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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2 2학년 불교신행 1 강의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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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길상화 작성일13-05-16 01:30 조회2,518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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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행 1 강의 보고서

 

강의 제목 : 불교신행 1

강사 : 달마거사님

강의일자 : 4월 22일

 

동생에게 선생님보다 형님 역할이 더 중요할 수도. 평소 1학년 도반님들 끔찍이 챙겨 주시라. 불교처럼 따뜻한 종교가 없다. 평소에 후배들에게 눈길 하나라도 따뜻하게.

작년 강의 간단히 복습. 실질적 호흡 통해 마음을 어떻게 챙기고 갈무리해야할지 볼 것임. 이 시간이 참선 시간. 막상 참선해보려 하니 뜻대로 안되었음. 불교 전반에 걸쳐 이해해두면 요긴하게 힘 발휘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과목 이름도 신행생활로.

우리 관념 속에서 시간 개념. 사는 현실에서 보면 부처님도 못하시는 것, 과거에 살거나 미래에 살거나. 철저히 현실만 살 수 있음. 진리 관점에서 볼 때 필요하면 과거에도 사시고 미래에도 사실 수 있지만 우리에게 가르치신 것은 과거에 살지 말고 미래에 살지 말고 지금 이 순간만 살아라.

그러나 우리는 묘하게도 지금 이 순간에 살지 않음. 과거 살거나 미래에 삶. 대개 못 다한 일이 있거나 불현듯 집 또는 직장에 있었던 일 생각하면 과거에 삶. 과거의 삶은 반드시 미래로 옴. 달성하지 못한 일에 대한 생각은 100% 미래로 감. 오늘 마무리 못한 일, 중요한 일일수록 곧바로 내일로 내달림. 과거에서 바로 미래로. 그만큼 지금 이 순간 현재에 하지 않음. 우리 몸만 살아서 돌아다닌다고 사람이 아니다. 마음만 살아서 돌아다니는 것도 사람 아님. 몸은 죽었는데 마음만 돌아다니면 귀신. 시체도 사람 아님. 마음과 몸 함께 움직일 때 사람이라 함. 철저히 함께 해야. 그래야 사람 노릇. 선에서는 이것이 가장 중요. 미래라는 시간은 오직 않았고 과거라는 시간은 지나가버렸고 생각 속, 관념의 세계에만 있음.

실질적으로는 지나간 시간 존재하지 않음. 되돌리려 해도 불가능. 더더구나 미래는 결정되어져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우리가 어리석음의 견고한 의식, 업의 특성상 인과 결정될 수는 있으나 선을 시작하면 무용. 지금 이 순간 어떠한 마음인가 따라 철저히 변함. 지금 이 순간 내가 마음먹을 수 있는 거리는 지금 이 순간까지 살아 온 과거 시간이 결정함.

과거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살아 온 모습, 부정적 측면의 업 등의 무기력감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첫 번째 화살이다. 첫 번째 화살은 여래도 피할 수 없다. 인과. 그런데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말라. 과거 비롯된 지금 이 순간의 생각이나 느낌으로 또 다른 번뇌를 만들지 말라. 미래에 다시 만들지 않기 위해 지금 이 순간 철저히 바라보라. 지성적으로 이해를 하든 이 순간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철저히 살펴라.

참선 무슨 준비 필요 없음. 타성적 관습이 계속하려는 습성 있어 용해시키기 위해 가르침 주고받아 녹여 냄. 불교 외에도 주장, 그러나 이 범주를 벗어나지 않음. 부처님의 자식으로 자부심 있음. 가장 미묘한 법 통찰, 가르침 주시기 때문. 불교의 가르침보다 더 깊고 확철한 가르침은 없는 것 같다.

세계를 불교는 두 가지로 나눔. 참의 세계, 거짓 세계. 참은 좋은 것, 거짓은 나쁜 것이라는 세속적 이분법 안 좋음. 좋다, 나쁘다 관점 나누는 것. 역할 분담하여 진제(체)- 진리의 몸. 특성은 아주 지극히 고요, 모양 없음, 소리 없음, 냄새 없음, 감지 불가, 알아챌 수 없음. 공적(空寂), 선에서는 적적(寂寂)이라 표현, 지혜, 밝음. 이 고요함과 밝음은 동전의 양 면, 손바닥 안과 밖, 나뉘지 않음. 상이한 작용을 스스로 함. 형상을 만듦. 참의 세계는 무엇으로 감지가 안 되는가하면 육근으로 감지 안 됨. 안이비설신의(식)으로 감지 불가. 격외(格外). 반드시 밝음과 고요함은 작용을 일으켜 현상계 만듦.

