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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예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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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연화심 작성일06-12-29 17:18 조회2,986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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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불문(禮佛文)

저 지금 깨끗한 물로
감로의 차를 만들었습니다.
거룩하신 부처님과
거룩하신 가르침과
거룩하신 스님들게 드리오니
원컨대 어여삐 여겨 받아주시 옵소서.

다게(茶偈)라고 부르는 이 구절은 삼보에 대한 예경의 표현이다. 더러 차를 올리기도 하지만 대분분 그 도량에서 가장 좋은 물을 쓴다.

담아 올리는 그릇은 다기(茶器). 언제나 향로와 함께 상단의 중심에 올려놓는다.

예불뿐만 아니라 모든 불교 의식의 시작은 삼보에 대한 귀의로 부터 시작한다.
거룩하신 부처님(佛 : Buddha), 거룩하신 가르침(法 : Dharma), 거룩하신 스님들(僧 : Sanga)은 불교의 세 기둥으로 대승불교와 소승불교는 물론 다양화된 모든 불교 의식 가운데에서 가장 통일성을 보이는 것이 바로 이 삼보 귀의 사상이다.

불교 신자가 되는 첫걸음은 바로 이 삼보에 대해 귀의하는 것이다.

예불의 의식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화되었다. 요즈음은 다게 대신 오분향례(五分香禮)가 많이 쓰인다.

이 오분향례는 불교 정신의 뼈라고 볼 수 있는 계율의 정신, 삼매의 정신, 지혜의 정신을 향기화(香氣化)한 것인데 여기에 궁극 목표인 해탈과 해탈 지견을 더하여 다섯 가지로 집약, 불교 정신 전체를 드러낸 것이다.

이 오분향례는 불교의 당위성이 요약되었을 뿐 아니라 자주적 성취의 의미까지 내포되어 능동적인 분위기를 나타낸다. 오늘날 사찰에서는 거의 다 오분향례를 쓴다.

옛날에는 아침 예불 때 다게를 쓰고 저녁 예불 때는 오분향례를 썼다.

오분향례 /오분법신향

계율의 향기와
삼매의 향기와
지혜의 향기와
해탈의 향기와
해탈 지견의 향기
광명의 구름 되어 법계에 두루두루
모든 곳 한량없이 계시는
거룩한 부처님
거룩한 가르침
거룩한 스님들게 공양하옵니이다.

헌향진언 옴 바아라 도비야 흄

삼계의 큰 스승이시여, 뭇 생명의 어버이시여, 나의 스승이신 석가모니 부처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목숨바쳐 절하옵나이다.

언제 어디서나 인드라 그물처럼 여러 곳에 항상 계시는 모든 부처님들께 지극한 마음으로 목숨바쳐 절하옵니다.

언제 어디서나 인드라 그물처럼 여러 곳에 항상 계시는 가르침에 지극한 마음으로 목숨바쳐 절하옵니다.

큰 지혜 갖추신 문수사리보살, 크게 나투시는 보현보살, 대자대비 관세음보살, 큰 서원 지장보살, 존경하는 모든 보살들게 지극한 마음으로 목숨바쳐 절하옵니다.

부처님 계실 때 부처님께 직접 가르침 받은 십대 제자와 열여섯 성자와 오백 성자와 홀로 가르침 받은 성자와 천이백 명의 큰 아라한들과 수많은 성스런 자비의 대중들께 지극한 마음으로 목숨바쳐 절하옵니다.

인도로부터 우리나라까지 법의 등불 대대로 이어오신 큰 조사와 천하의 종사와 티끌처럼 많은 큰 선지식들게 지극한 마음으로 목숨바쳐 절하옵니다.

끝없는 대자대비로 나의 절 받으사
가피의 힘을 가득 주소서
원컨대 법계의 뭇 생명이 함께
너와 나 한결같이 부처의 길 이루어지이다.

다게는 물론 오분향례는 오직 선창자만 노래한다.

대중에서는 목소리 청아한 사람이 도맡기도 하지만 강원이 있는 곳에서는 교육적 측면에서 돌아가며 선창한다.

'삼계의 큰 스승이시여.."부터 "..부처의 길 이루어지이다."까지는 대중이 합송한다.

이 예불문은 범성(梵聲)에서 유래하는 사찰 특유의 곡조와 박자를 지닌 장엄하고 장중한 합송으로 이어진다.

경건하고 정성이 가득한 가슴 소리들이 한데 어울려 새벽 산사를 울린다. 누구든 새벽 예불에 참여해 본 사람이라면 예불의 청정함이 풍기는 진면목을 가슴으로 담아낼 수 있다.



