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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탁과 죽비

성철스님 小參法門 1 -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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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혜조 작성일13-12-28 09:54 조회2,922회 댓글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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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화두(話頭)는 반드시 선지식(禪知識)의 지도(指導)를 받아서 하라


 


화두(話頭) 안 배운 사람 없지? 그 전엔 안 배운 사람 더러 있었거든, 안 배운 사람은 반드시 화두를 배워서 참선(參禪)을 해야 되지. 話頭는 다른 것하고 달라서 우리 공부하는 수좌(首座)들의 생명이지. 생명인데, 참선하는 사람을, 여러 수백 명이 아니라, 참 많이 봤는데, 그 중에 어떤 사람이 있느냐 하면, 배우지도 않고 자기 마음대로 뭘 갖다가 화두를 만들어 하는 사람이 더러 있어. 책을 보다가 무슨 의심이 났다든지,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해서 만들어, 이런 식으로 하는 사람이 더러 있는데, 화두라는 것은 반드시 배워서 해야 되지, 책을 보고 한다든지, 뭘 보고 생각해서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자기 마음대로 해서는 절대 안 되는 거야.


 


혹 상식(常識)이 좀 있는 사람들이 책 같은 것을 보고서 제일 마음에 드는 걸로 (화두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어떤 때는 잘 안 된단 말이여. 어떤 사람은 보면 하다가 병()이 나는 수가 있단 말이여. 그러니 화두 하다가 病이 나고 고민이 생기고 하는 것이, 배우지 않고 아무 지도(指導) 없이 자기마음대로 하기 때문이다 이 말이여.


 


“나는 아무것도 안 배워도 자신 있다.” 고 마음대로 하는 사람은 설사 화두한지 몇 해가 됐다 해도 화두를 다시 배워야 되지. 자기 마음대로 뭘 갖다가 화두로 해서 하면 공부가 안 된다 이 말이여.


 


오래오래 하다가 보면 고장이 나고 이러거든. 어떤 사람은 큰 병이 나는 사람도 더러 있거든. 하지만 결국 모두 내버리고 새로 배워서 하면 괜찮단 말이여. 그러니 제일 첫째로 화두는 배워서 해야 되지, 자기 마음대로 선택하면 못 쓴다 이 말이여


 


 


2) 본래(本來)부터 참구(參究)하던 화두(話頭)를 바꾸지 말라


 


그 다음엔 화두를 배웠으면 그 화두를 바꾸지 말고 오래도록 그대로 계속해야 될 것 아니야? 이 화두가 좀 안 되는듯하면 저 화두 배워서 저 화두 좀 해보고 하는 식으로 자꾸 바꾸는 사람이 있단 말이여. 그것도 못 쓰는 거야. 화두를 하나 배워서 하다가 보면 잘 안되거든, ? 또 하나 더 배워서 하면 잘 될까 싶어서 또 다른 걸 배워서 해본단 말이여. 해보면 처음엔 잘 되는 것 같은데 나중에 좀 하다 보면 도루묵이여. 안되기 똑같다 그 말이여.


 


그리고 어떤 사람은 화두를 몇 가지를 배워서는, 이놈 쪼금 해보다 저놈 쪼금 해보다 그러는데, 그렇게 하면 죽도 안 되고 밥도 안 되고 아무것도 안 되는 것이여!


 


그러니깐 화두 하는 방법이 첫째는 화두를 자기 마음대로 하지 말고 배워서 할 것. 둘째는 하나 배웠으면 그대로 계속해야 되지, 이리저리 화두를 변경시키지 말라 이거라. 변경시키면 안돼! 그런 사람 흔하거든.


“아이구 스님, 이걸 해보면 좀 좋을 것 같은데..., 이걸 하고 싶은데...


“그래 해봐라”


그러면 얼마 안가서 “내나 마찬가집니다.” 이러거든. 역시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그 말이여. 뿐만 아니라 그전에 배워서 하던 공부만 혼동되고 말거든. 그러기 때문에 화두를 이리저리 바꾸지 마라 이거야. 그러면 못써.


