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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멕시코 연방 대법원은 낙태죄 처벌에 관한 연방법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멕시코 32개 모든 주에 있는 연방 의료기관에서 임신중지가 합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연방 대법원의 낙태 합법화 결정에도 불구하고 보수적인 가톨릭 문화의 영향으로 멕시코 일부 주에서는 임신중지와 관련된 형법 개정안이 마련되지 않았다. 한국과 닮은 점이다. 한국의 경우, 2019년 4월11일 헌법재판 연금저축 비과세 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지만 6년간 이어진 입법 공백으로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법적 사각지대에서 위험한 임신중지를 선택하고 있다.


하지만 현격한 차이도 있다. 멕시코는 의약품인 유산유도제(임신중지 약)를 합법적으로 복용할 수 있다. 2007년 멕시코시티에서 낙태를 합법화한 이후 국민주택공사 점진적으로 만들어진 변화다. 임신 초기에는 의사 진료 없이도 임신중지 약을 복용하며 자가 관리를 할 수 있다. 이는 후기 임신에 이루어지는 임신중지 가능성을 낮춘다. 한국은 임신중지 약 처방과 복용이 불법이다.


8월13일, 이재명 정부는 ‘임신중지 약물 도입’을 국정 과제로 명시했다. 임신중지 약 정부전세자금대출조건 도입을 둘러싼 찬반 논란이 거셌던 만큼, 해당 약물의 실효성과 안전성은 다시금 중요한 이슈가 될 전망이다.


멕시코 재생산권 활동가들은 ‘합법화’ 그 자체가 완결점이 아니라고 말한다. 임신중지 약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필요한 곳에 약품을 배송해주는 국제 비영리기구 ‘위민온웹(Women On We 공무원대출 b)’ 소속 의사인 수잔 펠트하이스 박사 역시 합법화를 넘어서 여성들의 실질적인 임신중지 접근권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핵심은 임신중지 약 합법화를 통한 공적이고 안전한 정보 제공이다. 펠트하이스 박사는 안전한 임신중지 권리와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활동하는 의사들의 연대 조직인 ‘멕시코 프로초이스 의사 네트워크’를 설립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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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일 국제앰네스티 초청으로 방한한 수잔 펠트하이스 박사는 9월2일 국회 간담회와 9월3일 의료인·활동가를 대상으로 한 온라인 강연, 9월4일 열린 대중 강연에서 임신중지를 둘러싼 과학적 사실과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임신중지 약 도입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시사IN〉은 9월3일 수잔 박사를 만나 멕시코 사례와 한국에 주는 시사점에 대해 추가 질문을 던졌다. 아래는 인터뷰와 강연 등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재구성한 일문일답이다.


안전한 임신중지를 돕는 의사가 된 배경은?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의대에 입학하기 전부터 팔레스타인 반전운동과 사회불평등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해왔다. 의사가 되고 멕시코로 이주한 후에는 식민주의와 가부장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의학이 사람(여성)의 몸을 어떻게 통제하는지 깨닫게 되었고 의술 너머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멕시코 남부 지역은 마야 선주민 공동체가 많은, 멕시코에서 매우 빈곤한 주 중 한 곳이다. 산모사망률이 가장 높은 곳이기도 하다. 이런 환경 속에서 임신중지를 선택한 여성들을 만났고 이들을 지원하게 되었다.


기억에 남는 지원 사례가 있나?


임신중지를 도운 여성 중에 13세 소녀가 있었다. 마야 선주민인 그녀는 갱단의 집단강간 피해자였다. 법적으로 임신중지 수술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공공병원에서는 간호사·의사·병원장·심리학자 등과 면담 절차를 거쳐야 했다. 자신의 경험을 반복적으로 떠올리며 트라우마를 겪어야 했다. 그사이에 몇 주 시간이 지나 결국 소녀의 가족은 내가 일하는 진료소까지 오게 되었다. 임신 14주 차였던 그녀에게 진공흡입술과 유산유도제를 이용해 임신중지를 시도했다. 당시 진료소에 마취제가 부족해 임부가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매우 긴장했던 소녀는 곧 크게 숨을 쉬며 스스로 다독이더니 ‘이제 할 수 있어요’라며 수술에 동의했다. 임신중지 시술은 단 5분 만에 끝났고 소녀와 가족, 의료진은 다 같이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이처럼 복잡하지 않은 의료서비스임에도 절차적 과정을 복잡하게 만들어 접근권을 제약하는 경우가 있다. 임신중지가 합법화되고 인프라가 갖춰져 있다고 해서 실질적 접근성이 확보되는 건 아니다. 법 개정은 첫 단계일 뿐이다. 그보다 공공의료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다양한 계층의 사정을 이해하고, 의료서비스 접근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접근성을 높인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예컨대 성폭력 피해자를 상담하는 경우, 피해자가 진료소와 의료센터 등을 거치며 자신의 경험을 반복적으로 말하고 복잡한 검진 절차를 겪는 것보다 상담 받으러 온 그 자리에서 임신중지 약에 대한 정보를 받고 약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임신중지 약의 가장 강력한 이점은 현재 제공 중인 치료·관리 시스템에 바로 통합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22년 6월24일 미국 연방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례를 공식 폐기하자 슬퍼하는 여성들의 모습. ⓒAFP PHOTO



