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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습/부처님의 10대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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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혜안등 작성일10-04-26 23:55 조회3,059회 댓글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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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10대 제자

1.지혜제일 사리불(智慧第一舍利佛)

십대제자 중에서 제일 먼저 귀의한 인물이 사리불과 목건련(目建連)이다.
산스크리트명은 샤리푸트라(Sariputra)로 샤리의 자식이라는 뜻이다.
사리자(舍利子)라고도하며 마갈타국 왕사성 북쪽 나라촌에서 출생. 이웃의 목건련과 함께 육사외도(六師外道)중에서 큰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산자야(Sanjaya)의 문하로 출가하여 사문의 길을 걷게 된다. 얼마 안되어 이들은 산자야가 거느리고 있는 250명의 제자 중에서 가장 뛰어나 지도자의 위치에 올라 섰다. 그후 산자야와 결별하고 누구든 믿고 따를 수 있는 진리를 발견하면 서로에게 알려주기로 약속하고 다시 구도의 행각에 나섰다. 그러다가 사리불은 부처님께 최초로 귀의한 다섯제자 중의 한사람인 앗사지(Assaji,阿說示)에 의해 부처님께 귀의 하였다.


자기의 수행에 정진함가 동시에 남을 교화하기에 노력했다.
석존 교단 가운데 중요한 지위인 인물이며 부처님보다 먼저 나라카 마을에서 춘다의 간호 아래 열반에 들었다. 당시 그의 나이 70세였으며 부처님은 80세.
그의 유골이 부처님 곁으로 돌아오자 여러제자들과 더불어 부처님께서는 애닯아 했으며, 수닷타 장자는 탑을 세워 그의 유골을 안치하였다. 그로부터 200년 후 아쇼카왕은 기원정사에 들러 사리불의 탑에 공양하고 10만금을 희사하였다고 전한다.
석굴암의 입구에서 바라볼 때 우측의 첫번째가 사리불이요, 좌측의 첫번째가 목건련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사리불은 왼손으로 비구의 필수품인 정병(淨甁)을 왼편 가슴 높이까지 들어올려 간직하듯 들고 있는데 그 한 손가락에 조그마한 종을 거꾸로 뒤집은 듯한 지물(잔인듯 하다)을 걸고 있으며, 오른 손은 엄지와 검지를 타원형으로 맞댄채 오른편 가슴에 대고 있는 모습으로 눈빛이 예리하게 빛나고 있다.


2.신통제일 목건련(神通第一目建連)

마가다국 왕사성 근처의 콜리타라는 마을의 한 부유한 브라만 사제의 외동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부처님의 교단에 사리불과 함께 들어온 후 맹렬하게 수행한 결과 진리를 깨닫고 십대제자의 반열에 끼게 된다. 열명의 제자 중 목건련의 두드러진 특기는 신통력이었다. 그는 신통력으로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날아 다니는 물체를 보고 멀리 떨어져 있는 부처님과도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목건련은 육신통을 적절하게 발휘하여 포교와 부처님 교단 유지에 괄목할 만한 공헌을 하였다.

오직 중생을 교화하는데만 신통력을 쓸 뿐 삿된 목적으로 악용한 적이 없었다.
목건련은 효성 또한 지극했다. [우란분경]에 의하면 그는 어머니를 아귀도의 고통에서 해방시키는 효자역할을 충분히 한다. 이 [우란분경]의 가르침으로 오늘날도 우리 사찰에서는 돌아가신 선조들을 천도하는 우란분재(盂蘭盆齋)가 열리고 있다. 우란분재는 다른 말로 백중(百衆) 또는 백종(百鍾)이라 불린다. 백중 혹은 백종이란 말은 100가지 음식을 차려놓고 불,법,승 삼보께 공양을 올려 저 세상으로 간 부모님들이 좋은 세상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법회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목건련은 사리불과 더불어 부처님을 배반한 데바닷타의 무리 500명을 부처님 품안으로 귀의 시키는 등 부처님 법을 널리 펴는데 매진했다.
목건련은 불행하게도 포교의 길에 나서다 난폭한 이교도에게 매를 맞아 순교한다.
신통력이 으뜸인 그가 그렇게 비참하게 죽을 수 있는가 하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는 첫번째 그런 위기에 접하여 신통력으로 죽음을 모면했지만 두번째는 이것이 자신의 업인줄 알고 그대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목건련은 석굴암 본존불 우측에,바라보는 자 측에서는 좌측에 사리불과 마주한 채 커다란 메부리코에 고개를 약간 쳐든 연로한 비구의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다. 두 팔은 옷 속에 감싸여 있지만 두 손을 가슴 앞으로 모아 한손으로는 향로 자루를 잡고 다른 손으로 향을 넣으면서 고요하게 사념에 젖은 듯한 표정으로 묵연히 서 있다.


