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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7/26<불교개론5-선의 세계2> 강의 요약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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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길상화 작성일12-07-31 23:43 조회2,776회 댓글3건

본문

선의 세계 2 강의 요약 보고서

 

강의 제목 : 불교 개론 5 <선의 세계1>

강사 : 달마 거사

강의일자 : 7월 26일

 

 

선은 우리 마음을 보는 것. 결국 그 속에 다 있다. 안 보고 있으면 여러분들은 이 시간을 소비하는 것. 우리 인생에서 2시간은 별로 긴 시간이 아닐지 몰라도 기회 상실 면에서는 큰 손실일 수 있다.

책 몇 페이지에서 몇 페이지까지 진도가 있으면 좋겠다. 선은 없다. 조사어록 책 공부할 수 있으나 지식에 치중하게 됨. 하려고 하는 말 거머쥐지 못한다. 본래 선은 이론이 필요 없다. 고대로 딱 들어가면 아무도 안 나올 것이다. 선은 과외가 필요 없다.

여러분이 살아 온 것, 선 위에 있지 선을 떠나있지 않다. 말이 선이지, 그 글자는 부처님의 마음. 부처님의 마음과 우리 마음이 둘이 아니라 부처님 마음으로 살아 옴. 서유기에 보면 손오공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부처님 손바닥 안이다. 마음 바탕 위의 손오공이다. 마음 외에는 없다.

부처나 불성, 정신 차리고 움직이는 주체 이것이 편의상 마음이다. 그 놈의 놀음 속에 있을 뿐 존재하는 것은 없다. 우주조차도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주조차도 마음속에 벌어진 것이니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생각은 실답지 않다. 생겨난 것은 반드시 사라진다는 연기법을 부처님께서 가르치셨다. 우주도 연기법 속에 생겨남. 생각이 태어나는 것과 똑 같은 원리로 태어난다.

이쪽 안드로메다 은하계에서 저쪽 다른 은하계까지 빛의 속도로 수백만 광년이나 멀리 떨어져 있다. 아이러니하게 그런 그 우주도 마음 바탕 위의 티끌만큼 작은 현상일 뿐이다. 넓은 우주이다. 엄청난 은하계, 눈으로 찾아낸 태양계만도 700만개가 있다. 각 행성은 또 (그 주위를 도는) 위성 거느리게 됨. 태양계가 하나씩 있음. 우리도 하나의 태양계의 행성인 지구이다.

지구하고 조건이 흡사한 별이 1,200개나 발견되었다. 우리가 이주해도 아마 살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영주가 38°, 평균 지표면이 23°로 더 시원한 그런 지구 같은 행성이 1,200개나 있다. 이 지구란 1/1200 밖에 되지 않는 아주 작은 크기이다.

여러분들은 UFO를 믿는가? 미확인비행물체. 외계인이 탄 것 아닌가 심증있음. 이 우주에 생물체가 우리 밖에 없다는 오만은 어처구니없음. 모든 자연법칙은 동일선상에 있다. 태양이나 지구와 같은 원리로 움직이는 다른 행성이 있을 것. 지구 여기에만 생명체가 있을 것? 거기에도 있는 것이 당연하다.

이렇게 우주 전체 입장에서 본다면 ‘나’라고 하는 놈은 몸 속 박테리아 정도 비중도 안 됨. 그 속에는 우주를 주물고 탄생시켜가는 마음이 들어 있음. 어느 것이 크다 할 수 없음. 모든 것은 서로 물려 들어감. 여기는 시작이고 저기는 끝이다라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음.

진리는 시작이 없음. 끝도 없음. 여래란 말은 온 적이 없다는 말이다. 온 적이 없기 때문에 가지도 않는다. 뭐가 왔어야 가지, 본래부터 그랬다. 그 여래는 지금 말씀 듣고 있는 여러분의 마음 마음이 여래다. 여러 몸뚱이는 왔다 갔다 한다.

여래의 마음은 본래부터 어디 가지를 않는다. 가면 오고, 생멸이 있고 윤회를 하는 것, 그건 껍데기는 왔다 갔다 한다. 그 패턴이 6가지인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아수라, 천상의 중생들 세계이다. 이 여섯 세계에 들락날락하지만 그것은 우리 몸뚱이만 그 짓을 한다. 그 몸을 만들어내는 당당한 마음은 움직인 바가 없다. 그것이 열반이다.

