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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호및지난호

불교와 인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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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6-01-23 15:52 조회2,7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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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으로 받은 새로운


세상의 모든 것은 인연이
닿아야 이루어진다. 한 알의 곡식이 여물기 위해서도 뜨거운 태양과
때 맞춰 내리는 비. 그리고 결실기에는 마른 바람이 골고루 불어 주어야
한다. 여러 가지 인연요소 가운데 어느 한 가지라도 갖춰지지 않는다면
곡식은 여물지 않을 것이다. 한 알의 곡식에도 이토록 천지자연의 조화의
인연이 있어야 하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서 있어야 할 많은 소중한 인연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인간은 끝없는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지은 여러 가지 인연이 모여서
지금의 이 생을 받았다고 한다. 육도 윤회의 여섯 갈래 가운데 다른
악취도에 떨어지지 않고 사람의 몸을 받은 것을 보면, 우리가 지은 인연들은
참으로 선근 공덕의 결과라고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인생이 자신이
과거세에 지은 과보를 이 생에 받기 위해 태어났다고 하고, 또 남에게
빚진 것을 갚고, 남에게 해되는 일을 한 것을 참회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말도 있다. 그래서 지은 공덕이 많은 사람은 이 생에서 잘 살고, 좋은
공덕을 닦지 않아 전생에 잘못이 많은 사람은 이 생에 태어났어도 힘겹고
고달픈 삶을 살게 된다고 한다


이 말에 따르면 이
생은 견뎌내야 할 과보일 뿐, 향상도 극복도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인생을 이와 같이 소극적으로 바라보며 살아서 되겠는가?


우리의 삶은 ‘거룩한
만남을 통하여 잘못된 삶을 바로 하고 진리를 깨닫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정의할 수 있다. 즉 우리는 지난 세월에 지은 업에 대해
참회하고 인간의 참된 성품을 깨달아 진정한 행복을 실현하기 위한 삶이라는
것을 알고 살아야 할 것이다.


불자의 신행 생활


안심입명(安心立命)이라는
말이 있다. 마음을 깨달아 생사를 초월함으로써 평안하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세상을 살아나가면서 부딪치는 갈등과 불안을 잠재우고
평화와 안락의 삶을 살아가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불자의 삶이란, 삶의
가치와 기준이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진리에 의지해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이 생에서 단 한 번뿐인 삶을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소중하고 가치있게
보내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른다는 것은 어떤 삶일까?


불교에 입문하신 분
가운데 불교집안에서 어릴 적부터 부처님의 가르침을 자연스럽게 접해
온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종교를 믿지 않거나 다른 종교를 믿다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처음 접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불교는 바른 사고와
실천을 기본으로 하는 종교이다. 그러므로 불교가 추구하는 것은 올바른
삶이며, 얼마나 오랜 기간 동안 신앙생활을 유지해왔는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동안 살아왔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바르게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며 올바른 신행생활을 하며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


반복할 수 없는 소중한
인생에서 어느 한 순간도 소홀히 할 수는 없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삶의 중요한 계기가 되는 시점이 있다. 그 시기는 이전의 삶을 종합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이후의 삶을 규정한다.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는
혼례가 그렇고, 이 세상의 인연이 다하여 생을 마감하는 죽음이 그렇다.
그 과정을 불자로서 잘 맞이하고 이어가기 위해서는 불교적인 세계관과
인생관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불교는 곧 인생의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불교인의 삶은 다른 이들의 삶과 구별되는 중요한
요소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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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
참배


불교인이 되면 불교의
고유한 의례와 의식을 만나게 된다. 의례와 의식은 신앙의 외적 표현이면서
동시에 그 안에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오랜 역사 속에서
문화와 풍습으로 정립되어 온 것이기 때문에 지금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는 다소 형식적일 수도 있지만, 의식에 깃든 참된 의미를 알고 행하면
그 속에 있는 진리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불교의식에는 가장
기본적인 정기 법회가 있고, 입문 의례로서 수계의식이 있다. 또한 개개인의
절실한 소원을 이루기 위해 행하는 다양한 기도와 발원의식이 있고,
종교적 성취와 발전을 위한 수련의례가 있다. 그밖에 불교 나름의 의미가
부여된 특별한 시기에 치르는 명절의례가 있으며, 일반 삶 속에서 흔히
만나는 혼례, 상·장례등의 평생의례가 있다. 또한 일반 신자들이
행하는 의례가 있는 반면 출가 수행자들만이 행하는 전문적인 의례도
있다.


