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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탁과 죽비

성철스님 小參法門 3 -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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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혜조 작성일13-12-28 09:18 조회2,21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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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원수를 불보살로 섬기자 <?-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____그렇지만 내가 그르다고 생각해 봐. 때리는 게 아니라 설사 목을 부러뜨려도 내가 죄를 짓고 잘못했으니까 그런 식으로 은혜를 베푼 게 아니냐 이 말이여.


 


실지로 나를 잘 깨우치고, 잘 반성시키고, 어떻게 해서든지 바르게 지도하기 위해서 그 사람이 몽둥이를 들고 욕도 하고 해쌌는데, 그 은혜를 어떻게 갚을 수 있나 그 말이야. 그 막중한 은혜는 뼈를 갈아 가루를 낸다 하더라도 도저히 다 갚을 수 없다.


그래 내가 게송 하나를 만들어 줬어.


그 사람이 보더니, “제가 참 실행(實行)이 될지 어떨지 알 수 없지만, 이 방향으로 노력하며 살아야 안되겠습니까?” 하면서 그 뒤로 부터는 노력을 많이 하는 모양이야.


“내가 당신보고 법문이나 하는 체하면서 게송이나 만들어 주고 하지만 실행은 당신보다 못할지도 몰라” 하니까,


“스님이 그럴 리가 있습니까? 이를 근본으로 삼고 앞으로 잘 노력해서 누가 뭐라든지 간에 상대를 선지식(善知識)으로 보고, 아무리 해()를 줘도 은혜로 생각하고 그 은혜를 갚기 위해 노력 하겠습니다”고


___ 하필 결제하는 날, 좋은 날, 칼로 째고 창으로 찌르고 하는 그런 말을 하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살다보면 비오는 날도 있고 날씨 좋은 날도 있고.


그런데, 비가 오는 궂은 날, 나쁜 일을 당하는 그때가 어렵거든. 그 땐 어떤 태도를 갖고 살아야 되느냐___ 그래서 이런 소리를 해보는 것이야.


아까도 얘기했지만 부처님이 늘 하신 말씀이 “원수를 부모같이 여겨라” 이것의 근본내용이,


어아(於我)에 극악자(極惡者)가 시진선지식(是眞善知識)이니, 나에게 극히 악하게 하는 자가, 나를 어떻게 해서든지 못살게 하는 사람, 나를 해롭게 하는 사람이, 참다운 선지식이다 그 말이여. 불보살의 화현으로서, 나를 잘 가르치고 지도해 주기 위해서 하는 것이니, 선지식이다...


그럼 말 다된 것 아니여? 칼로 찌르고 몽둥이로 때리든지, 무슨 소릴 하든지 간에 그 은혜는 뼈로 가루를 내더라도 다 갚을 수 없다.


내가 항상 하는 소리가 “우리 불교사전에는 용서란 없다” 는 것이야. 용서란 나는 잘했는데 저쪽은 잘못했거든? 그래 잘한 내가 잘못한 저쪽을 용서한다 그 말 아니야?


보통 “용서할 줄 알아라” 하는데, 나는 정신없는 소리라고 봐요. 남을 용서한다는 말은 자기는 잘했다는 말 아니야? 그러니 우리 불교사전에는 용서라는 말이 없다 그러거든.


언제든지 내가 잘못했지 저쪽 잘못은 없단 말이여. 저쪽은 언제든지 선지식이고 나는 중생이고, 모든 잘못된 책임은 나한테 있는데, 어떻게 남을 용서해?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감사를 해야 해. 저 사람이 나를 한대 때리면. “저 사람 같지 않은 것, 그만 내가 용서해야지” 하면 언제든지 내가 옳은 거거든. 그건 잘못된 생각이야.


저 사람이 나를 툭 쥐어박으면, “내가 뭔가를 잘못했을 거야, 잘못했으니깐 내 허물을 고치려고 이런 주먹 법문을 해 주었구나” 하고 생각해야 돼. 그러니 “참 감사합니다” 해야지, ‘용서’ 하면 세상에선 최고라고 알고 있는데, 언제든지 내가 잘못한 걸로 알고 저쪽을 불보살로, 선지식으로 보라 이 말이야.