2023년 멕시코 연방 대법원에서 낙태죄 처벌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의 의미는?


멕시코는 페미니즘 운동의 역사가 길다. 2007년 멕시코시티에서 13주 이내 임신중지를 비범죄화하는 중요한 성과를 거뒀다. 당시 공공의료 기관에서 가족이나 배우자의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임신중지 수술을 무료로 제공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을 동시에 제정했고 의료인이 양심적 이유로 임신중지를 거부할 수 없게 했다. 다만 멕시코시티 외 거주자에게는 소득수준에 따라 시술비가 차등 적용됐기 때문에 불평등한 상황이 벌어졌다.


그 후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이 소송을 제기하는 등 다양한 전략을 활용했다. 그 결과 2021년, 대법원이 북부 코아우일라주에서 임신중지를 처벌하는 법률 조항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낙태 처벌 조항이 위헌이라는, 향후 새롭게 개별 주 차원에서 적용할 수 있는 전국적 판례가 나온 것이다. 대법원은 임신중지를 처벌하는 것은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사생활의 권리 등 다양한 권리를 폭넓게 침해한다고 선언했다.


2023년 판결은 이 판결을 더 강화한 것으로 연방법에 나오는 임신중지 처벌 조항이 위헌임을 선언한 것이다. 이로써 멕시코 전국 모든 연방 의료기관에서 임신중지를 합법적으로, 공공의료 서비스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위헌판결 이후 어떤 변화가 있나?


멕시코는 임신중지 합법화 이후에도 더 안전한 임신중지 사회를 만들기 위한 투쟁을 하고 있다. 여전히 임신중지 치료소 밖에는 태아 사진을 들고 의료진과 환자를 향해 ‘살인자’라고 외치며 시위하는 이들이 있다. 가짜 페미니스트 사이트와 가짜 진료소를 만들어 임신중지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고 여성들의 임신중지를 막으려는 이들이 등장하는가 하면 임신중지를 옹호하는 프로초이스 의사를 향해 ‘페미 나치’라고 부르며 직장 내에서 괴롭히는 백래시도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멕시코에서 ‘(주수 제한 등으로) 어떤 임신중지는 허용하고, 어떤 임신중지는 금지할 것인가’ 같은 쟁점은 더 이상 논쟁거리가 아니다.


연방 대법원 결정 이후 국가와 여성단체들의 관계에도 변화가 생겼다. 갈등관계에서 비판적 협업을 할 수 있는 관계로 진화하고 있다. 의료서비스가 제대로 제공되는지 견제하고, 정책을 모니터링하면서 의료서비스 품질에 대한 피드백도 제공한다. 멕시코 32개 주 중 24개 주가 임신중지와 관련한 형법을 개정했는데 아직 형법 개정을 못한 곳들이 있다는 한계도 있다.




2024년 7월15일 멕시코 푸에블라주 의회가 임신 12주 이내 낙태를 인정하는 형법 개정안을 통과시키자 시민들이 녹색 스카프를 날리며 환호하고 있다. ⓒEPA



한국도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 이후 입법 공백 사태가 길어지고 있다.


멕시코도 2023년 12월까지 연방 형법 개정을 대법원이 권유했지만 개정이 되지 않았다. 차이점은, 멕시코는 이런 논쟁이 이어지는 가운데도 임신중지 서비스가 도입되고 시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형법 개정 없이도 의료서비스는 제공할 수 있다. 폐렴이나 독감을 치료하는 데 별도의 법이 필요하지 않은 것과 같다. 또 연방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인 2021년부터 젠더 중립적이고 다문화 관점을 담은 임신중지에 관한 임상 지침 등이 의료시스템에 도입되기도 했다.


한국과 비교하자면, 우리는 2007년부터 멕시코시티에서 의약품이 사용돼왔고 공공의료 서비스 안에서 제한적이나마 임신중지가 이루어져왔기 때문에 ‘어떻게 임신중지를 할 것인가’라는 방법에 대한 논쟁은 없었는데 한국은 의약품 도입조차 논쟁의 대상이 된다니 놀랍다.


