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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기행방

한국의 5대적멸보궁 : 법흥사(法興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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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련화 작성일12-07-17 12:47 조회4,201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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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법흥리 422번지 사자산(獅子山) 남쪽 기슭에 있다.

[소속]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이다.

[연혁] 자장(慈藏)이 643년(신라 선덕여왕 12) 당나라에서 귀국한 뒤 오대산 상원사(上院寺)와 태백산 정암사(淨岩寺), 영축산 통도사(通度寺), 설악산 봉정암(鳳頂庵) 등에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마지막으로 이 절을 창건하여 역시 진신사리를 봉안했으며, 이름을 흥녕사라고 했다. 그 뒤 헌강왕 때(875-886) 징효 절중(澄曉 折中)이 중창하여 선문구산(禪門九山) 중 사자산문(獅子山門)의 중심 도량으로 삼았다. 당시 헌강왕은 이 절을 중사성(中使省)에 예속시켜 보살핌을 받도록 했다. 그러나 891년(진성여왕 5) 병화로 소실되었고, 944년(고려 혜종 1) 중건했다. 그 뒤 다시 불에 타서 천 년 가까이 작은 절로서 명맥만 이어왔다. 1902년 비구니 대원각(大圓覺)이 중건하고 법흥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1912년 다시 소실된 뒤
1930년 중건했으며, 1931년 산사태로 옛 절터의 일부와 석탑이 유실되었다.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 중의 한 곳으로서 대표적인 불교 성지이다.

[유적.유물] 현존하는 건물로는 적멸보궁(강원도 문화재자료 제29호)을 비롯하여 대웅전, 무설전(無說殿), 노전, 산신각, 요사채 2동, 객사 등이 있다. 이 중 적멸보궁은 1939년 중수했으며, 법당 안에는 불상을 봉안하지 않고 있다. 적멸보궁 뒤에는 자장이 진신사리를 봉안한 사리보탑(舍利寶塔;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3호)과 수도하던 곳이라고 전해지고 있는 토굴, 당나라에서 사리를 넣어 사자등에 싣고 왔다는 석함(石函)이 남아 있다.

이 밖에도 징효국사부도(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2호)와 패엽경(貝葉經), 흥녕선원 터(강원도 기념물 제6호)가 있다. 이 중에서 패엽경은 종이가 없던 시절에 인도에서 영라수(靈羅樹) 잎에 경전을 기록했던 것으로 앞뒤 가득하게 범어로 경전이 쓰여져 있는 희귀한 것이다. 본래 금강산 마하연사(摩詞衍寺)에 봉안되어 있었는데, 1945년 8.15해방 후 공산 치하를 피하여 한 승려가 남한으로 가지고 내려왔으나, 30여 년 동안 행방이 묘연하다가 부산의 어느 절 주지가 신도로부터 얻어 이 절에 봉안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현재 이 절은 부처님의 사리와 함께 패엽경을 친견하기 위해 찾아오는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한 891년의 병화 전의 융성을 입증하는 3개의 안내 석탑과 수호석불좌상이 현존하고 있다. 전국각지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해 이 절에 이르는 길목에 안내 석탑을 설치했는데, 충청북도 제천시 장락동과 영월군 주천면 주천리, 영월군 수주면 무릉리 등에 남아 있으며, 수호석불좌상은 높이가 7m로 무릉리의 요선암(邀仙巖)에 조각되어 있다.

우리나라에 적멸보궁이 들어선 것은 자장스님(慈藏:590 ~ 658)에 의해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자장율사는 선덕여왕 5년( 636)에 중국 오대산에 가서 문수보살의 진신(眞身)을 친견한 것으로 전해진다. 스님은 중국 오대산 태화지(太和池)에 있는 문수석상 앞에서 간절한 기도 끝에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선덕여왕 12년(서기 643년)에 부처님 사리 100과와 부처님께서 입으시던 가사 1벌을 당나라로부터 가져 와 오대산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니며 기도를 계속했다. 오대산에 월정사와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사자산에 흥녕사(지금의 법흥사), 태백산의 갈래사(지금의 정암사) 등이 창건된 것은 이런 인연에 의해서다.