그러니 감사를 해야지 어찌 용서를 하겠나 이 말이야. 그러니 우리는 무슨 일을 당한다 해도 감사할 줄 알아야지, 용서한다는 것은 도저히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거거든.


그리고 옳고 그른 것, 그것은 참 모호한 것이야. 누구든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지 자기가 그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단 말이야. 그래서 싸움 나는 것 아니야? 한쪽이라도 내가 잘못했다, 내가 생각을 잘못했다 하면, 모든 분쟁이 없었질 것인데, 그렇지만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잘 안된다 그 말이여.


그래서 아까도 얘기 안했어? 나이가 80, 90이 되도 자기가 잘못했다는 자기반성 할 줄 모르면, 아직까지 철 안든 사람이다 그 말이여. 철이 들면 자연히 모든 게 내 잘못이요, 내 옳은 것이 없어져 버려.


이건 고담에 나오는 얘긴데, 1300년 전에 당나라에 ‘배도(裵度)’ 라는 정승이 있었는데, - 유명한 정승이야. 밖으로 나가면 장사(將師)가 되고, 안으로는 큰 재상(宰相)이 되고, 만고의 명재상(名宰相)인데, 이 사람은 등이 동생과 딱 붙어서 쌍둥이로 태어나서 누가 형이고 누가 동생인지 모르는데, 중간을 칼로 잘라서 하나는 형이라 하고 하나는 동생이라 했어.


한 날 한 시에 태어났으니, 얼굴도 같고, 생년월일시도 같으니, 행복한 사람이 되든지 불행한 사람이 되든지, 똑같이 생활하고 말 것 아니야?


그런데 안그래. 그 뒤에 커서 배도는 천하에 유명한 명재상이 되어 만고에 그 이름이 드러나 있지만, 동생은 지지리도 생활이 곤란하여, 개울가에서 평생을 뱃사공으로 곤궁하게 살았어.


그럼 배도는 얼굴도 똑 같고 생년월일도 똑 같은데, 어째서 운명이 그렇게 달라졌나.... 그 이유가 있어. 그가 조금 커서 열댓 살이 돼서 관상을 보는 사람이 말하기를,


“니 큰일 났다, 니 얼굴이 뵈기는 좋아 보이는데, 얼마나 운명이 나쁜지 니만 평생 고생하고 말 것이 아니라, 니 이웃까지 다 못살게 된다, 너 때문에-” 사주를 보더니 또 그러거든. 한두 사람이 그러는 게 아니야.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러 군데 물어 보니 다 그래.


그래 이 사람이 생각을 했어. 내가 운명을 잘 못 타고 났던지, 사주팔자를 잘못 타고 났던지 해서 내가 고생하는 것은 괜찮은데, 나 때문에 이웃까지 다 망한다 하니, 그게 자꾸 마음에 걸린단 말야. 보통 사람 같으면 사주도 팔자도 숨기고, 남이야 망하든 말든 어디 사람 많은데 가서 나도 한번 살아보자, 이렇게 했겠지만, 그 사람은 양심이 있어서, 그게 자꾸 마음에 걸려서, 옆 사람에게 피해 안 주려고 저 깊은 산속에 갔어.


그래 생활하면서 자기 반성해 보니, 좋은 일()과 궂은 일()한 것이 반반이야.


“여기서 나도 공부를 해서 착한 사람이 되야겠다” 하고, 종이도 붓도 없으니 나무를 두개 깎아 놓고 좋은 일하면 오른쪽 나무에 표를 하고, 나쁜 일 했다고 생각이 들 땐 왼쪽 나무에 점을 찍어 표를 했어. 그렇게 생활을 하는데, 처음엔 자기 생각에 착한 일 한 것 밖에 없어. 그래서 착한 쪽의 점수가 자꾸 올라가거든, 나쁜 쪽은 점수가 적고.