죽으면 열반했다 한다. 그것은 제 자리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본래 열반은 돌아가지 않는다. 이 본래 면목은 마음 인연에 따라 다양한 모양으로 자기 존재, 소유를 만들고 살아 본다. 이 모양대로. 살다가 소멸한다. 우리 몸의 소멸, 그것이 죽음이다. 잘났든 못났든 키가 크든 작든 상관없이 자기가 원한대로 지어 나왔다.

못났다 하더라도 자기 외모 혐오하는 것은 정말 못난 짓이다. 자기가 그렇게 원해서 나와 이렇게 살고 살아 간 것이다. 이 법당은 불교대에서만 교실로 사용하는 것 아니다. 이 교실 공간은 그대로 있음. 등장인물만 바뀌게 됨. 이게 우리의 사는 모습, 만들어져 사는 원리이다.

퉁?쳐서 연기법이다. 무엇을 마음이 활용하는가? 연기를 활용한다. 마음이란 기가 막히다. 상주(常住)의 원리라면 자기를 나툰다 그러면 큰일 남. 변하면 안 된다는 것. 상주라면 변하지 않고 한 번 생긴다면 사라지지 않는다. 한번 지옥이면 계속 지옥. 한 번 생겨나면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계속 지속된다면 상상하기도 버겁다.

마음은 아주 교활하다. 지 감정대로 하고 싶은 대로 놀아보는 데 무상․무아의 원리를 이용하고 있다. 여래는 대단한 존재이다. 어쩌면 그렇게 지혜로운가? 여러분 스스로 모르고 있다는 것 밖에 없다.

무상․무아의 원리 때문에 모든 것은 정해진 것이 없이 그림자와도 같다. 다음 생에 왕자나 궁녀나 원력대로 몸을 나툼. 그 원을 가지고 무상․무아의 원리 한번 쓰고 사라짐. 만약 상주의 원리라면 제 아무리 마음으로 수많은 우주를 만들고 살아보아도 곧 쓰레기장이 될 것이다.

그러나 무상․무아의 원리는 사라지면 흔적도 없음. 그림자에 불과하다. 여러분의 모습이 아무리 심각, 진지한 입장이어도 그림자에 불과하다. 지금 하고 있는 일, 심각한 일이 있다면 부처님이 가르치고 추구하는 방향이 아니고 세속적인 일이라면 일찍 마음을 거두시라. 그림자 놀음에 깊이 빠지지 말라.

부모님 정혈을 받았지만 부모의 정자, 난자가 만날 때 그 다음 의식이 깃들지 않으면 생명이 날 수 없음. 생명 불어 넣을 수 없음. 의식이 생명이다. 착상이 안 되거나 유산되거나 이런 경우 의식 떠나버려 생명이 끊어짐.

여러분의 주체인 의식, 이 마음 위에 우리가 그리고 있다. 이 삶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 특히 어려움 속에 있다고 여겨지는 분들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정해진 것은 없다.

벗어나는 방법은, 내가 어려움 속에 있다면, 지금 어려움이 진행 중일 때 무엇을 하려고 문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 바닥까지 내려가야 올라올 일만 남음. 내가 어떻게 한다 해서 확 정해진다면 그냥 하면 됨. 더 어려움 만들어내는 경우는 좀 더 내가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지키려고 할 때이다. 그러니 빨리 내려가지지 않는다. 정리도 안 된다. 내가 계속 움직이고 있으니. 너무나 많은 걸 잃어버리는데 잃어버리면 안 되는 걸 잃어버린다. 그것은 희망이다. 모든 마음 다 소진하고서 그런 것도 날 살려줄 만큼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 선지식들은 말씀하시길 그냥 세상은 놀이터이다. 네가 아직 어두워 모르지만 요렇게 놀아보려고 만들어 갖고 온 세상이다. 과연 여러분은 재미있게 놀고 있는가? 갖은 근심 싸매고 이 짓은 전생에도 심하게 했음.