3.두타제일 마하가섭(頭陀第一摩訶迦葉)

마하가섭은 마가다국 왕사성 마하사타라 마을의 핍팔라(pippala)라는 나무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으므로 어릴적 이름이 핍팔라야나라 했으며 그가 속한 종족이 마하카샤파였으므로 훗날 마하카샤파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음역이 마하가섭이다.
마하가섭은 브라만계급의 여자와 결혼하여 12년 동안 행복한 생활을 지낸 데다가 부친이 사망하자 가업을 이어받아 일가의 가장으로서 확고한 위치를 점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세속적 생활이 부질없음을 깨닫고 부처님 교단으로 아내와 함께 출가한다. 그는 영특한 기질을 타고 났음인지 부처님 곁에서 수행한지 불과 8일 만에 아라한의 지위에 다다르게 된다.

그 후 가섭은 자신의 가사를 부처님께 바치고 대신 부처님이 입던 분소의(糞掃衣)로 갈아 입고 두타행의 길을 간다. 두타란 산스크리트 두타(dhuta)에서 나온 말로 번뇌를 털어 내고 모든 집착을 버린다는 의미에서 수치(修治) 또는 기제(棄除)라고 한역되었다. 바로 의식주에 대한 탐착을 버리고 심신을 수련하는 불교 수행의 원형인 것이다.

경전에서는 두타행을 12가지를 들어 말하고 있다.

①조용한 곳에 거주한다.
②항상 걸식한다.
③걸식할 때 빈부를 가리지 않는다.
④하루에 한 번만 먹는다.
⑤과식하지 않는다.
⑥정오 이후에는 과즙이나 설탕물을 마시지 않는다.
⑦헤지고 헐은 옷을 입는다.
⑧삼의(三衣)만 소유한다.
⑨무상관을 체득하기 위해 무덤 곁에 머무른다.
⑩주거지에 대한 애착을 버리기 위해 나무 밑에서 지낸다.
⑪아무것도 없는 한데 땅(露地)에 앉아 좌정에 든다.
⑫항상 앉아 있으며 눕지 않는다.

마하가섭은 세곳에서 부처님의 마음을 전해 받았다. 이를 삼처전심(三處傳心)이라 한다.
①다자탑전 반분좌(多子塔前半分座):부처님이 중인도 북쪽에 있던 다자탑 앞에서 설법하고 계실때 남루한 차림의 마하가섭이 늦게 도착하자 제자들이 멸시의 누초리를 보낼 때 부처님께서 자신의 자리를 반쯤 내어 주어 같이 앉으신 일.
②염화미소:영축산에서 부처님이 말없이 꽃을 들어보인 마음을 읽고 그에 대한 응답으로서 말없이 미소를 지은 일.
③사라쌍수하 곽시쌍부(沙羅雙樹下槨示雙趺):부처님이 80생을 마감하시고 사라 쌍수 밑에서 조용히 열반에 잡겨 법신의 모습으로 돌아가셨을 때 가섭이 늦게 도착하여 열반하시는 모습을 봇본 것을 안타까워 하며 울자 부처님은 관 밖으로 두 발을 내밀어 보인 일.