그래 어느 정도 점수가 올라 간 뒤에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 그 전에 좋은 일 했다는 것이 전부 나쁜 일이야. 생각이 모자라서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철이 들고 보니, 나쁜 일이지 좋은 일은 하나도 없단 말이야. 이때까지 했던 것이 다 헛일이었구나.


나무를 새로 깎아서 새로 점을 찍었어. 이제는 나쁜 쪽에 점수가 올라가. 그러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는 좋은 쪽의 점수가 올라가. 그러다가 또 시일이 지나간 뒤에 보니까, 자기가 좋은 일이라고 한 것이 전부 다 나쁜 짓이야.


 


이렇게 여러 번 반복을 했어. 혼자 살면서도 여러 가지 선악이 있거든.


이렇게 하다가 나이가 한 40되니 몇 달이 되도 자기가 잘했다는 생각이 안 들어. 잘 했다는 생각에 점을 찍을 수가 없단 말이야. 그때가 이제 요새말로 철이 좀 든 때야. 아무리 자기가 잘한다고 했어도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 잘했다는 생각에 점을 찍을 수가 없단 말이야. 전부 잘못한 것이지. 잘했다는 생각을 낼 수가 없어. 사람이 되려면 그만큼은 돼야 돼. 그래 결국에 가서는 무엇을 성취했냐 하면, 자기가 잘한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을 성취했어. 전부 자기 잘못이지.


그래 생각해 보니 한 20년 산중에 살았으니 세상구경이나 한번 해 보고 죽자는 생각이 들어서 유랑길에 나섰어. 가다가 길이 무너진 곳이 있으면 길을 고쳐놓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이 있으면 짐을 져 주고, 농사철엔 농사도 도와주고, 때가 되면 밥 좀 얻어먹고, 사방팔방 다니면서 남 거들어 주는 일만하고 돌아 다녔어. 그러면서도 자기가 잘한다는 생각이 없었어.


이렇게 한 10년을 돌아다니니 사람들 사이에 소문이 났어.


“그 사람이 미쳤는가 안 미쳤는가 알 수가 없어. 남 도와주는 일만 하는 걸 보면 미친 것 같지는 않고 필시 성인(聖人)인 것 같애.


일 도와주고 때 되면 한 술 얻어먹기나 하지, 삯을 받나, 고맙다는 인사를 받으려 하나. 인사를 하려 하면 내 잘한 게 아무것도 없다고 달아나 버린단 말야.


그 사람이 聖人일 거라는 소문이 당()나라 天子의 귀에 까지 들어갔어.


 


“나도 한번 만나 보자” 天子가 만나 봤어.


“내가 들으니 온 천하가 네가 어질고 착한 聖人이라고 하는데, 네가 뭘 잘하기에 성인이라고 하느냐?


“폐하, 그것은 잘못 들은 것입니다. 저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밥이나 얻어먹는 거지지 아무것도 잘한 게 없습니다. 그 소문은 잘못된 것이지 절대로 제가 잘하고 옳게 해서 그런 소문이 난 것이 아닙니다.” 하면서 천부당만부당 하다고 펄쩍 뛰는데,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라 진정(眞情) 그러거든.


“그래도 널 참으로 성인이라고 하는데” 하니, 엉엉 울면서


“저는 억울합니다. 절대로 잘한 게 없습니다” 하면서 도망을 가.


 


천자가 가만히 보니 조작도 아니고 진정이고... 참말로 성인이야. 그래 대궐문을 닫아서 도망 못 가게 했어.


“당신은 참으로 지지리도 못난 사람이고 나쁜 일만 한다고 하는데, 내가 봐도 당신은 진짜 성인이야. 당신 같은 사람이 이 나라를 맡아 정치를 하면 이 나라는 요순(堯舜)시대가 될 테니, 정승(政丞)을 맡아 해라.


그만 눈이 둥그레져서, “폐하 저 같은 사람이 정승을 하면 백성들이 다 죽습니다. 백성 다 죽이려면 저 같은 사람을 정승하게 하십시오.


“당신 말로는 백성들이 다 죽을 거라지만, 내가 볼 땐 백성들이 다 살꺼야. 죽고 사는 건 나중에 보고 일단 정승을 해 봐라.