우리 불자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참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하면 자신은 물론 가정과
사회도 더욱 맑고 밝아질 것이다.


1) 거룩한 생명


한 개인의 생명은 타인의
생명과 구별되는 독립된 인격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뗄래야 뗄 수
없는 여러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나를
낳아준 부모와의 인연이 없었다면 세상에 태어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한 생명을 맞이하기 위해 많은 정성을 기울여 왔다. 후손을 바라는 마음에서
백일 치성을 드리거나, 정한수를 떠놓고 빌기도 하였다. 치성을 드릴
때에는 목욕재계하고 깨끗한 흰옷으로 갈아입었으며, 오직 바라는 바를
성취하기 위하여 찬물에 목욕을 하는 등 모든 정성을 다하였다. 귀하게
생명이 얻어지면 태속에 있을 적부터 거룩한 한 생명체로 대접하여 바른
인성을 가질 수 있도록 태교에 정성을 다하였다.


그러나 요즘에는 성개방
풍조로 말미암아 미혼모가 급증하고, 또 남아선호사상의 영향으로 태아
성감별 등을 통하여 인공중절을 쉽게 행하고 있다. 한 통계에 따르면
신생아의 두 배 이상이 인공중절을 당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거룩한
인연으로 만난 생명을 너무나 가볍게 여기는 일이다. 이런 세태에 물들지
말고 생명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하겠다.


아기가 갓 태어났을
때에는 바르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축원해주고, 아이가 성장하여
유치원이나 어린이 법회에 나갈 수 있을 정도가 되었을 때에는 부처님
전에 기원한 부모의 발원을 알려주며 신행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평소에 사찰에 자주 가서 절 분위기에 친숙해지도록 해주고, 스님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배우도록 인도해야 한다. 어릴적부터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하면서 성장하면 나중에는 불교적 덕성을 지닌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어린아이가 부처님께 귀의하고 가르침을
배우고 스님들을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란다면 커서도 바른 인간,
바른 신행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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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여름 수련대회(고운사)


바른 사람, 바른 불교인으로
교육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부처님은 모든 중생이 부처님과 똑같은
성품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의 교육관은 인간 각자가
지극히 거룩한 가치와 덕성을 지닌 고귀한 존재임을 자각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자신에게 거룩한 부처님의 성품이 있음을 알고 자기 자신을
참되게 존중하는 사람은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남을
업신여기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삶을 깨닫고 그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으로 길러내는데 불교교육의
목적이 있는 것이다.


요즘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사회적, 법률적으로 성인으로 인정하지만, 가정에서는 결혼 여부를
성인으로 인정하는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불교에 있어서는 계를 받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수계는 자기 삶을 경건하고 바르게 유지하겠다는
다짐이다. 다만 아직 어린 어린이들에게는 삼귀의와 어린이 오계를 주고,
자라서 스스로의 의지력으로 계를 받아 지닐 수 있을 때에 정식의 오계를
받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2) 불교의 혼례


불교의 혼례 절차는
과거 구원겁 전에 선혜선인과 구리선녀가 혼인을 약속하고 각각 꽃 다섯
송이와 두 송이를 연등(보광)부처님께 바쳤다고 하는 전생담에서 유래한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혼례를 올릴 때 꽃을 바치는 헌화의식과 혼인을 고하는
고불식을 반드시 한다. 그리고 요즘에는 두 사람이 혼인하기 전에 부처님
전에 기도를 올리고 스님을 청하여 법문을 듣고 미래의 행복한 삶을
서로 약속하는 풍속도 생기고 있다. 이는 좋은 일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혼인하는 두 사람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행복한 삶을 살아갈 뿐만아니라
장차 성불하겠노라는 서원이 있을 때 완벽한 혼례라 하겠다.


