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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호및지난호

축서사의 참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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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손 한 순 - 작성일06-01-21 17:14 조회3,0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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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호주에서 축서사까지는
아득한 곳이라 여기며 상상으로만 그리던 곳이었건만 막상 이번 여행길에
운 좋게도 꿈속의 축서사를 다녀오고 보니 이제 그 거리가 지척이 되었습니다.


고국에 갈 때마다 산이
깎여지고 아파트 건물은 자꾸 들어서서 고향의 뒷동산은 어디 갔나 하고
두리번거렸고, 바다가 보여서 시원했던 어머니 집 앞에도 호텔과 카페가
들어서서 이제 그 바다가 어디쯤에 있나 하고 찾곤 했답니다. 고향도
멀다시며 공원묘지에 누우신 아버지를 뵈러 가서는 ‘고개 너머 시집
보낸 막내 딸아기 소식 몰라 궁금하셔서’ 고개 숙인 할미꽃 마나님을
찾아 보았지만 할미꽃은 커녕 어떤 야생화 한 송이도 볼 수가 없어서
참 쓸쓸했지요.


요즘의 새로운 한국
문화를 이해 못하고, 급속히 변화되는 한국 사회에도 혼돈을 일으키는
나 자신을 세월의 공간 탓으로 돌립니다. 기억 속의 내 시계는 이십삼
년 전에 멈춰서서 고장이 났나봐요. 고장난 이후 시간 어디에도 나는
없잖아요. 한국에 와서 보니 한국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호주에 오래도록
살면서도 호주인은 더욱 아니거든요.


양쪽나라에서 비슷한
햇수를 각각 보냈음에도 나 자신은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게 되어 버렸어요.
이쪽은 이쪽대로 한국어 발음이 분명치 않다고 소리 듣고, 저쪽은 저쪽대로
영어 발음이 시원찮다고 핀잔 듣다 보니 바보가 되어서 공중에 떠 버렸어요.
이 바보 몸 속은 헬륨가스로 가득 찼나봐요. 떠 다니면서 아무 땅에도
발이 닿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번 길에는
횡재를 했답니다. 축서사의 해우소 뒷편 숲속에서 참나리를 발견하고는
내 발이 땅에 닿았거든요. 황적색에 암자색의 작은 반점이 있는, 7~8월의
산야에 피는 한 송이의 참나리가 내 마음을 잡고 그 동안 잃었던 시간의
고통을 다소 소멸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몸은 호주에 있고 마음은
늘 한국에서 헤매는 이 불쌍한 중생을 그 숲길로 안내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바보의 횡재는 그 뿐이
아닙니다. 큰 스님도 뵈었답니다.


ㆍㆍㆍㆍ삼배.


부드러움과 날카로움을
함께 지니신 큰 스님은 우리 일행에게 차를 권하셨습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차를 마시려고 할 때 차통에는 그 차에 대한 설명서가 있어서
차를 우리는 시간과 물의 온도가 적혀 있지만, 우려낸 차를 마셔보지
않고는 그 맛을 알 수가 없다고 하시면서 불교가 바로 그 차와 같은
이치라고 하셨습니다.


오래 전에 절도 더러
기웃거려 보고, 스님들 곁도 스쳐지나가 보곤 하면서도, 뜻 모르는 염불소리를
따라할 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번역이 안된 경전은 의미도 모르며
외울 수가 없어서 남들처럼 그냥은 들어갈 수가 없다고 생각했더랬습니다.
이제 돌아보니 차를 소개하는 설명서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찻통만 바라보면서
정작 차는 우려 마셔보려고 하지 않았던 나 자신이 보였습니다.


안에 들어가서야 느낄
수 있는 것을, 밖에서부터 알고 들어가려고 했던 저의 옳지 못한 자세를
큰 스님은 읽으셨던 것입니다.


아마 저는 앞으로 차를
마실 때마다 큰 스님을 생각하게 되겠지요. 진정한 차맛을 느끼고 싶으면,
그리고 참나리가 또 보고싶으면 난 축서사로 갈 것입니다. 불도저에
밀려서 없어져버린 고향 대신 이제는 축서사가 마음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축서사에 계시는 분들을
고향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을 부디 허락해 주십시요.


2001-ssangdungi.jpg



태어난 어린 양 두 마리와 함께 있는 필자의 귀여운
쌍둥이 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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