 


 


3) 공부(工夫)의 단계


동정일여(動靜一如), 몽중일여(夢中一如), 숙면일여(熟眠一如)


 


또 話頭를 하다가 깨쳤다고 와서 말하는 사람도 여러 수십 명 수백 분을 봤어. 어떤 수좌(首座)는 저기 오대산 그 쪽에 토굴을 지어 살다가 한해 여름에, 그 천리 길을 세 번이나 왔어. 신심(信心)이 참 있어 보이니깐, 처음에 와서는 공부를 하다가 자기가 깨쳤다고 그러기에,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해 줬어. 그래 다시 가서 공부를 하다 보니 또 뭔가를 안 것 같아. , 이번에는 바로 깨쳤지 싶어서 또 찾아 왔단 말이여.


 


그렇게 해서 세 번이나 온 사람을 봤는데, 내가 볼 땐 아무것도 아니라. 그 사람뿐만 아니라 흔히 보면 공부하다가 깨쳤다고 생각하고 와서 묻는 사람 더러 봤거든. 수십 명, 수백 명 봤어.


공부하다가 그냥 공부에 대하여 의심난다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무슨 지견(知見)이 나고 무슨 경계(境界)가 나타나면 깨쳤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도, 아무리 내 몸이 고달프고 아파도 꼭 만나 줬거든, 여러 해를 그렇게 해보니까 그 사람들한테 무슨 얘기를 해봐도 소용없어. 처음엔 “예, 예” 하더라도 나중엔 아무도 내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해버려.


 


그래서 근래 와서는 공부하다가 뭘 깨쳤다는 그런 사람들은 영 안 만나 주거든. 그 깨쳤다는 것이 바로만 깨친 것이라면 얼마나 좋노. 바로만 깨치면 말할 것 없는 거라. 중간에 가다가 병()난 걸 ‘깨쳤다’ 그러니...


그러니 공부라는 것은, 내가 혼자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종문에 불교(佛敎) 근본(根本) 법칙(法則)이 있어. 법칙이 있는데, 한 가지 예를 들어 말하면, 우리가 강당(講當)에서 배우는 선요(禪要)가 있어. 고봉(高峰)스님 어록이지, 그 고봉스님이 공부하다가 자기 생각에 깨쳤단 말이야. 깨쳤다 생각하고는 설암(雪巖) 스님한테 갔는데, 무슨 법문이든지 물어보면 대답을 얼마나 잘하나! 설암스님이 가만히 보니, 저놈이 바로 깨친 게 아니고 공부하다가 병이 난 것인데도 아무리 ‘깨친 게 아니다.’ 고 해도 소용없거든. 그땐 부처님이 아니라고 해도 말 안 들어. ‘내가 옳다.’ 고 생각하고는 안 듣는단 말이여.


 


그래서 설암스님이 한 3년간은 내버려 둬버렸어, 말을 안 들으니깐. 그래서 고봉스님은 한 3년 동안은 자기가 제일로 깨친 것 같고 자기 스님보다 나은 것 같단 말야. 3년 지나서 설암스님이 보니 어지간히 그 객기(客氣), 그 병증(病症)이 좀 가라앉은 것 같거든. 그래서 오라고 해서 물었어.


“내가 뭘 물으면 니가 대답 못하는 게 뭐 있노? 그러니 지금 무슨 법담을 하려는 게 아니고, 내 그런 걸 물으려는 게 아니라, 니가 실제 깨쳤다고 큰 소리 치는데, 니 공부한 그것이, 보통 밥 먹고 옷 입고 활동하고 다닐 때, 그때 일문호호시절적(日問 好好時節的), 아무리 분주하게 활동하더라도 그대로 일여(一如)하냐?” 이렇게 물었거든.


자기가 생각해 보니 아무리 그 경계로 설치고 하더라도 자기 공부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거든, 그대로 일여(一如)한거라.


“그럼 꿈에도 일여(一如)하냐?


가만히 생각해 보니 꿈에도 일여(一如)하거든, 경계가 없단 말이여, 그래 또 물었어.


“그러면 잠이 꽉 들어서 꿈도 없을 때, 그때도 니가 일여(一如)하냐?” 하니, 그땐 캄캄하단 말이야.


