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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예스님으로부터의 인도순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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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왕봉 작성일06-03-12 09:14 조회2,897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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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께 올립니다
----부다가야의 네팔절에서 신홍(1997년 3월 9일)

그저께 바라나시에 도착하여 머물고 있습니다.
아침저녁은 시원하지만 낮에는 몹시 뜨겁습니다.
그러나 잘 적응해 가고 있으니 여간 다행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기 오기 전에는 슈리이스를 들러서 왔습니다.
거기에 기원정사(기수급 고독원)는 수닷타 장자가 기증하여 26년간을 안거하시며 금강경 등을 설하셨던 곳이라고 합니다. 룸비니와 부처님의 열반지인 쿠쉬나가르도 참 편안한 곳이었습니다만, 저는 기원정사가 그렇게도 좋았습니다. 다른 유적지는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라 복잡하지만 이곳은 참 한적하고 산책하기도 좋은 곳입니다. 부처님이 거처하신 향실이 바라다보이는 곳에 앉아 있노라면 여기 저기 그늘에 앉아서 명상하는 사람, 독경하는 스님들 모습도 보입니다. 문득 생각해 보면 제 자신이 삼천년 전으로 돌아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있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기원정사에서는 스리랑카 절에서 며칠 머물렀는데 거기서 처음으로 한국소식을 들었습니다.
요즘 파업으로 시끄럽다는데 잘 풀리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곳도 이제 봄이 시작되고 있겠지요. 여행중 더러 좋은 분들을 만나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차를 타고 가면서 바라보이는 풍경이라든지, 한적한 들길을 거닐면서 때로는 수만리 타국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그저 우리 시골 어느 곳에 잠시 와있다는 그런 느낌입니다. 편지는 한 달 가까이 걸린다고 해서 팩시로 보낸다고 두서없이 적었습니다.
기회가 되는 대로 또 소식 드리겠습니다.



부다가야에서 신홍 올림(1997.3.16.)

부처님이 성도하신 땅 부다가야로 가는 길도, 부다가야도 아늑하고 평화로운 곳이었습니다. 거리 곳곳엔 각국에서 순례 오신 스님들의 모습이 많이 뜨입니다. 성도하신 자리를 기념하여 아쇼카왕이 세운 마하보디 사원과 대탑은 높이가 52m나 되는 피라밋 지붕을 한 아름다운 사원이었습니다. 그 대탑 둘레를 돌면서 너무나 뜻밖에도 거기서 원혜스님을 만나, 한참 동안 그냥 말없이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었습니다. 망연했던 10여 년의 세월을 가로질러, 그것도 머나먼 타국땅 인도에서, 또한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루신 그 자리에서의 가슴 벅찬 감동적인 해후였다니, 실로 까마득한 과거생에 함께 부처님께 조그만 선근을 심은 그 인연이 아슴하게 떠오르는 듯도 싶습니다.

수잣타가 부처님께 죽공양을 올린 곳과 부처님과 5비구가 진정각산 유영굴에서 수행하신 곳 등을 참배했습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먼 시골길을 걷는 것이 그래도 마냥 행복하기만 했습니다. 별로 높아보이지도 않는 산길을 땀을 흘리며 올라가니, 부처님께서 카자파 3형제를 제도하시고 함께 넘으셨다는 상두산(코끼리 머리같이 생긴 산)이 아스라이 보입니다.

아침 일찍 대탑에 참배 갔더니 벌써 많은 스님들이 오셔서 독경을 하고 계십니다. 티벳사람들이 전신으로 오체투지하여 절하는 모습도 인상적이고, 대만에서 온 비구니 스님은 탑주변에 모셔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부처님마다 일일이 큰절을 올리는 모습도 감동적이었습니다. 내일은 영축산이 있는 라즈기르와, 계속해서 유마거사가 계셨던 바이샬리로 갈 예정입니다. 다시 편지 드리겠습니다.


알라하바드에서 초예 올림(1997.3.23.)

부처님께서 법화경을 설하신 영축산 가는 길은 예상대로 쉽지만은 않은 길이었습니다.
버스나 찝차 등은 파업중이라서 오토릭샤를 대절해서 가는 중간 중간에 길을 막아 통행세를 뜯어내고, 황량한 들판에는 건조한 모랫바람만이 불어대고 있었습니다. 어렵게 간 길이여서인지 몰라도 영축산에 올라 참배드리는 마음이 처연한 심정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중현이는 소리죽여 흐느끼며 무수배를 올리는데, 함께 간 스님들도 다 눈물이 그렁했습니다. 지바 의사가 기증한 망고동산, 빔비사라왕이 부처님께 최초로 기증한 죽림정사, 또한 빔비사라왕이 아들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감옥에 갇혀서 죽음을 맞기까지............영축산을 바라보며 부처님을 그리워했을 왕의 마음이 전해지는 듯 가슴이 아리기도 했습니다.