인생은 정정당당하게, 온당하게 즐겨라. 여러분들이 한번 재미있게 놀아보려고 만든 세상. 여러분 마음은 어떤지 모르겠다. 걸판지게 놀 수 있으면 부처이다. 앞 일 무진장 급해서 날마다 꼴딱꼴딱 하고 끝남. 우리한테 늘어가는 것은 부정성뿐이다. 고요하지 못하고 소란스럽고 자신의 본래면목 챙기지 못한다.

전쟁터 생각해 보라. 총알, 포탄이 여기저기 날아다니고 도망다닌다고 생각해보라. 이것이 우리의 삶이다. 그러나 여러분은 다 잊는다. 전생에서 죽을 때 제일 많이 까먹는다. 이생 몸 나려할 때 잊어 먹는다. 몸 속 의식 날 때, 어머니 몸 밖에 나올 때, 살다 보니 또 까먹는다.

전생했던 짓 또 한다. 왜 이런 것이 가능한가? 전생 습관 때문이다. 배운 적도 없는데 잘 함. 습이 업이다. 정말 포탄과 총알 날아다니는 그런 지옥과 비슷한 곳에서 뭔 공부를 하겠는가. 나의 삶은 그런 전쟁터가 아니다. 용맹주의자는 삶은 전쟁이라고 한다.

언제 삶이 전쟁이라는 가르침을 주었는가? 어떡하면 남의 것을 뺐을까, 남보다 더 가질까 할 때 삶은 전쟁이다. 부처님께서는 삶의 본질은 평화와 행복이라고 하셨다. 자기 분상대로 세상을 볼 수밖에 없다. 그러한 부정성 중 경쟁은 내가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쓸데없이 나라는 생각을 일으켰다. 나를 높이고 나를 집착하고 사랑한다. 이렇게 해서 나만 위하는 마음 더 커진다.

탐심과 성냄, 어리석은 마음이 같이 작용하면서부터 인생 고달프기 시작한다. 경쟁과 비교의 마음에는 고요하고 행복, 평화스러운 환경 내 시야에 들어오지 않음. 부정성이란 고요하지 않음이다. 불안이다. 반대 개념이 긍정적인 것. 우리가 참선한다면, 내가 행복한 존재구나 느끼려면, 긍정성 받아들이려면 부정성을 정화해야.

우리는 은근히 부정의 대표, 꽤나 부정적인 민족인 것 같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에 참 진리가 들어 있음. 다른 사람도 아닌 사촌에. 남이 땅 사는 건 배 아프지 않음. 인연 도리이니 원수는 가까운 사람이다. 이것은 중생의 보편적 속성에 해당한다. 이런 마음으로는 행복을 볼 수 없다.

참선의 이유는? 깨닫기 위해서이다. 뭐하려고 깨달으려 하는가? 절대적 행복 되찾기 위해서이다. 부처님은 나는 진리를 깨달았다고 하시지 않았음. 우리 모두가 진정 행복해지는 방법을 깨달았다라고 하셨다. 그것이 팔정도이다.

사촌이 땅 사면 배가 아프면 나의 행복을 찾아낼 수 없다. 배가 아픈 것은 질투의 안경을 쓰고 있으니 그런 안경으로 세상 보면 질투 덩어리 밖에 더 보이겠는가. 빨간 색 입히면 세상이 모두 빨갛다. 부정적 안경으로 봄. 행복은 앞에 있어도 못 봄. 그 성향들이 굉장히 두껍다. 불교에서는 부정적 성향들을 긍정적으로 정화하기 위해 자상한 가르침을 펴고 있다.

<법화경>*주: 상불경보살품- 전생 부처님인 상불경(上不輕)보살은 모든 존재를 가벼이 보지 않는 보살이다. 모든 존재를 부처로 봄. 사실 그렇게 보아야. 부처 아닌 존재가 없기 때문이다. 상불경 보살은 만나는 사람 누구에게나 “당신은 부처입니다.” 당신 존재는 부처로서의 존재이고 당신은 반드시 성불할 것입니다라는 기원, 축원함. 하루 한 사람을 열 번을 만나도, 하도 듣기 싫어 사람들이 때리면 후다닥 도망을 치면서도 또 그렇게 말함.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이것이 긍정성 회복의 아주 첩경이다. 반드시 행이 따라야. 이론에 그치면 안 됨. 보살은 그런 존재이다. 보살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면 몇 번을 울어야 할 정도. 우리 속의 부정성을 생활 속 극복하거나 상불경 보살처럼 직접 그렇게 하실 준비가 되었는가?