임신중지 약을 도입할 경우 여성의 건강권을 해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대표적 임신중지 약인 미소프로스톨과 미페프리스톤은 모두 세계보건기구(WHO) 필수 의약품 리스트에 등재되어 있다. 초기 임신의 경우 미소프로스톨과 미페프리스톤 두 약을 병행 사용하면 99% 효과가 있다. 30여 년간 이 의약품들이 사용돼왔고 다양한 환경과 인구 집단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되었다. WHO가 마련한 ‘임신중지 관리 지침(WHO abortion care guideline 2022)’에 따르면 임신 초기인 13주 이내는 자가·원격 진료로 약물을 통한 임신중지를 시행해도 안전하며, 13주 이상일 경우에도 의사 진료하에 임신중지 약을 이용할 수 있다. WHO 가이드라인에도 “병원이 아니어도, 의료 제공자의 직접적 감독이 없어도 두 약을 병행해서, 혹은 미소프로스톨만 단독으로 사용할 수 있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한국에서 ‘먹는 임신중지 약’으로 잘 알려진 미프진은 미소프로스톨과 미페프리스톤 두 가지 성분이 복합된 약물로 미국·프랑스 등 90여 개 나라의 약국 등에서 구매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현대약품이 미프진에 대한 국내 판권을 갖고 2021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품목 허가를 신청했으나 심사를 거치지도 못했다. 8월1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회의에서 “낙태죄가 비범죄화되었기 때문에 미프진 심사를 진행해야 한다”라고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장하자 오유경 식약처장은 “법체계 안에서 진행하겠다”라고만 말했다.




미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먹는 임신중지 약 미페프리스톤(왼쪽)과 미소프로스톨 병. ⓒAP Photo



약물을 통한 자가 관리 등 임신중지 ‘비의료화’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비의료화된 임신중지에는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은 뒤 약물을 이용해 집에서 본인이 자가 관리하는 것 등이 포함된다. 어떤 사람들은 의료화된 환경에서 (병원에서, 의사가 지정한 다양한 규정과 절차에 따라) 임신중지를 하고 싶을 것이고 그것 또한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어떤 여성들은 편리성·자율성·통제성 때문에 자가 관리를 선호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20년간 진행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의료화·비의료화된 환경 중 무엇을 선택해도 안전에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임신중지의 비의료화 영역이 확대될 경우 취약계층이 더 안전하게 임신중지를 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예컨대 우리는 도시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생활하는 선주민들에게 임신중지 약을 전달한다. 즉, 대도시에 살지 않거나 정보·이동권의 제약으로 의료서비스 접근이 어려운 이들도 자가 관리를 통해 안전한 임신중지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임신중지를 경험한 여성들은 자신의 몸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역량 강화를 경험하고, 자신의 경험을 다른 여성들에게 알려주며 그들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적극적으로 돕는 동반자(acompañantes·아콤파냔테스)가 되기도 한다.


한국 정부도 임신중지 약물 합법화를 국정 과제로 발표했다. 여성들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해 약물 도입 외 같이 검토해야 할 것들이 있다면?


임신중지 접근권을 제한하는 절차를 최소화해야 한다. 예컨대 의무 숙려기간, 정기검진, 외부 승인 같은 불필요한 요건들을 피해야 한다. 전 기간에 걸쳐 임신중지에 접근하는 문턱을 낮추는 것이 중요하다. ‘임신 전 기간’을 강조하는 것은 후기 임신중지 때문이기도 하다. 후기 임신중지를 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들이 왜 그 기간까지 임신중지를 하지 못했는지 맥락을 살펴야 한다. 이들 가운데는 빈곤·장애를 겪거나, 정보·교육 접근성이 제한되거나, 지속적인 폭력에 노출된 경우도 있다. 따라서 어제는 임신중지가 합법이었는데 하루가 지나니 임신중지가 불법이 되는 상황은 이들의 안전을 더 위협하는 일이 된다. 의사뿐만 아니라 (간호사 등) 의료계 종사자가 임신중지 약을 처방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접근성을 높이는 방법이다.


이 과정에서 의료인에 대한 가치명료화 교육도 보장되어야 한다. 가치명료화란 임신중지에 대한 오해로 이를 반대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의료인의 관점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의사가 된 이유와 직업적 보람, 불평등과 차별에 대한 생각, 임신중지에 대한 관점을 묻는 과정을 통해 그 가치를 재학습하는 것이다. 의대에서는 주로 기술에만 초점을 맞춰 가르치기 때문에 이런 사회적 인식을 훈련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치명료화는 선입견과 편견을 없애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수단이다.

김다은 기자 midnightblu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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