속제(용)-이 육근으로 감지 가능한 드러냄. 현상계는 반드시 참의 세계의 작용. 참의 세계 없는데 현상계 드러나지 않음. 현상계 벌어지는 것은 모두 참의 세계 작용. 이 현상계는 모양, 소리, 냄새, 두두물물, 전부 참의 세계 작용으로 빚어진 세계.

이 작용 원리는 불교 가장 핵심과 기초가 되는 두 글자, 연기 현상으로 드러남. 연기 현상 아님 없음. 연기 현상의 특징은 변화. 우리 육안으로만 본다면 없던 것도 생겨나고 있던 것도 없어짐. 참 세계 관점에서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음. 참의 세계는 공성(空性)계, 현상계는 색계. 연기 현상으로 빚어냄. 있다면 불교가 아님. 존재하는 모든 것은 연기. 인연따라 생겨남. 생겨날만한 조건 사라지면 현상도 사라질 수밖에 없음. 변화의 원리. 눈에 보이는 것도 변함. 변하고 생겨났다 사라지는 것은 서로 조건에 기대어. 조건이 바뀜에 따라. 연기 현상의 전체성.

이 달마는 무엇을 근거로 존재하는가? 이 모양 가진 전체성. 손가락에 의존해 손이 존재, 손에 의지해 팔이 존재. 발가락에 의해 발이, 다리가, 몸통에, 머리에... 의존, 달마라는 모양으로 형성. 독자적으로 손이 혼자 존재한다면 손이 없어도 손가락 존재해야. 팔다리 없어도 몸통 드러낼 수 있어야 하는데 불가능.

어떤 부분으로 이루어져있나 보면 바로 연기 이해. 이 전체는 진실한 모습이 아니라 내 생각의 투영. 여러분들이 보고 있지만 진실로 보지 않음. 여러분의 생각을 보고 있음. 저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음. 끊임없이 여러분의 생각 덧씌움. 중생의 모습. 수 억겁동안 윤회해도 어느 사물 하나 제대로 못 보 관념의 세계.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다. 공성이 작용 일으켜 만들어낼 때 진리는 하나여야 진리, 이 세계에서는 진리이지만 서로 다른 법칙이 한 공간 내에 함께 존재할 수 없다. 참세계가 공성. 무엇이 있다 없다 할 수 없음. 있다 해도, 없다 해도 틀림. 과감히 무엇이 있다하면 틀림. 거짓 세계 빚어내는 것을 볼 때 없는 것도 아님. 희론의 세계. 깨닫지 못한 분상에서는 설명 불가능.

공성의 세계가 무엇을 만들어낼 때 공성의 원리에서밖에 만들어 낼 수 없음. 현상을 일으킬 때 공한 원리로밖에 일으킬 수 없음. 자신이 앉아 있는 모습, 모양. 차별적 모양. 이 현상 드러난 모양은 참의 세계에서 옴. 연기 현상으로부터 옴. 모양과 생각, 감정 등 지어냄. 소위 마음은 에고적이다. 마음은 전부 연기 현상 지어냄. 참의 세계를 일컬어 불성이라 함.

예를 들어 진흙으로 부처님 상 조성, 진흙은 진의 세계, 상은 현상의 세계. 부처님의 상의 재료는 진흙, 쇠라면 말이 안 됨. 갑자기 쇠로 바뀜? 이런 변화 불가능. 이런 쓰고 있는 마음은 모두 참의 세계가 연기현상으로 지어낸 것. 몸, 마음의 재료는 불성일 수밖에 없음. 두두물물 부처 아닌 것이 없다. 우리는 싫다고 해도 부처일 수밖에 없다. 여러분 스스로 이대로 부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라. 그 관점에서 무엇을 한다면 부처님이 움직이는 것. 부처님이 부처님께 기도하는 것. 모래, 자갈은 생명 없을 뿐 부처이지만 모양만 있을 뿐 부처 역할을 할 수 없음. 대신 다른 쓰임이 있음. 우리는 생명도 있고 지혜도 있음, 온전한 부처임. 이 사실을 받아들이라. 수 억겁 동안 불교를 해도 잘 모름. 역대 가르침을 한번이라도 찍어 맛을 알아야. 거부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는가.