이번여름 동안 과제는 일단 리스트 20명 작성, 최소에 하루에 한 번 얼굴 보거나 전화 통화해서 최근에 뛸 듯이 기뻤거나 기분 좋은 일, 행복을 느낄만한 감동스러운 일들 경험했는지 확인하라. 최근에 없다면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일은 무엇인가? 상대방이 아주 생뚱맞게 생각할 수도 있음.

1. 가급적 구체적으로 확인하라.

2. 자세히 확인해보고 그런 행복감, 기쁨을 가급적 똑같이 느껴보려고 노력하라.

예를 들어 물어 보니 로또 1등을 해서 기절할 뻔 했다 한다면 나도 기절해 봐야.

3. 이런 좋은 일이 계속해서 생겼으면 좋겠다고 축원해 주어야.

수희(隨喜) 찬탄, 대승 불교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과제이나 이것을 다루는 분 없음. 여러분이 50여년을 살았다면 5번 정도나, 10년에 한 번 씩 정도나 기뻤을 일이. 도대체 우리는 좀 재미있게 살아보자고 나왔음에도 겨우 십년에 한 번 뛸 듯이 기뻤다. 인생 유기이다.

하루에 한 번은 뛸 듯이 기뻐해야. 정말 뛸 듯이 기쁘고 행복함 경험할 때마다 우리가 쌓아 둔 부정성이 뭉툭 사라진다. 이런 일이 안 생기니까 여러모로 만들어보기 위해 전화해본다. 20명에게 전화하면 기쁠 확률이 20배나 높아진다. 사촌이 땅 사면 배 아프는 못된 심보를 고쳐 나가야. 내가 땅 산 것처럼 기뻐해야.

이렇게 내가 그 사람에게 물어 줌으로써 그 공덕은, 그 사람이 다시 그 경험을 하도록 도움. 그 분이 좋은 일. 두 번째는 들어서 내가 기쁘니 나한테 좋은 일, 셋째 그분께 축원해 주니 상불경보살이 했던 똑같은 것을 하게 됨.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보살행이다. 상대방이 처음에는 뭘 잘 못 먹었나 하다가도 몇 번 반복되면 너 왜 그러냐고 물을 것. 불교에 수희 찬탄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법을 하고 있는 중이다. 결과적으로 우리 마음의 부정성 없어지고 인관관계가 복원, 회복 됨. 거리감 있었다거나 좀 소원해진 분들에게 그걸 계속 함으로써. 축원에 기분 나쁠 사람 없다.

남의 행복 함께 해 줄 수 있다면 그분 엄청나게 공부되어 있는 분. 부처는 산 속에서 찾을 게 아니라, 어느 유명한 절, 보궁, 법당에 갔어도 여러분 떠나 부처 없음. 그런 곳의 부처는 우리의 스승으로서의 상징성 잊지 않기 위해. 불상 조성하고 노예 짓 하고 있음. 주객 전도. 세상에 진짜 부처에게 절하지 않고 누구에게 절하는가? 나에게 복 줄 분인가? 중은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있고 그 중이 나쁜 것이 아니다. 내가 이러면 복 받을 거다 이러는 우리나 똑같다. 남의 행복 같이 기뻐해 줄 수 있어야.

괜히 여러분 100년도 안 되는 짧은 삶에 모든 가치 두지 말라. 수 천만가지 삶 중 하나일 뿐이다. 깨닫지 못하면 계속 태어나야한다. 모든 것이 똑같을 바에야 뭣하러 불교 하는가? 부처님의 가르침은 결코 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절이 산에 있으니 간다. 절이 이런 곳에 있으면 이런 곳에, 절에 스승이 있으니 뵈러 간다. 여기 부처가 나와 계시면 산에 안 간다. 그 때는 체력 단련하러 산에 감.