4.천안제일 아나율(天眼第一阿那律)

산스크리트명은 아니룻다(Aniruddha)이다. 무멸(無滅), 불멸(不滅)등으로 의역 된다.
아나율은 석가모니불의 사촌형제다. 부처님의 작은 아버지 감로반왕(甘露飯王)의 아들이었다.아나율은 마하남이라는 형의 출가권유를 받고 석연치 않게 출가를 결심했다.
석연치 않은 축가 때문인지 잘 적응하지 못하고 지내던 중 부처님께서 출가,재가신도들을 모아놓고 기원정사에서 설법하실때 졸다가 호된 주의를 받고 다시는 졸지 않겠노라고 다짐하고 일주일 동안 자지 않는 정진에 들어갔다.그결과 살명위기애 처했으나 계속 치열한 정진을 하여 끝내 실명을 하였다. 그런데 육안으로 식별할 수 없지만 직관으로 모든 일들을 꿰뚫어 보게 된것이다.

아나율은 8가지 수행자의 조건을 제시해서 그것을 구도자의 표상으로 삼고자 했다.
그것이 팔대인념(八大人念)이다. 팔대인각(八大人覺)이라고도 하는 이 말의 내용을 알아보자.
①지족할 줄 아는 마음가짐 「知足者」
②시끄럽지 않고 적정한 곳에 머무르는 마음가짐 「閑居者」
③욕심없는 마음가짐「小欲者」
④계율을 지키는 마음「持戒者」
⑤생각이 고요한 마음가짐「三昧者」
⑥지혜로운 마음가짐「智慧者」
⑦많이 들으려는 마음가짐「多聞者」
⑧정진하는 마음가짐「精進者」

그는 또한 깨달음으로 가는 구체적인 교리도 잘 알았고 마음 또한 침착하고 의젓하여 석가모니께서 열반에 드시자 어찌할 줄 몰라 당황해 하는 제자들의 안정처가 되어 부처님의 열반을 공표하고 그 뒷수습을 맡았다.
석굴암 십대 제자상에 본존불을 향하여 우측 네 번째로 등장하는데 눈에 이상이 있는 듯한 모습이다.
두손을 가슴쪽으로 모아 홀(笏)을 다소곳이 부여잡고 있는데 그 홀의 윗부분이 아랫입술에 닿아 있다.
그 조용하고 단아한 분위기에서 아나율존자의 침착하고 의젓한 모습이 서려 있는 듯하다.

5.다문제일 아난(多聞第一阿難)

아난은 부처님의 사촌동생으로 정반왕이 아난다(Ananda;기쁨,환희)로 이름을 지어 주었다. 아난은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이룬 후 붓다가 되어 고향인 카필라 성으로 돌아왔을 때 출가한다.당시 그의 나이 8세 였지만 석가족의 자연스러운 출가 분위기에 따라 사촌들과 더불어 교단에 발을 디디게 된 것이다. 그는 생김새가 굉장히 출중한 미남이었다. 이런 외모를 지닌 탓으로 많은 여인들로 부터 유혹을 받는다.
이러한 아난에게 불교사적으로 중요한 몇가지 일이 벌어진다.
①부처님의 시자로서 그 인류의 스승이 열반에 들 때까지 보필한 일.
②여인들의 출가를 부처님께 간청하여 받아낸 일.
③경전 결집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일.