사리불과 목련 존자가 부처님 제자 알비 스님을 만나 발심출가한 곳이기도 한 이곳 영축산 왕사성. 그 현장에 와서 그때의 모습을 하나 하나 그려보노라니 너무도 생생하고 절절해서 환희심이 나면서 눈물을 주루룩 흘리기도 했습니다. 400년경 중국의 법현스님은 이곳을 참배하여 향화공양을 올리며 등불을 밝히시고 한없이 눈물을 흘리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옛날에 이곳에 머무시며 수능엄경 등을 설하셨는데 법현은 그때 부처님을 뵙지 못하고 다만 부처님의 유적지만 뵈올 뿐입니다" 하시며 수능엄경을 오래도록 동송하셨다고 합니다.

어제의 어려운 노정을 오늘은 보상이라도 받는 건지, 미안마에서 순례오신 스님들을 만나 관광차를 얻어 타고 어렵지 않게 나란다 불교대학까지 순방할 수 있었습니다. 부처님의 유적지를 다니면서 절감하는 것으로는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라곤 없다, 모든 게 무상한 것이다, 인간의 흥망성쇠가 그 어찌 한바탕의 꿈이 아니랴'하시는 부처님의 말씀이 들리는 듯 합니다. 다시 쓰겠습니다.


마날리에서---(97. 4. 24.)

히말리아의 2000미터 중턱에 자리한 마날리. 그곳에서도 4km 산길을 따라 올라와서 유황온천이 솟는 "마쉬쉿"이라는 작은 마을에 와 있습니다. 같은 인도 땅이지만 어느 지역보다 사람들이 순박해서 좋고, 집요하게 추근거리는 인도인들의 끈적거림이 없어서 살맛이 납니다.
앞뒤에는 장쾌하게 뻗어내린 히말라야 산맥들, 눈만 들면 거기에 하얀 눈을 이고 서있는 설산들, 그리고 이 청량한 바람결들................

작은 반도의 땅에서 오밀조밀 살아오던 사람으로서 여태 느껴보지 못했던 시원시원한 절경이 또한 좋습니다. 고지는 이천미터가 넘는 곳이지만 적도가 가까워서인지 지금 우리나라와 같이 포근한 봄날씨입니다. 설산을 마주보며 걷는 산책길도 아름답습니다. 바위산 곳곳에 수십미터의 폭포가 하얀 물안개를 일으키며 떨어지는 광경도 장관입니다.

계곡 한쪽에선 밀이 파랗게 자라고 있고, 끝도 없이 펼쳐진 사과밭에는 지금 사과꽃이 한창입니다. 어제는 산책길에서 논을 갈고 있는 농부를 만난 것도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우리나라 시골에서도 못자리 준비를 하고 있겠군요. 부처님 오신날을 전후해서 모심기가 시작될 텐데 올해는 부처님 나라 인도땅에서 부처님 오신날을 맞게 되겠네요. 저희들은 귀국예정일을 대략 8월 초순쯤 잡고 있습니다. 7월 초순부터 길이 열리는 라닥(고지 3,500m) 지역을 꼭 들러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7-8월에나 길이 열린단는 '라닥'---그 옛날, 수많은 스님들께서 총령을 넘어 고비사막과 파미르고원을 지나서 그 어려운 탐험여정에서 반드시 들러야 했던 "라닥"을 저희들도 꼭 들러보고 싶습니다. 다소 늦어지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안에 히말라야 주변과 "다람살라"(티벳 망명지) 등을 둘러볼 생각입니다.

이 작은 산골 마을에서 지낸 지가 벌써 이십여 일이나 됩니다. 어느 분이 작은 전기밥솥과 쿠커를 사주셔서 가지고 온 게 여러모로 잘 쓰입니다. 밥, 수제비, 찌개는 물론이고, 그저께는 무 시래기를 삶아서 절에서 얻은 쌈된장을 넣고 우거지 국을 끓여 먹었는데 임금님 수라상이 부럽지 않았습니다. 생강과 무도 식초에 절여서 장아찌도 담아 먹고, 김치 깍두기도 다 담아 먹고 있습니다. 성짓골의 봄날 풍경도 선하게 그려집니다. 지금쯤 매화꽃 진달래가 한창이겠지요. 봄비라도 내리면 연두빛 잎사귀가 싱그러울 테구요. 엊저녁 산책길에서는 통통하게 올라오는 고사리 한 무더기를 발견하고 마치 아는 사람을 만난 듯 어찌 그리도 반갑던지요.

또 소식 드리겠습니다. 스님, 그 동안 건강하십시오.

꿀루계곡 마날리에서 초예 삼가 절하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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