발원문(發願文)

발원은 서원을 일으키는 뜻이다. 사사로운 욕망이 아니라 수행의 원력을 성취하려는 것이다. 순수한 갈망에의 의지이다. 그래서 소원(所願)이 아닌 서원(誓願)이다.

개인적인 욕구가 아니라 나와 이웃을 함께 사랑하는 열림의 지향이다. 그래서 발원문은 문장 자체가 지극하고 간절하다.

살고 있는 자들뿐 아니라 죽어간 자들을 위해서도 문장을 배려한다. 개인의 행복과 사회질서의 안녕까지도 간구된다.

발원문을 읽는 사람은 그래서 가장 상수(上首)로 한다. 산중의 어른이 늘 발원문을 읽는다. 작은 절에서는 주지 스님이 읽는다.

큰 행사가 있으면 더욱 그렇다. 발원문은 의식의 직접적인 현실인 것이다.


서원을 일으키는 글

아침이면 아침마다 저녁이면 저녁마다 이렇듯 향 사르고 촛불켜 거룩하신 부처님과 거룩하신 가르침과 거룩하신 스님들게 지성으로 귀의하옵나이다.

날씨가 순조로워 농사가 풍년들게 하여 모든 이웃이 편안한 생활이 되기를 기도하옵나이다.

나라는 태평하여 모든 계층이 갈등과 반목을 쉬고 서로 양보하고 민족의 숙원인 통일이 민주적 방법으로 성취되기를 간절히 비옵니다.

모든 인종간에 편견을 허물고 분쟁이 종식되는 세계가 이루어져 하나 된 인류의 삶이 펼쳐지기를 원하옵니다.

원하옵건대 내가 세세생생 태어나는 곳마다 부처님 말씀에 따르고 수행하여 깨달음의 지혜를 성취하여 순간이나마 버리지 않게 하소서.

부처님의 완전한 덕과 문수보살의 지혜와 보현보살의 실천과 관세음보살의 대자대비를 몸소 행하게 하소서.

언제 어디서나 내 이름을 듣거나 내 모습을 보는 이는 고뇌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지혜를 얻어 나와 이웃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옵니다.

오랜 옛날부터 나의 부모 되고 형제 되고 친척 되고 벗이 된 저 영혼들의 공덕을 기리고자 합니다.

나라 위해 세계 평화 위해 전쟁에서 사라진 영혼들을 어루만지기를 원하옵니다.

머문 곳 없이 떠도는 외로운 혼들이 부처님의 이름으로 천도되기를 원하옵니다.

나와 이웃 모두 함께 부처님의 이름으로 천도되기를 원하옵니다.

나와 이웃 모두 함께 편견과 아집과 아만과 어리석음의 온갖 무명을 깨달음의 지혜로 허물고 밝고 복된 삶 이루어지기를 원하옵니다.
부처님 부처님 우리의 스승 부처님.

발원문이 낭독되는 동안 대중은 목탁에 맞추어 세 번의 절을 드린다. 발원문 낭독은 언제나 혼자 한다. 발원문이 끝나면 신중단을 향하여 [반야심경]을 봉독한다. 신중단은 불교를 수호하는 신장들을 모신 곳이다. 그들의 업무는 수행보다 호위 업무이다. [반야심경]의 봉독은 경전을 익는다는 뜻도 있지만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대신 설한다는 의미가 짙다.



260자로 된 짧은 이 경전은 한문 문화권에 전해진 그 어떤 경전 보다도 널리 읽히고 사랑받는다. 600부 [대반야경]의 뜻이 간결한 함축으로 전해진 [반야심경]의 봉독이 끝나면 대중들은 목탁에 맞추어 어간 (법당의 정면 중앙 자리)의 조실석을 향해 반배(엎드리지 않고 서서 하는 절)를 드린다. 아침 인사의 뜻도 있지만 대중을 이끄는 법력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뜻이 있다.



선방(禪房)의 예불

선방 생활은 군더더기가 없다. 말은 극도록 삼가고 글 쓰는 일, 책 보는 일은 모두 금지된다. 먹고 자는 일 밖의 모든 잡무는 가장 검소하고 간편하게 해결한다.

모든 생활은 좌선을 위주로 짜여져 빈틈없이 진행된다.

사시 마지(11시에 부처님께 점심 공양 올리는 일)을 제외하고는 예불도 큰법당에 나가지 않고 선방에서 간단히 한다.
선창이나 염송은 물론 독경도 없다.

