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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마다 열리는 미국 최고 권위의 피아노 경연인 밴클라이번 콩쿠르. 선우예권과 임윤찬이 잇따라 우승해 한국인에게도 친숙한 이 대회에서 지난 6월 우승한 아리스토 샴에겐 남다른 이력이 있다. 바로 미국 뉴잉글랜드 음악원과 하버드대 경제학과를 함께 졸업한 수재라는 점.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지난 8일 아르떼와 만난 샴은 “다양한 사상과 관점을 배우다 보면 우리가 하는 음악과 예술도 풍요로워진다”며 배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996년 홍콩 태생 피아니스트인 샴은 밴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의 투어 일정으로 인터넷청약신청 이달 초 한국을 찾았다. 서울뿐 아니라 대구, 천안, 제주 등을 돌며 한국 팬들을 만났다. 지금이야 정상급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지만 그는 대학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피아니스트를 업으로 결정하지 않았단다. “대학에선 정치학, 경제학 같은 학문을 공부하고 싶었어요. 전공으로 경제학을 고른 뒤엔 계량경제학을 제일 좋아했죠.” 샴은 홍콩의 교통량과 터널 통행량의 부산은행주택담보 연관성을 분석한 학부 논문을 내기도 했다.
 ◇브람스에 빠진 경제학도
샴의 강점은 구조를 파헤치는 남다른 눈이다. 그는 경제학을 통해 많은 정보를 동시에 처리하는 법을 익혔다. “이론과 수학을 결합해 세상을 해석하는 게 재밌었다”고 말할 만큼 이 학문이 적성에도 맞았다. “음악에서도 이론과 현실 해석이 어우러진 조합을 대납대출 찾으려고 해요. 그런 점에서 브람스가 끌립니다. 그의 작품은 감정과 표현, 메시지의 깊이와 핵심이 아름답게 얽혀 있어요. 무엇보다 완벽한 구조를 갖춘 음악이죠.”
전업 연주자로서의 삶을 결심한 건 스물한 살 때다. 하지만 음악과 학업을 병행하는 건 어려웠다. 콩쿠르를 준비할 때면 적어도 2주간은 학교를 비워야 했다. 다행히 그는 학교 덕을 실사진 봤다. 샴은 “하버드대엔 회사 경영인, 올림픽 선수처럼 특이한 개성을 지닌 사람이 많다”며 “학생이 하는 다양한 활동에 대학이 유연했다”고 말했다. 밴클라이번 콩쿠르에서도 연주 시간만 4시간 반에 달하는 경연곡들을 준비하는 게 만만치 않았지만 학부 시절 콩쿠르 준비 경험이 도움이 됐다.
밴클라이번 콩쿠르 결선에서 샴이 연주한 협주곡은 두 티머니 현금화 곡. 하나는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이었는데 다른 하나가 별났다. 이 콩쿠르 결선 역사상 연주된 적이 없는 멘델스존 협주곡 1번이었다. 그는 “이 곡을 연주한 사례가 없었던 게 오히려 이번 연주를 역사적 순간으로 만들 기회이자 이 곡에 대한 사람들의 접근법을 바꿀 기회였다”고 회상했다. 승부수는 들어맞았다. 샴은 콩쿠르 우승뿐 아니라 청중상 수상에도 성공하며 심사위원과 객석 양쪽을 만족시켰다.
샴의 남다른 집중력과 대담성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유년 시절에 실마리가 있다. 그는 피아노 강사이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세 살 때 처음 건반 앞에 앉았다. 열두 살의 나이에 미국 지나 바카우어 청소년 콩쿠르에서 우승할 정도로 두각을 보였지만 어머니의 압박은 딱히 없었단다. “부모님은 항상 저를 믿어주셨어요. 무엇을 하든 내버려 두셨죠. 저도 제 선택에 책임감이 있었어요. 피아노를 치는 게 재밌어서 시작했고, 지금도 재미가 있어야 연습해요.” 다만 그 재미를 얻기 위해 파고드는 깊이가 남들과 다르다. “연습할 때면 음 하나하나와 모든 화음을 즐겨야 해요. 음악의 모든 걸 즐기는 거죠.”
 ◇포도밭에서 음악제 여는 게 꿈
어릴 적 샴이 바랐던 직업은 건축가였다. 나중엔 여행가가 되길 바랐다. 지금도 그는 아프리카, 남미 등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여러 문화권의 건축물을 보는 걸 즐긴다.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봤을 때의 감동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단다. 이번 첫 방한에서도 청계천, 북촌 등 서울 곳곳을 탐방했다. 일본에선 온천 문화에 푹 빠지기도 했다. 그는 뉴질랜드와 아르헨티나의 신대륙 와인도 즐긴다. 샴은 “언젠간 포도밭을 거느리면서 호텔과 음악제를 운영하고 싶다”는 꿈도 내비쳤다.
작품 해석에선 악보 밖의 요소까지 고려한다. 샴은 악보를 충실히 공부할수록 연주자가 살릴 수 있는 해석의 폭이 더 넓어진다고 본다. 이 해석을 다채롭게 만드는 건 그날 공연의 분위기다. 그는 “작품을 자신의 것으로 온전히 흡수한 뒤엔 현장의 모든 요소에 맞춰 자유롭게 연주하는 게 가능해진다”며 “연주자의 기분, 관객 반응, 공연장 분위기, 피아노 상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같은 곡이라도 날마다 다른 표현이 나온다”고 말했다.
브람스 독주 전곡 연주를 마친 샴은 다음 목표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전곡 연주로 잡았다. 라흐마니노프를 두고 그는 “강렬한 감정과 메시지를 동시에 담아냈을 뿐 아니라 구조 안에서도 자유롭게 표현할 줄 알았다”고 극찬했다. 어떤 음악가가 되고 싶은지를 묻자 말랑말랑한 대답이 돌아왔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음악으로 ‘결국엔 괜찮아질 거예요’란 메시지를 전하는 일이에요. 음악이 여러분의 삶에 긍정적인 무언가를 더해주길 바랍니다.” 샴은 11일 서울 거암아트홀 공연을 마지막으로 방한 일정을 마무리한다. 오는 11월 21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도 독주회를 연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