그래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랬거든.


중생(衆生)생활이 어떠하냐면, 낮에 잠 안 잘 때 생활하고, 잠이 들어서 꿈꿀 때 생활하고, 잠이 아주 꽉 들어서 꿈도 없을 때 생활하고, 그 세 가지 생활이 평생 전체 생활이거든.


그런데 설봉스님이 물은 것은 “그러면 니가 잠이 안 들어서 보통 활동할 때, 아무리 분주하더라도 네 공부가 일여(一如)하더냐?” 이렇게 물으니깐 일여(一如)했거든.


“그럼 더 나아가 꿈에도 공부가 일여(一如)하냐?” 이렇게 물으니깐, 꿈에도 일여(一如)했단 말야. 이건 실지로 하는 소리야.


 


“그래 꿈에도 일여(一如)하다면 잠이 꽉 들어서는?


잠이 꽉 들면 꿈도 없단 말이야. 그때는? 하고 물으니, 아이고 그때는 캄캄하니, 아무것도 없다 그랬거든. 그러면 그게 깨친게 아니다 그 말이여.


그래서 “니 공부가 바로 깨친 게 아니니깐 오늘부터 무조건 다시 발심(發心)해서 공부가 잠이 꽉 들어서 일여(一如)한 거기서 깨쳐야 되지, 꿈에 일여한 그것 가지고는 안 돼! 그거 공부 아니니깐 다시 공부해라!” 그랬어. 그때 비로소 미친 기운이, ()난 기운이 많이 가라앉아 설암(雪巖)스님 말을 믿었거든.


그래 또 3년을 죽자고 했어. 죽자고 해 가지고 그때가선 바로 깨쳤단 말이여. 잠 꽉 들어서도 일여(一如)한 건 숙면일여(熟眠一如)라 하는 거야. 꿈에 일여한 건 몽중일여(夢中一如)라 하고, 깨치고 보니깐 그때선 몽중일여(夢中一如)에 들어가고 숙면일여(熟眠一如)에 들어가서 자기가 바로 깨쳤거든. 그래서 설암스님이 인가를 했단 말이여. 그렇게 되어야 바로 깨친 거여, 언제든지.


그런데 요새 깨쳤다는 사람들 보면 말이여, 공부 하다가 뭣이 훤한 것 같고, 자기가 부처님보다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 석가 그까짓, 똥 덩어리만도 못한 거고 내가 천하제일이다.” 이러거든.


“그래, 석가가 똥 덩어리만도 못하든 금덩어리만도 못하든 그런 소리하지 말고, 그런데 니 공부한 것이 보통 생활할 때도 일여(一如)하냐?  하고 물으면, “아, 그건 안 됩니다.” 이러거든.


 


“아니 그럼 보통 생활할 때도 일여하지 못한 그걸 갖고 부처님보다 낫다는 생각이 드나?


“그럼 뭘 갖고 아는데요?


“그래 공부란 것이 동정(動靜)에 일여(一如)해야 돼. ()할 때나 정()할 때나 일여(一如)해야 되고, 몽중(夢中)에도 一如 해야 되고 숙면(塾眠)에도 一如해야 해. 숙면에 一如해도 거기서 깨쳐야 공부지, 바로 깨친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병이지 공부가 아니야.


“아 그럼 큰일 났네, 난 꿈에도 고사하고 일상생활에서도 잘 안됩니다.


그 천하제일이라는 게 안 된다 이거야.


“그럼 니 어쩔래?


“그럼 스님 말 믿고...


“이놈아, 내 말이 아니여! 이건 예전 조사스님도 다 말씀하신 거지. 이 도둑놈아, 내가 뭐 잘났다고 내 법 내세우면 되나? 자고로 어떤 큰스님이든지, 잠 꽉 들어서도 일여한 거기서 깨쳤어야 그게 참으로 바로 깨친 거지, 그러기 전에는 바로 깨친 게 아니라고 말씀 하셨어. 부처님도 그렇게 말씀하셨고 조사스님들도 다 그렇게 말씀하셨단 말이여.