심리학자, 명상프로그램 하시는 분들. 너무 힘든 사안이 있으면 그게 너무 버거워 내가 부처라는 사실 인정하지 않으려 함. 그러면 어디 대고 빌 데가 없음. 부처라고 인정하는 그 순간 기도의 대상이 없어져 버림. 부처님 우주 나투실 때 천백억 화신으로 나툼. 사실 부처 아닌 것이 없음. 진흙으로 빚은 불상, 모양이나 개념으로 보면 새로운 것이 나온 것 같지만 본질은 진흙일 뿐이다. 우리의 본질도 부처, 벌어지는 일 전부 부처일 뿐, 두려움 등 내려놓기만 함.

여러분들 기도 통해 가피 받음. 꿈에 관세음보살 나오시나? 어떻게 그 일이 이루어지는가? 가피는 반드시 내 옆 사람을 통해 전달. 가족, 동료, 스님, 도반 통해. 이 마음까지 도달하면, 물론 순수한 바램이어야 하지만 음모, 음해 기도는 안됨. 통로는 자기 마음이 통로가 되어야만 함. 이루어질 때에도 육화하고 있는 여러분 통해 이루어짐. 기도는 반드시 이루어짐. 기도는 호박을 여드레 동안 삶아도 설익는다는 말 있듯이 믿음이 약하거나 하다 말다 한다거나 하면 참세계까지 도달하지 않음.

손으로 때리면 아프지만 실제가 아니다. 거짓세계이다. 연기현상으로 이루어진 거짓세계. 부정적 의미로 거짓세계가 아니라 참이 아닌 세계, 현상. 이것이 참이라고 굳게 믿고 심각해짐. 뭣 하나 갖고 싶은 게 생기면 목숨 걸기 시작, 도깨비와 똑 같은 삶. 귀신의 삶, 역대 선지식들은 꿈속의 꿈이고 그림자와 같은 참이 아닌 세계.

심각하게 살지 말라. 심각함이 모자라 행복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지나치게 심각하기 때문이다. 별일 아닌데도 핏대 세우고 자존심 세우고. 정말 하룻밤 꿈과 같은 세계이다. 다가오는 괴로움이나 고통도 잘 참을 수 있음. 연기현상으로 인한 거짓세계. 실재하지 않는 세계. 실재한다고 착각. 그렇게 보는 이유는 나라고 하는 잘못된 생각 일으키고 오염된 의식에 탐심, 어리석음, 질투 등 마음 하나 움직이면 부처님 마음이 움직임. 나라고 착각 일으킨 함정에 스스로 움직임. 본래 없음. 착각하고 통과하기 시작. 각자의 탐진치 작용에 살아온 내용 버무려 물들게 됨. 처음에는 부처님 마음이 움직였으나 이 과정 중에 오염 됨. 실제 중생의 소견으로 들어감.

연기현상의 특징은 무상이다. 제행무상. 모든 것은 변한다. 그러므로 어느 한 순간도 어느 순간 꼭 집어 이것이다 라고 할 수 없음. 일정한 가치 매겨두면 속음. 예를 들어 달마는 좋은 사람이다 하게 되면 벌써 틀렸음. 다른 사람은 나쁜 놈 할 수 있음. 이만큼 좋고 이만큼 나쁜가? 좋은 놈 나쁜 놈 판단은 그 사람의 생각. 동기부여는 해주었을지언정 그 사람이 하는 것. 매사를 그렇게 삶. 무아를 어기고 있는 것. 무상과 무아 두 가지 연기 현상 큰 특징.

참세계를 벌여놓은 거짓 세계(假)는 중생계로 나쁜 것인가? 아니다. 이 거짓세계도 참의 세계와 똑같다. 좋고 나쁨 있을 수 없다. 다만 무상, 무아일 뿐이다. 우리가 보는 관점이 사고를 침. 유식학에서 8식은 무의식적으로 모든 것을 저장, 무의식의 7식 작용이 8식이 저장하는 것을 보고 나라고 하는 생각 일으킴. 나라는 생각 하나 일어남에 의해 모든 게 오염. 나가 생겨나니 너가 자연히 생김. 아무리 중생 소견에 빠지더라도 이 생각이나 행위도 연기 현상 벗어날 수 없음.

