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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호및지난호

칠십 그리고 두 장의 연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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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손한순 - 작성일06-01-21 18:05 조회3,37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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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1월, 크리스마스와
연말파티 그리고 새해 모임으로 분주하던 지난 한달 동안 아이들이 장식해
두었던 크리스마스 트리와 줄을 만들어서 걸어둔 카드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상자속에 넣으면서 헤아려 보니 72장, 해마다 50장 전후였건만 금년엔
특히 많은 듯 하다. 아마 쌍둥이들이 학교에서 받아 온 크리스마스 카드인
모양이다.


호주에서는 여러 나라의
이민자들이 제각기 다른 관습과 종교를 가지고 와서는 복합된 다문화를
정착시켜 나가고 있으므로 이곳 크리스마스가 이제 더 이상 종교적인
날이 아닌 국민들의 명절날이 되고 있다.


지난 크리스마스 전에는
호주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산타클로스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학생들에게
말했다가 아이들의 꿈을 없애는 교사는 자격이 없다고 해서 해직 당했다고
한다. 우리농장에도 쌍둥이들이 해마다 산타를 기다리고 있고 우리집
관습대로 가족이 함께 음양무늬를 그리고 오려서 크리스마스트리에 장식하고
있다.


ssangdungi-1.jpg


72장의크리스마스
카드을 줄에 걸어놓고 미소짓는 쌍둥이 자매


그러므로 호주의 크리스마스란
- 산타가 붉은 털옷을 입고 흰 눈속에 썰매를 타고 오는 것이 아니고
수영복을 입고 파도속에 서핑을 타고 온 산타가 해변가에서 맥주를 마시는
모습이 딤긴 - 바로 호주 여름 휴가철을 의미한다. 이때가 되면 각 가정마다
일년에 한번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들이 모이고 평소 안부를 묻지 못했던
친척들과 친구들의 카드가 오간다.


적게는 크리스마스날
며칠, 보통은 새해까지 일주일, 많게는 공장에서 한달까지 쉬기도 하는,
아이들의 여름방학까지 겹치는 큰 휴가철이다.


문득 13년 전의 연말이
생각난다. 그 해 그들은 단 한 장의 카드도 받지 못했고 그들 역시 단
한 장의 카드를 누구에게도 보내지 않았다. 그들에겐 산타클로스도 오지
않았고 그들 역시 누구에게도 새해 인사를 하지 않았다. 그 때의 그들이란
지금은 다 커버린, 그러나 그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과 가장이었던
그 여자, 그렇게 셋이었다. 그 해 그들 셋이었을 때 이번에 우리가 받은
72장의 카드 중에서 그 끝다리 두장 만이라도 받았더라면 지금 그 사람들에게
몇 배, 몇 십배로 보은하고 싶어할 것이다. 그만큼 그 당시엔 카드 두장도
그들에겐 큰 위로가 되었을 상황이었다. 그러나 카드 두 장의 위로도
받지 못했던 그 해 외로운 연말이 - 그 여자가 더 이상 한인사회에서는
한국 최고라는 명문대학 출신의 아내도 아니고, 호주 이웃에서는 이민자로서,
호주국가 전문공무직에 있는 남자의 아내도 아니라는 이유 때문이었다면,
그래서 그들 그룹에서 소외가 되었다면, 그 그룹은 허깨비들의 모임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그 여자는 그들을 버리기 시작했고 그녀 자신조차
버리고 그 혼란을 정리해 나가기로 했다.


그녀 자신이 이전에는
어디에 속한 줄도 몰랐고 이제는 앞으로 어디에 속해야 되는 지도 몰랐다.
그렇게 혼란스런 사회구조 속에서 이전대로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치는데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역시 허깨비들의 시선이었다. 그들 셋은 도움이
안되는, 아니 폐가 된다고 생각되는 결손가정이라는 차별대우의 대상이
되고 만 것이다.


ssangdungi-3.jpg


작년
여름에 축서사를 방문한 금붕어 보살 (왼쪽에서 네반째)