부처님의 가르침은 철저하게 사람에 두지, 사람 떠나 있지 않다. 내 눈 앞의 사람 잘 해 줘야. 아무리 불전 앞 무릎 깨지더라도 업장 소멸 안 됨. 그렇다면 돈 많은 사람은 업이 없어야. 내가 지은 업은 돈이나 다른 사람 힘으로 옆으로 지나치게 할 방법 있었다면 대자대비의 부처님이 가르쳐 주셨다. 힘들게 공부해야 하도록 가르치셨겠는가? 좁쌀 영감이 아니다. 스승은 장부 중의 장부이다. 다른 근본 문제가 있다면 틀림없이 가르치셨을 것. 그 방법은 가르치지 않음.

불교 만난 것도 옆 사람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어야 가치 있음. 금생 부부는 몇 생 만났다 헤어졌겠는가? 7천생 만나고 헤어짐. 징그러운 사이. 결혼 안 한 사람은 어떻게 보면 7천 번 동안 만나고 헤어진 사람이 없다. 그래서 애들이라고 하기도.

스승과 제자로 만 날 인연은? 9천생, 도반은, 같은 공부를 추구하면, 그렇다고 도둑질 같이 하는 것은 도반이 아니다. 수도, 발전적인 것을 같이 할 때 도반, 만2천생. 도반은 물질을 떠나 있음. 정신적 교감. 부부는 한 이불 속에서도 각자 꿈, 생각 다름. 물질적 만남의 목적이 훨씬 더 강함. 이혼 시 위자료 한 푼 더 가지려고. 도반이 참 각별한 사이. 만이천생 정들 쌓아 온 사이이시다. 잘해 주시라.

옆 사람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때 여러분 통해 불교대 다닌 공덕 살아남. 시험 보면서 점수 많이 맞는다 해도 생활 속에서 쉽게 안 되면 불교대 학생 노릇 잘 안 됨. 생활을 변화시키시라. 수희 찬탄해야.

무재칠시(無財七施)*주:<잡보장경(雜寶藏經)> 돈이 들어가지 않아도 할 수 있는 7가지 보시.

1. 안시(眼施); 부드럽고 편안한 눈빛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

2. 화안열색시(和顔悅色施); 자비롭고 미소 띤 얼굴로 사람을 대하는 것

3. 언사시(言辭施); 공손하고 아름다운 말로 사람들을 대하는 것

4. 신시(身施); 예의 바르고 친절하게 사람들을 대하는 것

5. 심시(心施); 착하고 어진 마음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는 것

6. 상좌시(床座施);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

7. 방사시(房舍施); 사람을 방에 재워주는 것

수희 찬탄과 무재칠시로 웃는 얼굴, 사랑스러운 말하기 등 굉장히 웬만큼만 실천하면 줄서서 불교 하겠다. 그것이 진정한 포교이다. 서울에서 숙제로 내었더니 한 학교 상담교사가 막 욺. 애들 상담하다보면 반드시 문제를 전제한다. 이걸 몇 년 계속하자보니 자기 마음이 피폐해짐. 문제 있는 것만 파야 해결 가능. 자기 마음이 왜 무겁고 무기력한지 원인을 모르다가 한 학생이 왔을 때 문제 보기를 벗어나 뭐 좋은 일 없었나 질문, 잘 생각해보니 지난 번 우리나라와 외국 팀과의 축구 때 이겨 골인 했을 때 펄쩍펄쩍 뛰며 소리 질렀다고. 그것을 함께 공감해 보니 처음으로 행복감이 들었다. 그 때도 울었지만 기억함으로써 또 울음이 난다고.

상대방 행복에 대해 공감하라. 이 습관이 굉장히 중요. 지난 생 생각 내려놓기 더 잘 할수록 수희찬탄 잘 할 수 있게 됨. 상대방 공감 필요성 느끼고 노력하려 해야. 생각 바라보고 내려놓고.

부처님에게 빌지 말라. 비구는 원래 거지이다. 빌어먹는 사람. 밥을 빌고 법을 주는 엄청난 가르침을 줌. 우리는 거꾸로 복을 빎. 부처님 하지 말라 한 것을 한다. 부처님을 능멸하는 것이다. 여러 마음속에 모든 게 다 갖추어져 있음. 부단히 일어나는 생각 알아차리고 내려놓아라. 생각, 감정, 마음의 변화.