그리고 혼례장소는
답답한 예식장보다 부처님께서 계시는 법당이나 절 마당 또는 야외에서
혼례식을 올리는 것이 좋으며, 혼례복도 실용성이 없고 사치스러운 웨딩드레스보다
우리 고유의 전통 한복 또는 개량 한복으로 준비해서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3) 법회


선남자여, 누가 가장
높고 착한 이인가. 먼저 부처님과 법을 믿어야 하며, 믿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절에 가야하며, 절에 가서는 예배하여야 하며, 예배하되 법을 들어야
하며, 법을 들을 때는 지성으로 듣고 뜻을 생각하여야 하며, 배운 대로
행해야 하며, 자기만의 해탈을 구하지 말고 대승에 회향하여 일체 중생에
이익되고 중생을 안락하게 하여야 하느니라. 이런 이가 가장 높고 착한
이니라.


『대반열반경』 〈범행품〉


불자들의 신행생활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법회 참석이다. 그러나 농경사회를 지배했던 태음력
위주의 생활양식은 산업화 시기를 거치며 일주일 단위로 노동과 휴식이
반복되는 태양력 위주의 생활양식으로 바뀌어 전통적으로 전해오던 법회도
현대의 생활주기와는 맞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현재 사찰에서는 음력
위주의 법회와 양력 위주의 법회가 혼합하여 열리고 있다. 불자는 법회에
적극 동참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법회란 불교에서 가장
거룩한 만남의 장이며, 부처님이 가르치신 진리를 배우고 전파하는 자리이다.
즉 불보살님께 공양을 올리고 재를 마련하여 널리 베풀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설하여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하는 것이다.


지금 절에는 매달 같은
날이나 같은 요일에 정기법회가 있다. 부처님 당시에는 보름마다 포살일을
정해 자신의 허물을 대중 앞에 고백하고 참회하는 의식이 있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정기법회의 시초라 할 수 있다.


매달 10재일이 있는데,
1일은 정광(定光), 8일은 약사(藥師), 14일은 현겁(賢劫), 15일은 미타(彌陀),
18일은 지장(地藏), 23일은 대세지(大勢至), 24일은 관음(觀音), 28일은
노사나(盧舍那), 29일은 약왕(藥王), 30일은 석가(釋迦)재일이다. 이
중 일반 대중이 동참하여 기도하는 법회는 초하루, 보름, 그리고 지장재일,
관음재일이며 사찰에 따라 약사, 미타 등 한 두 번의 법회를 더 진행하기도
한다. 지장·관음재일이 특히 많이 지켜지는 이유는 지옥 중생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지장보살과 중생들의 모든 소원을 이루어주는
관세음보살이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지장재일에는 지장예문과
돌아가신 분을 위한 발원과 정근, 즉 돌아가신 영가의 왕생극락을 기원하고,
관음재일에는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관세음보살의 자비를 구하는 예불과
발원을 한다.


또 전통적으로 3장
6재일이라고 하여 1월, 5월, 9월의 초하루와 보름에 정기법회를 개최했으나,
요즘에는 현대인의 생활에 맞게 일요법회, 수요법회 등의 요일법회와
방학이나 휴가를 이용한 수련법회가 정기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어린이,
청소년, 대학생, 청년 법회 등은 주로 토요일이나 일요일을 정기 법회일로
하고 있다.