언젠가 읽은 린 케인의
‘나의 천사 나의 아이들’이라는 수기가 갑자기 생각났다. 뉴욕에서
변호사인 남편을 떠나 보내고 나서 자신의 아이들과 함께 일류시민에서
이류시민이 되어버렸고, 성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재정적으로
핍박을 받는 대상인 소수집단 속에 속해 버렸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의
의지와 용기 그리고 진실이 세상의 일부가 되어서 다시 태어났다는 체험이었다.
린 케인과 그 아이들을 차별하는 사회구조를 이겨낸 것이 진실이라는
힘이었듯이 그녀가 나름대로 남의 나라 호주에서 아빠 없는 아이들을
보호하면서 지혜롭게 사는 힘은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가
노력하고자 했던 것은 마음을 붙잡는 일이었다. 그 마음이 분노하고
슬퍼하고 요동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붙잡으려고 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지금 너희가 하고자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고 부탁했다. 어쨌건 카드
두 장도 못 받았던 그 연말이 지나자 혼란도 잠시였고 그들에겐 정적이
찾아왔다. 그 정적 속에는 그렇게 갈구하던 자유와 평화가 있었다. 두
아이를 짊어지고, 집안을 맡고 직장을 다니던 그녀의 몸은 무겁고 피곤했으나
마음만은 자유였다. 철없던 아이 둘은 힘든 엄마를 돕다가 갑자기 어른이
되어 버렸다.


ssangdungi-2.jpg


그 때 그 큰아이는
법률 공부를 해서 지금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으며, 작은 아이는 아직
엔지니어 공부 중이다. 그들 셋은 그 때 재밌고 행복하게 살았다면서
가끔 그 추억을 즐겁게 얘기하곤 한다.


그러나 그 해의 슬픈
연말은 그녀 혼자서 감추곤 한다. 아직도 그때 젊은 엄마로서 남몰래
울었던 이야기를 큰 아이들에게 편하게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더 늙으면
얘기하리라. 그 아이들이 다 결혼해서 제 가족을 또 갖게 되면 그 때
얘기해 주리라.


바르고 착하게 자라서
남들의 부러움이 되고 있는 그 아이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고
있는 밝고 귀여운 쌍둥이 동생들이 이제 있다. 그리고 그 가족을 이해해
주고 사랑해 주는 영원의 친구 마이클 처사도 그들과 함께 있다. 이젠
셋이 아니고 여섯이다. 물론 이 숫자가 영원한 것은 아니다. 무에서
하나로, 하나에서 넷까지, 다시 셋으로 그리고 이제 여섯이 되었듯이
앞으로 이 여섯이 더 많은 숫자로 변해 가더라도 언젠가 다시 하나가
되고 또 무(無)가 될 것이다. 이 연하장 칠십 그리고 두 장이 의미하듯이......


그녀가 어느 날 갑자기
또 남편을 잃고, 사업체를 잃고, 좋은 집과 차를 잃는다면, 다시 72장의
카드도 사라지겠지.


연하장이 72장이 되거나
한 장도 없거나 그녀는 언제나 그대로이고 남편이 있거나 말거나, 그녀는
여전히 똑같은 사람일 뿐이라고 그렇게 착각하겠지만, 그런 그녀 자신도
카드 한 장처럼 움직이고 변할 것이다. 그녀 마음과는 상관없이. - 그녀
이름도 그녀 것이 아니고 그녀 마음도 그녀 것이 아니니.


그렇게 환경도, 상황도,
사람도 다 움직이고 변한다. 그러니 이 세상에 좋은 것을 가졌다고 어떻게
기뻐하며 싫은 일을 당했다고 어떻게 슬퍼하랴. 변화가 올 때마다 울고
웃으며 지쳐야 한다면 분노하고 걱정하는 마음뿐 아니라 사랑하는 그
마음까지 자유롭고 싶다. 그러나 아직까지 지나간 눈물이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이 두렵고, 지금의 안락함에 집착하는 것도 두렵고, 매일 눈감으면서
느끼는 공부마저 두렵다.


이번 축서사에서 온
글이 이 두려운 마음을 일깨워 주는구나 싶다. 외부적인 환경요소는
금생에서건 내생에서건 언제든지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집착이나 동경보다는
항상 여여(如如)한 마음상태를 유지함이 좋다고


---------------쌍둥이
자매로부터 온 편지-------------


Dear Sunim


One day, I wish I
could come to Korea to see you and snow.


I never seen snow
all my life except when I was a baby.


My mum and dad took
me to snow mountain., but I can not remember the snow.


It was very nice to
see your pictures.


Love from Cordelia


Dear Sunim


My name is Amelia
Craigie, 8 years old, I am one of the twin sisters.


Thank you for sending
the beautiful snow pictures.


I like them all. I
wish I could go to Korea to see your temple, the monks and the snow.


I never seen snow
all my life. But my mum say I have been to the snow mountain when
I was a little baby. But I think that was a joke.


I hope all of you
have a great time in the snow.


Love From Ame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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