내버려 두는 게 내려놓는 것이다. 알아차리기는 차렸으나 거머쥠. 알아차리지 못하면 마음 작용을 아예 모름. 그 생각에 끌려가버림. 무의식적 삶을 살게 됨. 그러면 완전히 업에 지배당하게 됨. 마음 변화 일어났을 때 알아차리고 업을 벗어나게 됨. 생각대로 하지 않으면 내려놓으면 그 순간 업으로부터 자유롭다. 참으로 여러분 마음은 자유로운 존재이다. 우리가 스스로 결박, 묶은 사람은 나 자신 밖에 없다. 부처님조차도 내 생을 결박할 수 없다. 자기 마음이 여래라고 보아야 마음속에 갖춘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수식관(數息觀), 호흡법의 기초>

숨 들이 마시고 내 쉴 때,

1. 들 숨, 날 숨의 길이를 같게 할 것

2. 숨은 코로만 쉴 것

3. 마음의 집중은 코에, 호흡 들어오는 감각, 나가는 감각을 느껴라.

배나 가슴 등 감각 일어남을 느끼기만 하라. 집중할 필요 없음.

숨 들이 마실 때 하나, 내쉬고 들이마실 때 둘, ...내쉴 때에도 같이 세면 길이 같이 할 수 있다.

4. 가급적 숨은 길고 가늘게

5. 이 숨은 비흉(非胸) 비복(非腹), 흉식도 복식도 아님.

바르게 숨 들이쉬고 내 쉼. 마음속으로 셈. 똑 같이 쉬어짐. 처음에는 5초, 나중에는 6~7초 마다 내쉬고 들이쉬고. 배나 가슴만이 아니고 자연스럽게 몸 전체가 쉬어주듯. 다른 생각 일어나면 알아차리고 내버려둔다. 일상생활 속에서는 몸과 마음을 다 내려놓은 기분으로 삶. 마음이 고요해지고 평화로워지고 맑아지는 느낌.

반대의 경우는 몸이 웬지 무거워지고 할 때에는 숨 길이를 무리해서 억지로 길고 미세하게 하려 노력할 때. 몸 전체 어디에도 긴장하지 말라. 시간 없을 때는 5분, 시간 많을 때는 50분 하루에 꼭 두 번은 앉는 연습하라.

부처님 호흡법은 아니나 당장 선 하려면 호흡이 너무 얕음. 깊은 호흡 안되니 깊게 몸 전체 활력 살리고 마음 고요히 하고 난 후 부처님 가르침의 호흡법으로. 제대로 호흡하면 30초-30초로.

평상시 호흡 10초-10초 해도 부처님 호흡 할 수 있으나 짧을 경우 호흡관 할 수 없음. 틱낫한스님 호흡법 들어가기 전 단계. 눈은 반계(안). 앞에다 툭 떨어뜨려 놓아라. 의자에도 ok. 다만 등받이에서 등을 떼고 세워라.

근심 걱정하고 살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다. 어떻게 삶을 맞이하는가에 따라

완전히 다름. 심각한 상황에 끔뻑 죽는 사람, 가볍게 넘기는 사람은 가벼운 일 밖에 안 됨. 부처님은 심각한 삶을 사시지 않았다. 인격자가 되어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본원적인 삶을 사는 것도 중요하다. 무게감 너무 갖지 말라. 마음 여유 만들어내어 공부하라. 경전 공부도 중요하지만 선은 경전으로 들여다 볼 수 없음. 직접 들여다봐야. 나에 대한 이해, 그 후 정말 들여다보는 일 해야.

석가모니 부처님이 오래 전 전생에서 수행자로 있었을 때에 연등부처님으로부터 보살 수기를 받음. 보살 수기는 1분 정도의 시간 동안 앉아 참선하여 아라한을 증득할 만큼 공부되어 있어야 보살 수기 받을 수 있음. 이미 진리를 깨달아 더 이상 윤회를 하지 않는다. 초기 불교에서 부처님이 대아라한이면 사리불, 목련존자, 수보리존자 등이 모두 아라한이다.

