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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출가와 안심입명/이휘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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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6-02-06 11:08 조회2,67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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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재 (서울 은평구)




출근길에 개 한 마리가 개뼈다귀를 물고 개선장군이 된 듯 기뻐하며 뛰어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순간 모든 것이 정지된 느낌이었습니다. 모든 소리가 또한 들리지 않았고 마치 핵폭발 후의 진공상태에 갇힌 느낌이었습니다. 문득 제가 출근하고 일하는 모습이 개뼈다귀를 찾아 헤매는 저 한 마리의 개와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고, 계획한 일이 잘 성사된 후 즐거워하는 모습이 즐겁게 뛰어가는 저 개의 모습과 같아보였습니다.


쉰 살이 다 되어가는 저의 모습을 보며 뭔가 자신에게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월정사 3주 단기출가과정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대중생활에서 맨 처음 느낀 것은 ‘침묵’의 필요성이었습니다. 침묵을 통한 자기 내면의 관조를 위해 동참했음에도 불구하고, 불만과 타인에 대한 비난과 자신을 내세우는 어리석은 말들을 하는 평상시의 나쁜 습관이 재현되고 있었습니다. 이런 말들은 특히나 대중과의 불화를 초래하는 큰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안심입명(安心立命), 몸은 상황에 맡기고 주어진 일에 목숨을 바치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조그마한 몸의 불편함을 인내하지 못하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지도 못하며 일을 즐기지도 못하면서 일의 결과와 보상에만 관심을 가지고 살아온 제게는 따끔한 정문일침이었습니다.


며칠이 지나면서 자주 화나는 마음이 일어나고, 남에 대한 불평과 상황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많이 들고 있는데 한 강사님의 말씀이 제 마음을 가라앉혀 주었습니다. “보여지는 모습이 자기 마음이다. 그 마음에 자기가 속는다.” 상황에 반응을 하는 저의 무지함이 만든 허상에 속고 살아왔습니다.


일반 수련회처럼 생각하고 행동했던 초반기에는 다소 힘이 들었지만, 이 과정이 그와 다른 행자과정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편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행자는 속인의 모습과 습관으로부터 완전히 환골탈태하여 수행자로 거듭 태어나는 과정에 있는 사람입니다. 고로 행자는 수행자로 존경을 받을 수도 없고, 속인으로서의 아상, 습관, 몸에 대한 애착 등을 지닐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로지 자신을 낮추고 자신을 바꾸는 노력을 해야만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자신을 행자에 맞추니 대중생활이 많이 편해졌습니다. 늘 알고 지내왔던 저 자신은 이미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몸과 입과 마음의 습관이 누적된, 저라고 하는 허상과 행자의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만이 있었습니다. 같은 일도 마음가짐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의 지금 모습은 제가 살아온 지난 세월의 종합 완결판입니다. 그다지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저 자신과 가족과 주위분들께 죄송할 따름입니다. 삭발식을 하며 머리카락의 일부를 삭발탑에 묻고, 단기출가 과정이 끝날 즈음 유언장을 쓰고 불사르는 의식을 했습니다. 단기출가 전의 저는 이미 과거생으로 묻혀져 갔고, 과거생의 업과 습관을 많이 지닌 채로 새로운 사람으로 환생을 하였습니다.


최근에 발을 다쳐 엑스레이를 찍으러 다녔는데, 하루는 다른 기사분께서 촬영을 해주셨습니다. 온화한 미소와 함께 발을 잘 촬영하기 위해 제 발의 위치를 바꿔가며 촬영하고, 앉아 있는 저의 불편한 자세를 편하게 해주시기 위해 두꺼운 방석까지 내주시는 모습을 보며, 환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분은 생활 속의 도인이시고, 가장 성실한 가장이시며, 직장에서는 가장 훌륭한 일꾼이십니다. 안심입명을 이루신 분입니다.

단기출가를 마치고 제 일을 자그마하게 시작하였습니다. 개뼈다귀를 물고 뛰어가는 모습으로 살아가기에는 이 삶이 너무나 아깝고 소중합니다. 사회생활과 가정생활과 만나는 모든 상황을 안심입명의 자세로 임하고 싶습니다. 마음 따뜻한 평범한 사회인으로 거듭 태어나기 위해, 또 저와 함께 일하고 인연 맺은 분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꾸준히 정진해 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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