선이라는 개념이 일어나면 내재적으로 자연스럽게 악 개념이 생김. 상반되는 개념. 나, 너 생기면 비교하기 시작. 탐진치 작동, 내가 너보다 못하면 더 잘하고 싶음. 경쟁 생김. 나라고 하는 것에 고집 생김, 애착. 처음에는 견고하지 않지만 몇 번만 지나면 무상은 상주해야 돼. 진리는 모든 것이 변하는 것을 수용해야 하는데 나라는 것 생기니 나는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관점에 지혜가 눈을 감음. 모든 것이 변하는데 변하지 않는 것으로 믿음. 가끔 진리의 눈으로 보면 변하는 모습 보면 괴로움. 변하는 것은 가치가 없음. 가치 또한 계속 변함. 무엇인가 하나는 나를 위로해 줄만한 가치 있으면 좋겠다. 진리 허락 없이 생각대로 구하고 바램. 차이 발생. 진실과 차이 벌어진 만큼 번뇌 생김. 제대로 처리 못하면 고통 발생. 거짓세계 그대로 100% 가능성의 표상인 부처님 세계 드러남. 무상, 무아임에도 불구하고 무단히 상주라고 봄.

선, 경전, 기도 대상은 나라고 하는 착각을 정화시키는 것. 모든 것은 언제 그랬냐는 듯 본질로 회귀함. 수행한다는 것은 이것을 정화. 내 마음대로 만듦. 옆 사람과 소통이 안 됨. 옆 사람 허락, 상의 정하지 않음. 응애하기 전부터 마음대로 정해서 가지고 있음. 대화해도 되는 듯 하면서도 안 됨. 공동체 구성하는데 어려움 있으니 소통 문제. 가정이든 소통을 함부로 시도하지 않는 것이 좋다. 자기 고집 부리는 경우 더 많음. 오히려 자기를 들여다보라.

나=에고(ego). 있지도 않은 나를 만들었으니 무엇이 일으키는지 생각, 행동 일으킬 때 그놈을 위해, 집착해서 행동. 이 나라는 관점에서 생각, 감정, 몸의 감각 등 크게 나누면 세 가지 이놈이 부리고 있음. 생각, 감정, 감각 당연히 느낄 수 있음. 통칭 번뇌 또는 망상이라 함. 참선한다는 분은 망상이 너무 일어난다... 화두 보고 있어야 할 마음 끌고 감. 번뇌 안 일어 좀 참선해볼까 하면 졸고 있음. 이 몸뚱아리 등 모두 다 참의 세계에서 옴. 여기서 일어난 지 않은 것 없음.

그 번뇌 망상도 여기서. 육근으로는 알아차릴 수 없는 고요함. 참의 세계, 우리의 본성이 연기 현상으로 이러한 작용을 일으켜주지 않으면 육근 감지 불가한 미묘한 세계를 엿볼 수 없다. 있는 줄을 모름. 세상에 태어나 한 번도 바다 안 가본 사람 바다를 알 수 없음. 결국 이런 것이 번뇌, 고통이지만 모든 현상과 작용은 참의 세계. 몸도, 재료도, 마음도. 다만 나라는 고집하나 일어나서 오염되었을 뿐. 번뇌 망상이 자꾸 깨워주지 않으면 마구 잠들어버림. 잠 아니면 무기에 빠짐. 공부 똑바로 하라는 신호.

관점을 여기서부터 시작하라. 그림자, 거짓세계는 가치가 없다. 뭘 거머쥐고 있나? 잡념 일어난 것을 느끼는 순간 본래 참의 세계, 내가 부처라는 신호. 어떤 견고한 생각도 그림자에 불과. 이것이 나를 힘들게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함으로 힘듦. 좋다 나쁘다, 즐거움 괴로움, 사랑 미움 등 상대적 개념이 없음. 대적하려하면 계속 잡혀감. 변화의 과정일 뿐. 가만히 보시라. 어떤 생각도 10분 넘어가기 어려움. 그런 생각 다섯 개 이내일 것. 그렇게 많지 않음.

중요한 일 의논, 협상, 다툼 등 상대방 말에 예민하게 반응말라. 너무 이해하려 하지 말라. 방어기제 작용밖에 못함. 꼬투리 잡는데 주로 씀. 지금은 그럴 수 밖에 없다. 이 에고, 나를 보호해야 함. 이놈 다치면 내가 죽을 것 같으니까. 생사도 생각 차원의 일이다. 이런 개념조차도 원래 없다. 무단히 나라고. 이놈 죽으면 내가 죽으니까 나를 보호하려함. 물론 깨어있어야 하지만 옆 사람과 이야기 나눌 때 잘 들으시라. 내 마음 속 어떤 감정, 생각이 일어나는지는 먼저 집중하여 보아야 함. 지나치게 굳이 나를 이해시키려고 하지 말라. 자기 보는 힘, 자기를 내려놓는 힘 강해짐. 자기가 스스로 괴롭히는 모순에서 물들지 않고 담담히 흘려보내고 해서 나의 본심이 늘 유지되는 시간과 농도가 길어지고 짙어지면 이해 능력 훨씬 더 커짐. 수행자의 태도이다.

