각종 병적인 증세로 서서히 발전이 됩니다. 그럴 때는 몸 전체가 감각이 둔해지고요. 삶의 기분을 조금도 느끼지 못해요. 그러면서 아주 괴롭습니다. 심하면 두뇌 핏줄이 파열되기도 한다 하는 그런 이야기도 있어요. 그래서 상기병은 현대 의학으로도 어쩔 수 없어요. 그것은 고칠 수가 없어요. 순간 조금 좋게는 할 수 있어요. 그러나 근본적인 치료는 화두를 안 해야해요.

 

그러나 화두가 참으로 되면 상기병은 그냥 꾀병 같아요. 잘 나아요. 화두로 인해서 난 병은 화두로 고쳐야 된다는 것이, 상기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상기병(上氣病)입니다. 그러나 상기를 겁낼 필요는 없어요.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누구나 땀이 납니다. 그렇듯이 공부를 애쓰고 참으로 지극하게 하고 막 빠지고 막 간절하게 하면 누구나 열기는 있어요. 이 열기가 웬만큼 좀 오르는 것은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 그건 뭐 겁낼 필요도 없고요. 그러나 심하면 그 공부를 하기가 아주 어려운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공부에는 상기(上氣) 정도는 안 오를 정도로 자기 관리가 되어야 돼요. 즉 지혜롭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몸뚱이가 참으로 제대로 지혜로워서요, 몸은 가볍고 아주 맑으면서 정진이 좀 잘 되는 그런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이 상기증세가 쉽게 없어지지 않거든 하복부 단전에 집중해서 화두를 들거나 단전호흡에 의지해서 화두를 꾸준히 참구하면 열이 내리고 맑고 몸은 가벼워져서 괴로움은 자연스럽게 사라집니다.

 

이 상기증세를 한번 심하게 앓으면 상기 노이로제처럼 돼요. 상기만 이야기를 해도요, 열이 올라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신경이 아주 날카로워지고, 번뇌망상이 아주 많은 사람일수록 참기가 어렵고 심합니다. 그런 사람은 화두는 놓고 일체를 쉬어서 늘 단전(丹田)에 집중하면 상기는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좋아집니다.

 

그 열기가 괴로움이나 피로를 해소시키지 못하고 날로 날로 쌓여 가면 아주 신경이 날카로워져요. 그래서 항상 막 찌푸린 얼굴이 되고요. 마음은 괴롭고 불안해서 조그마한 일에도 참을성이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자기 억제와 감정처리에 문제가 생겨요. 그래서 이성을 잃고 수행자답지 않은 그런 언행까지도 하게 되는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상기가 좀 아프고 괴롭더라도 웬만하면 참고 견뎌야 됩니다. 그래서 ‘상기(上氣)의 명약(名藥)은 오직 공부뿐이다. 공부만이 확실하고 분명하게 치료할 수 있다.’는 그런 생각을 하시기 바랍니다. 상기가 오르더라도 크게 괴롭지 않으면 화두에 최선을 다해야 됩니다. 화두는 단 한 번이라도 한 순간이라도 놓치지 말고요. 공부인은 상기증세가 심해서 아무리 참고 견디기가 어렵더라도 그럴수록 자신을 잘 다스리고 안정을 시켜서 상기의 영향을 안 받고 지혜롭게 공부가 잘 되도록 해야 됩니다.

 