산사에서도 선방은 가장 늦게 자고 제일 먼저 일어난다. 새벽 목탁 소리 울리자마자 선방은 제일 먼저 불을 켠다.

이불을 개고 목침을 거두어 벽장에 넣고 오줌 누고 냉수 마시고, 문 열어 방 쓸고 공기를 바꾼 다음 정돈하고 앉는다.

수십 명의 납자들이 움직여도 일사 불란해서 문 여닫는 소리 잠시잠시 날 뿐 조용한 움직임들이다. 새벽 목탁이 아직 도량을 반쯤 돌았는데 가사 장삼 수하고 자기 자리에 그림처럼 않아 있다.


범종, 법고, 목어, 운판 등 사물이 한바탕 법석을 열고 나면 큰 법당에서 작은 종 다섯 망치가 운다. 이윽고 선방의 입승 손에서 죽비가 세 번 울린다. 그 소리에 대중은 그림처럼 일어난다.

죽비에 맞추어 절 세 번, 시방 삼세의 부처님과 시방 삼세의 가르침과 시방 삼세의 스님들게 드리는 예불이 끝난다. 가사 장삼 거두어 대에 걸고 자리에 앉는다. 몸을 앞뒤로 두어 번 흔들고 좌정한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화두에 몰입한다.



작은 법당들의 예불

사찰에는 작은 법당들이 많다. 관음전, 지장전, 약사전, 영산전, 나한전이 있는가 하면 칠성각이 있고 산신각이 있고 조사 영각이 있다.

관음전은 관세음보살을 모신 곳, 지장전은 지옥 중생을 제도하는 지장보살이 계신 곳, 약사여래는 약사전에 계신다.

부처님 당시를 회상하여 영산회상 탱화와 함께 따로 부처님을 모신 곳이 영산전, 부처님을 직접 모시고 다니던 십대 제자를 비롯하여 당시의 성스런 아라한을 모신 곳이 나한전이다.

칠성과 산신은 원래 민간의 토속신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슬그머니 불교에 흡수되어 한자리 차지하고 있다.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붙잡지 않는 것이 절 인심인데 그래서 그럴까 오는 토속신 막지 않고 받아들이고 있다.
조사 영각은 덕 높은 스님들을 기념하여 모신 곳이다. 사찰의 위상에 따라 조사전, 국사전, 영각 등의 많은 이름이 있다. 이 작은 법당들은 각단(各壇)이라 통칭한다. 물론 조석 예불도 극진하게 모신다.

아침 예불은 큰법당의 예불이 끝나면 맡은 소임자가 있어 각각 행해지며 저녁 예불이 시작되기 전에 마치고 큰법당 예불에 동참한다.

예불문은 각단의 정신에 맞도록 시설되어 있다. 처음 출가자는 그 절이 소유한 각단의 수만큼의 예불문을 암송해야 한다. 그것도 일종의 공부, 옛 조사의 공덕을 기리는 일 또한 수행의 철저를 기하는 중요한 요소이거늘.

큰법당의 예불과는 달리 각단에서의 예불은 소임자 단독으로 행해지기 때문에 예불 받는 대상과 드리는 수행자 사이에 특별한 친교가 이루어진다.

때문에 일정 기간 스스로 특별한 전각의 소임을 자원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관음전, 나한전, 지장전의 소임은 지원자가 끊이지 않는다.

<출처 - 정진바라밀>

댓글목록

우영혜님의 댓글

우영혜 작성일

선배님,저도 이제 머지않아 불교 교양 대학 선배라는 명찰을 하나 더 달게 됩니다만 연화심님 같은 선배가 될 수 없을 것 같아 연화심님이 더 크게 우러러 보입니다.한 해 동안 연화심님의 정신적,물질적 도움 감사 했습니다.계속 좋은 인연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_()_

심자재님의 댓글

심자재 작성일

연화심님~~ 너무 수고 하셧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남으면 저에게도 좀 나눠 주시구려. 너무 많이 받으면 더 넙데데해 지는데..^^*^^

연화심님의 댓글

연화심 작성일

에궁 이 큰등치로 어디로 숨기라고 이리 민구스럽게 하십니까 두분~~ ㅎㅎㅎ 총무님 저보다야 원래 잘하시는 분이시면서 겸손이 지나치십니다 ^^*~  심자재님~저 약간 모자라도 나눠드릴께요 ㅎㅎㅎ 넙데데는 극구 사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