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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호및지난호

산과 인간의 지혜가 더해져 태어난 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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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영신(대전구도회) 작성일07-06-18 00:06 조회2,70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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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을 두고 있는 모든 생명체는 때로 길로 나선다. 떠나고 싶을 때 찾아갈 곳이 마련되어 있다면 참 축복받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은 그런 축복을 받은 날. 전생에 무슨 복을 짓고 살았는지 좋은 도반을 만나서 매주 한 번씩 마음 닦는 시간을 갖는 복을 누리고 산다. 게다가 시절이 봄이다 보니 무거운 겨울옷을 벗어버리듯 내 허물도 어딘가에 벗어놓고 오고 싶은 참이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대전구도회에서 봄맞이 사찰순례를 기획했다고 한다. 좋은 일은 나를 위해 생긴 것처럼 생각하는 것도 인생을 즐겁게 사는 한 가지 방법. 나에게 마련된 축복을 흠뻑 누리기로 했다.
우리나라 어느 곳을 가든 산세가 좋은 명당자리에는 훌륭한 가람이 자리 잡고 있다. 옛 어르신들은 짚신감발에 지팡이 하나 의지해서 높은 산 깊은 골을 다니셨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 경치 좋고 산세 좋은 곳을 다 알고 계셨을까싶다. 명색이 불자라고 내세우며 살다보니 사찰을 돌아보는 일이 단순한 관광여행하고 같을 수는 없는데다, 굳이 불자가 아니었더라도 주춧돌 하나, 나무 한 그루도 찬찬히 살펴지는 것은 살아온 세월만큼 사물을 깊이 보게 되는 탓일 것이다.
네 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곳은 경상북도 봉화에 위치한 천년고찰 ‘축서사’. 영주 부석사보다 3년 먼저 지어진 유서 깊은 사찰이다.
‘축서(鷲棲)’라 함은 독수리가 산다는 뜻이라 한다. 불가(佛家)에서 독수리는 지혜를 상징하는데, 절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산 이름도 지혜를 뜻하는 ‘문수보살’의 이름을 가진 ‘문수산’이다. 지혜의 산에 인간의 지혜가 더해져 태어난 가람이 바로 ‘축서사’인 것 같다. 의상대사께서 673년에 창건한 축서사는 신라시대에는 부석사를 능가하는 대가람이었지만, 구한말 의병의 본거지라는 이유로 일제 때 ‘보광전’ 한 채만 남기고는 모두 전소되어버린 것을 1980년대부터 중창해서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우리가 찾아간 것은 산자수명한 가람의 경치 때문만은 아니었다. 생의 길을 이리저리 헤매다 보면 길잡이가 필요하다. 어느 스님께서는 “100년 보살 보다는 하루 중 됨이 낫다” 는 말씀을 듣고 일주일만에 출가하셨다고 한다. 스님들을 뵐 때마다 나는 혼자서 궁금해 하곤 했다. 저분은 어떻게 구도의 길을 택하셨을까? 누구나 같은 인생을 살 수는 없는데, 어느 길이 가장 바른 길이었는지는 어느 때 누가 평가해줄까? 그래도 내 자신의 거울로 삼아 비추어보고 싶은 분은 일부러라도 찾아가 뵈어야 하는 것이다.
‘축서사’의 ‘무여’ 큰스님은 바로 지혜의 독수리 같은 분이셨다. 조용하고 나즈막한 목소리에는 가늠할 수 없는 힘이 실려 있고 단아한 외모에는 강인한 기품이 풍겨 존경심이 절로 났다. 스님께서 말씀하신 ‘좌탈입망(坐脫立亡)’이란 바로 인생의 ‘회향(廻向)’이 아닐까? 항상 정진하며 살라고 하시는데 중생이란 본래 미혹한 존재인 까닭에, 좋은 법문을 들으면서도 법당의 냉기가 육신을 조여옴을 참기 어려웠다.
무여 큰스님께서 1987년 축서사에 주석하신 후, 원력을 세우시고 가람의 옛 모습을 찾기 위한 불사를 시작하셨다고 한다. 20년 정도의 시간은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에는 무척 짧은 시간이라 생각된다. 불사는 스님과 불자의 마음이 하나 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라 생각하는데 봉화 인근지역 불자들의 불심과 전국 각지의 고루 분포돼 있는 신도님들의 불심에 새삼 감사의 마음이 인다. 그렇다면, 나의 신심은 얼마나 돈독한가 잠시 나를 뒤돌아보게 한다.
떠나는 이가 행복한 것은 돌아올 곳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회향할 곳을 두고 떠남은 나 같은 소인의 출가(出家) 아닌 가출(街出). 가출(街出)을 찾기 위해 사전을 펴진 말았으면 한다. 개인적인 편의상 잠시 길로 나섰다는 말이다. 어떤 이는 사찰순례로 구법의 마음이 높아졌을 것이고 어떤 이는 봄나들이에 기분이 흥겨웠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같은 곳에서 길을 나서도 도착지는 제각기 다를 수 있으나 그것도 제 나름대로 몫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을 끝마치며 오늘 함께 하지 못한 가까운 친구 생각이 났다. 친구야, 그대가 오늘 나를 따라 나섰다면 그대는 무엇을 보고 왔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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