가장 뛰어난 공적은 경전을 편찬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마하가섭이 주도한 경전편찬모임에서 가장 중요한 부처님 말씀을 외워 보인 뒤 거기에 참가한 500나한들의 지지를 받고 정식으로 경을 성립시키는 주역으로 등장한다. 오늘날 경전의 첫머리에 상요구처럼 따라 다니는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如是我聞)"라는 말은 바로 아난이 부처님으로부터 들은 그 말씀에 대한 증거인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경전편집 과정에서 애초에 수석제자 마하가섭으로부터 신임을 받지 봇해 참가하지 못하고 쫓겨나게 되는 참담한 운명에 처한다. 그 후 아난이 번뇌를 모두 없앤 뒤 경전 편집에 참여 하였다. 석가모니불의 십대제자상에서나 여러 후불탱화에서 아난은 머리를 단아하게 깍은 젊고 용모가 바른 비구의 모습으로 부처님 우측에 등장하고 있으며 마하가섭은 그 죄측에 백발이 성성한 노인의 얼굴로 자리잡고 있다. 석굴암에서 아난은 본존불을 향하여 좌측 맨 마지막에 자리잡고 있다. 두 손은 단정히 깍지를 낀 채 가슴에 대고 있으며 얼굴엔 잔잔한 미소가 흐르고 있는 젊은 비구로서 옷깃을 세운 미남형 비구의 모습이다. 갸름한 얼굴, 단아한 이목구비, 상큼한 미소에서 단박 아난존자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6.지계제일 우바리(持戒第一優婆離)

계율을 지키는데 있어 타의 모범이 되었을뿐더러 그 계율조항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부처님의 십대제자 중의 한사람이다. 그는 노예 출신으로 부처님 교단에 입교한 대표적인 인물로 계급을 떠난 부처님 교단의 평등성을 몸으로 보여준 인물이다.
산스크리트명은 우팔리(Upali)로 인도 사성 셰급 중 최하층인 수드라 출신으로 샤캬족의 이발사였다.

그가 모시고 있던 7인의 석가족이 한꺼번에 출가하면서 살림살이를 모두 넘겨 주었다. 우바리는 자신만이 천민 출신이라 출가하지 못한 사실에 유감으로 생각하지만 다음과 같이 마음을 굳게 다지고 축가를 감행한다.
"나는 본래 이들 석가족 아이들에 의해서 살아 왔는데 오늘 나를 버리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고자 떠났다. 나도 차라리 그들의 뒤를 따라 출가를 하리라 만일 그들이 얻는 바가 있으면 나도 얻는 바가 있을 것이다."

이리하여 석가족의 사촌형제들을 따라 출가하게 된다. 그런데 왕자들을 출가에 따른 무소유와 평등정신을 보다 철저히 되새기려 했음인지 우바리를 먼저 득도케 해달라고 부처님께 사뢰어 제일먼저 수계를 받고 윗자리에 앉게 된다. 출가 교단에서는 사성의 차별이 없고 대신 출가한 순서에 따라 자리를 정했기 때문이다.
석굴암 본존불을 향하여 죄측에 고개를 약간 치켜 든 상태에서 이마가 튀어 나오고 눈썹이 위로 치켜 올라간 매서운 인상의 비구가 우바리상이다. 오른손으로 커다란 발우를 껴안 듯 들고 있는 당당한 모습에서 율사(律師)다운 면모를 읽을 수 있다.

7.설법제일 부루나(說法第一富樓那)

본명은 푸르나 마이트라야니 푸트라(Purna maitrayani putra)다. 풀어보면 자애로운 마음으로 충만된 여성의 자식이라 할 수 있다. 이 말은 만자자(滿慈子), 만족자자(滿足慈子)등으로 의역 되었으며 부루나미다라니자(富樓那彌多羅尼子)는 그 음역으로 줄여서 부루나라 불리게 되었다. 부루나는 봄베이 북쪽에 자리잡고 있던 고대 무역항 수나파란타카국 수파라카 출신이라고 한다. 부루나는 부처님으로부터 설법제일이라는 칭호를 받았다.(중지부 경전) 사리불도 극구 칭찬했다.