그 외에도 특별한 법회들이
있다. 우선 불상을 새로 모시는 점안법회(點眼法會)를 들 수 있다. 이는
거룩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워 익히며 실천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부처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에서 불상을 조성해서 봉안하는 것이다. 탑이나 법당을
건립할 때는 기공식과 낙성식의 법회를 하고, 불상이나 탱화를 신앙의
대상으로 인정하는 점안식을 봉행한다. 아무리 훌륭한 불상이라 하더라도
점안식을 하지 않으면 작품으로는 인정받을지는 모르지만 신앙의 대상은
될 수 없다. 또한 이 의식은 일반신도가 할 수 있는 의식이 아니라 반드시
증명법사님을 모시고 법식에 의하여 진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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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계식
후 법성도를 도는 모습


또 부처님이 제정한
계법을 받는 수계법회(受戒法會)가 있다. 재가신도는 불교교단에 입문하여
기본교육을 이수한 뒤 오계를 받고, 이후 십선계나 보살계 등을 받아야
한다. 계를 받는 의식을 수계식이라 하고 수계와 더불어 법명을 받아
불자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또 성지순례 법회가 있다. 이는
부처님의 사대성지를 불자된 사람으로서 순례하며 참배하는 의식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유서 깊은 사찰과 우리 고유의 전통 문화와 선조의 발자취를
찾아 성지를 순례하며 신심을 북돋을 뿐만 아니라 한국불교의 찬란한
전통과 문화유산을 배우고 느끼는 소중한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4) 방생


나의 생명이 소중하다면
다른 생명도 소중한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삶의 자유를 성취하기
위해서 다른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방생은 이러한
자각 즉, 연기적 세계관에 대한 자각에서 출발한다.


연기적 세계관은 모든
존재가 서로 의지하여 존립의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말미암아 일어난다’는
연기의 의미가 존재에 적용될 때 모든 존재는 ‘조건에 의존되어 발생’한
것임을 알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입장에 선다면 나의 존재를 지탱해주는
우주 만물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고, 거기에서 모든 존재에 대해 나와
한 몸으로서 존귀함을 알고 해치지 않게 되며, 궁극적으로는 불살생과
자비의 구현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동체대비(同體大悲)이다.


우주 만물이 나를 지탱해주는
존재이기에 어느 것 하나라도 파괴되기 시작한다면 나의 존재도 파괴되기
시작한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며, 그래서 살생을 엄격히 금하고
방생을 권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과 같은
생명경시 풍토 속에서 방생이 주는 의미는 각별하다. 보다 넓은 마음에서
생명계를 사랑하는 정신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연기적 세계관 위에
서는 것이며, 그렇게 했을 때만 생명과 함께 사는 사회가 이루어질 것이요,
방생(放生)의 공덕이 있을 것이다.


옛날부터 음력 정월
대보름, 3월 3일, 8월 보름에 방생법회를 열어왔다. 그러나 요즈음은
특별한 시기를 정하지 않고 수시로 하고 있다.


방생은 죽게 된 생명을
살리는 적극적인 행동이다. 비록 미물일지라도 그 생명을 소중히 여겨서
죽이지 않고 보호하는 의식이다. 작게는 사람의 손에 걸려 죽게 된 고기나
새 등을 사서 제 살던 곳으로 다시 놓아주는 것이지만, 본래적인 의미는
불살생계를 적극적으로 실천해서 만 생명을 살리는 일을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살생을
하는 것은 전생의 부모형제를 죽이는 것이고 부처가 될 씨앗을 없애는
행위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살생의 반대인 방생의 공덕을 짓는 일은
결국 내 부모 형제를 살리는 일이며 나 자신의 거룩한 생명을 더욱 살리는
일이 된다 하겠다. 방생의 공덕은 다음과 같이 전해지고 있다.


첫째 자식을 원하는
사람은 방생하라, 남을 살게 해 주는 것이 나를 살리는 것이니 자식의
경사가 있게 된다.


둘째 임신을 하면 방생하라.
방생은 만물을 보호하는 것이니 산모도 반드시 보호받게 된다.


셋째 기도할 때 방생하라.
기도함에 방생의 공덕이 크기 때문이다.


넷째 예수재를 지낼
때에도 방생부터 행하라. 방생으로 불보살님의 감동을 받으면 큰 복을
받기 때문이다.