그리고는 요새말로 억지 감투를 씌어서 정승을 시켰는데, 시키고 보니 명수상이야. 당나라가 요순시대가 돼 버렸어.


그때 오온제라고, 반란군이 나와서 나라를 어지럽히니, 누구도 난리를 평정하지 못해. 그래 배도더러 도원사(都元師)를 시켜서 보내니, 배도가 “이 태평성세에 당신이 이렇게 소란하게 하면 쓰나? 빨리 서로 화해하자” 하는데, 그 첫 번째 조건이 당신 측의 그 누구를 막론하고 허물을 묻지 않겠다, 벌을 주지 않는다, 이거야.


하지만 “당신의 군대가 성()에 들어가서 백성이든지 군사든지 누구에게든 욕을 하거나 때리거나 재물을 빼앗거나 하면 엄벌을 하겠다” 하고 4대문(大門)에 방을 부쳤어.


오온제 측에서 생각해 보니, 이건 자기 측과 싸우려는 게 아니라 도우려는 거야. 배도와 싸워봤자 결국 지겠거든. 에라, 미리 항복하자! 그래서 천하가 태평하게 됐어. 나라 밖에서는 큰 장사(將師)가 되서 적군을 평정하게 됐어.


그래 근본이 어디에 있냐 하면, 내 옳은 것은 하나도 없는 거기에 있다 말이야. 우리도 이를 근본으로 삼고 귀감(龜鑑)으로 삼자는 말이야.


철이 났다면 언제든지 저쪽이 옳고 내가 그른 줄 알아야 돼. 내가 그르니 잘못한 사람이고, 저쪽이 옳으니 저쪽이 선지식이다. 그 말이야.


그런 동시에 용서란 할 수 없고, 오직 감사만 할 뿐이야.


내가 옳고 니 그른 것을 반성해서, 내가 그르니 니가 옳다는 걸 노력해야겠다 이거라. 말은 쉬워도 당장에 되는 게 아니야. 하지만 노력은 해봐야 안되겠어? 방향은 분명히 잡아놓고 봐야 안돼? 그래 어떻게 해서든지 부처님 말씀대로 방향을 잡아놓고 살면, 결국엔 그 방향으로 가고 마는 게야.


한 가지 덧붙일 것은 실천관계인데, 흔히 “스님, 날 해롭게 하는 사람, 원수를 부모같이 섬겨라... 말은 간단하고 참 쉬운데, 해볼라면 참- 어렵습니다. 저는 아무리 해도 안됩니다. 방법이 없겠습니까?” 하는데, 살다보면 은연중에 마음에 걸리는 사람, 나를 해치는 사람이 있거든?


우리는 부처님 제자니까, 늘 예배를 드리고 축원을 하는데, 나는 축원을, 나를 제일 해롭게 하는 사람 안 있겠어? 예를 들어 김가면 “김가를 가장 행복하게 해 주십시오” 하고 자꾸 축원을 한단 말이야. 이것도 말 안되는 소리지? 그 사람 생각만 해도 뜯어 먹고 싶고 뼈를 갈아 먹고 싶은데 말이여,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해 달라고 어떻게 부처님께 축원을 해? 그것도 당연한 소리여. 그런데, 억지로 거짓말이라도 그렇게 하면, 한 번하고 두 번하고, 자꾸 여러 번 하면, 거짓말이 참말이 되어서 나중에 오래 오래하면 결국은 진정으로 그 사람을 위해 축복을 빌게 돼. 실지로 해 보면 그렇게 된단 말이야.


그러면 날 해롭게 하고 날 못살게 구는 그 사람이 선지식으로 안 보일 수가 없고, 내 옳은 건 없어져 버리고, 모든 사람이 다 불보살이고, 모든 것을 다 감사하게 생각 할 수 있다 이거야.


우리 한번 해 볼까? 그렇게 하다보면, 앉아도 감사하게 되고, 넘어져도 감사하고, 코를 깨도 감사하고, 실지로 그렇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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