자신 자책하지 말고 일단 일으킨 작용은 그대로 마음의 소리 받아들여라. 판단, 분석, 개입하려 하지 말라. 단지 일어났을 뿐. 있는 그대로 수용하라. 좋은 건 받아들이고 치사한 생각 거부말라. 흔적도 없이 살아지게 만들라. 내 본심 챙겨지고 담담함. 적어도 상대방 대립관계여도 잘 들으면 진정 그 사람 이해할 수 있는 자격 있음. 집안 가족도, 도반들도 이런 마음 자체도 참선이다. 이것은 정말 환상, 그림자의 세계다. 어떠한 귀의처도 없다.

내 생각, 감정 귀 기울여보면 그것은 인연생기하는 것일 뿐이다. 누가 나를 기분 나쁘게 건드리면 그것이 인연이니 기분 나쁜 것. 그런데도 기분 좋으면 미친 것. 하지만 묶이면 중생, 흔적 없애면 부처마음. 고요함. 수많은 행복 경험할 수 있고 내 새끼 잘해서만 느끼는 상대적인 행복이 아니라, 내 자신이 고요함 느끼는 것만으로도 행복. 정말 묘함. 가슴이 뭉클함. 진하게 경험하고 나면 고독을 모름. 진정한 자기 자신과 만나기 때문에. 아무리 이상형 만나도 사람은 원천적으로 고독. 온전한 자기가 되어야만 우울 늘 따름. 이 참을 느껴서 마음이 고요, 담담, 말고 밝으면 사람들이 얼굴 보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늘 즐거움.

에고가 완전히 침묵하는 순간. 마음길이 끊겼다 함. 이 참의 영역으로 들어감. 두두물물 모양들이 하나로 연결되어있는 이 세계를 무시하고 외부 향해 소통하려하는 한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 못함. 감각, 감정, 생각 살펴 내 내면으로 관심 통해야 완전히 소통이 가능.

절대 공의 자리. 천백억 화신 백 개, 만 개의 나툼이 있으면 절대 고유의 나툼이다. 각자 고유 성격 뚜렷. 인생 중생을 정확히 제도 가능. 이 참의 자리가 절대 공유되는 자리이면서 동시에 절대 고유한 자리. 여러분은 지금, 여기 마음에서. 지금 이 말씀 듣는 그 마음이 이것이다. 도대체 이 자리 외에 어디서 부처를? 내가 본래 부처라는 사실을 절대 받아들이셔야.

내가 이 마음을 어떻게 쓰는 것이 잘 쓰는 것인가? 부처님의 이 자리 마음은 색이 없다. 에고가 삐딱하게 마음 쓰면 부처님이 도둑질, 강도짓 하는 것. 불자가 아니어도 모든 존재는 여기서 시작. 불교는 그렇게 하라고 안 가르침.

대승불교는 정확한 지침과 롤 모델이 있다. 보살. 이 부처님의 성품 가진 가가 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가 보살이다.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등. 보살은 계속 태어남. 지겹게 그 이유는? 내 옆 사람을 행복하게 돕기 위해. 여러분들은 보살로 태어나시라. 보살은 비승비속이다. 여러분도 그랬으면 좋겠다. 재가라고 생각하고 출가를 거리두지 말고 승가에 동참하시라.

지금부터 내 속이 얼마나 시끄러운지 보자.

(입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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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제와 속제의 불이성을 더 깊이 있게 열강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심각함이 모자라 행복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라는 촌철도 잘 활용하겠습니다. 축서사는 훌륭한 강사가 계셔서 복이 많은 도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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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해밀님의 댓글

해밀 작성일

강의 시간에 잠시만 딴 생각을 해도
놓치기 쉬운 부분을 이렇게 글로
올려 주시니 더 없이 고맙습니다.
이렇게 수고해 주시느라
늘 잠이 부족 하신건 아니신지?  _()_

길상화님의 댓글

길상화 작성일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침형 인간이 아니어서 마침 다행입니다.^^

제 소견으로는 보호를 받아야 할 분은 달마거사님 같습니다.
철야참선법회 지도는 전혀 쉬운 일이 아니어서
오랫동안 도반님들께 도움주기 위해서는 강사보호도 해 주시면
더 좋겠다는 아쉬움이 느껴졌습니다.

도움이 되신다면 그것으로도 더 감사합니다.
행복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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