다섯째 재계를 할 때,
여섯째 출세를 구하려 할 때., 일곱째 염불 할때도 방생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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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생법회


방생은 선근 공덕을
짓고자 하는 여러 사람이 모여 행할 때도 있고, 재난을 만났거나 병이
있어 낫고자 원을 세워 방생할 때도 있고, 집안에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 그 전후로도 방생을 한다.


그런데 최근 들어 물고기
방생이 생태계 교란과 파괴를 일으킨다는 비판이 제기 되면서 생태를
먼저 고려하는 방생, 단순히 물고기나 새를 놓아주는 일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환경, 인권, 생명을 살리는 활동 등 방생이 가지는 본래의
의미를 찾기 위한 실천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우리 불자들도 이와
같은 방생의 본연의 뜻을 살리는 활동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가깝게는
고아원이나 양로원 등을 방문하는 등 어렵고 소외된 이웃에게 부처님의
자비를 베푸는 사회 봉사적인 실천을 행하는 것이 좋다.


5) 불공과 공양


불공은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것을 말한다. 불공은 단순히 물질을 공급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귀의, 참회, 공양, 발원, 회향이 여법하게 갖추어지는 의식을 통틀어서
말하는 것이다.


불공은 우리의 삶이
뜻대로 되지 않아 괴로움과 어려움에 부딪쳤을 때 이를 소멸하고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에서 올리기도 하고, 혹은 원하는 일들이 뜻대로
되었을 때 부처님께 감사의 뜻으로 올리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일의 성패나 행운, 일상적 일에 관계없이 항상 진리 속에 살면서 삶의
눈을 뜨게 해준 고마움과 부처님의 크신 위신력을 믿고 존경하며 본받기
위한 수행의 일환으로 불공을 올려야 한다.


불공의 핵심은 베품,
즉 공양이다. 공양이란 말은 불가에서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먼저
‘자양분을 공급하여 기른다’라는 의미로 삼보님께 올리는 정성어린
모든 것을 공양이라고 한다. 이것은 불공과 같은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이러한 공양에는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경공양(敬供養)이니 사원을 건립하고 불상과 범종을
조성하며 탑을 쌓는 등의 불사(佛事)에 공양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행공양(行供養)이니 부처님을 참배하거나 도량을 청소하고 가꾸는 등의
행위로 공양하는 것을 말하며 마지막은 이공양(利供養)으로 음식이나
꽃, 과일, 향, 초, 혹은 금전을 올림으로써 삼보께 공양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이 공양의 대상은
삼보님만이 아니라 모든 중생을 위해 올릴 수 있다. 부처님은 ‘누구든지
나에게 금은 보화를 갖다놓고 명과 복을 빌려 하지말고 너희가 참으로
나를 믿고 따른 다면 중생을 위해 공양하라’라고 말씀하신다. 음식이나
의복, 혹은 그 밖의 물건을 삼보님과 부모님, 스승과 망자는 물론 모든
중생에게 공급하는 모든 행위를 공양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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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우공양


공양하는 물건이나
공양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세간의 재물이나 향, 꽃 혹은
생활용구를 공양할 수도 있고, 보리심을 일으켜 자리이타의 행을 닦는
공양도 있다.


또한 공양은 중생들만
하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께서도 중생들의 깨달음을 위해 늘 법(法)공양을
베푸신다. 부처님께서는 공양 중에서도 법공양이 으뜸이라 하셨다.


공양을 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공양은 항상, 일상 생활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불자로서 정기적으로 법회에 참석하여 삼보를 예경하는 것은 기본적인
불공이라고 할 수 있고, 법회 중에 헌공을 하거나 일상적인 참배에서도
작은 정성이라도 불전(佛前)에 공양을 하는 것을 일상생활화 해야 한다.