그는 지행합일(知行合一), 언행일치(言行一致)의 삶을 영위해 나간 사람이다.
[법화경]{오백제자수기품}에서는 그의 걸림없는 언설로 부처님 말씀을 잘 전해 중생들에게 이익을 베푼 결과 장차 법명(法明)여래가 될 것이라는 수기를 받는다.
부루나는 불법을 전하기 위해 민심이 흉악하고 성미가 급한 사람들로 득실대는 수나파란타카국으로 가겠다고 하자 부처님께서 "그들이 나무나 돌로 때린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칼을 가지고 해치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칼로 상처를 입힌다면?"
"그들은 지혜롭기에 그런 무기로 저를 해치기는 하되 죽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끝내 칼로 죽인다면?"
"온갖 고뇌 때문에 칼이나 독물로서 자신의 생명을 끊으려 했던 자도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좋은 사람입니다."
"훌륭한 일이로다. 너는 능히 인욕을 배웠으니 수파란타카국 사람들 사이에 머물 만하다. 너는 거기에 가서 제도 못 받은 자를 제도하며, 안심 못 얻은 자를 안심케 하며, 열반 못 얻은 자를 열반에 들게 하라."고 하셨다.

석굴암 제자상 중에서 본존불을 향하여 우측 세 번째로 등장하는 비구가 부루나이다.
오른손은 아래로 내려뜨려 정병을 비스듬히 거머쥐고 있는 상태에서 왼손을 입 언저리까지 자연스레 들어올려 설법하고 있는 자신만만한 모습이다.

8.해공제일 수보리(解空第一須菩提)

산스크리트명은 수부티(Subhuti)로서 브라만 부티(Bhuti)의 아들로 태어났다.
선현(善現), 선생(善生), 선업(善業), 선길(善吉) 등으로 의역 되었다.
온갖 법이 空한 이치를 처음 깨달은 석존 10대 제자중 한사람.
[증일아함] 제3{제자품}에서는 "좋은 옷을 즐겨 입지만 행이 본래 청정하여 항상 공적을 즐기고 공의 뜻을 분별하여 공적의 미묘한 덕업에 뜻을 두고 있다. 그래서 은둔자 중에서 제일이라고 칭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고요한 곳에 은둔한다고 해서 그가 깊은 산속에 홀로 숨어지냈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람들 속에서 생활할지라도 내면의 고요를 응시하면서 대립과 다툼이 끊어진 생활을 영위하였던 것이다. 다툼이 없는 무쟁행(無諍行)은 바로 맑고 향기로운 행이요, 무아의 빛이 외면으로 비추어진 행이다.

그래서 그는 무쟁도(無諍道)의 제일인자로서도 거론된다. 무쟁행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나 소개하면, '그는 총명하였지만 성질이 포악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주변의 사람이며 짐승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이 못살게 굴었다. 그 도가 지나치자 부모와 친구들도 그를 외면하고 미워해 산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그러나 그는 산으로 들어가서도 마주치는 짐승이나 나뭇가지에 해를 끼치게 되는데 산신의 도움으로 부처님을 뵈어 교화를 받고 출가, 이윽고 무쟁도를 깨닫고 무쟁제일자가 되었다. 출가전의 난폭한 인물이 부처님의 교단에 출가한 이후 새로운 인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수보리는 조용한 곳에서 무쟁의 삼매를 닦아 모든 법의 공적을 관찰하여 은둔제일, 무쟁제일, 해공제일의 인물로 떠올라 마침내 공양을 받을 만한 모든 성문, 아라한 가운데서 으뜸이신 분, 즉 소공양제일(所供養第一)로 찬탄받는다.

사물의 본성을 명확히 꿰뚫는 그의 탁월한 식견은 대승불교에 와서 확연하게 부각된다.
초기 반야계 경전의 정수이자 우리나라 조계종의 소의경전(所依經典)인 [금강경]에서 수보리 존자는 부처님의 상대역으로 등장한다. 스승과 제자는 서로 공의 모습에 대하여 묻고 대답하는 하모니를 이루어 결국 깨달음이라는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난다.

석굴암 십대 제자들의 무리 가운데 수보리 존자는 본존불을 향하여 좌측의 두 번째로 등장하는 비구로 어깨가 올라간 구부정한 모습이다. 두 손을 턱 밑에 모아 왼손의 엄지와 검지 사이로 오른손을 덮어 독특하게 포개고 있는데, 은둔자로서의 그의 개성을 강조하려는 듯 잔뜩 웅크린 모습이다.