3년후 신라 조정에서 내린 대국통이라는 직위를 받아 황룡사 9층 석탑을 세워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는 초석을 다졌고 선덕여왕 15년(646)에는 경남 양산 통도사(通度寺)에 부처님 가사와 사리를 모시고 금강 계단을 세웠다. 임진왜란 중에 통도사의 사리는 왜구들에 의해 도난당했으나 우여곡절 끝에 다시 찾아 왔다. 이를 둘로 나누어 하나는 정암사에 나머지는 통도사의 계단을 중수하고 봉안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5대 적멸보궁은 경상남도 양산군 영축산 통도사,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 상원사, 강원도 인제군 설악산 봉정암(鳳頂庵), 강원도 영월군 사자산 법흥사(法興寺), 강원도 정선군 태백산 정암사(淨巖寺)로 알려져 있다.

법흥사 적멸보궁은 사자산 연화봉 중턱에 있다. 경내 입구인 원음루에서부터 5백미터 정도 올라가면 있다. 넓고 큰 돌들을 엮어 1단대의 지대를 마련하고 목조건물로 조성한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집이다. 적멸보궁 기와의 입막새에는 법(法)자가 씌어져 있고 '소화(昭和) 8년 11월 준공 이라는 글씨가 양각되어 있는데, 이는 1934년에 법흥사의 기와를 굽고 새로 지었다는 뜻이다.

적멸보궁 뒤에는 자장스님이 불사리를 봉안하고 수도하던 곳이라 전해지는 토굴과 사리탑이 있다. 적멸보궁 뒤 축대 위에 석조 사리탑이 있다. 신라 선덕여왕 때 축조됐다고 전해지나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토굴의 외부는 뒷편의 낮은 언덕으로부터 내려오는 완만한 경사를 이용하여 그 흙으로 석실을 엎었는데 남향한 입구 쪽 정면만 높고 뒷편은 경사 때문에 약간 봉긋한 모양의 원형으로 마치 무덤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토굴 안의 평면은 입구부터 약간씩 넓어지다가 중심부에서 서쪽 한쪽만을 확장하고 원형에 가깝도록 했다. 내부의 높이는 키 작은 사람이 겨우 설 수 있을 정도인 160센티미터 너비는 190센티미터에 불과해 앞쪽에 조그마한 숨구멍만 남겨둔 무덤이나 마찬가지다. 자장 이후 다른 고승들이 이곳에서 수도를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곳에 석관을 안치하여 고승의 사리나 유골을 봉안하고 경첩을 간직하던 곳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토굴 옆에는 자장이 당나라에서 불사리를 모셔올 때 사리를 넣고 사자 등에 싣고 왔다는 석함이 남아있다. 몸체의 개석이 모두 파손되어 있으나 각부의 부서진 조각이 잔존함으로서 완전한 형태를 파악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이 석함은 한 개의 장방형 돌로 이루어졌다. 이에 대해 징효대사가 쓰던 경함이라는 설도 있다.

댓글목록

영영님의 댓글

영영 작성일

조금(?) 걸어서 올라간 곳에 위치해 계시더군요.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정말 그 당시의
붉은 한 조각 신심을 엿볼 수가 있답니다.
지금까지 전승, 계승되어 왔으니 당연 무엇인가를
우리들에게 남기셨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본답니다.

법융님의 댓글

법융 작성일

5대적멸보궁에 모셔져 있어야할
부처님의 진신사리는 소재가 정확하게 알수가
없다고 들었습니다
일제 강점기때 일본인들이 한국사람들을 따돌리고
도굴을 해 갔다는 얘기가 전해온다고 합니다
야만인들입니다. 역사도 남의것을 인정할줄 모르는
야만인과 같은인간들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