또다른 공양의 의미는
불가에서 밥을 먹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밥을 먹는 것을 공양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불도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 육신이 필요하고 이 육신을
지탱하기 위한 약으로 생각하고 먹기 때문에 공양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찰에서는 공양을 하기 전에 반드시 이러한 게송을 외우며 공양의
의미를 되새긴다.


오관게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덕행이 부족한 나로서는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을
버리고


육신을 지탱하기 위한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이와 같이 밥을 먹는
일조차도 수행의 일환이기 때문에 불자는 공양의 예의를 지켜야 한다.
공양할 때의 예의는 일체 말을 하지 않으며 자기 자리와 차례를 지킨다.
그리고 음식 먹는 소리를 내지 않으며, 받는 음식은 하나도 남기지 않아야
한다. 특히 발우공양의 경우 자신이 먹던 발우까지 깨끗이 닦아 작은
음식의 부스러기조차 남기지 않는 데, 이것은 바로 밥먹는 일조차 수행으로
생각한 공양의 의미를 잘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불교의 명절의례


1) 5대 명절


① 부처님 오신 날


음력 4월 8일은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날이다. 이 날은 전국의 사찰에서 부처님 오신 날을 봉축하며
법요식을 봉행한다. 법요식 가운데는 관불(灌佛)의식이 있는데 부처님이
탄생하신 것을 축복하며 향탕수로 목욕시키는 의식이다.


이 의식은 아기 부처님이
탄생하셨을 때 아홉 마리 용이 공중에서 향기로운 물을 솟아나게 하여
신체를 목욕시켰다는 데서 유래한다. 그 순서를 보면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탄생불을 불단에 모시고 룸비니 동산의 화원을 상징하는 꽃바구니를
만들고 향탕수 즉, 감로다를 준비해서 비밀스럽게 목욕시킨다. 이 의식은
큰스님을 증명법사로 모시고 비밀스럽게 행했던 것인데 요즘은 대중화되어
스님과 신도가 함께 관불식에 참석해서 정수리에 향탕수를 부으며 공덕을
쌓는 풍속으로 변하고 있다.


또 연등회는 부처님
당시에 빔비사라왕이 불전에 1만 등을 켜서 공양한 예가 있고, 가난한
여인이 한 등을 켜서 1만 등을 능가하는 정성을 보이기도 했다는 데서
유래한다. 촛불이 자기 몸을 태워 세상을 밝히듯이 등을 켜는 이유도
가정과 사회, 세계를 밝히겠다는 서원의 발로인 것이다.


이 연등법회는 『삼국유사』에
초파일부터 보름까지 경주의 남녀가 다투어 탑돌이를 한 기록에서 전통문화행사로
치러졌음을 알 수 있다. 스님을 따라 염주를 들고 탑을 돌면서 염불을
하고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고 자신의 소원을 빌며 등을 밝히고 극락왕생을
기원하였다. 이 의식은 꼭 불교신자가 아니더라도 국태민안과 개인의
평안을 바라는 뜻에서 일반 민속화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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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탄생


② 출가하신 날


음력 2월 8일은 부처님께서
출가하신 날로서 출가재일이라고도 한다.


모든 중생을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건지시겠다는 원력을 세우고 이 세상의 부귀와 영화를 버리고
왕궁을 떠나 출가하신 날로서, 불자들은 부처님을 본받아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의 보살이 되겠다는 서원을 세우며 기념법회를
가진다.


③ 깨달음을 이루신


음력 12월 8일은 성도재일이라고
하는데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성취하신 날이다. 이 날을 기념해 선방의
수행자들은 일주일간 철야 용맹정진을 하며, 일반 사찰에서도 발심 정진하는
철야법회를 갖는다. 부처님께서 행하신 수행을 본받아 불자들은 부처님처럼
생사의 고해에서 벗어나 열반을 얻어 일체중생을 교화하고 불국정토를
건설하겠다는 서원을 세우며 기념법회를 가진다.