9.논의제일 가전연(論議第一迦 延)

불경을 대별하여 경(經), 율(律), 론(論) 삼장(三藏)으로 나눈다. 이 중에서 경은 부처님의 말씀이요, 논은 그 말씀에 대한 해설이다. 가전연존자는 부처님 말씀에 대한 해설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 탁월한 논리적 분석력으로 간명하게 설한 부처님 말씀에 살을 보태고 피가 통하게 만든다. 그래서 논의 제일, 또는 분별 제일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더불어 말하는데는 논리적 구사는 필수적이므로 설법제일이었던 부루나 존자는 그의 도움을 많이 받았던 모양이다. 부루나와 가전연을 굳이 비교하면, 부루나는 재가자들을 상대로 말하는데 뛰어났고, 가전연은 출가한 사문들에게 논리적이고 학문적인 해설을 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 했다고 볼 수 있다.

산스크리트명은 마하카차야나(Mahakatyana)로서 대가전연 또는 마하가전연으로 한역.
그는 16대국 중 하나인 서인도 아반티(Avanti)국의 수도인 웃제니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계는 크샤트리야 계급으로서 아버지는 아반티국의 국왕인 악생왕(惡生王)을 보필하는 재상(보좌관)이었다고 한다.

[장로게주]에 의하면 그는 악생왕의 명을 받아 부처님을 아반티국으로 초청하기 위해 사신으로 갔다가 부처님을 뵙자마자 그 인격에 감복되어 그대로 출가하여 왕을 불교에 귀의시키고 이어 많은 사람들을 출가 시킨다.
가전연은 빈틈 없는 논리를 바탕으로 인도 전역을 돌아다니며 탁월한 변재를 구사하여 중생교화에 힘쓴다. 그는 뛰어난 포교사였던 것이다.

가전연은 석굴암 제자상 중 본존불을 향하여 좌측 세 번째로 등장하고 있다.
왼손을 옷속에 넣은채 오른손을 올려 첫째, 둘째 손가락으로 둥근 원을 그리고 나머지 손가락을 죽 펴들어 설법하는 모습이다. 얼굴은 왼쪽으로 약간 돌려 쳐든채 눈을 똑바로 뜨고 있으며, 두발을 활짝 밖으로 벌려 버티어 서서 굳은 의지를 내 보이고 있는데, 상대방과 자신있게 논쟁하는 가전연 존자의 특징을 잘 그려내고 있다.

10.밀행제일 라후라(密行第一羅후羅)

라후라 존자는 석가모니불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로서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가운데도 은밀하게 스스로 행할 바를 실천하여 부처님으로부터 밀행제일이라는 칭호를 받는다.
실제로 그는 인욕행(忍辱行)과 계율준수를 남이 보지 않는데서도 철저히 해 나갔던 모양이다. 산스크리트명은 라훌라(Rahulla)이다. 장애로 의역 되고 있다.
사실 '라훌라'라는 이름은 아수라의 일종으로 그 아수라의 무리 중에서 가장 힘이 센 자를 일컫는 말이다. 신화에 근거하여 '라훌라'라는 말은 월식으로 불리게 되고 결국에는 장애라는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이다.

싯다르타가 생로병사의 고통을 목격하고 출가를 결심하여 돌아오던 길에 아들이 태어나 "라훌라(장애)가 생겼구나"라고 통탄했다는 일화가 있다.
행간에 숨어 있는 본래의 의미는 태자의 출가후 야수다라비는 정상적으로 라후라를 분만했다. 그렇지만 싯다르타가 깨닫기 까지의 6년 고행기에는 가족들도 인도의 풍속대로 고행에 가까운 생활을 하였으므로 라후라의 출생을 공식적으로 알리지 않았고 성도의 소식과 함께 그의 출생이 공표 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공교롭게도 출생일 날 월식이 있었나 보다. 그래서 그를 '라후라'라고 불렀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신후 고향 카필라 성으로 돌아왔을 때 야수다라 비는 라후라에게 "저분이 너의