그런데 잠 꽉 들어서는 고사하고, 또 꿈에서도 고사하고, 동정에서도 一如하지 않은 그것 갖고 니가 뭘 깨쳤다 할거고? 그건 순전히 병난 거지 깨친 게 아니야.


그래 그사람이 가만히 들어보니 자기 공부는 틀려 버렸거든?


“아이고 이전에 잘못 배운 것 같습니다. 그럼 그걸 표준삼고, 몽중에도 일여하고 숙면에도 일여한 거기서 깨쳐 가지고 오겠습니다.


, 그런 사람 더러 봤는데, 동정일여, 이것은 보통 보면 쉬운 것 같지만, 그것도 참 어려운 거여. 뭐 이리저리 오고가고 돌아 다닐 때 화두가 一如하든가? 안 一如 하단 말이여. 좀 지견이 났다 하면, 화두는 있건 없건, 화두를 하고 안하고에 관계없이 동정에 一如한 경우가 더러 있어. 하지만 난 이제까지 몽중에 一如한 사람은 아직 못 봤어.


몇 사람 이제 몽중에 좀 일여할라 하는데, 그만 아이구 ‘깨쳤다’ 싶어서 공부를 더 이상 안 해 버린단 말이여. 그러면 나중에 가서는 도루묵이 돼 버리는 거야.


여기 있는 우리 대중들 한번 생각해 봐라.


그까짓 법문(法問)에 대답하고 법문(法門)을 알고, 그건 문제가 아니야. 그건 무슨 소릴 해도 아무 소용없는 것이고, 실지 내 공부가 어떤지는 돌아다니다 보면 알 것 아니야.


동정일여(動靜一如)라 하는 것은, 얘기 할 때 밥 먹을 때 뿐 아니라, 아무리 분주하고 또 아무리 바쁘게 몸뚱이를 움직인다 해도 그대로 간단(間斷)없이 一如한 그런 경계를 말하는데, 그런 動靜一如가 여간해서 되는 게 아니야.


그런데 한걸음 더 나아가서 夢中一如하면 그건 참 어려운 거야. 그건 참말 어려운 거야.


 


그래 夢中에 화두 들어서 되는 사람 있거든 한 번 손들어 봐! 그게 참 어려운 거야.


 


 


 


 


댓글목록

자루님의 댓글

자루 작성일

성철스님 소참법어는 보통 일반인들은 볼 수도 없는 법어인 것 같습니다.
보고보고 또 보아도 시원하고 뼛속까지 스며드는 사투리 말씀도 그립네요.
소참법어는 승려들의 선방에서만 내려오는 글인 것 같습니다.
이 귀중한 소참법어를 올리신 분께 고마움을 느낍니다. 
혜조님이 올린 글을 보면 선지식에 화두 공부법 요지만 올리고 있네요.
그런데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혜조님의 공부 이야기도 한 번 듣고 싶습니다.
혜조님이 승려인지 일반인인지도 궁금합니다.
이 글을 복사를 하고 싶은데 복사는 안 되나요?

혜조님의 댓글

혜조 작성일

자루님 안녕하세요. 혜조입니다. ^^
저는 큰스님의 상좌입니다. 올 9월에 계를 받은 사미승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축서사에서 원주 소임을 보고 있지요.
이 홈페이지를 만든 사람이기도 하고요.
제가 올린 글들이 공부에 도움이 되었다니, 기쁘네요.

자루님의 댓글

자루 작성일

큰 스님과는 보통 인연이 아닌 것 같습니다.
큰 스님 도량의 살림살이를 맡고 계신 것도 엄청난 복덕이네요.
마음을 증명하여 큰 스님의 법 상좌 되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전문적인 수행 길로 들어선 것이
그저 부러울 따름입니다.
홈페이지도 잘 꾸며져 예술에 가깝네요.
재가자로서 스님께 합장 올립니다.

자루님의 댓글

자루 작성일

자루도 2014년에는
소 발자국을 보아서
소 발자국을 따라 소를 보고 소를 잡아
소코뚜레를 코에 꿰뚫어 끼워서
누런 소를 한바탕 싸워서
흰 소로 만드는 해가 되도록 정진해야겠습니다.

화엄화님의 댓글

화엄화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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