④ 열반에 드신 날


음력 2월 15일은 부처님께서
일체의 번뇌를 끊어 열반에 드신 열반재일이다. 부처님의 열반은 이
세상의 모든 번뇌를 확실히 끊었다는 점에서 반열반(般涅槃)이라고도
한다. 즉 깨달음을 얻어 중생을 교화하시던 시기는 아직도 인연의 꺼풀인
육체를 지니신 단계이지만, 그 꺼풀 조차 벗었다는 점에서 깨달음의
큰 완성으로 보는 것이다. 불자들 또한 몸을 바르게 하고 노여움을 참고
악심과 탐욕을 버리고 열반의 경지를 성취겠다는 서원을 세우며 기념법회를
가진다.


⑤ 우란분절(백중)


음력 7월 15일은 여름
안거 해제일이며 백중날이다. 백중(白衆)은 과일과 음식 등 백 가지를
공양한 백종(百種)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선방에서는 하안거 동안 정진하면서
생긴 스스로의 허물을 대중 앞에 사뢰고 참회하는 자자(自恣)를 행하며,
불자들은 선망부모를 천도하는 우란분절 법회를 가진다.


이 우란분절 법회는
안거수행 대중에게 공양을 올린 공덕으로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제한
목련 존자의 효행에서 비롯되었다. 목련 존자가 신통력을 얻은 후 천안으로
어머니를 찾아보았더니 어머니가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고통을 받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어머니를 구제할 방법을 부처님께 여쭈었더니 그때에
부처님은 지금 살아 있는 부모나 7대의 선망부모를 위하여 하안거 해제일에
음식, 의복, 등촉, 평상 등을 갖추어 시방의 고승대덕들에게 공양하면
그 공덕으로 지옥의 고통에서 구할 수 있다고 하여 그대로 행한 데서
유래한다. 조선 시대에도 음력 4월 초파일과 백중을 일년 중 가장 큰
행사로 여겼다.


민간에서는 이 날이
고된 농사를 끝내고 벌이는 칠월의 세시명절로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최대 축제일이었다. 불자들은 한여름의 풍성한 과일이나 햇곡식을 들고
절을 찾아 스님들께 공양하거나 조상천도를 위한 기도를 한다.


2) 그 밖의 명절의례


불교가 이 땅에 전래된
지 1,600여 년이 넘었다. 그 기간 동안 불교는 민족과 영욕을 함께 해왔으며,
민속의 많은 부분을 불교의식 속에 받아들였다. 그래서 어떤 경우는
전통민속과 불교행사가 서로 구별되지 않을 정도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민속명절을 하나의 의례로 정리하여 지켜가고 있다.


정월은 새해의 풍요와
안정을 희구하는 새로운 출발의 시기이면서 동시에 쉬면서 다가올 농사일을
준비하는 시기이다.


사찰에서는 신년 첫
법회를 사찰의 대중스님들과 불자들이 함께 지내며 일 년의 평안을 발원하기도
한다. 이 법회를 통알(通謁) 혹은 세알(歲謁)이라고 하는데, 석가모니
부처님을 비롯하여 삼보와 호법 신중, 그리고 인연있는 일체 대중에게
세배를 드리는 의식이다.


2월에는 연등놀이가
유명했으나 요즘은 4월 초파일 연등행사로 바뀌었다. 등은 각종 동식물의
형상을 본떠 만든 것 이외에도 일월등, 종등, 북등, 칠성등, 오행등
등의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 이 연등행사를 보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
될 정도로 장엄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양력 2월
4일이나 5일에 돌아오는 입춘에는 홍수, 태풍, 화재의 세 가지 재난인
삼재(三災)를 벗어나게 하는 삼재풀이를 하고 일년 내내 풍요로움이
가득하기를 기원한다. 그 외에도 삼월 삼짇날 불공, 단오, 칠석 등 각종
민속절기마다 절에서는 불공과 기도를 올리며, 양력 12월 22일이나 23일
돌아오는 동지에는 붉은 팥죽을 쑤어 먹으며 기원하기도 한다.