참선자는 단 한 번의 착오나 실수까지도 없도록 하는 그런 지혜를 짜낼 필요가 있어요. 그런 지혜는 여러분은 세속에서도요, 그런 지혜로 살아가려고 애쓰시기 바랍니다. 상기증세나 혼침과 산란 같은 것을 체험하면 자기 인생에 아주 좋은 체험이 돼요. 그래서 세속을 사는 사람으로서는 아주 좋은 경험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공부는 아주 적당하게 할 필요가 있어요. 아주 지혜롭게 해야 합니다. 공부도 알고 자기도 알아서 지혜롭게 아주 적당하게 하면 이 공부는 아주 쉽게 바로 될 수 있어요. 그런가 하면 좀 억지로, 좀 무리하게, 법도에 어긋나게 그렇게 하면 공부하고는 아주 거리가 먼 그런 공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공부에 대해 좋은 체험을 하면 그 자체가 참으로 좋은 경험이래요. 그래서 인생에 어떤 경험보다도 좋은 경험이 되어서 일생을 살아가는 데 아주 좋은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이 공부는 좀 잘하면, 전 잘한 것은 아닙니다만, 좀 잘하면 사실 세속에 사시면서 우리 스님들은 충분히 그럴 수 있겠지만 세속에 사는 여러분은 그렇게 좀 어려울지 몰라도,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고 어질게 행동을 하고 그래서 부처님 같은 존경스럽고 거룩하고 훌륭한 그런 모습이 자연스럽게 갖추어지듯이 그렇게 살아가면 바로 공부가 그런 행, 삶 자체가 한데 잘 어우러져서 훌륭한 사람, 존경스러운 사람 더 나아가서 아주 성스러운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는 좋은 공부가 이 공부입니다.

 

아까 신통력 이야기도 했습니다만 그런 것을 느끼면 정말 안 할 수 없는거래요. 오직 이것뿐이다. 이것은 안 하면 자기 손해다.’‘그런 것을 확실하게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공부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이 공부하고 인연 맺은 것만도 아주 다행스럽다’‘정말 복이 많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좀 댁에서도 일상생활 속에서도 잘하기는 좀 어렵더라도 늘 잘하려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 공부해서 여러분의 인생과 행복이 참으로 심오함을 느껴서 보람 있는 그런 사람이 꼭 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되려면 아까 말씀드렸듯이 적어도 혼침이나 수면이나 아니면 산란이나 상기 정도는 물리칠 수 있어야 돼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다스릴 수 있어야 돼요. 그것은 바로 여러분의 평소의 마음가짐이고 자세래요. 그것만 갖추면 자연스럽게 아주 의외로 쉬울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수행에서 느끼는 장애고 방해이기도 하지만 바로 그런 마음이 여러분이 세속을 헤쳐서 성공할 수 있는 좋은 덕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공부는 정신이 아주 나태하고요, 흐리멍텅한 그런 마음을 절대 안 가져야 해요. 온갖 번뇌망상과 흐릿한 마음으로 공부를 또렷또렷하게 아주 분명하게, 아주 확실하게 못하기 때문에 혼침이나 산란심이 옵니다. 또한 뜻을 돈독히 세워서 오직 이 일 밝힐 것만 힘쓰지 않기 때문에 혼침은 오고요, 화두참구를 해도요, 간절하게 아주 진심으로 아주 성심성의껏 못하니까 옵니다.

 

상기는 지혜롭지 못하기 때문에 오고요. 이런 마장이나 증세가 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바짝 차려야 참으로 이 공부를 제대로 할 수가 있어요. 그런 흐리멍텅한 정신으로 사실 될 공부가 아니래요.

 

공부는 마음이 문제다.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마음을 돈독히 가져서 정신을 똑바로 차려서 이 일을 밝힐 것만 생각하듯이 오직 단 한 번도 실수가 없을 정도로 애쓰고 애쓰기를 바랍니다.

 

오늘 날씨가 좀 더운데 밑에 내려가면 그렇게 덥지는 않을 겁니다. 여러분이 공부가 잘 되어서 아주 성성하고 적적한 그런 상태가 되어서 더위도 잊고 심지어 우리 절까지도 잊고요. 삼매에 폭 빠져서 공부하는 보람과 긍지를 꼭 느끼시기 바랍니다.

 

성불하십시오.

 
[출처] 화두참구법 제8강-마장과 병통(2007년 8월법문) (무여스님과 함께하는 화두공부) |작성자 서암합장

[이 게시물은 가람지기님에 의해 2017-03-02 09:15:51 금주의 법문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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