그 보살 수기를 받으면 그 존재는 육도윤회를 전부 다시 해야 한다. 3아승지 겁의 윤회 고통을 다시 당해야. 어느 것을 택하겠는가? 부처님이 받으셨다. 박테리아, 구더기, 뱀, 개, 소, 말, 돼지, 아귀, 인간, 아수라, 천상등 인생 유전을 계속 함. 그것이 바라밀수행이다. 생의 수로 말하면 7천생 윤회를 한다. 그 중 6,500생은 인간 외 다른 존재로, 500생은 인간으로 윤회, 수행자의 길 걷는다. 부처님 전생담 어마하다. 여러 짐승들 몸으로 화현 후 마지막 정반왕의 품에서 싯달타 태자로, 수행자로, 여래로. 그 덕에 2,500년 동안 사성제 팔정도의 부처님 법을 얘기 할 수 있음.

보살 수기는 일체 남김 없이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서원을 세우는 것.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5분이면 아라한이 되어버림. 1분이면 나의 괴로움 고통이 다 소멸하여 윤회 떠난 아라한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길로 들어간 것이 보살의 길이다. 모두다 바라밀 수행이며 수행의 완성 이야기이다. 보살이라는 존재의 은혜는 너무나 깊음.

여러분은 실감 안 날 수도 있지만 여러분은 연기의 존재이다. 업이 있다는 가르침을 들어 이해하였다면 더 좋고, 아는 것만으로도 여러분은 최소한 6,500생은 그냥 뛰어 넘어버릴 수 있는 거다. 갖은 고통, 수 천생의 윤회를 생략시킬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불자는 자부심을 가져야. 스스로가 부처라고 하는 존재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노력해야.

수희 찬탄하시라. 다른 사람이 행복하면 그로써 나도 행복해진다. 남도 좋고 나도 좋은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호흡으로 이 존재감 점점 더 넓어진다. 명상에 들어가면 이 부처라는 존재가 꽉 차는 것이 느껴질 것이다. 거기에서 미묘한 즐거움, 기쁨 함께 일어남. 쌓아 온 부정적 요소 사라짐. 부처로서의 존재감 느껴 보아야 부처님 제자이다. 팔만대장경을 다 들어보아도 불교 학자이지, 그러나 부처님 제자는 안 된다. 지식으로만 갖고 있어도 부처님 제자 아니다. 무상, 무아의 그림자만 보았어도 영락없는 제자이다. 여러분은 부처로 펄펄 살아야 한다. 좀 모자라는 부처도 부처이다. 불성을 가진 당당한 부처로서 수희찬탄하시라.

궁금한 점은 축서사 불교대학 사랑방에 올려주시라. 정말 여러분들 행복해 보이시는데 지금보다 세 배 더 밝고 행복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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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많은 생 중 하나의 삶일 뿐이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본원적인 삶을 행복하게 살다 갈 수 있도록 내려놓기를 더 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다시 그 많은 생의 윤회를 한다 하더라도 중생구제의 원력을 세우는 부처님의 보살도의 정신이 참으로 무섭고 고마울 뿐입니다.

장시간 쉼 없는 강의로 부처가 부처에게 주는 수희찬탄의 인격을 실천, 키워가자고 강조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 모두의 지고한 행복을 위하여_()_

 

 

댓글목록

혜광님의 댓글

혜광 작성일

길상화 보살님 애쓰셨습니다.

오늘은 한가해서
직원들이
약을 정리하고 있네요

은어 축제 참가자가
절반으로 줄었다네요
영주의 수박축제 때문에
타격이 크다고
공무원들의 입이 이만큼 나왔네요

불자들의 입장에서는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묘광명님의 댓글

묘광명 작성일

내려놓고
내려놓고
또 내려놓고

아직도 내려놓을게
하염없이 많네요

더운날씨 다들 더위 안먹게 조심하세요

누가 그러시더라구요

아무리 먹을게 없어도
더위는 먹지 말라고 ... ㅋㅋㅋ

성불하세요 ()_

길상화님의 댓글

길상화 작성일

수업 후 커피집 뒷마당에서 선행화보살님 질문 있었습니다.

전생에 스승과 제자 관계이다가 이생에 부부인연으로 만나 함꼐 공부하는 도반 사이라면
몇 생을 거쳐 만난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