민속의 세시풍속을
불교가 받아들여 불교 명절화된 것은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민중들의 소망을 받아들여 고통을 함께 나누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러므로 불교가 민간신앙을 수용, 전승하며 발전시켰기 때문에 민중과
함께 가꾸어 나가는 민족종교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가정 신행


가정은 우리들이 태어나고
성장하며 인격이 성숙해 가는 곳이고, 인류사회에 봉사하기 위한 기초적인
장소이다.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조건없이 베풀고 돕는 기본적인
보살의 생활을 배우는 곳이며, 가족에서 출발하여 일가 친척과 이웃에게
연결되는 출발점으로 최상의 교육장이기도 하다. 사회생활을 위한 기능과
지식은 학교에서 얻을지라도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덕성과 지혜 품성은
가정교육에서 길러지게 된다. 진리의 가르침에 기초한 훌륭한 가정에서
재능과 인격의 원만한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므로 불자의 가정은
항상 부처님의 크신 자비를 생각하는 곳이어야 한다. 자식은 부모님을
부처님처럼 받들고, 부모는 자녀들이 지극히 높은 덕성과 아름답고 밝은
지혜와 큰 복을 가지고 태어난 것을 믿으며 사랑하고 존중하며 키워야
한다.


그리고 가정은 수행
도량이 되어야 한다. 자기 삶을 참답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수행이라면
살아 있는 모든 시간은 바로 수행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재가신자들이
오로지 수행만을 위해 출가한 스님들처럼 수행하기는 어렵다고 할지라도
하루 하루를 경건하게 보내고 수행자와 같은 정신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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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사람마다
자질이나 성품과 환경이 다르므 불·보살의 명호를 지성으로 외우는
염불에서 경전을 읽는 간경으로, 다시 참선으로 단계와 자신의 능력에
따라 각기 적합한 수행을 선택해 나가야 한다. 수행법은 무엇보다 꾸준히
해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기도와 절, 참회와 발원도 불자들이
가정에서 행할 수 있는 좋은 수행법이라 하겠다.


하루 중의 수행법으로는
단순하게 일정한 시간을 정해 108배를 한다든지, 염불을 한다든지, 경전을
읽는다든지 하는 것도 좋지만, 이러한 수행 자체가 초심자에게는 맹목적,
의무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일정한 순서에 따라 진행하는 것이 좋다.


대략 집에서는 입정,
삼귀의 또는 예불, 독경, 기도, 발원, 사홍서원의 순서에 따라 진행하면
된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인 새벽의 수행은 그 날 하루를 즐겁고 보람되게
하며, 하루를 정리하는 저녁의 수행은 하루를 돌이켜 반성하며 더 나은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다.


또한 수행시간만이
아니라 평소의 모든 일, 모든 사람에 대해 언제나 육바라밀행을 실천하도록
자신의 생활을 가다듬는다면 매일 매일의 생활은 복된 생활로 바뀔 것이다.


불자들의 가정신행은
항상 기도하는 것이어야 한다. 중생들은 지은 업장이 두텁고 복덕이
엷어 하는 일이 뜻대로 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온갖 장애와 역경을 당하기도
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지혜와 복덕이 구족한 불·보살님께
의지해 가피력을 얻는 것이다. 그러나 기도는 일방적으로 어떤 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기만 하는 기원이 아니라 바라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스스로 어떻게 하겠다는 서원적 발원이어야 한다. 기도는 찬탄과 참회,
감사와 발원을 구체화시키는 수행방법인 것이다.


가정신행을 잘 영위하기
위해서는 가정마다 원불(願佛)을 모시는 것도 좋다. 항간에는 집안에
부처님을 모시는 것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으나 고래로 우리 조상들은
가정에 원불을 모시고 평상시에도 지극한 신행을 계속해 왔다. 따라서
가정마다 원불을 모시는 것은 항상 지극한 신행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다만, 원불을 모신 후에는 정성을 다해 부처님을 모셔야 한다.


그밖에도 종단의 법요의식에
따라 가정제사를 모시는 것도 가정신행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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