아버지다. 가서 나는 왕이 되려하니 물려줄 재산을 달라고 하라."고 했다. 어린 라후라는 어머니 말대로 물려줄 재산을 요구했다. 부처님은 그녀의 마음을 간파하고 '차라리 그에게 보리 도량(菩提道場)의 거룩한 보물을 주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법의 상속자가 되게 하리라"고 생각하고 사리불에게 명해 라후라의 정식 출가의식을 명령했다. 당시 그의 나이 6세 혹은 10세라 한다. 이렇게 라후라는 사리불을 스승 삼아 최초로 사미가 되었다.`
석굴암 십대제자상 중에서 본존불을 향하여 우측 다섯 번째로 등장하는 라후라 존자는 얼굴을 정면으로 향하고 있으며 왼손은 주먹을 쥔 채 가슴에 대고, 오른손은 활달하게 들어올려 옷자락을 잡은 모습이다.

만면에 미소가 감돌고 있는 미남형의 중후한 비구로서 단정한 자태다.
일반적으로 불화에서 라후라 존자는 아난과 마찬가지로 머리를 단아하게 깍은 젊은 승려로 나타난다. 그 화면 구성을 보면 부처님 좌측에 마하가섭, 우측에 아나존자가 머무는데, 라후라는 가섭이 위치한 자리에서 약간 위에 젊은 비구의 모습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댓글목록

혜안등님의 댓글

혜안등 작성일

오늘 배운 명오스님의 강의를 되새기며 부처님의 10대 제자를 다시 한번 복습해봅시다!!

이미경님의 댓글

이미경 작성일

해안등님 넘 부지런하셔요..
수업 마치시고 언제 이렇게........?
10대 제자 다시한번 복습하겠습니다.
담~~수업때 뵙겠습니다.^^
관음반 반장

혜안등님의 댓글

혜안등 작성일

올해는 임원진이 너무 단합이 잘 되는것 같아서 정말 좋습니다.
청소당번이 아니라도 두팔 걷고 나서서 공양물 준비에서 설거지까지 늘 함께 해주셔서 감사해요.
어제는 관음반장님이 앞치마를 두르고 시원스럽게 설거지를 해주시고요.....
또 문수,보현,지장반장님과 총무님등 모두가 몸을 아끼지 않으십니다.
회장님 총무님은 끝까지 남아서 거들어주시고, 지켜주시니 임원들이 더 힘이 나기도 하지요.

추신) 관음반장님의 집은 "영주 자연산 건강원"이랍니다.
        위치는 구안동통로 남산초등학교 앞 한성슈퍼옆이고요.
        온 가족 건강을 위해서 엑기스를 드시려면 우리 도반님 관음반장님께로 연락 주세요!!
        종류별로 다양하게 다 있습니다.
        (이미경2 폰-- 010-3129-6066)

이미경1님의 댓글

이미경1 작성일

어제 명오스님 강의는 정말 좋았습니다.
 명강의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열심히~
혜안등님의 복습하라고 올려놓으신 글도 아주아주 잘 봤습니다.
어제 피곤하셨을 텐데도 늦게까지  또 이렇게 올려주시고...
역시 부지런하십니다.
목욜날 뵐께요 ☆★☆★☆

금강원님의 댓글

금강원 작성일

감사합니다.  항상 본받을 력 노력중입니다.
다시한번 읽어보니 명오스님의 강의가 가슴깊이 더 새겨지는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

김미경님의 댓글

김미경 작성일

저는요 `부처님의 십대제자`책을 샀습니다. 읽으려고요 열공하겠습니당...부지런하신 분들이 많아서 제가 부끄럽습니다. ^^

혜안등님의 댓글

혜안등 댓글의 댓글 작성일

대단하십니다. 열공하세요. 그리고 많은 분들께 포교해주세요~~
그리고 우리모두 정진 또 정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